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촨성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85세의 고령 대법제자로, 사부님의 보호 아래 오늘까지 안정적으로 걸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 25년간의 수련 여정을 돌아보며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득법(得法)의 기쁨
저는 쓰촨성 농촌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몇 년 학교도 다니지 못해 지식이 부족합니다. 결혼 후 네 자녀를 낳아 기르느라 매일 생계에 바빴습니다. 1960년대 중국에서는 ‘대약진 운동’이 일어나 고통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농민들은 식량이 부족하고 생활이 몹시 어려웠으며 과중한 노동까지 해야 했습니다. 저 역시 건강이 망가졌습니다.
당시 저는 자주 병에 시달렸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의사가 메니에르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매일 어지럽고 두통에 시달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로 여러 해를 고생했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기저기 의사를 찾아다니며 각종 민간요법도 시도해봤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후에 절에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하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여 자주 절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지만, 병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져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찾아와 지금 사회에 아주 좋은 공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공법이냐고 묻자 파룬궁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파룬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 망설였습니다. 책이 있는지 물었더니 있다고 해서 빌려서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 그 친구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녀는 빌린 책이라 일주일만 빌려줄 수 있으니 그 후에는 돌려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식이 부족한 저는 책을 받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어떻게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지식 수준이 높은 남편에게 상의했습니다. “이 책은 정말 좋은데, 빌린 거라 일주일 안에 읽어야 해요. 당신이 빨리 읽어보세요. 집안일은 내가 다 할게요.” 남편은 일주일 만에 책을 다 읽었고, “이 책은 정말 잘 썼어. 저자가 대단한 분이고 수준이 매우 높아”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전법륜(轉法輪)》을 갖고 있지 않았고, 약속대로 일주일 후에 친구에게 책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법륜》 한 권을 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열흘쯤 후, 새 책을 받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무한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었고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남편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이전에 불교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모두 우리집으로 초대해 함께 법을 배우자고 했습니다. 남편도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법을 배우고 연공을 했습니다. 우리 집은 지역 법공부 장소가 되었습니다. 매일 오전에는 밖에 나가 대법을 알리고, 오후에는 집에서 비디오를 시청했습니다. 글을 아는 사람은 책을 읽고, 글을 모르는 사람은 법을 듣거나 비디오를 봤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법공부와 연공을 꾸준히 했고, 어느새 저의 온갖 병고와 통증이 사라져 진정으로 병에서 해방되어 매우 행복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 천안문 광장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다
1999년 7월 20일,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있을 때 몇 명이 우리집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공안 경찰과 주민센터 직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집안을 둘러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떠났습니다. 사흘 후, 그들은 다시 와서 저를 파출소로 데려가 이틀간 불법 구금했고 우리집도 수색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농촌 여성으로 평소 정직하게 살며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 경찰에게 불법 구금을 당했습니다. 처음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마음의 압박이 엄청났고,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사악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족과 자녀들도 제 안전을 걱정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청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우리 작은 현에는 수련생이 많지 않았지만, 천안문 광장에 대법을 실증하러 간 사람은 20~30명으로 상당히 많았습니다. 우리는 네다섯 명씩 조를 이루어 온갖 장애물을 뚫고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서 천안문 광장에서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우리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현 정부 지도자들은 모든 대법제자의 집 근처에 잠복하여 감시했고, 현의 모든 역, 버스 정류장, 기차역을 지켰습니다. 나선 수련생 중에는 50~60대 노인도 있었고, 한두 살배기 아이를 둔 젊은 엄마도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사악한 박해를 겪었음에도 여러 차례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저는 농촌 출신으로 멀리 여행해본 적이 없는 여성이었지만, 사부님의 명예 회복을 위해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2000년 5월, 우리 네 명은 두 번째로 나섰습니다. 가정의 제약을 뚫고 많은 고난을 겪으며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청원하러 갔습니다. 당시 우리는 미리 표를 사서 약속을 잡았고, 사악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인근 현의 역에서 흩어져 기차를 탄 후 기차에서 만났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우리는 순조롭게 베이징에 도착했고, 역에서 삼륜차를 끄는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우리를 멀리 데려다주고 좋은 여관을 찾아줬으며 단돈 5위안만 받았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여관에서 쉬었습니다. 셋째 날 천안문 광장에 도착한 후 지하 통로에서 스자좡(石家莊)에서 온 두 명의 여교사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베이징 청원을 막기 위해 아파트 단지 문을 잠갔지만, 일반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며 문제를 일으켜 경비원이 문을 열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천안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경찰에게 폭력적으로 납치돼 접수소에 감금됐습니다. 당시 한 경찰의 아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우리 넷 중에 노련한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 의사는 종이와 펜을 달라 하여 처방전을 써주고 약 복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나기 전에 그녀의 병이 나았습니다.
며칠 후, 현과 향진의 지도자들이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진장(鎭長)은 우리를 보고 크게 화를 내며 “내가 매일 기차역을 지키고 감시했는데 어떻게 기차를 탔지?”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또 우리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돈이 없다고 하자 그들은 더욱 거칠게 대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몸수색을 피하기 위해 미리 돈을 숨겨두었습니다. 베이징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구치소로 끌려갔습니다.
구치소에서 경찰은 우리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많은 양의 황마를 가져와 그것을 꼬아 줄로 만들게 했고, 그들은 그것을 가져가 팔았습니다. 경찰은 또한 우리 가족들에게 접근해 돈을 내라고 협박하며, 돈을 내면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속였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1천 위안을 지불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여전히 한 달 이상 불법 구금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들은 자주 찾아와 괴롭히고 집을 수색했으며, 세뇌반을 운영하고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으로 서명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또 집에 와서 괴롭히며 아직도 연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온몸이 아파 약과 주사도 소용없었지만, 지금은 파룬궁으로 다 나았습니다. 밥을 굶더라도 수련은 계속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그들은 저를 구치소로 끌고 가 각종 가혹한 고문을 가하고 강제노역을 시켰습니다.
2001년 설날이 다가올 무렵인 음력 12월 23일, 경찰은 아무런 이유 없이 전 현의 대법제자들을 모두 납치해 구치소에 불법 구금했습니다. 설날 첫날, 구치소 경찰은 모든 텔레비전을 켜고 대법을 비방하는 프로그램인 ‘천안문 분신자살’을 보게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농촌 시장에서도 ‘분신자살’ 영상을 보여주며 거짓말을 퍼뜨려 사람들을 세뇌했고, 박해 분위기는 매우 긴장되고 암울했습니다. 강인한 성격의 제 남편은 이런 고압적인 정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뇌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3. 사위가 받은 불법 선고
2001년 10월, 딸과 사위는 지역에서 작은 장사를 하고 있었고, 저는 그들을 위해 밥을 해주고 두 아이의 등하교를 돕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집은 지역 자료점이었습니다. 처음 자료 제작을 시작했을 때는 보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공안 경찰과 주민센터 직원이 또 집에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30분 정도 저를 심문한 후 아이들이나 잘 돌보라며 떠났습니다.
다음 날, 딸의 집에 음식을 가져다주려 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치소로 달려갔습니다. 딸과 사위는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창문을 보니 한 남자가 창문 옆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경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더니 딸과 사위에게 이불과 돈을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2002년 여름, 폭우로 구치소가 물에 잠겼습니다. 사람들을 수용할 방법이 없어 감금된 모든 사람을 인근 현의 구치소로 이송해야 했습니다. 저는 매달 사위에게 생활비 200위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련생 언니와 함께 면회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잘 만든 자료와 진상 CD, 소책자를 갖고 길을 떠났고, 각 마을에 자료를 나눠주고 함께 진상 편지를 발송했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습니다. 가져온 자료를 모두 나눠준 후 수련생은 집으로 돌아갔고, 저는 버스를 타고 인근 현의 구치소로 가 사위에게 생활비를 전달했습니다.
한번은 구치소에 갔을 때 저를 자주 납치하던 경찰과 마주쳤습니다. 그는 저를 알아보고, 저도 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가리키며 이웃 현 경찰에게 “저 사람은 노(老) ‘파룬’이고, 지금 수감된 사람은 소(小) ‘파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우리집에 파룬이 많아요, 천지사방에 다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말을 마치고 웃자 그들도 따라 즐겁게 웃었습니다. 제 사위는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결국 더양(德陽) 감옥으로 보내져 불법 구금되었습니다.
4. 정념으로 병업 고비를 돌파하다
2024년에는 일에 치우쳐 발정념을 소홀히 했습니다. 때로는 발정념 시간을 놓치고, 때로는 발정념 중에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제 공간장이 제때 깨끗이 정화되지 않았고, 각종 집착과 관념도 제때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진상을 알릴 기회를 놓친 적도 있었습니다.
2024년, 84세가 된 저는 두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얼굴을 다쳤지만 다행히 출혈은 없고 부기만 있었습니다. 다음날 눈 주위가 약간 멍들고 보라색으로 변했지만,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법공부와 연공을 계속했더니 며칠 만에 나았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4개월 후 다시 넘어졌는데, 이번에는 더 심각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한 여성이 끄는 차가 부주의로 저를 넘어뜨렸습니다.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고, 그 여성도 크게 놀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명백했고, 사부님께 보호를 간청하며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마음속으로 외웠습니다. 오랫동안 바닥에 누워있다가 결국 힘센 남자 한 명이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를 넘어뜨린 40대 여성은 매우 두려워했고 계속 사과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탓하지 않고 돈을 요구하거나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녀는 매우 감사해 했고 저는 그녀에게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밤, 발이 심하게 부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매일 법공부를 계속했더니 점차 호전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넘어진 사실을 아들과 딸에게 말했다면 그들은 분명 저를 병원으로 데려갔을 것입니다. 저를 보호해주신 것은 사부님이셨고 덕분에 이 고비를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20년이 넘는 수련 과정 동안,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덕분에 오늘날까지 순조롭게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精進)하여 ‘세 가지 일’을 잘 수행하고 제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수련은 물살을 거슬러 배를 저어 가는 것과 같아서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합니다. 꾸준히 잘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2/23/4905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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