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내몽골 대법제자
[명혜망] 2021년, 저는 현(縣) 소재지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생이 많은 시내로 이사했습니다. 3년 동안 수련생들과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소중하고 충실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좋은 사람’에서 ‘솔직한 사람’으로 변하다
저는 중국 동북 지역의 한 작은 현 소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형과 형수 집에서 자랐는데, 남의 집에서 사는 생활로 인해 소심하고 유순한 성격이 됐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에도 계속 현 소재지에서 살면서 두세 명의 수련생들하고만 접촉했고,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수련생들과 지낼 때도 늘 그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설령 수련생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봐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은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시내로 이사 온 후, 한 수련생의 소개로 집 근처 법공부 팀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법공부 팀에 갔을 때, 노년 수련생 A가 늘 많이 읽으려 했고, 다른 사람이 많이 읽을 때는 그들을 멈추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됐습니다. 저는 A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느꼈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말을 못 하고 마음속으로만 갈등했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할 때 A가 “한 사람당 두 단락씩 읽읍시다”라고 제안했는데, 다른 사람이 두 단락을 읽는 동안 그녀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법공부 상태가 걱정됐습니다. 수련생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한 사람당 한 단락씩 읽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졸리는 수련생도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다른 수련생이 즉시 “우리 팀은 원래 두 단락씩 읽어요. 어디를 가든 그 방식을 따라야 해요”라고 반박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A는 법공부할 때마다 자주 졸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차분히 말했습니다. “역시 한 단락씩 읽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졸지 않을 것 같네요.” 제 말이 진심이었고 상황도 제가 지적한 대로였기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고 그대로 하게 됐습니다. 그후 A의 법공부 상태는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남의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법과 수련생을 책임지는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련자가 된 것입니다.
외지에서 노년 수련생 한 분이 우리 지역으로 이사 왔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그를 위해 이틀 동안 그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법공부를 하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A를 본 집주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법공부가 이런 상태라면, 우리집에서 법공부를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저는 즉시 집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수련생에게 정념을 더해줘야 해요.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명혜망’ 교류 문장을 보면 ‘부정적인 생각은 회색의 큰 산과 같다’고 했어요.” 그러자 그녀는 감정이 북받친 듯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말다툼하려는 게 아니에요. 정념을 더해주는 것도 결국 본인에게 정념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그렇게 말한 후, 자기가 알고 있는 두 명의 수련생이 세상을 떠난 일까지 언급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안으로 찾아봤습니다. 제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집주인은 법공부 전체의 안전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A에 대해 특별대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집주인 수련생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선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로부터 선입견을 내려놓고, 기회 있을 때마다 A와 법에서 교류하며, 말의 어조와 상태를 최대로 공손하고 상냥하게 교류했습니다. 나중에 A는 법학습을 막았던 집주인 수련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저는 단체 법학습을 통해 이기심,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체면을 차리려는 마음 등 많은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결국,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 ‘솔직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수련생들과 협력해 공동 정진하다
시내로 이사한 후 주택대출을 받았습니다. 아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반일제 가사도우미 일을 했습니다. 법공부 팀에는 노년 수련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상 자료와 정기간행물 배포, 인터넷에 ‘삼퇴’ 명단을 등록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제가 맡게 되어 무척 바빴습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우리 지역에 새로 온 노년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일정이 빡빡해서 새로운 법공부 팀에 참가하기가 어려웠기에 마음이 무척 복잡했습니다.
20년간 대법 수련으로 건강을 되찾고 시아버지를 원망 없이 정성껏 모신 과정을 지켜본 아들은 대법 수련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엄마, 일 그만두세요. 수련생들과 함께 대법을 배우고 널리 알리러 가세요!”라며 적극적으로 응원해줬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감동한 저는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제안했으니 당연히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저는 가사도우미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법공부 팀에 참여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생기자,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에서 수련생들이 우리 지역에 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보고, 직접 진상 자료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면 멀리서 오는 수련생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만든 경험이 없던 저는 정상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프린터가 고장 나거나 다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진상 자료를 만들겠다는 진정한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수소문해서 해결했고, 간행물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기술 담당 수련생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결국 원하는 대로의 자료를 출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상 자료를 만드는 동안에도 법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큰 소리로 법을 읽으며 작업했습니다. 진상 자료 만드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고, 수련생들에게 진상 자료를 제공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올해, 한 노년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다가 넘어져 꼬리뼈가 골절됐습니다. 우리는 그 수련생의 집에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 수련생은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남편이 관장약을 사러 나가려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을 보고 제가 대신 약을 사왔습니다. 세 번이나 관장해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깔끔한 성격인 저는 직접 손으로 배변을 도와주었는데, 더럽다는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더러워진 그녀의 속옷도 빨아주었습니다. 다른 수련생은 단오절에 쭝쯔(粽子)를 만들어왔고, 또 다른 수련생은 그녀 집에 부족한 물건들을 가져와 도와주었습니다.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본 그녀의 딸은 감동의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동안 보였던 차가운 태도는 점차 수련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딸은 어머니를 보살펴주는 수련생들의 모습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일을 마치고 나서 그 수련생 곁에 모여 정념을 발하고 법공부를 했으며, 공부가 끝난 후에는 그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대외적으로만 남을 선하게 대할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더욱 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법제자가 가정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세상 사람들이 대법 수련자를 보는 가장 중요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제자는 가정을 잘 원만히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번 사고가 대법제자에게 온 좋지 않은 일로 보이지만, 그것은 주변과 가족 친구 친지들에게 대법 수련자에 대한 오해를 풀게 하고 대법 수련자의 진면목을 보게 한 것입니다.
그 후 그 수련생은 오랫동안 딸과의 갈등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해 부족에서 온 원망과 배려하지 못했던 마음을 찾았습니다. 평소 딸이 어머니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어머니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불만 때문이었고, 어머니는 딸에게 사랑과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을 깨닫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정을 화목하게 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딸과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부족한 나를 돌봐줘서 정말 고마워, 고생했어.”
우리는 매일 그녀 집에서 함께 법을 배우고 정념을 발하며, 함께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자신이 수련인임을 확고히 인식하고 법공부를 하며 발정념을 하여 졸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법공부할 때 한쪽 무릎을 꿇고 했고, 나흘 만에 양쪽 무릎을 모두 꿇을 수 있게 됐으며, 둘째 주부터는 일어설 수 있게 됐습니다.
딸은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수련생들이 친정어머니를 돌봐준 일과 그간의 과정을 이야기했고, 사위도 대법제자를 만날 때마다 매우 예의 바르게 대했습니다. 매번 법공부를 마치고 돌아갈 때면 그녀와 딸, 삼촌이 모두 웃으며 문밖까지 배웅해줬습니다.
우리 법공부 팀 수련생들은 함께 정진했고, 그녀는 2주 후에 혼자서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대법 수련의 신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생활 속에서 서로 도와주고 관심을 주면서 서로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모두들 “우리 관계는 친척보다 더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맺음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있었기에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소중한 시간 동안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세 가지 일을 착실히 하면서 정진실수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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