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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직원 100여 명 중 딸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아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교사로서 2002년 초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전의 나는 성격이 급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많아 늘 남들과 다투곤 했다. 이런 성격 탓에 젊은 나이에도 여러 질병에 시달렸지만, 큰 병원들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 생명이 위태로운 그때, 나는 파룬따파를 만났고 죽음의 문턱에서 마치 희망을 본 듯했다. 이후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전법륜(轉法輪)’을 귀중한 보물처럼 여기며 매일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 착실히 수련한 결과, 3개월 만에 모든 질병이 사라지고 건강과 활력을 되찾았다.

1. 딸의 변화

우리 부부는 자식이 없어서 남편의 삼촌 집에서 딸을 입양했다.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가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나는 이 아이를 매우 아껴주었고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지냈다. 남편은 운전 일로 늘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바빴기에 집안일을 돌볼 시간이 없었고, 아이의 의식주는 모두 내가 챙겼다. 딸은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고 내가 꾸짖어도 “엄마, 엄마” 하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남편의 삼촌 집은 우리집과 멀지 않아 명절마다 딸을 데리고 방문했는데, 점차 딸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딸과의 관계가 예전만 같지 않았고 무언가 벽이 생긴 것 같았다. 딸은 잘못을 저질러 내가 혼내면 입을 삐죽이며 화를 냈다. 처음에는 개의치 않고 예전처럼 지도했지만 나중에는 딸이 화가 나면 친부모 집으로 가버리곤 했다.

친부모 집에서 며칠씩 지내며 내가 자신을 어떻게 못되게 대했는지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참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 친부모는 아들을 원한다며 너를 버렸는데, 내가 이토록 힘들게 키웠는데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도리어 날 험담하다니, 너무나 배은망덕하구나.’ 이런 감정들로 인해 실망과 괴로움, 외로움이 생겨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한동안 방향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건강 상태도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와 ‘전법륜(轉法輪)’이라는 귀중한 책을 주었다. 책을 펼쳐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마음속에 환한 등불이 켜진 듯했다. 그때부터 나는 대법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지혜와 진리를 깨달았다. 대법의 위대한 법리는 내 몸과 마음을 정화시켰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전법륜)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여관에 잠시 머무는 것이라면, 세상사의 사소한 일이나 자식에 대한 감정에 매달려 괴로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대법제자는 적까지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데, 내가 어찌 내 딸조차 포용하지 못했던가? 게다가 딸이 반항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성격이 급하고 쉽게 화를 내며, 아이를 가르칠 때도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큰소리로 야단치며 내 뜻대로 강요했다. 아이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남편과 다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내 모습이 가족들의 불만을 샀지만 깨닫지 못했으니, 이게 어찌 수련인의 모습이겠는가?

또한 딸은 친부모와 떨어져 살며 어려운 상황을 견뎌야 했고,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 후에도 마음속 불만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점을 깨달은 순간, 마음속 원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연민과 이해심이 자리 잡았다.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엄마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은 채 딸과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며 사과했다.

생활 속에서도 세심하게 챙기고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며, 가정에서 진정한 따뜻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딸은 점차 내 곁으로 돌아왔고, 예전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되찾았다. 딸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엄마는 대법을 배우고 나서 정말 제게 잘해주세요.”

2. 딸의 결혼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성급 도시에서 좋은 직장을 구했다. 배우자도 같은 직장 사람이었지만, 시댁은 농촌 출신으로 가난하고 자녀도 많아 아파트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아파트를 사려고 모아둔 돈에서 10만 위안(약 2천만 원)을 딸에게 주었고, 시댁에서도 10만 위안을 마련했다. 이 중 6만 위안은 딸의 회사에서 빌린 돈이었으며, 당시 이 돈은 시댁에서 갚기로 약속했지만 딸이 아이를 낳은 후에는 돈을 갚지 않으려 했다.

딸은 매우 화가 나서 이혼하겠다고 했고, 나 역시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사람을 기만하는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되지.’ 사위와 따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나는 대법제자로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봐야 했다. ‘내가 딸의 분노에 불을 지피면 그녀의 감정은 더욱 격해질 것이고, 가정이 깨질 수도 있어. 그렇게 된다면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할 거야.’

수련인은 안으로 찾아야 한다. 딸이 결혼했을 때를 돌이켜보니, 나는 늘 딸이 시댁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를 바라고, 손해 보거나 서운한 일을 당할까 걱정했다. 이런 두려움은 모두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찌 이런 사소한 이익 때문에 속인과 다투겠는가?

이러한 깨달음 후에 나는 마음을 비우고 딸을 타이르며 말했다. “이번 일에서 네 시부모님이 잘못하신 건 분명해. 네가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분들의 입장도 생각해봐. 시부모님은 네 결혼식도 치러주시고 대학생 아들도 뒷바라지하시잖아. 농촌에서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 사람은 자립심을 가져야 해. 부모님 돈을 쓰면 그만큼의 ‘덕’으로 갚아야 하는 거야. 덕은 사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다. 우리가 직접 노동해서 번 돈이야말로 떳떳하게 쓸 수 있는 거야. 깨끗하게 살고 올바르게 처신하며,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고 누구와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밥도 더 맛있고 잠도 더 편안할 거야.”

내 말을 듣고 딸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딸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렇게 한 차례의 갈등은 조용히 해결되었다.

딸이 출산한 후 시어머니가 4개월 동안 손주를 돌봐주셨다.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엄마, 시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데 무슨 선물을 드리면 좋을까요?” 딸이 갓 결혼해서 형편이 넉넉지 않은 걸 알기에 말했다. “엄마가 가진 금목걸이 하나 있는데, 그거 드려라.” 딸은 “안 돼요, 그럼 엄마는 뭘 하고 다니시게요?”라고 했다. 나는 “수련자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야. 장식품은 필요 없어. 그냥 놔두기보다 네가 쓰는 게 더 좋겠다”라고 했다.

그래서 딸은 내가 준 금목걸이는 자신이 쓰고, 결혼할 때 샀던 목걸이를 시어머니께 드렸다. 딸은 기뻐하며 말했다. “엄마는 정말 입은 거칠어도 마음은 따뜻하시네요. 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나는 이것이 바로 수련자가 지녀야 할 품격이라고 생각했다.

딸은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때로는 대법 자료를 배포할 때도 동행했다. 대법은 그녀의 선한 본성을 일깨웠고 많은 혜택을 주었다. 딸은 시부모님께 효도하며 매년 농번기와 명절에는 직접 찾아뵙거나 돈과 물건을 보내드렸다. 또한 대학에 다니는 시동생을 위해 내가 사준 소중한 컴퓨터도 선물했다. 시어머니는 딸을 점점 더 아끼게 되었고, 이웃들에게 “우리 며느리는 정말 훌륭해요. 나중에 늙어서는 며느리랑 살려고요”라며 자랑하곤 했다.

3. 회사 직원 100여 명 중 유일하게 딸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아

2022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전역을 휩쓸며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대재앙이 됐다. 딸이 사는 도시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화장장은 시신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신이 줄을 이었고, 어떤 이들은 뒷문으로 들어가도 3일 안에 순서가 잡히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시신을 옮기거나 농촌에 묘지를 사서 매장하기도 했다.

딸의 회사에는 100명이 넘는 직원이 있었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딸 한 명뿐이었다. 사장조차 집에서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회사의 급한 업무는 모두 딸이 맡아 처리했다. 딸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느라 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다. 집에 있는 세 명의 환자는 내가 돌봤다. 매일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약을 사고, 정성껏 간호하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남편과 외손자는 침대에 누워 잠만 잤고, 약을 먹고 또 잤다. 사위는 3일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서 고통을 호소했다. 어느 날 따뜻한 음식을 사위에게 가져다주자, 그는 감동하며 말했다. “어머니, 제발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어머님까지 쓰러지시면 이 집은 끝장입니다!” 나는 “걱정 마라. 나는 수련자라서 백독불침(百毒不侵, 백 가지 독도 침범하지 못함)이야”라고 했다. 사위는 기뻐하며 “맞아요, 맞아요! 우리 어머님은 백독불침이세요!”라고 했고, 우리는 모두 웃었다.

남편은 의학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 스스로 링거를 놓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며칠 동안 링거를 맞고 나서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 어렸고 남편은 시력이 좋지 않아 아이에게 주사를 놓지 못했다. 약만 먹였지만 효과가 없었고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이 되자 체온이 39.5도까지 올랐다. 나는 두려웠다. ‘이대로 장기가 손상되면 어쩌지? 딸도 없는데 이 늦은 시간에 어떻게 병원에 가나?’ 다급한 마음에 나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께 향을 피우고 법상 앞에 무릎 꿇고 절하며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발 제 외손자를 구해주세요. 지금 열이 40도에 가깝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합니다. 제자가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런 다음 침대로 가서 외손자를 깨우고 말했다. “얘야, 할머니랑 같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보자. 사부님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드리자, 어떠니?” 아이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 번 읽으면 아이가 한 번 따라했다. 이렇게 20번을 읽자 아이의 눈이 떠졌다. 얼른 체온을 재보니 38.2도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이제 일어나서 할머니랑 같이 사부님 설법 듣자. 그러면 완전히 나을 거야!”라고 했다. 아이를 안아 등을 내 몸에 기대게 한 채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30분도 안 돼 아이는 잠이 들었고, 다시 체온을 재보니 36.7도였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우리 외손자를 보호해주신 것이다.

수련의 길에는 고난도 있고 기쁨도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다. 나는 수련의 길을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대법의 위대한 법리는 늘 나를 감싸고, 나를 깨끗하게 씻어준다. 나는 과거의 이기심과 편협함을 버리고 포용과 인내를 배웠으며, 배려와 관심을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행복과 기쁨도 얻었다. 대법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지금의 나는 건강하고 활기차며 밝은 에너지로 가득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의 든든한 도움에도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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