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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련생과 일부 협조인이 안으로 찾을 줄 모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글/ 북미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매체 항목에서 발생한 일과 관련해 사부님께서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라는 경문을 발표하셨다. 이 경문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이것이 말후(末後)에 수련하지 않는 자, 가짜로 수련하는 자, 성심껏 수련하지 않는 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후에 세상 사람을 구하면서, 동시에 대법 내부도 청리(清理)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수련생들 중 ‘수련하지 않는 자, 가짜로 수련하는 자, 성심껏 수련하지 않는 자’들이 수련 환경과 항목에서 만들어내고 쌓아온 문제가, 전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최근 10여 년간 내 주변에서 낡은 문제와 새로운 문제를 포함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법을 아주 투철하게 말씀해주시고, 수련을 착실히 하라고 하셨는데, 법리는 변한 적이 없다. 이 최후에 생겨난 문제는 아마 우리 제자들이 자신의 수련을 되돌아보고 마지막 한 단락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느냐의 관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일부 노수련생은 아직도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안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써서 교류하고자 하니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수련인이 안으로 찾는 것은 소중하고 빛나는 것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각지 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라고 명시하셨다. 안으로 찾아 수련해야만 제고될 수 있고 관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찾지 못하면 오랫동안 같은 문제에서 맴돌다가 넘어지게 되는데, 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특히 큰 논란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큰 문제를 일으키고도 안으로 찾지 않고, 오로지 사악의 박해라고 생각하고 억울해하면서 발정념에만 의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지나오지 못한다. 내 주변의 노수련생 중에도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다. 수련인이 난관에 부딪히는 것은 백 퍼센트 수련에 문제가 있고, 확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틈이 생기고 교란을 받은 것이다.

아무런 집착심이 없다면 난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집착심을 오래도록 기르고 살찌우면 매우 완고하거나 교활하게 된다. 이러면 그 공간장은 구멍이 생기고 부패하게 되어, 사악이 치고 들어와 교란하고 중생구도를 가로막는다. 만약 우리 자신의 공간장이 매우 깨끗하고 정기(正氣)가 넘친다면 사악은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한다. 이는 인간의 표면이 아니라, 수련의 심층에서 직면해야 할 엄숙한 문제이며, 근본적인 집착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때로는 분명 수련을 잘한 것처럼 보이는 수련생도 근본적인 집착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각종 구실로 덮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련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부 노수련생은 대법 일을 많이 하고, 겪은 일도 많고, 영향력도 꽤 커서 교류할 때 말이 술술 나온다. 하지만 직접 또는 에둘러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고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 자랑할 뿐, 진정으로 안으로 찾은 내용이 없다. 또한 일을 하면서 문제가 있었거나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큰 일이 아닌데도 궤변하면서 덮어버린다. 안으로 찾은 체험이 없으면 빛나고 감동적인 부분을 느끼기 매우 어렵고, 교류해도 의미가 없다.

수련이 탄탄한 수련생들은 이런 노수련생의 문제점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능력이 있고, ‘권력’이 있으며, 수련생들 중의 일부 자원을 장악했다고 생각하여 부러워하는 사람이 늘 있다. 그래서 당문화(공산당 문화)를 갖고 해외에 온 중국 수련생들이나 몰려다니며 아첨하는 수련생들이 잘못된 분위기를 이끌면서, 깨뜨리기 어려운 두터운 장이 형성되었다.

어쨌든 항목은 잘해야 하는데 이는 틀림없다. 하지만 수련에서 진정으로 제고되지 못한다면 점차 문제가 생기며, 매우 완고한 문제가 된다.

최근 수년간 나도 매우 어려운 관을 넘었다. 그리 순조롭지는 못했지만 엇나가지는 않았다. 그간 많은 수련생이 내 체면을 돌보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 문제를 지적해줬는데, 여러 해 지나면서 그들이 지적한 집착심과 나쁜 습관을 점차 의식하게 됐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을 대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작은 항목의 협조인을 맡으면서 새로운 문제와 고민이 생겼다. 항목은 순조롭지만 내가 신임하고 긴밀하게 협력한 수련생이나, 함께 일했던 젊은 수련생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는 나를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했다. 나의 수련의 장이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문제가 생긴 후, 가까이 지내던 수련생으로서 속인 중의 책임은 없다 하더라도 내 수련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비학비수(比學比修)하고 공동 정진하라고 하셨지,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하지 않으셨다. 수련생 간의 협력과 교류도 중요한 수련 과정이다.

어떤 일이나 문제가 나에게 일어났을 속인 중에서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여, 안으로 찾지 않고 사악의 박해만 탓한다면 고비를 넘기 어렵게 되고, 심지어 매우 큰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이 때문에 최근 10년 동안 일부 협조인, 심지어 나이가 많지 않고 능력 있는 수련생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장기간 집착을 직면하지 않고 닦아 없애지 못하면서 계속 숨기고 썩히면 나중에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가끔 이런 수련생을 열심히 도와줬지만, 오래되면 역시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물론 누구에게나 가급적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는 것은 쉬워도, 나 자신의 문제, 특히 장기간 끌어온 문제를 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으로 찾는 것은 진정으로 수련에 입문할 수 있는 기초

수련인이 수련 문제를 교류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일부 수련생은 자주 교류해도 안으로 찾은 체험이 거의 없는데, 심지어 협조인 중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협조인은 협조인의 처지가 있어서 어떤 일은 내놓고 교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전혀 안으로 수련하는 요소가 없다면 정상이 아니다. 이는 사실 수련에 입문하지 못했다는 것이며 어떤 집착심에 매몰돼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엇나갈 수 있다.

오로지 법공부와 연공을 많이 하고, 필사적으로 항목을 하면서 안으로 찾지 않는 것은, 고생하여 공을 자라게 하고, 고생하여 업력을 갈아 없애는 소도(小道)의 방법이지,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도(大道)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집착심을 버리지 않으면 업력도 없애기 어렵다. 일부 수련생은 능력과 기술이 있어 협조인이 되었지만, 안으로 찾지 않아 큰 손실을 초래했다면 그 업력을 어떻게 갚겠는가? 협조인 자리를 다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았을 수도 있다. 일반 수련생은 집착심이 있어도 개인 범위 내에 통제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협조인은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때 어떻게 하겠는가? 때로는 분명 법에 있지 않지만 절대 인정하지 않고 ‘정념으로 고비를 돌파하겠다’고 하는데, 넘기기 정말 매우 어렵다. 매체 항목 책임자의 수련 상태는 항목 내 수련 환경, 항목의 성공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 심한 경우, 일부 협조인은 보복까지 한다. 법리를 알고 진수(眞修)하는 수련생이라면 반발하지 않겠지만, 협조인 주변에는 점차 아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일부 사람은 분명 수상한데 충고해주는 사람이 없게 된다. 이런 협조인은 사실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못하여 사악에게 이끌려 잘못된 길로 가기 쉽다.

구우주는 성주괴멸(成住壞滅)하지만 사부님의 신우주는 원용불멸(圓容不滅)한다. 나는 깨달았다. 구우주 생명의 특성 중 하나가, 장기간 존재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보아내지 못하고 문제를 점점 더 키우는 것이다. 그럼 최후에 썩을 대로 썩고 업이 커져 궤멸하게 된다. 반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안으로 찾는 것은, 바로 신우주 생명의 특징이다. 즉 법 속에서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법을 얻고 법에 동화된 생명이라면 문제가 생기고 틈이 생겼을 때,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고 틈을 메울 수 있다. 나의 개인적인 이해로는, 이것이 한 사과에 썩은 부분이 생겼을 때 좋은 사과로 회복될 수 있는 관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직 사부님의 외력을 통해 썩은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그 부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수련인이 대법과 대조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원만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장래가 원용불멸할 수 있겠는가?

강한 주의식으로 자신의 장단점과 근본 집착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 다르면 특성도 다르다. 옛사람들은 사람에게는 음양과 금목수화토 오행이 있어 각자 다른 특성이 있다고 했다. 또 사람을 성격에 따라, 강인한 사람(强毅之人), 유순한 사람(柔順之人), 용맹한 사람(雄悍之人), 겁 많은 사람(懼慎之人), 박식한 사람(辨博之人), 사교적인 사람(弘普之人), 신중한 사람(沈靜之人) 등으로 나누었다. 공자도 사람의 여섯 가지 성격과 그에 따른 단점을 육언육폐(六言六蔽)로 설명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여 그리 간단하지 않지만, 유가, 도가의 이론은 사람 층차에서 우리에게 참고가 될 수 있다.

노자는 ‘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고(知人者智), 자기를 아는 것은 명백함이다(自知者明)’라고 했다. 옛사람들은 어떤 기술을 장악했거나, 전문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지혜롭다고 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품성을 알아보고, 선악을 제대로 분별하며, 사회 발전 법칙을 멀리 내다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지혜가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또한 강한 주의식으로 자신의 성격과 한계를 알고, 자신의 단점을 통제하고 약점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명백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이래야만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고 굽은 길을 적게 걸을 수 있다. 물론 속인은 진정으로 집착심과 관념을 없앨 수 없다. ‘강산은 바꾸기 쉬워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라고 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대법을 수련하여 대법의 가지(加持) 하에 집착심을 없애고 좋지 않은 마음을 없애게 하셨다. 여기에는 성격에 의한 단점을 없애는 것을 포함하는데, 성격도 생생세세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집착심을 없애려면 먼저 안으로 찾아서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며 누구도 즉석에서 바로 해낼 수 없다. 하지만 안으로 찾을 줄 모르고, 안으로 찾는 것을 거부하면서, 일이 생길 때마다 밖을 본다면, 전문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소용없다.

자신의 단점, 집착심을 알아보는 것은 주의식이 강한 표현이다. 해야 하는 것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똑똑히 알면, 삿된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 점차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악한 것과 나쁜 것은 처음에는 모호하게 표현될 때가 있어, 마음이 바르지 않아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우리 법을 얻은 수련생들은 능력과 나이, 인연은 서로 다르지만 이는 모두 수련 층차를 대표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주신 능력과 법기는 자신을 잘 수련하여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해야 사부님의 기대와 자신의 서약을 저버리지 않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어떤 갈등과 난제를 만나든 모두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하면 수련에서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된다. 심성이 제고되고, 진정으로 진선인에 부합하는 좋은 에너지를 수련해 내면 사악은 두려워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며, 이래야만 교란을 받지 않고 더 나아가 사악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대도(大道)를 수련하며, 안팎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일부 수련생은 말할 때 구절마다 법리이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숨기지 않아서 안으로 잘 찾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수련 상태를 잘 아는 수련생들이 보면, 사실 그가 말하는 것은 작은 집착으로 큰 집착이나 근본적인 집착을 덮어 감추고 있다. 이는 매우 계산적이고 교활한 표현이다. 진수하는 사람은 자신의 수련을 엄숙하게 대할 것이다. 가짜로 수련하면 자신을 속이고 일부 수련생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성숙한 대법제자를 속일 수 없고, 사부님과 하늘의 신은 더욱 속일 수 없다.

우리는 몇십 년 수련하면서 고생이 많고 때로는 매우 힘들다. 인류사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도덕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일을 했는데, 신의 눈에 아직까지도 수련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 세상의 영광과 성과는 모두 뜬구름 같은 것이다. 어떤 직함, 권력도 하늘로 가져갈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착한 사람이 되며, 중생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공을 들여 노력할 것이다.

옛사람들도 이 이치를 잘 알고 있어 우리 수련에도 일부 도움과 참고가 된다. 예를 들어, 옛사람들은 덕을 쌓음에 심지어 양덕(陽德)과 음덕(陰德)을 나누었다. 덕을 쌓고 좋은 일을 하여 천하 사람들의 칭찬과 칭송을 받는 것이, 때로는 좋은 일을 하고도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속인들도 겸손을 중요한 미덕으로 보며 이는 보편적인 가치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데 역사상 인정받은 보편적 가치를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우리는 최후의 역사 시각에 진정으로 안으로 찾아서 자신의 좋지 않은 집착을 찾아내야 하며, 더는 길러두거나 방종하여 최후에 진아(眞我)에게 미안하고 우리의 수련 기회에 미안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좋지 않은 집착, 물질 등을 본질에서부터 바꿔야 한다.

물론 수련에는 또 매우 심오한 부분이 있어서 간단하지 않지만, 안으로 찾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장기적으로 법에서 안으로 찾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자신을 잘 수련하고 대법에 동화하는 것을 논할 수 없다. 물론 때로는 자신의 집착이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잘 없어지지 않고, 심지어 에너지가 매우 커서 통제가 잘 안되는 현상도 있다. 이 또한 원인이 있는데 여기서는 교류하지 않겠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해를 지나왔는데, 한 부분이라도 닦아서 좀 더 제고하고 집착심 하나라도 더 없애면 우리의 세계는 그만큼 더 아름다워진다. 속인이 느낄 수 없는 행복과 해탈은 바로 이런 수련 과정에 있는데, 수련 상태가 좋을 때는 수련의 영광, 행복과 소중함을 자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안으로 찾아야만 행복한 수련인이 될 수 있고, 사부님의 대법제자라는 칭호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2/16/4907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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