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중국공산당(중공)의 교육체제 아래서 당문화(공산당 문화)의 세뇌를 깊이 받은 젊은 세대로, 중공에 대한 진정한 깊은 이해는 박해받는 나날 속에서 이뤄졌다. 수천만 명의 진선인(眞·善·忍)을 신앙하는 파룬궁수련자들처럼, 나는 자신의 신앙을 수호하고 진실한 말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중공에 납치당하고 누명을 쓰고 구금당해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모든 소송 권리와 권리수호를 위한 발언 경로를 박탈당했다. 항소했지만 여전히 원래의 불법 판결은 유지됐다. 중공의 공안·검찰·법원·사법 시스템은 단지 사람을 탄압하는 도구일 뿐이며, 서로 비호하며 협력하여 불법적인 악행을 저지르는데, 파룬궁수련자들은 원통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헤아릴 수 없는 밤낮 속에서, 나는 중공의 깡패 본성을 진정으로 똑똑히 알게 됐다. 중공이 말하는 ‘법치’는 인심과 도덕, 공평과 정의와는 무관하며, 통치계급의 의지이자 선한 사람을 박해하는 도구다.
중공 감옥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은 비인도적인 가혹행위와 체벌, 잔혹한 고문을 당해 실신 직전, 생사의 갈림길에 이르렀다. 법 집행자들이 명백히 법을 지키지 않는 가운데, “전향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하라는 신앙 박탈을 몸소 경험했다. 본래 악을 징벌해야 할 감옥이 오히려 황당하고도 극도로 비인간적인 수단으로 진선인을 생명의 준칙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사상개조’를 강요하는 것을 목격했다. 불법 속에서 이익을 얻었고, 심지어 목숨을 구했던 사람들에게 양심을 버리고 하늘을 덮을 듯한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했다. 칠순이 넘은 노인들이 단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 놓아 울게 된 것을 직접 목격했는데, 중공의 박해기구 아래 감옥경찰은 조금의 측은지심도 없었다. 은밀히 단계적으로 격상되는 사람 괴롭히기 수법은 표면적으로는 영원히 ‘문명적인 법 집행’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나는 전례 없이 맑은 정신이 들었다.
한 사람으로서 마음속에 도덕적 한계선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누구나 중공의 이런 반인류적 악행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중공의 이간질과 기만을 맹종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선명한 선과 악의 대비에 기초하여, 나는 이때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더욱 굳건히 믿고, 진선인의 도덕 회귀의 힘이야말로 생명의 귀로이자 이 사회의 희망이라는 것을 더욱 굳게 믿게 됐다.
중공은 인성이 이익에 가장 쉽게 좌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중공 역사상 ‘이익 충동’으로 군중이 군중을 투쟁하도록 선동하는 수법을 써왔고 번번이 성공했다. 감옥이라는 검은 소굴에서는 사부님을 심하게 비방하고 중상하며 사부님이 얼마나 많은 돈과 호화로운 저택을 가졌다는 거짓말을 조작해, 감옥에 갇힌 파룬궁수련자들의 심리적 ‘불균형’을 자극하려 했다. 하지만 진정한 대법 수련자는 금전과 이익, 심지어 생사 앞에서도 태연하며, 인생의 참뜻을 깨닫고 감히 진리를 위해 개인의 득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므로, 더욱이 사부님과 법을 비방하는 어떤 유언비어도 믿을 수 없다. 우리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너무나 많아서, 제자들은 모든 것을 바쳐도 사부님의 은혜에 만분의 일도 보답할 수 없다. 우리 사부님은 제자들에게서 조금도 요구하지 않으시지만, 온 세상을 품고 계신다.
최근 사부님에 대한 인터뷰 ‘우리의 사부님’을 보면서 몇 번이나 눈물이 날 뻔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들에 대한 자비와 보살핌은 깊은 감동을 준다. 사부님의 책임감, 사부님의 솔선수범, 사부님의 세심한 배려가 모든 제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원과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션윈이 오늘날까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것이 실로 쉽지 않았고, 페이톈(飛天)대학은 여전히 입학한 모든 학생들에게 학비와 숙식비, 생활용품 등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하니, 이는 어떠한 은덕과 흉금인가.
중국 예술학교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대목을 보고 나는 감개무량했다. 수년간 학교를 다니며 높은 학비와 생활비로 인해 한때 내 가정은 큰 압박을 받았지만, 겉핥기식 지식만 배웠을 뿐이다. 교정은 인간의 집착으로 마음이 들떠 있었고, 지도교수들은 외부 수입을 벌기에 바빠 교육에 전념할 여유가 없었으며, 학생들은 생산라인의 상품처럼 질이 좋든 나쁘든 합격 딱지만 붙이면 졸업이었다. 이후에 나는 다행히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됐고, 대법 속에서 지혜가 열려 전통으로 회귀하는 길에서 변이된 예술관이 바로잡혔으며, 전공에서 비약적 향상을 얻어 몽매한 데서 점차 깨어나 성숙해졌다. 우수한 교사진과 양호한 교육 분위기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깊이 알고 있다. 학생 시절의 예술 계몽과 인도는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페이톈대학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행운아이며, 사부님 곁에 있는 어린 대법제자들은 행운아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가치로 평가할 수 있고, 시비와 은원(恩怨)은 인정으로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대법 수련 속의 소득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하사는 모두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어서 금전과 이익으로 모독할 수 없다. 또한 모든 제자가 영원히 보답할 수 없는 것이다.
불법(佛法)은 자비와 위엄이 함께 있다. 중국 역사상 ‘삼무일종(三武一宗)’ 시기의 불교 탄압에서 집권자들은 모두 극도의 고통 속에서 현세의 응보를 받았다. 지금, 파룬따파는 홍은(洪恩)으로 우주를 다시 만들고 위덕이 우주에 가득한데, 이처럼 미래를 창조하는 우주대법이 공격받고 모욕당하니, 악행을 저지른 자의 죄악은 비할 바 없이 큰 것이다. 역사의 이 관건적인 시각에 각계 중생은 모두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중공에 이용당하고 중공 편에 선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2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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