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청옥(淸玉)
[명혜망] 대법의 지도 아래에서 아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며 여러 사람 마음을 수련으로 제거하고, 대법의 순정함과 아름다움을 실증하며, 중생과 함께 부처님의 은혜를 누린 수련 과정과 깨달음을 적어본다. 깨달은 점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내가 중공 악당에 의해 감옥에서 여러 해 동안 박해를 당했기에 아들이 나를 가장 필요로 했을 때 그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원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지지했던 아들은 내가 돌아온 후에는 나와 대법에 대해 매우 반감을 갖고 큰 원망을 품게 됐다. 특히 1년여 동안은 내 사람마음으로 인해 아들은 내가 말해주는 대법 진상을 매우 거부했고, 내가 대법을 언급하기만 하면 욕을 했다. 나는 가슴이 아프고 또 조바심이 났으며, 기분이 마치 먹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하늘같이 느껴져 정말 괴로웠다. 나는 심지어 ‘내가 몇 년 일찍 태어나 일찍 대법을 얻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틀림없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았을 테니 이렇게 가슴을 파고드는 고통과 번뇌를 겪지 않았을 텐데, 혼자서 조용히 수련하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점차 괴로움 속에서 나는 이성적으로 자신의 수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수련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않아 공간장에 정욕, 원망, 다툼, 조급함, 탐욕, 이익, 이기심,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 등 낡은 우주의 온갖 쓰레기와 부패한 물질이 가득 차 있어서, 하는 말이 순수하지 않고 위력이 없어 중생 배후의 사악을 해체하지 못하고 중생이 구원되는 것을 방해했다.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공간장을 정화하기 위해 발정념을 중시하기 시작했지만 실천 과정에서 여전히 들쑥날쑥했고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했다.
설날 한 달여를 앞두고 며느리가 입덧이 심해서 아들이 나보고 그가 있는 도시에 와서 그들의 생활을 좀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꼭 잘해서 자신을 잘 수련해 그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아들이 내 요리 솜씨에 대해 불만이 많았기에 이번에는 진지하게 요리책을 살펴보고 정성을 다해 매끼 밥을 했으며, 장보기, 빨래, 집안 정리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처음에 아들은 매우 만족해하며 내가 해주는 밥이 예전보다 훨씬 맛있어졌다고 했다. 사실 나는 관념을 바꿔서 모든 일을 수련의 일부로 여기고 마음을 다해 했을 뿐이었고 대충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아들이 없을 때 며느리에게 먼저 진상을 들려주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며느리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서 몰래 아들에게 위챗으로 알렸고, 아들이 즉시 전화를 걸어와 큰소리로 날 꾸짖으며 대법에 불경한 말을 많이 했다. 나는 최대한 화를 누르고 그와 이치를 따져 이야기하며 메시지를 보내 대법에 대해 불경하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메시지로 또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저녁에 그가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또 매우 흥분한 상태로 날 한바탕 꾸짖었다. 내 기분은 극도로 저조해져서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들의 미래가 걱정됐다.
우울한 마음으로, 법공부와 수련생 교류문을 들으며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매우 강한 목적심이 있어서 늘 한방에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고 남의 수용 정도는 고려하지 않았으며, 조급한 마음이 섞여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이치를 매우 심하게 남에게 강요했고, 성급하게 성과를 추구하며 이성적이지 못했고 지혜롭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다른 사람의 자녀가 진상을 듣지 않는다면 내가 이렇게 마음이 동요되고 이렇게 조급해할까?’ 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조급함’은 무엇인가? 바로 정(情)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어떤 정이든 모두 마(魔)라고 하셨다. 이런 정마(情魔)를 품고 진상을 이야기하면 효과가 좋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며느리에 대한 약간의 원망과 아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았다. 게다가 아들의 한마디 말이 나를 깨우쳐주었는데, 그는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나는 발정념을 강화했으며, 자신의 공간장에서 바르지 못한 요소를 제거하는 동시에 그들이 진상을 듣지 못하게 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도 제거했다.
이 기간에 아들에게 일련의 상황이 발생했다. 차가 나무를 들이받고, 젓가락이 부러지고, 열이 나고 기침을 했다. 나는 이것이 그가 대법을 불경하게 대한 보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번에는 매우 이성적이어서 서둘러 그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 묵묵히 그를 위해 발정념을 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어느 정도 깨달은 것 같았다.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말했다. “어머니네 사람들(대법제자를 가리킴)은 남의 집에 가서 일할 때 물건을 훔치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잘해요.” 나는 사실 그가 대법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잘하지 못해서 그의 부정적인 요소를 자극했고, 그가 대법에 대해 불경한 죄를 범하게 했으니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깊이 안으로 찾아보니 오랫동안 나는 어머니(수련생)에 대해 늘 ‘무쇠가 강철이 되지 못함을 한탄하는'(역주: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 식의 원망을 품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과 행동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예의에 맞지 않으며, 가부좌하고 발정념할 때 자주 손바닥이 넘어지고 멍해지며, 밥 먹는 자세도 예의에 맞지 않는 등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공간장에 이렇게 많은 불선(不善)과 원망 등 낡은 우주의 쓰레기와 부패한 물질이 가득 차 있었으니, 이 또한 아들이 그렇게 강렬한 원망을 표현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이었다.
아들은 내 거울이었다. 그의 표현은 사실 그의 본질적인 그 일면이 구원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빨리 그런 관념과 집착을 수련해 없애고, 그가 새로운 우주에 구원되어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족쇄를 깨부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이런 부패한 물질에 대해 발정념을 했다. 중생이 구원되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부패하고 변이된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며, 중생을 소멸하는 모든 배치와 기제(機制)를 해체했다.
아들이 또 한 번 상황이 발생해 밥그릇을 깨뜨린 후 나는 기회를 찾아 그에게 대법을 불경하게 대한 결과와 정중성명을 발표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결국 그는 내가 그를 대신해 대법을 불경하게 말하고 행동한 것을 무효화하는 성명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조건은 더는 그에게 이런 일(대법 진상을 가리킴)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아직도 무거웠다. 나는 내가 아직 대법의 요구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묵묵히 잘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과정은 성격이 급한 나에게는 매우 괴로운 것이었지만, 나는 이것이 바로 수련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련하자!
그 며칠은 정말 인신교전(人神交戰)이었다! 사람의 일면은 날짜를 세며 지냈고, 매우 피곤하고 너무 길게 느껴졌다. 신의 일면은 이것이 자신을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국 신념(神念)이 인념(人念)을 이겼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매일 집안일을 잘하는 것 외에는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나는 조금 먹거나 먹지 않았으며, 그들이 출근하면 나는 그들이 전날 남긴 음식을 먹었다. 때로는 남은 반찬이 없으면 짠지를 좀 먹었고, 시간을 아껴 바른 일을 했다. 어느새 자아에 대한 느낌이 없어졌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 없어졌으며, 한마음으로 그들을 위하니 전에 없던 단순함과 자재(自在)함을 느꼈다.
시간이 물 흐르듯 조용히 흘렀고 며느리의 입덧도 많이 나아졌으며, 나도 거의 한 달 동안 머물렀다. 설이 다가오자 나는 아들과 상의해서 이틀 후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날, 나는 아들의 집을 대청소하고 빨랫감을 모두 세탁했으며, 잡동사니도 다시 정리해 두었다. 혼자서 이것저것 옮기느라 녹초가 됐고, 저녁에는 또 그들에게 반찬 세 가지를 볶아주고 며칠 전에 다 먹지 못해 냉장고에 얼려둔 반 마리 구운 양다리도 데워놓았는데, 그것은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뜻밖에도 아들이 퇴근 후 식탁에 앉아서는 눈앞에 있는 새로 볶은 반찬 세 가지는 보지도 않고 그 반 마리 구운 양다리만 보더니, 화를 내며 젓가락으로 양고기를 콕콕 찌르면서 날 계속 꾸짖었다. “아, 어머니는 날마다 나한테 남은 음식만 주고, 며칠 동안 밥하라고 했더니 날마다 날 대충 속이고…” 며느리가 말했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새로 볶은 반찬도 있잖아.”(이것은 며느리가 처음으로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이전에 아들과 내가 갈등이 생기면 그녀는 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한 태도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발정념을 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층차를 높이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그 새로 볶은 반찬 세 가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계속 젓가락으로 그 반쪽 남은 양다리만 콕콕 찌르고 있었다. 그가 말하면서 점점 더 흥분하는 것을 보며 나는 웃음을 참으며 조용히 밥을 먹었다. 아들은 말하면서 점점 더 화가 나더니 마지막에는 젓가락을 내던지고 밥그릇을 밀어내고는 씩씩거리며 식탁을 떠났다. 이어서 그는 쓰레기봉투를 가져와서는 “남은 음식을 나한테 먹으라고?”라고 말하면서 양고기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문밖으로 버렸다.
이어서 그는 또 난폭하게 냉장고와 냉동실을 뒤져서 며칠 전 식당에서 손님 접대하고 포장해온 남은 음식을 모두 쓰레기봉투에 담아 문밖으로 버렸다. 통제가 안 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계속 웃음을 참았다.
며느리가 다 먹고 나서 나는 주방으로 그릇을 치우러 갔다. 그러자 아들이 또 주방으로 쫓아와서는 씩씩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더니 나를 나무라며 말했다. “과일을 산 지 며칠이나 됐는데도 씻어서 먹지도 않고…” 나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갑자기 앞으로 구부러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어리둥절해하며 약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아들은 내가 예전에 제멋대로이고 강한 성격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전의 관례대로라면 우리가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대부분 그와 한바탕 이치를 따졌고, 결국에는 불편한 감정으로 헤어져 각자의 방으로 가서 서로 상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완전히 그의 인식을 뒤집어엎었다. 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천천히 한마디를 했다. “어머니, 바보가 됐어요?!” 나는 듣고는 더욱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웃으면서 끊어질 듯 말듯 말했다. “난 하루 종일 바빴는데… 허리도 아프고… 뜻밖에 한바탕 훈계를 들었구나…” 아들은 듣고는 자기도 웃기 시작했고 우리 둘은 서로를 보며 함께 웃었다.
웃고 웃다가 그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한테 화낸 게 아니에요. 엄마가 고생하신 거 알아요. 나는…” 그리고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마음이 움찔했고 웃음을 멈추고 앞으로 다가가 아들을 안아주며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위로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어디가 잘못했는지 엄마한테 말해줘, 엄마가 고칠게.” 아들도 나를 안아주며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뇨, 엄마는 잘하셨어요.”
그날 밤,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화기애애하게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것은 내가 그의 집에 온 지 20여 일 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앉아서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모두 식탁에서만 몇 마디 했고, 그는 계속 휴대폰만 보면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 이번에 아들은 휴대폰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 같았고 조용히 내가 대법제자들이 어떻게 사심 없이 서로를 위하고 서로 돕는지, 대법제자의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이 어떻게 괴롭힘 속에서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대법을 지지해서 복을 받은 사례, 전통문화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번에는 나는 성급하게 성과를 추구하지 않았고, 또 강제적으로 일방적으로 주입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그의 수용 정도에 맞춰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는 더는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고 때로는 나와 상호작용을 했는데, 그가 많은 감동을 받은 것이 보였다. 그는 말했다. “대법제자들은 모두 아주 순수해요.”
그 후로 아들은 눈에 띄게 변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듯한 태도가 줄어들고 이성적인 사고가 많아졌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도 알게 됐다. 그는 외할아버지와 통화할 때 나에 대해 말하면서 “사람은 역시 신앙이 있는 게 좋아요”라고 했다. 며느리도 “우리 어머니도 연공하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거세게 몰아치는 것 같았던 폭풍우가 이렇게 내가 진선인(眞·善·忍)의 법광(法光)에 동화되는 가운데 비 온 뒤의 무지개가 되어 구원의 사다리를 놓았다.
돌이켜보니 이 한 달간의 경험에서 나는 감회가 무량했고, 마음속 깊이 아들에게 감사했으며, 예전의 모든 시련에 감사했다. 그것들이 나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했고, 그 속에서 도를 깨닫게 했다.
자신을 되돌아보니 사실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이론에만 머물러 있었을 뿐 정말로 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 실천하지는 않았다. 갈등이 생기면 밖으로 보면서 속인의 이치에 빠져 시비를 따졌고, 결국 자신의 공간장에서 제거해야 할 부패한 물질을 제거하지 못하고 각종 사람마음의 집착을 키웠으며,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연장해주신 시간을 낭비했고, 구원되기를 시급히 기다리는 중생을 방해했으니 이는 얼마나 큰 죄인가!
나는 깨달았다. 안으로 찾고 법에 동화되는 것은 우리가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고 중생을 구하는 법보(法寶, 법력이 있는 보물)이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중생을 더 잘 구할 수 있다. 정법수련의 기점에 서서 보면, 매 한 번의 갈등과 매 한 번의 시련은 모두 우리가 중생을 이끌고 관문을 돌파해 돌아가는 북소리를 울리는 것이다. 관문 하나 시련 하나에 천상이 하나 구원되네! 관문 하나 시련 하나에 중생이 하나 구원되네!
원문발표: 2024년 1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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