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눈길을 보냈습니다. 경찰은 국민을 위해 정의를 수호하는 신성한 직업이라고 생각했기에, 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른이 되면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 세파에 휩쓸려 초심을 잃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사법계통에서 신입 직원을 모집할 때 운 좋게도 사법경찰이 되어 제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경찰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균형 잡힌 체격과 빛나는 기상이 어우러진 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자부심과 긍지로 가득 찬 마음에는 신성하고 장엄한 사명감이 넘쳐났습니다.
1980년대 후반, 저는 직원이 100여 명인 시립 노동수용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직원들은 남자팀과 여자팀으로 나뉘어 있었고, 수감자들은 대부분 관할 구역 내 현급시(縣級市)나 현(縣) 출신이었으며, 일부는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수감자가 가장 많을 때는 300명이 넘었는데, 저는 여자 수용동의 감옥 경찰을 맡았습니다.
공식적으로 노동수용소는 사람을 교화하고 새로운 인격을 형성하는 특수 교육기관으로서, 교육을 기반으로 하고 구제를 목적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노동수용소와 감옥 경찰은 법에 따라 수감자들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고, 종교신앙의 자유와 인격 존엄성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며, 체벌이나 학대를 금지하고, 개인 재산을 보호하며, 통신의 자유와 가족 면회 등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수감자에 대한 6자 방침은 ‘교육, 감화, 구제’였으며, ‘의사처럼, 교사처럼, 부모처럼’ 대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가 목격한 것은 동료들이 수감자들을 무시하고 폭언을 일삼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부 오랜 경찰들은 수감자들의 돈과 물건을 갈취하거나 착복했고, 가족들이 맡긴 돈도 수감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착복했습니다. 수감자들은 분노를 삼키며 감히 항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노동교육 수감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때, 가족이 데리러 와서 정산하는 과정에서 1,000위안 넘게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족들이 이치를 따져 항의했지만 오히려 구타당할 뻔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감옥 경찰들은 수감자들의 시계와 귀중품을 자신의 것으로 착복했습니다. 한번은 수감자의 가족이 감옥 경찰에게 친척에게 음식과 물품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중에는 매우 고급스러운 허리띠가 있었습니다. 그 감옥 경찰은 수감자에게 “노동수용소에서는 허리띠 같은 물건은 감방에 둘 수 없으니, 일단 내가 보관했다가 당신이 출소할 때 돌려주겠다”고 말한 뒤 그대로 착복해버렸습니다.
한 중대장의 지인이 구금 중인 친척에게 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중대장은 푸루(腐乳) 한 캔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모두 착복했습니다. 그는 수감자에게 “이 푸루는 당신 친척이 보낸 건데, 제가 열어서 점심때 몇 조각 먹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 수감자가 출소할 때는 또 다른 중대장이 그녀의 옷가지를 모조리 가로채고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돈과 물건을 마음대로 착복하는 일이 노동수용소에서는 흔한 일이었고, 상부에 보고해도 모른 척했습니다.
어느 날 한 수감자가 병세를 보여 가족이 지인을 통해 시립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게 하려 했는데, 대대장은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이 없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착취할 구실이 없으면 구실을 만들어냈습니다! 매점을 담당하는 감옥 경찰은 봄이 되면 마당의 빈터에 자란 산나물을 통장에 돈이 있는 수감자들을 데리고 가서 캐게 했습니다. 평소 수감자들이 운동하러 나가야 할 시간에는 나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는 매점의 된장 등 상품을 팔기 위해 꾸며낸 수작이었고, 그녀는 수감자들의 통장에서 마음대로 돈을 빼돌렸습니다. 수감자들의 식사는 닭 사료용 옥수수 가루로 만들었고, 배추는 씻지도 않고 잘게 썰어 국을 끓였습니다. 한번은 수감자가 국에서 새끼 쥐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구금된 수감자들은 인권도, 인격도, 존엄성도 전혀 없었습니다. 수감자와 경찰은 같은 마당에 있었지만, 그들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소장이 남녀 부하들을 데리고 춤을 추었는데, 이는 사실상 남녀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조장하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남녀 경찰들은 공공연하게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이런 환경에 물들어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들을 점차 받아들이고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술 마시기, 춤추기, 마작 치기, 폭력 행사하기를 배웠고, 욕설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노련하고 세파에 젖은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제가 근무할 때는 저도 맛있는 음식을 따로 떼어 제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수감자들과 나눠 먹곤 했습니다.
노동수용소의 환경은 선량한 사람도 점차 양심을 잃게 만들고, 나쁜 사람은 더욱 나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점차 초심을 잃고 세파에 휩쓸려갔습니다. 노동수용소의 현실은 사회에서 유행하던 “과거의 도적은 깊은 산속에 있었지만, 지금의 도적은 공안에 있다”는 말과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2. 거짓말을 믿고 박해에 가담하다
1999년 말, 노동수용소는 계속해서 강제로 노동교양을 받게 된 파룬궁수련생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노동수용소는 모두 상부의 명령에 따라 파룬궁수련생들을 ‘전향’시키고 파룬궁 수련을 금지시켰습니다. 전향을 거부하고 수련을 고수하는 이들에게는 구타, 협박, 회유 등의 수단으로 ‘전향’을 강요했고, ‘전향서’ 등 사서(四書), 오서(五書)를 쓰게 했습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짓말과 폭력으로도 완전한 ‘전향’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설령 전향한 사람이 있더라도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수련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해가 더욱 심해지면서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강제노동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주변 도시의 수련생들도 제가 있는 노동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이러한 수련생들은 사회 각계각층 출신으로, 고위 간부와 기술자, 경찰, 군인, 교사는 물론 글자도 모르는 농민과 주부들도 있었습니다. 가장 연로한 분은 70대였고, 가장 어린 사람은 겨우 15, 16세에 불과했습니다.
노동수용소는 상부가 요구한 ‘전향률’을 달성하기 위해 소장과 팀장들을 파룬궁 박해로 악명 높은 다른 지역 노동수용소로 보내 ‘전향’ 방법을 배워오게 했습니다. 돌아온 후 그들은 수감자들의 사상과 마음을 강제로 바꾸기 위해 폭력적인 ‘전향’ 수단을 시행했습니다. ‘전향률’ 요구는 90% 이상이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처우는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굽히지 않는 이들에게는 구속 의자(호랑이 의자: 수감자를 철제 의자에 앉히고 몸과 손발을 일정한 각도로 고정하는 고문 도구)와 대배고(大背銬: 두 팔을 등 뒤로 비틀어 한쪽은 위로, 다른 쪽은 아래로 수갑을 채우는 고문)을 가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폭행으로 쓰러져 얼음장 같은 라디에이터에 수갑이 채워지는 등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가장 흔한 고문은 파룬궁수련생을 작은 의자에 앉혀놓고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 앞을 보게 한 채, TV에서 방영하는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 등 파룬궁을 모함하는 영상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사시간 등 정해진 시간을 제외하고는 밤 9시나 10시까지 그 자세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감옥 경찰과 바오자(包夾: 수련생을 24시간 감시하는 수감자)가 현장에서 직접 감시했고, 몸을 흔들거나 눈을 감는 것이 발각되면 앉아있는 시간을 연장했습니다.
노동수용소는 모든 감옥 경찰과 바오자들에게 파룬궁수련생을 엄격하게 다루도록 요구했습니다. 만약 어떤 감옥 경찰이나 바오자가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거나 욕설을 할 때면, 다른 감옥 경찰과 바오자들도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입장이 불확실하고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감옥 경찰에게는 ‘전향’ 할당량을 정해 고액의 상여금과 연계했고, 수감자 바오자들에게는 감형으로 유혹했습니다.
감옥 경찰과 바오자들은 마치 악마에 씌운 듯 파룬궁수련생들을 미친 듯이 박해했습니다.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잔혹하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거나 코로 음식을 넣었는데, 음식물 주입용 호스를 뽑을 때면 항상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감옥 경찰들은 ‘전향’을 거부하는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전기봉과 고무 곤봉을 함께 휘둘렀습니다. 구타소리, 욕설, 비명이 노동수용소 전체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인간 세상의 지옥과도 같은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문과 박해를 견디지 못해 자살로 항의했습니다(주: 파룬따파는 살생과 자살이 모두 죄악이라고 가르칩니다). 일부 수련생은 박해로 중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워 풀려났지만, 집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 이들 파룬궁수련생들을 접했을 때, 저는 중공(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믿고 분노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길들이지 못할 것 같으냐’고 생각했습니다. 근무 중에 관리에 불복종하고 법을 읽거나 연공하는 이들을 때렸고, 대장의 사주를 받아 ‘전향’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들의 뺨을 마구 때렸습니다.
‘전향’을 거부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마음대로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제때 잠도 자지 못했으며, 면회도 금지되었고, 가족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수용소 내 개인이 운영하는 매점에서만 물건을 사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새로 들어온 파룬궁수련생들의 귀중품은 마음대로 압수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가의 허리띠를 비롯해 시계, 옷, 음식 등을 압수했는데, 경찰이 착복한 물품 대부분이 파룬궁수련생들의 것이었습니다.
계속되는 끔찍한 폭력적 ‘전향’ 과정에서 저는 심신이 지치고 압박감이 점점 커지는 것을 뚜렷이 느꼈으며, 심각한 불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꽤 오랫동안 각종 고문을 당했음에도 극단적인 언행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평화롭고 선의로 진상을 알리며 경찰들에게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다는 이치를 설명했고, 원망이나 증오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3.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어 초심을 되찾다
저는 그들의 신념을 그토록 확고하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그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가 제 마음 깊은 곳의 의문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차 저는 그들이 법공부와 연공 후 겪은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를 알게 되었고, 대법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놀라운 효과와 사람의 품성과 도덕을 향상시키는 기적에 감탄했습니다! 불치병을 앓던 사람이 파룬궁 수련 후 완치되었고, 이혼 직전이던 부부가 수련 후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지도자 위치에 있던 사람이 수련 후 더는 탐욕을 부리거나 남의 것을 탐내지 않게 되었고, 나이 든 수련생 대부분이 동년배보다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혼탁한 세상의 맑은 물줄기였습니다.
노동수용소에 수용된 파룬궁수련생의 수가 계속 늘어나 시에서는 새로운 감방을 짓기 위한 특별 자금을 배정했습니다. ‘전향률’은 요구에 미치지 못했고, 확고한 파룬궁수련생들은 우리의 야만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전향’ 방식에도 평온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노동수용소는 수십 가지의 고문을 동원하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원하는 ‘전향률’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진 대장이 “우리도 파룬궁 책을 읽고 ‘법으로 법을 타파하는’ 전향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저는 파룬궁 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이 TV에서 선전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게다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읽다가 졸음이 왔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저는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있어 읽어나갔습니다. 저는 파룬궁 서적에서 마음속의 답을 찾았습니다. 어느새 불면증이 사라져 밤에 편히 잠들 수 있었고 깨어나면 매우 상쾌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근무 중일 때 갑자기 고열이 났습니다. 한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이 저에게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경찰관님의 업을 없애주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반신반의하며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대법 책을 읽은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부님이 나의 업을 없애주신다고 할 수 있지? 나는 지금도 당신들의 수련을 막고 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몇 가지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있을 때 책의 흰 종이가 붉은색으로 변했고, 또 한번은 마치 책에서 설명한 관정(灌頂)처럼 뜨거운 기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휙 하고 흘렀습니다. 또 다른 때는 근무 중에 수감자를 화장실에 데려가다가 마당에서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니 북쪽의 구름이 갑자기 작은 연꽃 모양으로 변한 것이 보였습니다. 약 반년 동안 파룬궁 책을 읽은 후, 제 몸의 여러 가지 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정말 불가사의하고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쪽에서는 대법 책을 읽어 대법 사부님께서 날 보살펴주시는데, 저쪽에서는 파룬궁수련생들을 전향시키고 있으니 난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지?’
저는 여전히 의문이 있었지만, 더는 ‘전법륜’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읽었습니다. 어느 날 제9강의에서 대근기지인(大根器之人) 부분의 ‘한신(韓信)’을 읽다가 그것이 ‘하이신(還信: 여전히 믿다)’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온몸이 전율했고, 그 깨달음이 제 몸의 미시적인 층층에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토록 엄혹한 체제 하에서 파룬궁을 믿으면 노동교양이나 징역형을 받거나 직장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가장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당신이 여전히 이 법이 좋고 사람들에게 선량해지라고 가르치는 것임을 믿는다면, 당신이야말로 대근기지인인 것이다.’ 그 순간부터 저는 마음속에서 더욱 분명한 답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대법이며, 내가 기다려온 대법 사부님이구나.’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진선인(眞·善·忍) 대법을 저는 반드시 수련하겠습니다!’
점차 저는 전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일부 일과 이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제가 늘 생각하던 것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너무나 짜증나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일들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산속에 신선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종종 강가에 혼자 앉아 끝없이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 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책을 읽고 법공부가 깊어질수록 저는 제 생각을 봉인했던 껍질이 층층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고, 마음이 몹시 격동되어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지혜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와서 이 가정에 태어나고 이 환경에서 일하게 된 것이 모두 질서 있게 안배된 것이며, 모든 것에는 원인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 속세를 정화하는 깨끗한 연꽃이 피다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복도에서 진상을 담은 CD를 주워 집으로 가져가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분신자 류춘링(劉春玲)이 불에 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녀 뒤에 있던 군복 차림의 남자가 무거운 물건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격해 쓰러뜨린 것을 보았습니다. 분신했다는 남자의 옷은 모두 불에 탔는데도 그의 다리 사이에 있던 휘발유가 든 플라스틱 패트병은 멀쩡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진선인을 믿는 사람들을 탄압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모함하고 기만하며, 국가기구 전체를 동원하여 박해하는 이 정당은 도대체 어떤 정당인가?’ 마침내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단체를 박해하는 데 가담하는 것이 바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었구나!’
그때부터 저는 스스로를 대법 사부님의 제자로 여겼습니다! 그때가 2002년 봄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 몸을 정화해주시고 관정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 도덕성도 향상시켜 주셨습니다. 제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법을 위해 왔고, 제 생명의 진정한 의미는 법을 얻고 수련하여 본래의 참된 자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이 계셔서 너무나 행운이고 너무나 행복합니다!
점점 더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수감되면서 박해는 계속 심화되었습니다. 박해가 가장 심했을 때는 감옥 경찰의 근무가 2교대에서 3교대로 바뀌었습니다. 당직 경찰들은 모두 초저녁 근무를 선호했기에, 저는 자발적으로 그들이 꺼리는 자정 이후 근무를 맡아 편의를 봐주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동료들과 회식할 때 제가 술을 마시지 않자 “왜 술을 안 마셔? 뭔가를 믿는 거 아니야?”라며 다그쳤고, 제가 근무할 때 누구도 때리거나 꾸짖지 않고 늘 남을 배려하자 대장이 순찰 중에 이를 발견하고는 회의에서 저를 지목해 비판하고 벌금을 물리며 괴롭혔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압박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수련생들이 매일 잔혹하게 박해받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수련생으로서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구금된 수련생들과 함께 박해를 폭로하고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대 지도부와 과(科) 직원들이 감시실에서 복도를 순찰하는 경찰들을 지켜보았고, 당직 경찰과 일반 수감자들에게 끊임없이 복도를 순찰하며 각 감방의 파룬궁수련생들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법륜’ 제5강의 ‘천마(天魔)’에 대한 내용을 읽었을 때, 저는 이 사악한 박해가 수련인들에게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시련이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공부를 하면서 법의 내포가 층층이 드러났고,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위협과 협박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사악의 광포한 박해 속에서 정사(正邪)의 대결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감시하는 상황에서 저는 지혜롭게 수련생들과 어떻게 박해를 부정하고 정념으로 대처할 것인지에 관한 법리를 교류했습니다. 교류 후에 ‘전향’했던 수련생들은 후회했고, 확고했던 수련생들은 더욱 확고해지고 정념이 더 강해졌습니다. 어느 날 저는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을 재킷 주머니에 넣고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수련생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등 뒤로 하고 감시 카메라에 등을 돌린 채 눈으로 재킷 주머니를 가리켰습니다. 수련생은 이를 알아차리고 즉시 손을 뻗어 주머니에서 경문을 꺼냈습니다.
수련생들이 수감자들을 관심하고 도와주었기에, 일반 수감자들은 파룬궁수련생들을 이해하고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은밀히 메시지와 경문을 전달하는 것을 도와주어 모든 수련생이 신속하게 사부님의 설법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엄중한 감시 속에서 수련생들은 어렵게 자신들이 박해받은 경위를 글로 써서 지혜롭게 외부로 전달했고, 바깥의 수련생들은 이런 박해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하고 진상 전단을 만들어 현지에 배포했으며, 이 진상을 가해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내 사악의 기세를 효과적으로 억제했습니다. 한 악랄한 경찰은 자신의 집 근처 곳곳에 붙은 자신의 악행을 폭로하는 전단을 보고 일일이 찾아가 벽돌로 문질러 지워야 했습니다. 그 후 그녀도 악행을 많이 줄였습니다. 몇몇 경찰의 악행도 명혜망에 폭로되어 악인 명단에 올랐고, 이는 악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바깥의 수련생들은 진상을 알리는 확성기를 노동수용소 담장 밖 높은 나무에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수용소 안의 수련생들은 방송되는 진상 내용을 듣고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많은 수련생이 장기간의 박해를 부정하고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를 도왔습니다. 수련생들은 안팎으로 협력하여 악인과 악행을 폭로하고, 박해를 억제했으며 사악을 제거하여, 불법적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감금한 노동수용소를 예정보다 일찍 해체시켰습니다.
저는 늘 전 동료들을 생각했습니다. 전염병이 시작된 후, 저는 전 동료들의 전화번호를 수련생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이 전화로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유하게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매우 기뻐하며 중공 악당 조직을 탈퇴했고, 일부는 “우리는 그만뒀어요”(더는 박해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라고 말했습니다.
맺음말
20여 년이 지났건만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압박을 견디며 위험을 무릅쓰고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하며, 생명을 구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어 더는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지 않게 되었지만, 어떤 이들은 잘못을 고집하며 권력과 이익에 이끌려 양심을 팔아먹고 악을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주변에서 박해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노동수용소 소장 세 명은 박해에 가담한 후 돌연사했습니다. 아직 퇴직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법규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사람도 있으며, 젊은 중간 간부와 일반 경찰 중에서도 돌연사한 사람이 있고, 심지어 가족이 연루되어 갑자기 죽은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선과 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습니다! 이 말법시대, 말겁시대에 인간의 몸을 얻기란 쉽지 않으며,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파룬따파를 만나기란 천금 같은 기회입니다. 저는 동료들이 이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기회를 잡아 악행을 멈추고 자신을 구원하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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