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러 환희심과 추구하는 마음 내려놓기에 대해
글/ 중국 대법제자 덕겸(德謙)
[명혜망] 3년 전, 제 주의식(主意識)이 마치 무언가에 의해 억제된 듯했고, 육신이 필사적으로 고강도 노동을 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육신이 사악의 안배로 이런 식의 박해를 받아서 당시에는 말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많은 잘못을 발견하여 처음 대법에 입문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직시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예전에 이웃집 선생님을 따라 몇 가지 기공을 연마했는데, 그때 계속 배워야 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났습니다. 처음 접했을 때 제1강의 소제목을 보고 진선인(眞·善·忍)이라는 말이 참 좋고 바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간의 가치관이나 삶의 진정한 의미와도 부합한다고 여겼습니다.
오랫동안 수련생들의 근본 집착을 찾는 교류문장을 볼 때마다 제가 입문할 때의 그 인식이 순수하고 올바르다고 여겨 이런 생각을 계속 고수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진정으로 돌아보니 이는 여전히 속인의 기점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부합한다고 생각했고, 인생의 아름다운 이념을 찾았다고 여겼을 뿐, 당시 마음속에는 정법 정도를 추구하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을 얻은 첫해에는 여전히 이론을 배운다는 관념으로 법공부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최근 몇 년간 법의 위력을 보지 못하고 해이해져서 무감각해졌다가 이제야 깨어난 것입니다!
대법에 입문한 두 번째 이유는 파룬궁이 무보수로 공법을 전수하고 비용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파룬궁을 무보수로 전하는 것은 사람의 도덕성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좋은 일입니다. 이전의 사람을 해치는 가짜 기공들은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돈을 내지 않으려는’ 이익심이 있었는데, 이 또한 일종의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돈을 내지 않으려는 생각은 중학교 때 중공 악당 교과서에서 “공산주의는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내용을 배웠을 때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당시 ‘아, 정말 좋구나. 돈을 낼 필요가 없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는 집단 공유제, 집단 노동, 자발적 노동, 집단 분배라는 형식으로 세계 대동과 세계 통일을 꾀하는 체제입니다.
‘돈을 내지 않는 것’은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노동에 따른 소득’이라는 바른 법리에 위배되며, 그 이면에는 노력 없이 얻으려 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마성이 있어서 심각하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만약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얻는다면 그것은 타인의 은혜입니다.
당시 저는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대법에 들어왔는데,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것들(생활, 이념 포함)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근본 집착입니다!
오늘에야 이것을 찾아냈다는 것이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과 약간의 위안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기호와 환희심의 표현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구하기 때문에 밖으로 보다가 얻지 못하거나 역경에 처하면 마음이 불균형해지고 심지어 원망과 분노가 생겨 상대방을 경멸하고 비하하며 비웃게 됩니다. 여기서는 환희심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이 환희심은 옥기(玉器)류에 대해 매우 강렬하게 나타났습니다! 관련 라이브 방송에 빠져 노점 골동품 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찾아다니며 그럴듯하게 전업이라 칭했습니다. 이런 마음 또한 ‘돈을 내지 않으려는’ 일종의 표현입니다. 1~2년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한 채 자신의 취향만 만족시켰을 뿐인데, 마가 빈틈을 타서 경제적, 신체적 박해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박해의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이 환희심과 추구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익심이 섞인) 환희심은 사람을 매우 미혹시키고 마에게 쉽게 이용됩니다. 일부 다른 수련자들이 지금까지도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옥기에 대한 집착, 높은 등급의 녹색, 저 흩날리는 무늬, 그 사진만 봐도 너무나 흥미진진합니다.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요?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돈이 별로 없는 사람이 의식주를 아끼면서도 왜 큰돈을 들여 그런 것을 사는 걸까? 속인들은 “옥은 값을 매길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환희심에 호기심과 이익심을 섞어 ‘값을 매길 수 없다’며 떠받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수련인이 추구해야 할 것입니까?
옛 군자들은 덕을 옥에 비유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왜 장식적 아름다움을 좋아할까요? 저는 그 이면에 아름답고 영원한 것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이 숨어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근본 집착을 찾고 나니 왜 이런 것들에 그토록 큰 흥미를 가졌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이것도 한 가지 업종이니 집착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진정 이해하고 나니 더는 하고 싶지도, 갖고 싶지도 않고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지금 옳고 그름을 떠나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골동품 고가 거래’(시중의 금은옥기점이나 물품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님)는 변이된 요소, 심지어 마성을 띠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마치 고상한 직업인 양 여기고 있습니다.
환희심은 모든 방면, 각양각색의 기호와 생각 속에서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고상한 이념과 아름답고 관능적인 삶의 추구가 포함됩니다. 환희심이 한번 나오면 색욕심도 쉽게 따라 일어납니다.
이제는 일상 업무나 생활의 사소한 것까지, 예컨대 휴대폰과 인터넷에 대한 집착도 모두 내려놓았고 위챗 알림도 꺼버렸으며 동영상은 더욱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3~4일에 한 번꼴로 진상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마음을 충족시키려고 온라인 뉴스를 봅니다. 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완전히 끊지 못해 본 내용을 종이에 정리해보았습니다. 쓰다 보니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제 자신의 추구하려는 마음, 환희심이 아닐까요?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형성됐습니다.
그 순간 정말 보고 싶지 않아졌고 인터넷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후 보름 동안 ‘자유문’(인터넷 차단 돌파 프로그램)으로 원활하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과학 관념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람 되는 도리에 부합한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치에 대한 불만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부패한 인류의 도덕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과 사부님이 바르다고 여기는 등등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운 추구와 소원을 동경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안 된다.”(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처음에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대법에 들어왔습니다. 풍파를 겪으면서 우리는 대법의 신성함과 위대함을 조금씩 깨달았으니, 이제는 내려놓을 때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인간 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이다!”(정진요지-경고하는 말)
수년 동안 사부님의 이 법이 늘 제 마음속에 울려 퍼졌고, 저는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3/48886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23/4888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