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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심을 내려놓으니 차멀미가 사라지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0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제 몸은 건강해졌고 모든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원래 차멀미가 없었던 제가 오히려 차멀미를 하게 됐습니다. 이 몇 년 동안 저는 계속해서 안으로 찾았습니다. ‘왜 다른 병이 다 나았는데 차멀미가 생겼을까?’ 2023년이 되어서야 시댁에 대한 미움과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자 어느새 차멀미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결혼했을 당시 시댁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살던 집은 사방이 바람이 새는 창고였습니다. 동북지방의 겨울은 매우 추운데, 아무리 불을 때도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 딸이 네 살 때, 우리는 스스로 돈을 모아 새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모든 친척과 이웃들에게 자신이 우리에게 새 집을 지어줬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분노로 인해 쓰러져 심장병이 생겼고 오랫동안 약을 먹어도 완전히 낫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 몸은 병이 많아졌는데 그때 저는 겨우 30대였습니다. 시부모님을 볼 때마다 저는 분노로 가슴이 떨렸습니다. 시동생 셋과 시누이가 결혼할 때 시아버지는 모두에게 새 집을 주었는데 저만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워졌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지 반년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여전히 시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제 딸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왼손에 항상 힘이 없었으며 힘을 주면 왼쪽 견갑골이 아팠습니다. 접골술을 아는 한 사람이 제게 말하길, 딸의 왼쪽 견갑골이 아마도 한두 살 때 어긋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하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치료시기를 놓쳐서 이미 살이 차올랐으니 치료하려면 수술로 살을 걷어내고 다시 뼈를 맞춰야 하는데, 그래도 오른팔처럼 될 거란 보장은 없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단 하루도 제 딸을 돌봐주지 않아 한 살 때부터 딸을 탁아소에 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딸의 견갑골 얘기를 듣고 시어머니를 더 미워하게 됐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미워했으며 남편도 원망했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후 딸도 법을 얻었는데, 딸은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왼쪽 견갑골 통증이 나았습니다.

몇 년 전, 시어머니가 저에게 1만 위안을 주시려고 했습니다.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시어머니께 잘해드렸고 생활 속에서 항상 시어머니를 돌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시어머니가 몇 년 동안의 제 억울함을 보상해 마음의 위안을 얻으시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그 돈은 받지 말아요, 파룬따파를 수련하면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시어머니가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마음이 괴롭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이 원망심은 계속 없어지지 않았고, 게다가 이미 매우 강하게 자라나 전혀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저는 남편과 싸웠고 남편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작년에 저는 차멀미가 매우 심해서 진상 알리러 나가는 것을 방해받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았지만 정확히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원망심을 저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안으로 찾을 때마다 그것을 피해갔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사부님께서 제가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남편의 입을 빌려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그제야 저는 진정으로 이 원망심과 마주하게 됐고, 그것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려놓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고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며칠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시어머니께 가져다드렸습니다. 처음에는 화를 참으며 가서 했고, 시어머니에 대한 태도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는 이 분노를 참았고, 그다음에는 강제로 시어머니에게 온화하게 대했습니다. 천천히 이 분노는 사라졌고 저는 평온하게 시어머니를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시어머니가 정말 불쌍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시댁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차를 타도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됐고 아무리 오래 타도 멀미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구하기에 바쁘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러 나갔습니다. 2015년,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됐고, 우리는 프린터 한 대를 사서 ‘작은 꽃’(자료점)을 피웠습니다. 처음에는 스티커를 인쇄하다가 점차 달력, 진상 소책자,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책 등 진상 자료를 인쇄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린터는 한 대에서 다섯 대로 늘어났고, 가장 많을 때는 20상자의 인쇄용지를 한 달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우리집이 인쇄공장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매일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전달해야 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중고 소형 전동스쿠터를 구입했습니다. 겨울에 매우 추울 때는 스쿠터가 조금 가다가 얼어서 전기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그것과 대화했습니다. ‘너는 법을 위해 왔고, 너도 행운아야. 대법제자들이 사람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으니 넌 보통 존재가 아니야.’ 그 스쿠터는 영성이 있어서 매번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전달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이렇게 자료를 만드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집은 점차 다시 ‘작은 꽃’이 되어 사부님의 보호 아래 오늘까지 안전하게 왔습니다.

‘작은 꽃’이 된 후 저는 나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입이 열리지 않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릴 때 저는 정념을 발했고, 이런 상태가 3~4개월 지속됐습니다. 이후에 저는 차멀미가 매우 심해져서 진상을 알리러 나갈 수 없었습니다. 원망심을 내려놓고 나서야 저는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진상을 알리러 나가기 시작했고, 게다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자신의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진상을 알릴 때는 듣지 않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욕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오직 사람을 구하려고 합니다.

17년 동안의 수련은 사부님의 보호를 떠날 수 없었고, 매번의 제고는 사부님의 일깨움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는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명을 완성하겠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2/16/4907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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