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은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그동안 계속 혼자서 수련해 왔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수련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대법을 접했지만, 여러 가지 장애물과 집착으로 인해 오랫동안 수련의 길에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정식으로 법을 배우고 수련을 시작한 지 짧은 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1. 대법의 정법노정을 따라가다
제 수련환경에는 거의 모두가 속인들뿐입니다. 유일한 친척 파룬궁수련생은 제가 법을 얻은 지 2주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 해 동안 가족들은 대법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으며, 친척 수련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대법에 미안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비록 환경은 엄격했지만 다행히 대법의 인도가 있었고, 사부님께서도 항상 보살펴주시며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가 여전히 계속되는 이 환경 속에서, 법을 배우면서 생긴 정념은 한 줄기 곧은 빛처럼 저를 인도하여 저만의 수련 길을 개척하게 해주었습니다.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저는 호기심으로 신체 변화를 느끼는 한편, 인간적인 마음을 버려야 하는 고통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언제쯤 주변에 대화할 수 있는 수련생이 생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집착임을 알면서도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숨기곤 했습니다. 수련이 깊어지면서, 점차 수련인으로서 ‘기다리고, 의지하고, 바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외부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는 어디에 있든 해야 할 일을 잘 완수하고,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정법하시는 이 최후의 시기에 대법제자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근본적으로 중생을 구하는 데 써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 법공부와 발정념하는 시간 외에는 진상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절망감이 밀려오고, 중국에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중공 악당과 세상의 혼란에 너무나 무감각해져 있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손을 뻗어 빗물을 받았습니다. 빗방울들이 손바닥에 떨어져 점차 작은 물웅덩이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보며 저는 비록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마치 비 오는 날 손을 내밀어 손바닥에 몇 방울의 빗물을 받는 것처럼,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더욱 진지하게 임하게 됐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수련생들이 중국에서 자신의 힘으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를 명혜망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기술에 능숙한 수련생은 진상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문득 저는 글쓰기를 잘하니 진상 편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숙소에 작은 프린터를 두고 언제든지 자료를 출력할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혼자서 진상 편지를 ‘출력-제작-배포’하는 과정에서, 저는 내면에 강한 조급함과 목적을 추구하는 마음, 빠른 성과를 바라는 욕심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정념이 부족하면 중생 제도의 효과도 좋지 않기 때문에, 평소 수련인다운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를 지켜야 하며, 조급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명혜망의 것이 아닌, 인터넷에 올라온 이미지와 글을 선택해 자료를 출력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지역 수련생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점차 명혜망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현재는 명혜망에서 자세하고 소중한 자료를 다운로드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으며, ‘명백’, ‘진상’ 등 일반인들이 읽기에 적합한 간행물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자료를 배포할 때는 항상 정념을 유지하면서도 안전에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알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또한 ‘사부님이 계시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한 수련생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결국 자료를 배포하다 감시카메라에 발각되어 박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제야 저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대법책을 들고 “차에 치이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외친 사람의 마음이 모든 수련생 내면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제때 발견해야 합니다. 한번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너무 경솔하게 행동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상황에서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 편지를 건네주었는데, 다행히 사부님의 보호로 위험 없이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그 후 저는 원망심과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평온한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작성했습니다. 그것을 몇 부 인쇄하여 일부 친척들에게 전달했습니다. 편지에는 제가 이해한 바에 따라, 그 친척 수련생이 뇌졸중이라는 가상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친척 수련생은 생전에 여러 차례 낚시를 했는데, 이는 사실 살생입니다. 대법에서 가르치신 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대법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전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는 전에 삼퇴(三退: 중공 당, 단, 대에서 탈퇴)를 해드렸지만, 다른 친척들은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꿈에서 많은 친척과 친구들이 바다에서 놀고 있었는데, 자정이 다 되어도 여전히 물속에서 나오지 않아 저는 매우 걱정했습니다. 그러다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 위로, 서양 지옥에나 나올 법한 날개 달린 악마가 나타나 아직 육지로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을 거두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어머니가 제 곁에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했지만, 다른 친척들, 특히 중공 당원인 한 친척은 여전히 바다 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과 세상 사람들이 하루빨리 중공의 본질을 깨닫고 중공과 결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 이상 거짓말에 속아 대법을 비방하거나 대법 서적을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예전에는 강한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진상 편지를 만들어 낯선 사람에게 건네거나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선인(眞·善·忍) 중에서 ‘진’에 대한 믿음 덕분에 결국 저는 그것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2. 소극적이고 나태하며, 탐욕과 안일을 추구하는 마성을 서서히 제거하다
혼자 수련하다 보니 주변에 함께 교류하거나 서로 일깨워줄 수련생이 없어 쉽게 부정적이고 게을러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다 보면 안일한 마음이 핑계를 찾아 빈틈을 파고들게 됩니다. 오늘은 바쁘다는 이유로 연공하지 않고, 내일은 기분이 우울해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며, 때때로 주변 사람들과 말다툼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신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저는 자주 흔들리곤 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부님, 어떻게 하면 이 나쁜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특히 제 영혼 깊숙이 새겨진 듯한 이기심은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을까요? 혹시 이런 집착들은 영원히 제거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바로 그때,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대법에 대한 신심을 가져야 한다. 사부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믿어야 한다. 과거의 구우주는 이제 흘러가게 두고, 생생세세 쌓여온 좋지 않은 것들도 함께 사라지게 두자. 대법은 우리를 신우주로 이끌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우리는 이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하며, 정념을 방해하는 사악한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열등감이 있었고 대법 수련도 늦게 시작해 다른 수련생들과 큰 격차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때로 실수를 하면 자신을 조롱하거나 심지어 ‘나는 정말 바보야’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다. 내가 나 자신을 욕하면 사부님은 어떤 기분이 드실까? 내가 수련을 잘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수련인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나 자신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자포자기하지 않게 됐고 스스로에 대한 신심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통해 인간적인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은 반복적이면서도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착실하게 법공부를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으니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작은 실수를 했다고 자신을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처음에는 전혀 결가부좌를 할 수 없었고, 그것이 마치 하늘 끝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천천히’라는 글자가 자주 눈에 들어왔고, 대법의 연공 동작도 ‘느슨하게·천천히·둥글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느 날 룸메이트에게 “오랫동안 연공을 했는데도 여전히 결가부좌를 할 수 없어서 답답해”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치 사부님께서 룸메이트의 입을 빌려 저를 격려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 서서히 결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결가부좌를 할 때 다리가 아프면 마음도 함께 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고요함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면 다리의 통증이 더욱 심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빨리 다리를 내려놓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외부의 좋지 않은 요소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면, 몸에도 쉽게 문제가 생기고, 사부님께서 ‘대원만법-동작설명’에서 말씀하신 “定(띵)할 때 자신은 마치 달걀껍질 안에 앉아있는 것과 같이 미묘(美妙)하고, 아주 편안한 감각이 나타나게 되며”라고 하신 경지에도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수련하기 전, 저는 인터넷에서 많은 나쁜 정보를 접했습니다. 수련하고 있어도 여전히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어야 했는데, 때로는 학습과 업무 때문이었지만, 때로는 집착 때문에 접속하게 됐습니다. 머릿속이 온갖 잡다한 정보로 가득 차다 보니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최근에는 일자리를 찾으면서 연공할 때조차 ‘이 직장은 숙소를 제공한다고 했는데, 짐만 챙겨 가면 되겠네, 저 집은 어떨까?’ 같은 생각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가끔 나쁜 집착이 많아지면 좋은 것들, 예를 들어 방금 배운 법조차 그 집착 속에 묻혀 잊혀져 정념이 생기지 않습니다.
혼자 수련하다 보니, 주변에 함께 교류하거나 일깨워 줄 수련생이 없어, 더 강한 정력(定力)과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특히 인터넷을 자주 접하는 젊은이들은 그 유혹을 피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이렇게 소중한 기회와 인연을 맞이한 만큼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은 극도로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수련 초기에는 ‘세 가지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발정념을 할 때 반드시 결가부좌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낮에는 발정념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침 6시 발정념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밤 12시에 겨우 10분 정도만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발정념이란 공능을 운용하여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사악을 제거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매일 네 번의 정시 발정념을 15분씩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안일함과 게으름이 상당히 심합니다. 때때로 아침에 발정념을 한 후 다시 잠들어 버리는데, 다시 눈을 뜨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아침 연공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밤 12시 발정념을 마친 후 바로 잠자리에 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나 발정념을 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정념을 하면서 점차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가다듬은 후, 앞의 네 세트 연공을 합니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성실히 수행하고, ‘오늘 할 일은 오늘 끝낸다’는 옛 사람의 지혜를 본받아 미루지 않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다른 지역의 수련생을 만나게 됐습니다. 비록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부드럽고 친근한 장(場)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사부님께서 ‘홍음2-가로막지 못하리’에서 말씀하신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도다”라는 법리를 더욱 깊이 체험했습니다. 정말로 대법제자는 어디에 있든 모두 대법 안에서 함께 수련하고 있습니다. 비록 혼자 수련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수련인이 마땅히 배워야 할 ‘공부’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게 되어 있으며,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수행해야 할 사명은 사부님께서 적절히 배치해주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외지의 법공부팀에 참여하여 단체 연공과 법공부를 함께한 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은 연공하면서 졸거나, 법공부 중에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정시가 되어 발정념 음악이 울려도 그저 듣기만 할 뿐 앉아서 발정념을 할 생각이 없는 수련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납치된 수련생을 구출하는 일(서명운동 등)에 대해 한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들에게 참여를 권유했을 때, 어떤 수련생은 무심하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한 수련생의 특별한 모습도 보게 됐습니다. 그녀는 깔끔하고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저는 그녀가 30대로 보였습니다. 대화 중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난 학생만큼 어릴 때 수련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이미 은퇴했지요.” 알고 보니 그녀는 50대였지만 얼굴과 목에 주름 하나 없었습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대법의 힘이에요!” 이 수련생은 20년 넘게 법을 외워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법공부 하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인연의 신비로움을 깊이 느꼈고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이 기회를 더없이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이제 제 마음은 한층 더 안정된 상태로 들어섰으며, 수련을 갓 시작했을 때처럼 수련생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하던 들뜬 감정은 사라졌습니다.
외지 수련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나는 수련을 처음했을 때처럼 정진하고 있는가?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성실히 하고 있는가? 중생을 구하는 일을 진심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가?’
저는 깨달았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사람은 안락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쉽게 간과하기 쉽습니다. 안일한 마음은 종종 일상생활에 대한 집착 속에 숨어 있습니다. 속인들이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속인의 이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련인의 득과 실에 대해서는 사부님께서 이미 여러 번 일깨워주셨습니다. 수련인은 나쁜 것과 각종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 중에는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도 포함됩니다. 그것은 각종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은 마음과, 고통과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수련인이 지름길만 찾으려 한다면 어떻게 진정으로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겠습니까?
최근 제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까? 내가 꿈꾸는 생활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혹시 인연이 닿으면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수련인으로서 가져야 할 것들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이미 제 수련의 길을 모두 배치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집착심’이지만, 그 대신 얻게 되는 것은 속인이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인생의 행복감’ 같은 것을 집착하며 고민해야 할까요?
3. ‘자유’를 추구하는 집착을 내려놓다
외지 수련생과 교류하던 중, 한 수련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왜 중국을 떠나지 않나요? 나가서 대법 속에 더 깊이 융화되고, 법공부 진도도 따라잡으면 얼마나 좋아요?” 저는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사실 해외로 나갈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이미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해외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수련을 시작하기 전이었고, 운명의 안배는 결국 저를 국내에 머물게 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과 가족들도 제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 저는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배치된 것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 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때때로 집착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중공이 여전히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고 있고, 생체 장기적출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할 때면 저는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면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로 나가면 법을 더욱 잘 실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들이 반복적으로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제 집, 제 방에 있었습니다. 그때, 중공 악당에서 보낸 사람들이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저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방문을 닫으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문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문밖에는 할머니가 서 계셨지만 저는 그들이 집에 들어오면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조차 생각하지 않은 채, 두려움에 휩싸여 창문으로 뛰어내려 집을 떠나 도망쳤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저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사로잡힌 걸까?’ 저는 제 책임을 완전히 내팽개쳤고, 할머니를 사악이 가득한 집에 남겨둔 채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쳤습니다. 이것을 현실에 비추어 보니 바로 해외로 나가고 싶어 했던 제 집착과 직결돼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악한 땅을 떠나고 싶어 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았으며, 이 수련의 길이 어떻게 안배되었는지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서, 저는 타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는 대법으로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며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 마음 깊은 곳에 ‘자유를 추구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대법을 수련하고 중공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중공 악당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증오를 품게 됐습니다. 그로 인해 하루빨리 중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속박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동안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면 겉으로는 제가 선택하며 살아온 것 같았지만, 중공의 거짓말을 알게 된 후 이 땅에서는 한순간도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감정이 처음에는 저를 미칠 듯이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수련인은 모든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중공에 대한 ‘증오’든, 겉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든 말입니다. 속인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는 당연히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수련인이 어찌 속세에서 ‘자유’를 추구하겠습니까? 설령 어떤 사람이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다 해도, 그는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반면, 설령 한 수련인이 감옥에 갇혀 있다 해도, 그가 어떤 고난도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높은 심성과 경지를 유지하고, 세상의 모든 득실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자유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깨닫고 나니, 반드시 중국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해주신 길은 좁지만 바르고 곧은 길입니다.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 중국이라는 이 땅이 마(魔)가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는 거대한 연단로와 같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됐습니다. 이 광대한 천지 속에서, 이토록 특별한 인연과 조화를 통해 자신을 단련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오히려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지 수련생을 보면서, 그들이 하나같이 친숙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하늘이 나를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 배치했다면, 나는 그곳에서도 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었을까?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호주… 어디에 있든 나는 내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답을 내렸습니다. ‘할 수 있다.’ 저는 어느 나라에 있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생에 저는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고향은 보하이(渤海) 지역으로, 사부님의 고향과도 인접해 있습니다. 저는 한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천법을 바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인연과 조화가 아닐까요? 저는 도망칠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사부님께서 주신 이 모든 기회와 연연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곳에는 아마도 제가 마무리해야 할 수많은 인연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반드시, 그리고 충분히 저의 수련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것입니다. 맺었던 서약을 이행하고 사명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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