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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생사 고비를 넘은 경험과 반성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이 몇 년 동안 나는 장기간 병업(病業) 고비에 처해있었는데, 늘 복통이 있었고 통증이 시작되면 며칠 동안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었다. 물만 마실 수 있었는데 한동안 좋아졌다가 또다시 재발했다. 얼마 전 내 신체가 극한에 이른 상황에서 병원에 갔다. 가기 전부터 위천공 증상이라고 느꼈는데, 검사 결과 위천공으로 확진됐고 직경 1.5cm의 구멍이 있었다. 수술 후 나는 중환자실에서 나흘을 보냈다. 의사는 내가 너무 늦게 와서 치료가 지체됐고, 위액이 복강에 가득 차서 많은 장기가 손상됐으며, 간이 가장 심각해서 인공 간으로 교체하기를 권했다. 처음에는 의식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이후에는 대부분 혼미 상태였고 신체의 각종 지표도 모두 한계치에 도달했다. 의사는 이미 최선을 다했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며 더는 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부모님(수련생)은 상의 후 퇴원을 결정했다. 퇴원할 때 의사는 내가 이미 호흡 기능을 상실해서 반드시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하며, 호흡기를 제거하면 10분 안에 사망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4일째 되는 날 정오에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구급차로 집에 왔다. 몸에는 아직도 배액관, 소변줄, 위관이 꽂혀 있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날 보러 왔는데, 나를 본 사람들은 모두 내가 곧 죽을 것 같다고 여겼다. 나는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숨을 쉬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외삼촌이 나에게 수의를 입히고 장례를 준비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밤, 인공호흡기 마스크와 위관을 착용하고 있어서 너무 괴로웠다. 나는 심하게 몸을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입에 있던 플라스틱관을 깨물어 끊어버렸다. 가족들은 내 모습을 보고는 차라리 인공호흡기와 몸에 꽂혀있던 관들을 모두 제거해주는 것이 낫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제거 후에 나는 죽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점차 평온해졌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몸 상태도 하루하루 좋아졌다. 내가 ‘위독한 상태’였던 것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모두 내가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고, 부모님께 농담 삼아 “큰아들을 새로 주워오셨네요, 이거 축하연을 열어야겠어요!”라고 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이 경험을 글로 써보라고 제안했고, 동시에 이는 내가 안으로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아래에 나는 이 생사를 넘나든 경험과 성찰을 적어낼 것이고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1. 생사관을 넘은 몇 가지 관건적인 생각

첫째, 처음에 한 가지 생각을 지켜냈다. 나는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을 안다.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가끔 심지어 때로는 사부님께서 나를 포기하실까봐 두려웠다. 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저는 대법에 먹칠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열심히 수련할 것이고 제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의 고통을 겪을 때는 정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으면 모든 것에서 해방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죽으면 초래될 심각한 결과를 생각하고 결국 사부님께 간청했다. 이렇게 부족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둘째,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는 나에게 사부님 설법을 틀어주셨다. 사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도 부모님께서는 의사의 허락을 받아 나에게 사부님 설법을 들려주셨다. 처음에는 일부 친척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틀지 못하게 했지만, 아버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병원에서 이미 사형선고를 했으니 나는 내 방법을 써볼 수밖에 없어.” 중환자실에 있을 때와 집에 돌아온 첫 며칠 동안, 나는 대부분 의식 불명 상태로 보냈다. 나중에 사람들은 내가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도 죽지 않고 오히려 점차 깨어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정말 기적이야!” 어떤 이는 “처음에는 안 믿었는데, 이제 보니 대법이 정말 효과가 있네요!”라고 했다. 이를 통해 많은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대법의 위력을 직접 목격하고 대법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됐다.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꿔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셋째, 일체를 사부님께 맡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의식이 없었을 때는 사실 주원신(主元神)이 다른 공간에 갇혀있었거나, 혹은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공간의 속박을 뚫고 현실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었고 또 이 글에서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기에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나중에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정말 힘이 없습니다. 지금 저는 제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겠습니다. 사부님의 배치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 걸을 것이고 생사의 결정도 사부님께서 해주세요.’ 내가 이렇게 생각한 후, 모든 속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마침내 깨어나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넷째, 수련생들의 도움도 매우 중요했다. 나는 수련생들의 사심없는 도움에 매우 감사드린다. 내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수련생들은 모두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해주었고, 부모님은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지켜주셨으며, 자주 나에게 사부님의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라는 법을 읽어주셨다. 나에게 “당신은 사명을 완수하고 사부님과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등을 상기시켜 주었다. 갇혀있던 그 기간에 내가 의식을 잃어버릴 뻔할 때마다 사부님의 목소리와 부모님의 부름이 들렸는데, 마치 층층의 공간을 뚫고 날 도와 자신을 되찾게 해주는 것 같았다. 따라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수련생들이 있다면, 병업 상태의 수련생에게 숨이 붙어있는 한, 의식이 없더라도 곁에 있는 수련생들은 그를 깨우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돌아올 수 있느냐의 여부는 그 사람이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2. 시련 후의 반성

첫째, 왜 이전에는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가? 나는 깨어난 후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해보았다. 이전에 ‘대법에 먹칠하고 싶지 않다’고 내보낸 이 생각이 당시에는 중생의 안위를 생각하고 자신을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계속 안으로 찾아보니 더 깊은 층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만약 내가 이렇게 죽는다면 대법에 먹칠할 뿐만 아니라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망치고, 더 나아가 서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고 이 엄중한 결과는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사심(私心)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 내가 다른 공간에 갇혀 나오지 못했을 때 나는 정말로 모든 사심을 내려놓고 사부님의 배치라면, 어떤 결과든 담담히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당시에 내보낸 가장 올바른 생각이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영상물을 시청한 해로움. 내가 현실에서 의식불명일 때 다른 공간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는데 마치 황량일몽(黃粱一夢)과도 같았다. 그 많은 것들은 예전에 봤던 드라마나 소설 속 이야기들이었고, 자신은 그 속의 한 인물이 되어 완전히 자기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렸다.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 거기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혼란 속에서 ‘우연히’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어떤 초능력자가 사람을 꿈속에 가두어 계속 잠들게 할 수 있고, 꿈속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떠올리고 당시 내가 처한 환경과 대조해보니 나도 아마 꿈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나는 현실에서의 내 인생 흔적도 기억났다. 사악은 내가 이 한 점을 깨달았다는 것을 보고는 ‘꿈’을 바꾸기 시작했고, 내 주의식(主意識)에 대한 교란을 강화했다. 심지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과 일들을 섞어 넣어 나로 하여금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도 중요한 순간마다 사부님의 설법 목소리와 ‘보도(普度)’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자기 신분을 기억하고 나한테 사부님이 계신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셋째, 구세력의 배치를 묵인했다. 내가 진상 알리기와 법 실증을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예전에 어떤 불치병을 앓다가 수련 후 나았다거나, 법을 얻기 전에는 어땠는데 법을 얻은 후에는 매우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너무 평범해서 그들처럼 그런 경험이 없는데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진상 알리기가 쉬웠을 거야.’ 지금 돌이켜 보니, 이것은 내가 스스로 박해를 추구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많은 경우에 자신을 속인과 동일시했다는 것을 안다. 2001년 학교에서 돌아온 후 자료점에서 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고, 나중에 곳곳에서 자료점이 생긴 후 집에서도 ‘작은 꽃’(자료점) 한 송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는 횟수가 매우 적어졌고 특히 전염병이 유행한 이 몇 년 동안은 더욱 적어져서 거의 속인과 다름없이 지냈다. 휴대폰을 갖고 놀기를 좋아하고 각종 집착심이 계속 확대됐다. 색심, 안일심, 질투심, 이익심, 열등감 등등이다. 사부님께 죄송스럽다고 느껴졌고 병업 고비가 아마도 내가 서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처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구세력이 오랫동안 내 신체에 가한 박해를 묵인했다.

넷째, 무의식중 난법(亂法)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신이 법을 교란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전에 난법에 관한 글을 보았을 때 대충 보고 넘겼고 자세히 보지 않았다. 이번 시련 후에 우연히 몇 년 전의 난법에 관한 교류문장 모음집을 보게 되었고 문제점을 발견했다. 내 상황은 이러했다. 법공부의 편의를 위해 《전법륜(轉法輪)》을 강의별로 TXT 문서로 만들어 전용 휴대폰(SIM카드가 없는)에 넣어 법 공부를 했다.

다섯째, 휴대폰 사용에 대한 집착. 이 문제에 대해 수련생들이 이미 많은 교류를 했다. 아버지는 항상 내 휴대폰 사용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처음에는 매우 반감을 가졌고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부정했다. 나는 아직 집착심이 있기 때문에 휴대폰을 하는 것이고 이러한 집착심을 없애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됐다. 지금의 휴대폰에는 뭐든 다 있어서 당신에게 어떤 마음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현재의 인공지능 빅데이터는 너무나 강력해서, 당신의 검색 습관과 시청 시간을 바탕으로 당신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주어 휴대폰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휴대폰은 당신의 집착심을 강화시키고 반대로 이렇게 강화된 집착심은 다시 당신을 휴대폰으로 이끌어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그리하여 휴대폰 사용도 확실히 수련을 통해 없애야 할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이 똑똑히 돌아온 후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제 기회는 다 써버렸어요, 이제 더 이상 기회는 없으니 앞으로 잘해야 해요.”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셔서 제자에게 계속 기회를 주시지만 구세력은 빌미를 잡아 치명적인 공격을 가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에 수련하는 사람은 밧줄을 타고 들어간 후, 밧줄을 끊어버리고 동굴 속에서 수련했는데, 수련해 내지 못하면 그 안에서 죽어야 했다.”(전법륜) 정법시기 대법제자인 나는 더욱더 이러한 결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사부님께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사부님의 제도가 없었다면 나의 모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 사명을 완수하고 서약을 실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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