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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법(亂法)의 배후

글/ 중국 하얼빈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명혜망에 하얼빈 지역의 난법 현상에 관한 보도가 다시 실렸는데, 올해 초에도 보도된 바 있으며 사실 이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나는 매우 평범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생이다. 특별한 업적도 없고 자랑할 만한 표현도 없으며, 때로는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고 넘어진 적도 있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사부님의 은혜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만, 진정한 대법제자와 비교하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개인 수련의 관점에서 내가 T모씨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접촉하면서 겪은 인식과 수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니, 분명 개인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약 10년 전, 우리 지역에서 구세력이 대법제자들에 대해 체계적인 와해식 박해를 진행했는데, 여기에는 나의 전임 협조인(한 우수한 대법제자)도 포함됐다.

명혜망에서 언급된 T모씨는 당시 이 지역에 있었다. 그는 전체 수련생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이 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며 수련에 대해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포위 공격식’으로 전임 협조인을 수련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임 협조인이 병업(病業)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T모씨는 박해를 피해 도망갔고, 이 지역에서는 병업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납치되거나, 색욕으로 떨어지거나, 장기간 병업이나 시련에 처한 상황이 많이 발생했으며 대다수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

당시 나와 다른 수련생 두 명은 거의 같은 시기에 구세력이 이 지역에 설치한 기제(機制)를 보았고, 어떻게 그것을 해체할 것인지 토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우리는 떠나면서 더 이상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명혜망에서 우리 지역의 난법 현상을 다시 폭로한 후,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구세력의 이 기제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지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발견했다.

나는 다른 공간의 일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본 구세력의 안배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본 것은 단지 구세력 안배의 일부분일 뿐이다). 여기서는 단지 이번 폭로 사건과 관련되고 영향받은 수련생들을 일깨워주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가 비교적 잘 수련했다고 생각되는 수련생들을 찾아갔는데, 그들은 이 일과 전혀 관계가 없었고 격리되어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개인 수련의 관점에서, 내가 T모씨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접촉하면서 겪은 인식과 수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니, 분명 개인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나와 T모씨의 만남은 안배된 흔적이 매우 뚜렷했다. 나는 사부님께 여쭤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꿈에서 바닥에 가득한 토사물을 보았다. 곧 나는 내가 안배된 이유를 발견했다. 나는 그들과 같은 물질을 갖고 있었고, 나와 T모씨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은 법정인간(法正人間) 전에 구세력이 도태시키려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요구는 우리가 그 속에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인식이다.

나는 T모씨와 교류한 적이 있다. 내가 들은 것과 교류한 것, 그의 수련 이론이든 그의 인식이든 있는 그대로 말하고자 한다. 2~3년 전의 일이라 원래 말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고, 대략적인 교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법의 사유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해야 하고 사악한 중공의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당신의 사유는 정법의 입장에 서야 하며, 당신과 중생의 관계는 구원하고 구원되는 관계일 뿐, 다른 것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 신구(新·舊) 우주는 영원히 교차하지 않는 두 개의 평행선이며, 신우주의 생명은 구우주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중생을 자비와 선으로 대해야 한다. 관념에 구세력이 없으면 박해도 없고, 이 박해는 곧 존재하지 않게 된다.’

대체적인 교류 내용은 이러했고 세부적인 내용도 더 있었다. 그 속에는 많은 법의 언어와 법의 명사가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한 수련생도 매우 혼란스러워하면서 명혜망의 보도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도 이런 것을 접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내가 이 글을 쓴 이유 중 하나다.

우선, 이 이론은 T모씨가 어느 한 시점 혹은 어떤 상태의 수련 중에서 얻은 인식인데, 그는 이것을 사유의 틀처럼 매우 체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변 수련생들에게 보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론을 받아들였고 또 거침없이 한참을 말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그의 원래 말을 진리처럼 깊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직 이런 사유만 있으면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것이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니닌가? 오직 대법만이 대법제자를 제도할 수 있다. 자신도 수련 성취 여부를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것으로 대법을 대체한다면, 이는 다른 사람의 수련을 교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란받은 사람들은 왜 이런 잘못된 것을 받아들였는가? 그것 역시 스스로가 대법 수련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구세력의 교란을 타파하라고 하셨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교란을 타파하라고 하신 설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름길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우리의 정념은 오직 법에서 나와야 하고 반드시 법에서 나와야 한다. 수련 중에 있는 사람이 법에서 얻은 인식은 그 당시의 수련 상태, 그 특정 층차에서의 인식일 뿐이므로, 다른 사람은 그것을 머리에 담아두어서는 안 되며 법을 대체할 수 없고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수련을 지도해서도 안 된다. 여러분은 사부님의 설법과 대조해보면 무엇이 사법(邪法)을 연마하는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신의 수련 과정 중의 인식을 여기저기 다니며 말하는 것은 과시심과 인정받으려는 마음, 심지어는 숭배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장기적으로 그 하나의 굳어진 인식에 머물러 있다면 볼수록 맞고 볼수록 절대적인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 문제에서 장기적으로 제고할 수 없고 매우 강한 관념과 집착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동시에,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근원이 다르다고 말씀하셨기에 반드시 스스로 수련해내야 한다. “우주의 생명은 무량무계하고, 이렇게 큰일인바, 온 이들은 모두 왕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 길을 걷고 자신의 위덕을 증오함에 그럼 반드시 자신이 걸어온 인식과정과 수련과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요소와 특점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각지 설법12-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표면적으로 볼 때 T모씨가 설정한 그 고정된 사유 틀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사상을 그대로 따라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관념으로 심성을 제고하고 법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대법 수련이겠는가? 만약 다른 사람의 어떤 관념을 이해한 후 그대로 베껴서 번거로움을 피하고 지름길을 찾았다고 한다면, 그런 수련은 웃음거리가 된다.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구세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며, 당신에게 극도의 교란을 주고 극대한 실수가 나타나게 할 것이며, 심지어 당신이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깊은 체험이 있다.

이처럼 목적성이 극히 강하고 추구하는 마음이 있으며, 인간 세상의 일로 수련의 표준을 검증하는 것이 어찌 수련의 사유이겠는가? 이는 인간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며, 대법의 언어를 도용하여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수련의 목적은 심성을 제고하고 사람의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시드니법회 설법) ‘편안함’과 ‘안전’한 결과는 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또한, T모씨를 둘러싼 수련생들에게는 공통점(나도 그 속에 있었다)이 있음을 발견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대단하다고 느끼며,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강조하며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활발하며 교류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지도하기를 좋아한다. 안으로 찾는 것이 아주 표면적이고 매우 얕다. 말로는 안으로 찾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나는 안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식으로 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집착은 건드리려 하지 않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 등의 특징이 있다.

어떤 수련생이 이런 사람들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었지만, 선의의 충고가 마이동풍이 되어버렸다.

한번은 T모씨 일행이 그들의 것을 교류하는 장면을 한 수련생이 목격하고 서슴없이 말했다. “사부님의 법이 이렇게 좋은데 당신들은 이런 것을 해서 무엇하려고 하나요?”

T모씨 일행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공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자처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로 인해 그에게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그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당신이 그에게 당신의 다른 공간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고, 당신이 수련해야 할 문제를 그가 해결했다면, 당신은 수련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물며 그가 정말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는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며 아무 의사에게나 치료를 맡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에서는 사악한 당문화(공산당 문화)로 인해 사람들이 ‘젖을 주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사상에 젖어 있다. 무슨 신용, 성실, 약속은 형식이 되어버렸고 지키는 사람이 없으며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수련인이며 자신의 정념과 신앙에 있어서는 확고히 지켜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고, 자신을 법에 용해시켜 법 중의 생명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정말로 구세력이 도태시키려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인식이라 층차의 한계가 있으며,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환영한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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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11/4859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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