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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질투심을 제거한 경험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지난 20년 동안 수련하면서 질투심을 제거한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기억하기 시작할 때부터 제게 질투심과 색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 사촌여동생과 자주 함께 놀았는데, 동생은 저보다 2달 어렸지만 집안 형편이 더 좋았고 공부도 잘했으며 예뻤습니다. 친척들도 동생을 더 따뜻하게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동생을 부러워하고 은근히 질투했습니다.

한번은 명절에 온 가족이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모였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작은 삽을 멀리 던졌다가 뜻하지 않게 사촌여동생의 얼굴을 긁어 상처가 나고 피가 났습니다. 어린 마음에 동정심은커녕 오히려 살짝 기뻤던 것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이때부터 저는 이 질투심이 이번 생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 질투심을 보다

수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때때로 머릿속에 어떤 영상이 나타났는데, 실제로 본 것인지 아니면 제 생각인지 구분이 안 돼서 대부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질투심을 본 그 장면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중국의 박해가 가장 심할 때 저는 청년이었고 그때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법을 얻은 초기 몇 년 동안 자주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단체 법공부의 중요성을 잘 알았기에 매번 법공부 기회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한번은 집에서 멀지 않은 아주머니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작은 북쪽 방 중앙에 침대가 있었고 수련생들이 침대 주변 바닥에 앉아 돌아가며 법을 읽었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사람을 관찰하지 않고 누구도 보지 않으며, 오직 진지하게 법을 읽고 조용히 법을 읽으며 법공부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각 발정념을 할 때 제 머릿속에 이런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긴 백발을 늘어뜨린 한 사람이 저를 등지고 있었고, 그 앞에는 철장이 있었는데 철장 안에 한 여자아이가 갇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철장 안의 사람에게 독기를 품고 말했습니다. “누가 너를 그렇게 예쁘게 만들었어?” 그러더니 그가 갑자기 돌아섰는데, 저는 그의 얼굴이 파란 괴물에 송곳니가 달린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전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장면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질투심이 다른 공간의 어떤 층차에서 나타난 모습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빨리 제거하도록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반복적인 연마

제가 아이를 낳은 후 몇 년은 시어머니 댁에서 보냈습니다. 직장에 다녀야 했기에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셔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매우 능력 있고 동시에 강한 성격이셨습니다. 시어머니 눈앞에서는 반드시 시어머니의 기준과 요구대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셨고, 매일 잔소리를 하시고 크게 꾸짖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집안일을 전혀 할 줄 모르고 아이 돌보는 것도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그중에서 일어날 갈등을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밥그릇 잡는 자세부터 수돗물 틀어놓는 양, 빨래가 깨끗한지, 아이가 우는지, 아이가 아픈지, 아이 옷 입히는 것, 옷 입히는 양까지 모든 것이 갈등의 불씨가 되어 저는 전혀 방비할 수 없었고 심신이 지쳤습니다.

사실 이때가 바로 제 집착심을 제거하라는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질투심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때는 깨달을 때도 있고 깨닫지 못할 때도 있어서 화가 나고 답답했으며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쌓이고 쌓여 마음의 불편함이 점차 원망으로 발전했고,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원망심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정념, 정념, 사람의 마음이 번갈아 가며, 오늘은 이것이 우세하고 내일은 저것이 우세했습니다. 때로는 원망심에 이끌려 시어머니와 한바탕 크게 다투고 싶었지만, 일단 정면으로 충돌하면 자신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저는 그 몇 년간 시어머니께 한 번도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만 계속 연마했습니다. 이렇게 몇 해를 닦고 또 닦았습니다.

2019년 봄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명혜망에서 한 문장을 읽었습니다. 글에서는 한 수련생과 그녀의 남편이 모두 수련을 했는데, 남편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아서 그녀가 다 해야 했고 그래서 매우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꿈을 꿨는데, 꿈에서 그녀는 매우 힘들게 가파른 절벽을 오르고 있었고 남편의 어깨 위에 서 있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더라도 그녀를 산꼭대기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 남편과 시어머니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향상할 수 있도록 그분들도 고난을 겪고 계신데, 제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으로 그분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제 마음속의 원망과 불편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마음은 자비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 상태가 며칠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 며칠 동안 시어머니와 제가 길을 걸을 때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분이 모녀 사이신가요?”라고 자주 물었고, 세 가지 일도 매우 순조롭게 해서 스스로도 수련을 괜찮게 했다고 생각했고 질투심을 마침내 제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넘어지다

제가 수련을 잘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몇 달 후 저는 사무실의 한 상사와 갈등이 생겼습니다. 주로 그해 6개월 동안 제 실적이 그녀보다 훨씬 좋아서 그녀는 저를 질투하며 여러 오해도 있었습니다. 그 상사는 사무실에서 저를 크게 꾸짖고 윗사람부터 아랫사람까지 찾아다니며 저에 관해 나쁜 말을 했습니다. 갈등이 갑자기 터져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겉으로는 그녀와 같은 식으로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매우 심하게 동요했습니다.

사실 이때가 바로 제 쟁투심과 질투심을 제거하라는 것이었는데, 저는 많은 경우 집착심에 이끌렸습니다. 제가 담당한 이 환경에서는 자비심이 부족해서 주변 환경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지 못했고, 나중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매일 이런 모함을 받다 보니 떠나지 않으면 정말 버티기 힘들고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 사무실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떠나기로 결심한 그날 아침, 사부님께서는 제게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라고 일깨워주셨고, 또한 삼천대천세계의 법을 읽으라고 암시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여전히 사람의 방식으로 그곳을 떠났습니다. 저는 이 고비를 잘 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삼천대천세계를 보라고 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다른 공간의 삼천대천세계가 훼손되는 것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습니다…

질투를 다시 제거하다

이 큰 고비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제거됐어야 할 업력이 다시 팽창됐고 반발력도 매우 강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이제 나는 해방됐다, 누가 날 괴롭히려 해도 못할 거야! 나는 더 이상 울분을 참으면서 잠자코 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쟁투심과 질투심의 팽창으로 제 전반적인 심성이 떨어져서 세 가지 일도 예전만큼 잘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자료를 배포할 때 즐겁고 신성했는데 지금은 두려운 마음이 컸고, 발정념할 때는 손이 자주 쓰러졌으며, 연공도 완전히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는 더욱 자신을 느슨하게 해서 속인과 구분이 없어졌고, 남편이 저를 조금만 지적해도 즉시 반박했습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저는 명혜망 접속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열흘이나 보름 동안 접속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나중에는 한 달 동안 접속하지 못했습니다. 명혜망에 10년 넘게 접속해왔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때로는 하얀 화면을 보면서 울고 싶었고 제구실을 못 하는 자신이 미웠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저는 수직 사다리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 했는데, 올라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다리를 잡아당겨서 일부가 망가졌습니다. 이때 제 옆에 어린 소녀가 나타났는데 그녀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망가진 부분도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깨어나서 저는 그 어린 소녀가 제 옆의 한 수련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를 도와 접속하게 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잘하는데 저는 왜 이렇게 못할까요?

더는 이렇게 느슨해서는 안 되고 분발해서 바짝 따라잡아야 하며, 남편의 단점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편도 수련자이지만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인데, 왜 나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집중할까? 왜 남편이 뭐라고 하기만 하면 반박할까? 나는 가정에서 자신을 수련했는가?’ 제 부족함을 인식한 후 저는 더는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보지 않고 안으로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이런 마음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동안 잘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안으로 찾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는 제 수련이 착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가 자신을 바로잡기로 결심한 후 인터넷에 접속이 됐습니다.

일주일 후,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했는데 또 접속이 안 됐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저는 요리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 정오에 남편과 기분 나쁜 일이 있었구나.’ 제가 부주의해서 벽에 오물이 몇 방울 튀었는데 남편이 크게 화를 내며 저를 꾸짖었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몇 마디 대꾸했더니 그는 더 화를 내면서 오물이 담긴 쓰레기를 복도에 내던졌습니다. 저는 남편을 상대하지 않고 곧바로 일하러 나갔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수년간 겪었던 억울함과 불평이 모두 밖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그나마 냉정했고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남편은 내 수련을 돕는 것이다. 남편은 내 수련을 돕는 것이다. 나는 더는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논쟁해서는 안 된다.’ 안으로 찾아보니 남편에 대한 정이 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서 항상 남편을 바람을 막아주는 항구로 여겼습니다. 남편이 저를 배려하고 관대하게 대해주길 바랐고 이 세상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남편을 남편으로 여기지 않고, 중생의 일원으로 여겨야 합니다. 남편도 수련하지만 수련한 시간이 저보다 많이 짧았기에 저는 남편을 중생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 생각이 나오자 제 마음이 단번에 홀가분해졌습니다. 요리를 마친 뒤 다시 명혜망을 확인했더니 접속됐습니다.

한동안 지난 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채소를 사고 집으로 가면서 이 일을 생각했습니다. 문득 손오공과 저팔계가 생각났습니다. 손오공은 저팔계가 먹기 좋아하고 게을러서 뒷다리를 잡아당긴다고 저팔계를 싫어하지 않았고, 어떤 고난 앞에서든 항상 앞장섰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돌이켜보니 ‘나는 손오공처럼 했는가? 게다가 남편은 저팔계가 아닌데 나는 왜 그를 용납할 수 없는 걸까?! 내 가족도 용납할 수 없는데 낯선 사람에게 얼마나 자비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저는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연결되었고 그 이후로 인터넷 접속이 안정되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지 않고 정념으로 문제를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깊이 파다

지난 세월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저에게 나타난 질투심의 주요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남들이 저를 나쁘게 대하면 불공평하다고 여기며 불평하는 마음. 둘째, 남을 무시하고 제 표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세 번째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열등감입니다. 앞 두 가지 점은 알아차리기 쉽지만 열등감은 질투심 때문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심리를 분석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이 저를 나쁘게 대할 때 두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이번 생에 다른 사람을 나쁘게 대한 적이 있어 다른 사람이 저를 나쁘게 대할 때 저는 제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했으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느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는데, 반면에 제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저를 나쁘게 대하면 저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때 왜 불공평하다고 느낄까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그 사람에게 빚진 것이 없는데 그가 저를 나쁘게 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전생에 빚진 것이 있어 이번 생에 갚아야 하는데 저는 미혹 속에 있어 전생을 보지 못하기에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보이면 믿고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무신론입니다. 즉, 이 질투심 뒤에는 공산주의 악령[共産邪靈]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을 못마땅해하는 것, 왜 다른 사람을 못마땅해할까요? 그 사람이 제 표준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 남편, 자녀, 동료를 포함한 주변 사람을 가늠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심입니다.

세 번째는, 이 질투심은 밖으로는 다른 사람을 못마땅해하고 안으로는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열등감은 제가 어느 고비를 잘 넘지 못하면 튀어나와 저를 타격합니다. ‘넌 안 된다. 넌 그럴만한 재목이 아니야. 너무 못해. 너처럼 수련을 잘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자료를 배포하러 나가고 진상을 알리러 나가는 거지?!’ 이때 그것을 제 생각이라고 인정하면 소침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 번 속아서 정말 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법공부 상태가 좋을 때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날 선택하셔서 이렇게 큰 법에서 수련하는데 나는 자신에게 왜 자신감이 없는가? 나는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사부님을 믿지 않는 것인가? 이것은 신사신법(信師信法) 문제다.’ 저의 좁은 사람마음으로 어찌 사존의 무한한 자비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착실한 수련

저는 이 질투심을 20년 동안 닦아왔는데, 지금도 때때로 나오고 매우 심각하게 반영될 때도 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다른 마음, 특히 쟁투심과 얽혀서 나타납니다. 저는 그것의 뿌리는 구우주의 위사위아(爲私爲我) 특성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없애려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문제에 직면할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저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 심지어 눈빛까지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질투심이 튀어나올 때마다 그것이 자신인지, 악령인지, 악마인지, 사심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착실하게 수련해야 진정으로 질투를 없애고 세 가지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개인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니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15/485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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