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업력으로 가득한 말세의 인간 세상에는 재난과 위험이 연이어 닥치고 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광명은 온 우주를 비추고 맑은 물처럼 인간 세상을 정화합니다. 법광(法光) 속에서 저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 세상에 왔는지를 깨달았습니다.
1. 행운으로 대법을 만나다
제 운명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투쟁 대상이었고, 중년에는 남편이 외도한 뒤 세상을 떠나 저는 시력을 거의 잃은 어머니와 어린 자녀와 함께 힘겹게 살아야 했습니다. 하늘이 저를 불공평하게 대하고 모든 사람이 저를 저버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꿈에서조차 세상을 떠난 남편과 싸우고, 저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세상의 냉혹함 속에서 온갖 병에 시달렸습니다. 하늘과 땅에 맞설 힘도 없이 자주 다른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너무나 힘들게 살았습니다. 잠시라도 평온을 찾고 신의 보호를 받고자 절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는 맹목적으로 보시만 할 뿐이었고 승려들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상상했던 그런 평화롭고 자비로운 수행자가 아니었고, 일부는 경전의 말씀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염증을 느꼈습니다.
불운은 여전히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심장병과 신장염은 나날이 악화되었습니다. 제 직업은 3교대로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밤늦게 근무할 때 심장병이 발작하면 갑자기 사지가 힘이 빠지고 호흡곤란이 오며,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생산라인에서 완료하지 못한 작업이 자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 상사와 동료들의 불만이 컸습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이런 고난 속에서 파룬따파를 만났고, 한번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파룬궁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 ‘전법륜(轉法輪)’ 책을 접했을 때 좋아 보여서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불교 경전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왠지 읽고 나면 감동이 없어 더 읽고 싶지 않아 그저 보관만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법륜’은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회의할 때도 구석에 숨어 조용히 읽을 만큼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2. 동료를 잘 대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불평이 줄어들고 차가운 눈으로 남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불공평하게 대해도 평온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반장이 트집을 잡아 제 신발을 옆으로 던져놓았는데, 저는 따지지 않고 그저 신발을 주워왔습니다. 누구나 기분 나쁠 때가 있기에 이해하면 그만이지 굳이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을 테니까요. 이것이 제가 처음 파룬궁을 배웠을 때 대법 법리에 대한 얕은 이해였습니다.
점차 저는 음식도 잘 먹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으며, 심장병 발작도 사라지고 빈뇨 증상도 없어졌습니다. 건강이 좋아진 것입니다. 저의 변화를 본 몇몇 동료들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건강이 좋아진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제가 깨달은 선(善)의 의미일 것입니다.
저는 그 작업장의 초대 반장이었고, 직장의 초창기 어려운 시기에 가장 숙련된 기술자였습니다. 그런데 직장이 안정되자 경영진은 제 반장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저는 필요할 때만 쓰다가 버려진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새 반장에 대한 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저는 점차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로 복수하기를 언제까지 할 것입니까? 오늘은 제가 버림받았지만, 내일은 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모레는 저를 버린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혼탁한 세상의 업력 윤회는 누가 빚을 졌으면 누가 갚아야 하는 법, 진선인(眞·善·忍)이야말로 제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근본 원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는 반장을 원망하지 않게 됐습니다. 반장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워도 저는 묵묵히 일했고, 이런 제 모습을 반장이 서서히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아무 말 없이 참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왜 항의도 보복도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불평 없이 요구하지도 않은 채 제 할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저 파룬궁이 사람에게 선(善)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며 진선인이 제 마음을 바꾸어놓았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제가 진정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는 제가 어떻게 그렇게 좋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인연입니다. 반장님과 제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서로 다투기만 하니 삶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다투어서 얻은 것들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지 모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덕(德)을 잃는 것입니다. 사람이 덕을 잃으면 완전히 타락하여 신(神)에 의해 도태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익을 위한 다툼에서는 승자가 없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전통문화에서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잘 조화시켜야만 마땅한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추구하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천리(天理)에 부합하는 것이므로 자연히 하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서로를 이해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녀는 진심으로 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했고,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제가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을 때 그녀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경영진과 주변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좋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에게도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3. 이웃을 잘 대하다
동료를 잘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는 층에는 세 가구가 있는데, 저희 집은 가운데에 있습니다. 왼쪽 이웃은 세입자이고 오른쪽 이웃은 노부부입니다. 어느 날 한밤중에 돌아온 왼쪽 세입자는 술에 취해 자기 집 쓰레기를 누군가가 발로 차서 흩트렸다고 주장하면서 저와 오른쪽 이웃이 밖에 둔 물건을 모두 계단 아래로 던졌습니다. 제 물건 중에는 계란 한 상자가 있었는데 모두 깨졌습니다. 오른쪽 이웃은 이 세입자와 다투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나가서 두 가구에 싸우지 말라고 말렸고, 그들은 가장 큰 손해를 본 제가 따지지 않는 것을 보고 미안해하며 물러섰습니다.
저는 왼쪽 이웃을 만날 때면 예전처럼 대했고, 그의 잘못 때문에 그를 차갑게 대하지도 않았으며,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기도 해서 제가 여전히 그를 신뢰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오른쪽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가끔 그들이 쓰레기를 제때 치우지 않으면 제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가지고 갔는데, 그는 매우 감동해 점차 이웃 간의 관계가 평화로워졌습니다.
제 창문 밖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습니다. 어느 이웃이 테라스에 개를 풀어놓았는데, 그가 개를 풀어놓자마자 개는 오른쪽 이웃집 창문과 제 창문 아래에 똥을 쌌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이웃은 개를 내보낸 이웃과 싸움을 벌였고, 심지어 칼부림까지 하려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개똥을 봤을 때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똥일 뿐인데 시간이 있으면 치우고 시간이 없으면 그냥 놔둬도 큰일 날 것은 없지 않습니까?
가족들은 개를 풀어놓은 사람에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선의로 충고하는 것도 그를 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른쪽 이웃도 제게 함께 개를 쫓아내자고 했습니다. 저는 개 주인이 이렇게 이웃을 방해하는 것이 그에게도 좋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제 생각을 전했는데, 이웃들과의 관계를 긴장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그렇게 하면 그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선의로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자신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속마음을 터놓으며 거듭 사과했습니다.
이웃과 서로 양보하고 평화롭게 지내며 다른 사람을 잘 대하는 것은 사실 동시에 자신을 잘 대하는 것입니다.
4. 친척과 친구를 잘 대하다
부모님은 모두 제가 끝까지 모셨습니다. 어머니는 임종하실 때 ‘파룬 사부님’을 부르시며 떠나셨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모시는 모습을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보았습니다. 저의 고모는 70세에 가까웠는데 집안 형편은 좋았지만 성격이 약간 변해서 많은 가정부를 구했어도 모두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사촌오빠(고모의 아들)는 “우리 어머니는 가정부를 해고하는 분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사촌들은 제가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보고 결국 저를 찾아와 “우리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라고 했습니다.
고모 가족은 의료계 종사자가 많아 매우 깨끗하고 모두 결벽증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저는 그다지 꼼꼼한 사람이 아니었고, 일도 느리고 민첩하지 않았습니다. 고모 집에서 일했던 가정부들은 대부분 경험이 많고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했기에 저는 고모 가족이나 이전 가정부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고모 가족이 저를 지목해 가정부로 일해달라고 했을 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가정부들과 다른 점은 제가 고모와 그 가족을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모의 집안 형편이 매우 좋지만, 고모는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하며 검소한 생활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고모 가족은 이런 고모가 눈에 거슬렸고 일하러 온 가정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고모를 이해했기에 식사할 때마다 남은 음식을 접시에 담아 다음 식사 때 제가 먹었고, 야채 씻은 물이 비교적 깨끗하면 모아두었다가 화장실 물을 내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저는 고모의 비서가 되어 집안의 채소를 상태에 맞게 요리하고 최대한 낭비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고모는 “내가 키운 자식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아무도 이렇게 하지 않아. 가정부는 더욱 그렇지 않았지. 모두 좋은 것만 먹으려 하고 남은 것은 다 버렸어”라고 하셨습니다.
고모는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성격이 모두 다르고 형편도 달랐습니다. 고모는 형편이 좋지 않은 자녀를 약간 편애하셔서 형제자매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형편이 좋지 않은 둘째 딸이 종종 다른 형제자매 몰래 고모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밥을 먹으러 오기도 했으며, 때로는 제가 도와주어야 할 일거리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이는 형제자매들이 하지 않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가정부가 할 일도 아니었지만, 저는 고모와 둘째 딸을 이해했습니다. 부모로서 어느 자녀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딸이 어려움이 있어 제가 돕는데 무슨 따질 것이 있겠습니까?
고모는 늙어 외로워지시자 월계화를 비롯한 많은 꽃을 키우셨는데 월계화를 잘 키우지 못해 자녀들이 월계화 키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저는 고모의 외로움을 보고 서점에 가서 월계화 키우는 법을 찾아 오토양 재배법(五土栽培法)으로 월계화를 매우 잘 키워 꽃이 아주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대법은 저에게 사람들을 대할 때 누구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고 이해하면 서로 사이좋게 지낼 여지가 있고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고모는 “너는 내 생각대로 일하는구나.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 너는 그대로 해내는구나. 예전의 넌 혼자 살면서 아이 키우기도 힘들었을 텐데 지금 네가 나를 돌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장쩌민은 정권을 잡은 후 좋은 일이라곤 하지 않고 파룬궁만 체포하니 정말 벌 받을 짓을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너무 멀리 이사를 가서 도저히 갈 수가 없어 고모는 다른 가정부를 구하셨습니다. 하지만 고모는 저를 떠나보내지 못해 저는 일주일에 며칠은 정오에 고모 댁에 가서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고모는 저에게 월급도 주셨습니다. 고모는 자식들과는 속마음을 터놓을 수 없다며 자식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고모 댁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정오에 시간 날 때만 대화를 나누러 갔습니다. 친척들은 제가 고모와 ‘대화 치료’를 하고 있다며 농담을 했습니다.
고모는 90세가 넘어 돌아가셨습니다. 고모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 몸과 마음이 모두 좋아진 것을 보시고 마음 놓고 떠나셨습니다.
고모가 돌아가신 후 고령의 숙모 댁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숙모는 7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한동안 아무도 숙모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숙모를 돌보는 일을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아 친척이 저를 다시 찾아왔는데, 무상으로 돌봐달라고 했습니다. 숙모는 아들에게 집을 물려주었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부양하지 않아 결국 딸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숙모의 한이 되었고, 딸네 집에 있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셨습니다.
숙모가 계신 곳에 가서 저는 숙모의 예전 생활방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숙모의 딸이 뭘 먹으라고 하면 그대로 먹었고, 숙모에게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면 요구대로 했습니다. 저는 숙모에게 긴장을 풀고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실지 여쭤보았습니다. 숙모는 춥다면서 집에서 햇볕을 좀 쬐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무거운 소파를 집안의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숙모가 누워서 햇볕을 쬐실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딸네 집에서는 숙모가 뭔가를 먹고 싶다고 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번은 숙모에게 무엇을 드시고 싶으신지 여쭤보니 숙모는 “내가 손수 담근 짠지가 먹고 싶은데, 주방에 가면 싫어할까 봐 못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같이 가서 만들어요”라고 했더니 숙모는 정말 기뻐하시며 마음이 편안해지셨습니다. 숙모는 “네가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누가 너에게 수련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수련하거라. 자신의 주견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 말 듣고 수련을 그만두면 안 된다. 너는 건강한 몸이 있어야 한다. 네가 어려움이 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너는 파룬궁에 의지해야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숙모는 아흔 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숙모에게는 7명의 자녀가 있었고 마지막에는 딸의 품에 안기셨지만 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숙모는 파룬궁 수련자의 몸에서 따뜻함을 느끼셨습니다.
남편은 외도한 후 저와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저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그의 가족과 계속 연락을 했습니다. 형님(큰시누이)는 바쁜 일이 있어 한동안 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았는데 형님의 사돈과 함께 아이를 돌봐야 했습니다. 가장 힘든 점은 형님과 사돈이 계속 갈등이 있어 함께 지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형님은 여동생을 찾아갔지만 여동생은 그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됐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돈과 함께 있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어서 여동생은 무슨 말을 해도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수심에 찬 형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난처해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날 도와줘. 올케만이 할 수 있어. 남편도 올케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해.” 저는 이것이 어렵고 고생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 세상은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어려운 것은 손해를 보거나 이득을 보는 문제가 아닌가? 한 걸음 물러서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형님이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날 신뢰하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몸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을 관용할 수 있다. 형님 부부는 파룬궁의 덕을 보려는 것이 아닌가? 못할 게 뭐가 있는가?’라고 생각하고 “좋아요. 제가 갈게요”라고 말했습니다. 형님 부부는 기뻐했습니다.
저는 동북에서 광저우에 있는 형님 아들 집, 즉 조카 집에 갔는데 보니 사이좋게 지내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사돈은 잘난 척했고 조카는 의사소통에 능숙하지 않았으며 조카의 아이는 제멋대로이고 응석받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날 나쁘게 대하는 것을 보지 않고 보이지도 않아야 하며 최선을 다하자. 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할지만을 생각하면 된다.’ 저는 ‘내가 도와주러 왔으니 당신들은 나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형님의 사돈댁은 산시(山西)성 사람이어서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산시 밀가루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가 만든 밀가루 떡을 사돈댁과 조카며느리가 모두 좋아했습니다. 사돈댁은 목소리가 크고 성격이 직설적이며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화를 냈습니다. 저는 부드럽게 웃으며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사돈댁은 생활의 세세한 부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 할 일이 없을 때마다 저는 주방을 조금씩 청소했습니다. 때로는 아이에게 종이로 장난감을 접어주거나 옷을 바느질하기도 했습니다. 점차 사돈댁은 저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저에게 “사돈은 매우 똑똑하고 세심하시네요! 사돈은 항상 싱글벙글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돈댁에게 “사돈도 매우 소탈하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할 말이 생겼습니다.
사돈은 평생 매우 고생스럽게 살았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 가족이 지주여서 결혼할 상대를 찾지 못해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어요. 남편은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저와 결혼했어요. 마침내 개혁개방해서 남편은 돈을 더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급사업에 나섰는데 의외로 돈을 벌지는 못하고, 각급 리더들에게 선물을 주는 데 많은 돈이 썼는데 공정 도급을 맡지 못했어요. 저는 젊었을 때 지주 성분 때문에 남들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고 제일 가난한 사람과 결혼했는데, 이제는 가난하지 않으려고 각급 간부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어요. 좋아질 날이 있을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예, 공산당 치하에서 서민들이 언제 잘 살았나요? 대약진, 문화대혁명, ‘6·4′(천안문 사태), 시골과 산으로 가게 하고 해고(실업)를 당하고, 고생스러운 것은 서민이지요. 지금은 음란물, 도박, 마약, 부패가 만연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어요?” 사돈댁은 “사돈은 늘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돈댁에게 “지금의 사회는 누구도 구할 수 없고 오직 신과 부처님만이 우리를 구하실 수 있어요. 진선인(眞·善·忍)의 천리에 부응해야만 하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이 모두 바뀌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돈댁은 조급하게 “저도 이 파룬궁 책을 읽어도 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저의 설법이 담긴 플레이어를 사돈댁에게 주었더니 사돈댁은 저에게 “지금 이 시기에 제게 이걸 주시다니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거듭 감사를 표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함께 있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돈댁은 산시성으로 돌아갔고 저는 동북으로 돌아왔습니다. 설날에 저는 사돈댁의 안부 전화를 받았는데, 다시 한번 저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로써 형님과 사이가 좋지 않던 사돈댁은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조카며느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숙모는 저의 어머니, 시어머니, 세 할머니 중에서 가장 훌륭하신 분이에요.”
제 언니도 이전에 파룬궁을 수련했는데 중공의 탄압으로 인해 두려워서 더는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다시 전염병이 중국을 강타했을 때 79세가 된 언니는 폐렴, 폐부종, 심부전, 호흡곤란을 겪었습니다. 의사는 언제든지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가족에게 알렸습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언니는 파룬궁 수련을 중단한 후 속아서 다단계, 투자 등에 가담한 것입니다.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언니 집에는 7000위안밖에 없었습니다. 언니의 자녀는 평소 씀씀이가 헤퍼서 돈이 없으면 어머니에게서 돈을 구했습니다. 3년간의 전염병으로 인해 도시는 폐쇄되고, 실업으로 인해 저축한 돈도 없었고, 자기 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려웠기에 어머니를 치료할 돈이 없었습니다.
이때 저는 언니가 평소 가족의 조언을 듣지 않고 다단계 사기에 가담해 가족에게 거의 전 재산을 잃게 한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언니의 딸, 즉 조카들이 아무리 돈을 헤프게 쓰고 절약할 줄 모르는 것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뭘 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는데, 저는 제한된 생활비에서 돈을 내 언니의 병을 치료하게 했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파룬궁 사부님께 목숨을 구해달라고 빌라고 일깨웠습니다. 이때 언니는 파룬궁의 생명을 구하는 9자 진언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생각나서 간신히 말했습니다. “나는 외우고 있어. 계속 외우고 있어.” 폐부종으로 인해 언니는 숨쉬기 어려워했고 심부전 때문에 머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제가 파룬궁 사부님의 설법이 담긴 플레이어를 언니 귀에 대자 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주의 깊게 듣고 또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며칠 후 언니의 상태는 호전되었고 호흡도 훨씬 부드러워졌으며 심부전도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20여 일이 지나서 80세에 가까운 언니는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전염병에서 생명을 잃은 젊은이도 많고 몸이 매우 건강한 사람도 많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니를 위해 손에 땀을 쥐었는데 언니는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제 조카딸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모는 정말 자격이 있는 이모예요!”
이번에 언니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파룬따파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대법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지금은 생명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직 파룬궁만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파룬궁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읽은 후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사부님은 이 시기에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구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사람을 최대한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한발 물러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실제에 부합되게 다른 사람의 관점에 서서 생각하면 많은 불필요한 갈등과 번거로움을 해결할 수 있고 우리가 모르는 많은 불만도 해결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좋은 것, 나쁜 것, 더러움은 모두 이 과정의 사소한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내심으로부터 남을 생각하면 그는 생명 깊은 곳에서 느낄 것입니다. 물은 낮은 곳에 있기에 만물을 양육할 수 있고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은 것입니다. 바다가 낮기에 모든 강을 품으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3년간의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들은 생명의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천재지변에 직면해 봉쇄, 백신, 핵산은 모두 무력하게 끝났습니다. 사람은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람이 사는 것은 서로 다투고 어떻게 다른 사람의 것을 점유하고 강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소위 행복에 취해 깊이 빠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죄업을 없애고 공덕을 쌓아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23/47400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23/4740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