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베이성 통신원) 후베이성 우한(武漢)시의 78세 파룬궁수련자 가오비전(高碧珍) 할머니가 2024년 10월 9일 뤄자산(珞珈山)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된 뒤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가오비전 할머니는 우한시 우창(武昌)구 샤오둥먼(小東門) 쯔사(紫砂)로에 거주하고 있다. 은퇴 전에는 중의사로 근무했으나 자신의 병은 치료하지 못했다. 1996년, 가오비전은 두 딸과 함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곧 온몸의 난치병이 씻은 듯이 사라져 건강을 되찾았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이 중국공산당(중공)을 이용해 파룬궁을 광적으로 탄압을 시작했다. 가오비전은 진선인(眞·善·忍) 신념을 지킨다는 이유로 우창구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중난(中南) 파출소, 동민주로(東民主路) 주민위원회 등 중공 요원들로부터 장기간 괴롭힘과 가택수색, 납치, 구금 등의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두 차례나 우한 허완(何灣) 노동수용소에 불법 수감됐고, 여섯 차례나 세뇌반으로 납치됐으며, 수차례 우한시 여자 구치소와 약물 재활센터에 불법 구금되어 갖은 모욕과 학대를 당했다.
가오비전 할머니에 대한 중공의 박해 사실 요약
1. 1999년 11월
가오비전 할머니는 두 딸과 함께 베이징 신방국(信訪局, 청원국)에 가서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으나, 푸유(府右)가의 한 보안처 앞에서 갑자기 경찰차에 강제로 실려 베이징 펑타이(豊台)구의 우한 주재 베이징 사무소로 끌려갔다. 이후 우한으로 강제 송환되어 중난 파출소에 불법 구금됐고, 다시 우창구 칭링(靑菱)향 훙샤(紅霞)촌의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당시 이 세뇌반에는 3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이 불법 구금되어 매달기, 수갑, 구타, 세뇌 등 육체적·정신적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가오비전 할머니는 다른 한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용변이나 목욕을 할 때도 함께 다녀야 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족쇄로 인해 발목에 상처를 입었다. 그 기간에 파룬궁 비방 표어를 떼어냈다는 이유로 수갑을 채운 채 매달리는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이후 구치소로 이송되어 한 달간 형사구류를 당했다.
2. 2001년
가오비전은 우한 허완 노동수용소로 납치되어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3. 2002년 음력 설 연휴
가오비전은 다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자 베이징에 갔다가 천안문 파출소에 납치됐고, 이후 우한으로 강제 송환되어 구금됐다. 같은 해에 또다시 우한 허완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4, 2005년 3월 말
가오비전이 난징(南京)에서 병든 큰딸을 간호하고 있을 때, 우창구 중난 파출소와 샤오동문민주로 주민위원회는 퇴직자 업무 처리를 핑계로 그녀를 우한으로 유인했다. 주민위원회에 도착하자마자 중난 파출소 경찰 덩딩카이(鄧定凱)는 그녀의 양손에 수갑을 채운 뒤 강제로 차에 태워 우창구 양위안(楊園) 세뇌반으로 끌고 가 48일 동안 박해했다.
5. 2008년 7월 14일 밤 9시경
중난 파출소 경찰 덩딩카이는 가오비전의 집 주변에 잠복해 있던 일당에게 그녀가 외출하고 돌아올 때 덮쳐 납치하라고 지시했다. 가오비전은 다시 우창구 양위안 세뇌반으로 끌려가 3개월 21일간 구금되어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사악한 세뇌 교육에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악인들은 그녀가 세뇌반을 떠나기 직전, 그녀의 음식에 정체불명의 약물을 넣었다. 11월 5일 집으로 돌아온 후 양쪽 허벅지와 종아리, 발의 통증이 날로 심해져 결국 걷기조차 힘들어졌고, 조금만 방심해도 넘어질 지경이 됐다. 이 이상한 통증은 세뇌반에서 약물 박해를 받았던 파룬궁수련자 가오순친(高順勤)과 이미 사망한 쉬자메이(許家梅)의 경우를 떠올리게 했다. 그들 역시 약물로 인한 다리 통증에 시달렸다.
가오비전은 구치소와 노동수용소, 세뇌반에 불법 구금되어 있는 동안 온몸과 얼굴에 옴이 퍼졌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긁은 자리에서 피고름이 흐르고 옷이 살갗에 달라붙어 악취가 진동했다. 특히 강제노동으로 면사와 솜을 뜯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먼지가 온몸에 달라붙어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목욕할 때 옷을 벗으려면 한 조각씩 천천히 떼어내야 했고, 아물었다가도 다시 찢어져 피와 살이 뒤엉켰다. 추운 겨울에는 우한의 실내가 실외보다도 더 추웠지만 온수를 주지 않아, 가오비전을 비롯한 파룬궁수련자들은 오랫동안 찬물로 씻어야만 했다.
2019년 10월부터 경찰 덩딩카이는 여러 사람을 동원해 수시로 가오비전의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길에서 가로막는 등 갖은 방법으로 괴롭혔다. 가오비전은 결국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몇 달 동안이나 타지를 전전해야 했다.
6. 2012년 9월 18일 밤 10시경
가오비전과 한 여성 수련자가 우한시 샤오커우(礄口)구 구톈(古田) 지역에서 진상을 알리던 중 치안연합대 요원들에게 구톈로 파출소로 납치됐고, 이어 우한시 제1 구치소에서 5일간 불법 구금됐다.
가오비전은 70대 노인임에도 진선인의 신념을 지키며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이유로 오랜 박해를 받아왔다. 그녀의 남편과 두 딸도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본래 큰딸은 2002년 장쑤(江蘇)성 난징의 육군지휘대학에 합격해 10월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이어지고, 어머니마저 수시로 잡혀가자 큰딸은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으며,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당시 그녀의 나이가 겨우 스무 살이었다. 고액의 치료비로 가족은 수십만 위안을 소비했고, 80대의 아버지조차 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딸을 집으로 데려와 지내게 했으나, 발작이 일어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사람을 때리고 해쳤다. 노부부는 어쩔 수 없이 철사로 딸을 묶어두기도 했다. 꽃다운 시절의 딸이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에 두 노인의 가슴은 찢어질 듯했다. 작은딸은 가정을 등지고 타지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지금은 해외를 떠돌고 있다.
중국에서 파룬궁은 이미 25년간 박해를 받아왔으며,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부당한 판결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사건들의 재판 과정에서 진상이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의 양심이 일깨워졌고, 시비가 가려지며 정의가 확산되고 있다. 명혜망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에는 파룬궁수련자 117명이 경찰에 납치되어 조작된 혐의를 뒤집어썼으나, 그중 8명이 무죄로 석방됐다. 20개가 넘는 성과 직할시의 검찰이 법에 따라 파룬궁수련자 체포를 거부하고 사건을 반려하고 있으며, 법원이 기존 판결을 취소하고 수련자를 무죄 석방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옛말에도 있듯이 “선악은 결국 보응이 있나니, 천도(天道)는 윤회하기 마련이라. 믿기지 않거든 고개 들어 보라. 창천(蒼天)이 누구를 용서했던가.” 기존의 관점만을 고집하며 기어코 악의 응보를 구하는 이들에 대해 명혜망은 이렇게 논평했다. “자신을 순장품으로, 희생양으로 삼은 이들도 무지한 가운데 그런 선택을 한 것이지만, 자신의 악행에는 스스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중난 파출소:
주소: 후베이성 우한시 우창구 중난로 거리 중난이로 8번
전화: 027-88085700
소장 루안웨이팡(欒偉芳)
부소장 우위젠(吳玉劍)
덩딩카이 18986091220
원문발표: 2025년 1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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