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윈난성 대법제자
[명혜망]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부님의 은혜에 무한히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수련 과정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저는 1997년에 35세의 나이로 군대 교관으로 있을 때 대법을 얻었습니다. 대법을 얻기 전에는 다른 기공을 연마한 적이 있어서 기공이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기공의 특이공능(초능력) 현상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었고 매우 심오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비를 탐구하려고 관련 서적들을 자주 구입해서 읽곤 했습니다.
1. 대법을 얻어 매우 행복한 가족
1997년 7월 어느 날, 아이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파룬궁이 매우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파룬궁’이란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 “파룬궁 관련 자료가 어디 있나요?”라고 여쭤보았습니다. 선생님은 한 대법제자로부터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빌려오셨고, 그날 저녁 저는 아내와 함께 선생님 댁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았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에서 무한한 친근감을 느꼈고, 영상을 보는 내내 감격에 겨워 마음속으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입니다!”라고 연신 감탄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배우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제1강 설법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에 깡충깡충 뛰며 걸었고, 아내에게 연신 “사부님 설법은 정말 훌륭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저는 차를 몰고 현지 문화궁 연공장으로 갔습니다. 수백 명이 연공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일이 있었는데 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뒤에 서서 앞에 있는 파룬궁수련생의 동작을 따라 연마했습니다. 연공이 끝나고 나서 “공법을 배우려면 학비가 얼마인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들은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가르칩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기공을 배우려면 모두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현재 사회에서 이렇게 무료로 가르치는 파룬궁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며칠 연속 아침마다 연공장에 가서 공법 동작을 배웠습니다. 매일 연공을 마치고 나서는 수련생들과 함께 교류를 했는데, 한 수련생이 파룬궁이 병을 치료하는 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폐심병(폐성심질환) 말기에도 효과가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한 수련생이 70대 아저씨를 가리키며 “이분이 전에 폐심병 말기였는데 한번 물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아저씨 앞으로 가서 공손히 여쭤보았습니다. “아저씨, 파룬궁이 폐심병에 효과가 있으신가요?” 그는 밝은 얼굴로 대답하셨습니다. “효과가 아주 좋아요! 저는 전에 폐심병, 폐기종, 천식 등 여러 가지 병이 말기였어요. 지금 제 상태가 어떤 것 같으세요?” 제가 자세히 보니 아저씨의 얼굴에 혈색이 매우 좋아 도저히 폐심병을 앓았던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즉시 마음속으로 ‘우리 아버지가 이분과 똑같은 병을 앓고 계시는데, 이제 살아날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수련을 통해 중병이 완쾌되다
제가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배운 후, ‘전법륜(轉法輪)’ 책을 구해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고향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버지는 얼굴이 누렇고 몹시 수척해 보였으며, 안색이 창백한데다 기력이 없어 말씀하시기도 힘들어하셨고 이미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아버지, 이제 희망이 생겼어요. 파룬궁이 아버지를 구할 수 있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네 효심은 알겠다만 내 이 병이 치료될 수 있다면 죽은 버섯에 물을 줘도 살아나겠지!”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삶에 대한 강한 갈망이 보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부축해 앉게 하고 등에 베개를 받쳐드린 뒤 ‘전법륜’을 읽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를 보이셨고 정신도 점점 좋아지셨습니다. 몇 페이지 듣고 나서는 “내가 직접 볼 수 있게 줘보렴”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을 하시며 “이 선생님은 범상치 않으시구나”라고 하시며, 책에 쓰인 모든 말씀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으셨습니다.
침상에서 이틀간 법공부를 하신 후 아버지는 집 앞뒤로 돌아다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웃들은 아버지께서 갑자기 걸어다니시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제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아버님이 회광반조(回光返照, 사망 직전 다시 기력이 되살아나는 모습)인 것 같다”며 장례를 준비하라고 귀띔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버지의 정신과 건강 상태는 날마다 좋아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서둘러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하셨고 저는 매일 한 가지씩 공법을 가르쳐드렸습니다.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익히신 후에 저는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약 두 달 후, 아버지께서 편지로 알려주시기를 폐심병, 폐기종, 천식이 모두 나았고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파룬궁 수련으로 중병이 완쾌되었다는 소식이 고향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젊어지다
아버지가 다년간 병으로 밭일을 하지 못하셔서 집안의 모든 농사일은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여섯 자녀를 키우느라 집안에는 자주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육체적 노동과 장기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어머니는 어깨 통증, 고혈압, 관절염 등 아홉 가지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대법 수련으로 건강을 되찾으신 것을 보고 어머니도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하셨습니다.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는 매일 틈틈이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고 새벽에 연공을 하셨습니다. 어느새 어머니의 여러 가지 병증이 모두 사라졌는데, 매일 농사일로 바빠서 병이 언제 나았는지도 모르실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대법을 수련하신 후 1998년에 생리가 다시 시작되셨고, 2019년에는 열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새로 자라나는 등 의학적으로도 매우 드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27년간 수련하시면서 약 한 알 드시지 않고 주사 한 번 맞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82세이신 어머니는 달리기도 하실 수 있어서 어머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파룬궁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고 화목한 12명의 대가족
우리 가족 모두가 파룬따파와 인연이 있어서, 제가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여섯 형제자매와 친인척 등 열두 명이 전국 각지에서 제가 있는 부대 근처로 모여들어 소규모 장사나 기술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제가 고향에서 부대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파룬따파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아버지와 제가 대법 수련으로 경험한 신기한 효과를 이야기하자, 10살 전후의 아이 셋을 포함한 가족 열두 명 모두가 대법과 성스러운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식사 후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법공부를 하고, 이른 아침에는 함께 연공을 했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대법의 진선인(眞·善·忍)으로 언행을 바로잡았고, 장사를 할 때도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할 것이다”(전법륜)는 말씀을 따랐습니다. 옷가게를 하는 제 아내는 손님들이 가장 걱정하는 네 가지, 즉 비싸게 사는 것, 집에 가서 입어보니 맞지 않는 것, 품질 문제, 구겨진 옷을 다림질할 곳이 없는 것 등을 고려해 가게 중앙에 ‘반품·교환·수선·다림질 보장’이라는 신용 보증 안내판을 걸었습니다. 가게의 평판이 멀리까지 알려져 장사도 잘 되었습니다.
열두 명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갈등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갈등이 생길 때마다 각자가 대법의 진선인에 비추어 자신의 잘못을 찾았습니다. 고비를 넘을 때는 서로 참으라고 일깨워주어서 아무리 큰 갈등이나 소업(消業)이 있어도 모두가 사부님의 법인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를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온 가족이 파룬따파의 법광(法光) 아래에서 화목하게 지냈고, 대법은 우리 가족을 화목하고 행복한 대가족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모두가 사부님과 대법의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2. 박해 속에서 확고하게 중생을 구하다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군대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우리 부대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폭로비판회’를 열었고, 지도부는 제게 발언하라며 심도 있게 ‘폭로비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법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해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단상에 올라 저는 다음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1.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게 된 이유는 첫째, 파룬궁이 진선인 세 글자를 사람됨의 준칙으로 삼도록 권장하여 한 사람의 도덕성을 실제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연공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므로 그 효과가 신기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의 폐심병, 폐기종, 기관지염, 천식은 여러 큰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했지만 파룬궁 수련으로 나으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유입니다. 2. 파룬궁 창시자이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홍음(洪吟)-세계십악(世界十惡)’에서 ‘갱단에 난당이라 정당과 도적이 한 무리로다’라고 쓰셨습니다.” 아래에 있던 청중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고 어떤 이는 “그러니까 폭로비판을 당하지”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오늘날 사회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했군요”라고 했습니다.
이후 지도부는 제게 “당신을 단상에 세워 폭로비판하라고 했는데, 오히려 선전을 한 것 같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고, 만약 양심을 속이면서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선인에 부합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며칠 후 부대의 최고 지도자인 정치위원이 저를 불러 파룬궁 상황을 알아보려 했고, 저는 파룬궁이 진선인을 처세 원칙으로 삼도록 권장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다섯 가지 공법도 시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차례 정치운동을 겪어본 사람이라 파룬궁 문제가 또 다른 정치운동이 될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나중에 군대는 파룬궁수련생은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모두 지방으로 전출시키라고 규정했습니다. 제가 전역할 때 정치위원은 지방 퇴역군인 안치사무실과 협조할 사람을 보내 저를 현지에서 가장 수익이 좋은 기업에 배치했고, 월급은 군대에서 받던 것의 두 배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농담으로 “자네는 화를 복으로 바꾸었구만”이라고 했습니다.
억울한 박해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이 개인적인 질투심으로 중공과 결탁하여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유언비어를 날조해 비방했습니다. 우리 온 가족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진상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진상 스티커를 붙였으며, 그 결과 우리 형제자매 다섯이 부당하게 강제노동과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불법 가택수색을 당하던 날, 아내는 뒷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졌고 길목마다 경찰이 지키고 있었으며 아파트 단지에서는 숨을 곳을 찾지 못해 닭장에 숨었는데, 경찰이 사방을 수색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동이 틀 무렵 한 택시가 승객을 내려주러 왔을 때 아내는 그 택시를 타고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타지 사람이라 이 도시에 친척이 없었는데, 아내는 제가 전에 알던 친구 집이 생각났습니다. 그곳은 이곳에서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외진 농촌이었지만 차를 타고 그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예전부터 두 집안이 매우 친하게 지냈기에 제 아내가 도착하자 그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아내는 그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실상을 말하지 못했고, 그들의 집에서 매일 집안일을 도우며 닭과 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밥을 지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초등학생인 12살 아들이 어느 친척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걱정했습니다.
그날 아들이 하교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이 경찰들에 의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날 아버지가 경찰에게 끌려가고, 큰고모와 큰 숙부, 둘째 숙부도 경찰에게 끌려갔으며 작은고모는 도망갔다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은 어머니도 경찰에게 붙잡혀간 줄 알았습니다. 원래 행복하고 화목했던 대가족이 갑자기 이렇게 되자 아들은 너무나 상심했습니다. 이후에 아들은 큰고모부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습니다. 큰고모가 납치돼 큰고모부 혼자서 10살 전후의 아이 셋을 돌봐야 했는데, 혼자 일해서 버는 수입으로는 초등학생 세 명을 부양하기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한동안 아들은 여러 친구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약 3개월 후 아내가 친구 집에서 돌아왔고, 모자가 재회하자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는데,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는 수개월간의 그리움과 불행한 처지의 쓰라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불법 가택수색 때 심한 충격을 받으셨고, 다섯 자녀가 납치돼 부당하게 형을 선고받거나 강제노동을 받게 된 것을 보시고, 또 사부님과 선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대법이 모함과 비방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심신에 큰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반년 후, 원래 건강하시던 59세의 아버지는 억울함을 안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의 화목하고 행복했던 대가족은 이렇게 중공 장쩌민 폭력집단의 박해로 가정이 파탄 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악을 놀라게 하다
2004년,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제 직장 근처 지역사회에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현지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과 파출소가 극도로 불안해하며 제가 배포했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경찰 일당이 제 직장에 와서 직장 지도부에게 저를 보안부서로 부르게 하여 불법 심문을 했습니다. 사악한 자들이 매우 흉악하고 오만하게 굴어서 직장 지도부조차 제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사악이 문전에 찾아왔으니 악인들을 조종하는 배후의 모든 사악한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호해주시기를 청하고 정법 주문을 묵념하며 강한 정념으로 그들을 정시했습니다. 경찰이 말을 마치자 저는 정의롭고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경찰차 몇 대를 타고 제복을 입고 제 직장에 와서, 여러 부서의 상사를 통해 저를 불러 보안부서로 데려왔는데, 회사 직원들이 수군거리고 있어 제게 얼마나 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보셨나요? 당신들의 직책은 범죄자를 단속하는 것인데, 오히려 진선인을 실천하는 좋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파룬궁수련생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대법제자들이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목적은 민중에게 파룬궁이 억울하게 박해받고 있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천안문 분신’ 사건은 장쩌민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하기 위해 연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이렇게 선량한 좋은 사람들을 체포하고, 가택수색하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형을 선고합니다.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으나 다만 빨리 올지 늦게 올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정치운동들을 돌이켜보면, 사람들을 박해했던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습니까? 당신들도 자신의 퇴로를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경찰들을 조종하는 배후의 사악한 요소들이 제 정념에 의해 완전히 해체되는 것을 느꼈고, 그들의 표정도 처음의 흉악한 모습에서 온화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말을 마치자 우두머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온 것은 단지 상황을 알아보려는 것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그러고는 일어나 우리 회사 책임자에게 인사하고 경찰들을 데리고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 후 20여 년 동안 다시는 제 직장에 와서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교대근무를 하다
제가 일하는 부서는 직원이 몇백 명밖에 없었는데, 이 몇 년 동안 저는 기본적으로 직장 동료들에게 진상을 다 알렸고 직원이 더 많은 큰 작업장의 사람들만 아직 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작업장은 3교대로 일하는데 주간, 중간, 야간 근무를 4일마다 한 번씩 교대했고, 게다가 작업환경이 매우 열악해서 소음이 크고 공기 중에 먼지가 많아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지도부에 그 작업장으로 가서 일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제가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했습니다. 50세나 된 사람이 교대근무를 하겠다고 하니 말입니다(우리 직장에서 교대근무는 젊은이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저에게 부여하신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 작업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한 번도 교대근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겨울철 야간근무 때는 새벽 1시에 일어나 직장에 도착한 후 주차장에서 작업장까지 1킬로미터 가까운 길을 걸어가야 했는데,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온몸이 한기에 떨렸습니다. 작업장에 들어가면 소음이 크고 먼지가 많으며 코를 찔러 처음에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했더니 금방 적응하기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장은 작업환경이 열악해서 많은 임시직 근로자들이 1년 일하고 나면 다음 해에는 다른 작업장으로 옮기거나 아예 그만두었기 때문에 해마다 사람이 바뀌었고, 매년 수백 명의 새로운 사람들에게 제가 진상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작업환경은 힘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이해하고 삼퇴하는 것을 보니 고생 속에서도 기쁨을 느꼈습니다!
어느덧 저는 이 작업장에서 10년을 일했습니다. 며칠 후면 60세가 되어 퇴직하게 되는데, 최근에 온 100여 명이 아직 진상을 듣지 못했기에 진상 알리기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날은 하루 동안 한 사람씩 이야기를 나누어 30여 명에게 진상을 알린 것입니다. 소음이 커서 말할 때는 큰 소리로 해야만 상대방이 들을 수 있었고, 하루 종일 이야기하다 보니 목이 쉬었습니다.
이 임시직 근로자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먼 시골에서 온 사람들이라 생각이 단순했고, 저는 또 그들의 관리자였습니다. 사부님의 가호 아래 제가 하는 말을 그들이 모두 믿었고 거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퇴직 전날, 저는 마침내 작업장 전체 수백 명에게 모두 진상을 알렸습니다.
군대에서 전역해 이 직장에서 22년간 일하면서 저는 한 번도 병가를 내지 않았고 의료비를 한 푼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직장은 수익이 좋아서 직원들이 매월 1500위안(한화 약 30만원)의 의료비를 청구할 수 있었고, 즉 1년에 18000위안(약 350만원)을 청구할 수 있었습니다. 22년 동안 제가 직장을 위해 절약한 의료비만 수십만 위안(한화 수천만원)이었고, 저는 우리 직장에서 유일하게 의료비를 청구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직장 사람들이 이 사실을 보고 “파룬궁수련생은 건강할 뿐만 아니라 이익을 탐하지 않고 사상 경지가 높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한 가지만 봐도 대법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직장 사람들은 대법제자는 진선인(眞·善·忍)을 실천하는 좋은 사람이고 파룬궁은 질병과 건강에 신기한 효과가 있음을 모두 알게 됐습니다! 중공 거짓 선전 매체의 대법에 대한 모든 모함과 비방은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파출소에서 진상을 알리다
2021년 11월 어느 날, 국보(國保,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부서) 대장이 경찰 몇 명을 데리고 갑자기 제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날 저는 출근했고 집에는 아내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내에게 휴대폰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휴대폰의 방화벽 우회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집에 있던 모든 대법 서적과 사부님의 법상을 빼앗아 갔으며, 아내를 파출소로 데려가 불법 심문을 했습니다.
지구대 경찰이 저에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파출소 지도부가 제게 국보대의 사람들을 당신 집으로 안내하라고 했는데, 그들이 당신의 책을 모두 가져갈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단지 길만 안내했으니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제가 전에 이미 이 지구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도 파룬궁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퇴근 후 즉시 파출소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계속 정념을 발하면서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호해주시기를 청했고, 당시 저의 정념은 매우 강했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해서 직원에게 제가 누구인지 말했습니다. 직원이 심문실로 가서 두 사람을 불러왔는데 그들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저를 보았습니다. 제가 제복을 입은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직책이 무엇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파출소 부소장입니다.”
그런 다음 저는 사복 차림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직책은 무엇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국보대장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복 차림이니 업무증을 좀 보여주십시오.” 그는 눈을 부릅뜨고 한참을 망설이며 업무증을 꺼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매우 엄숙하게 그를 보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났을 때 제가 먼저 나서서 제 이름을 밝혔는데, 법 집행자인 당신이 오히려 업무증을 보여주기를 꺼리십니까?” 저는 그에게 매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업무증을 보여주십시오!” 그는 아마도 제 위엄에 눌린 듯했고, 매우 마지 못해 상의 주머니에서 천천히 업무증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매우 엄숙하게 그를 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 아내가 법률의 어느 조항을 위반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 아내가 휴대폰으로 방화벽 우회 프로그램을 사용해 인터넷에 접속한 것이 불법행위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관련 법률 문서를 보여주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법 집행자로서 관련 법률 문서도 없이 법을 집행하는 것은 첫째로 직무유기이고, 둘째로는 위법입니다.”
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들이 내 집에 온 것은 불법행위입니다. 첫째, 내 모든 대법 서적을 빼앗아 갔는데, 그것은 내가 돈 주고 산 책으로 법률의 보호를 받는 개인 재산입니다. 둘째, 법을 어기지 않은 내 아내를 임의로 파출소에 데려와 불법 심문했습니다. 셋째, 관련 수색 문서도 제시하지 않고 내 집에 들어와 수색하고 내 개인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당신들의 행위는 심각한 불법행위이며, 법 집행자로서 오히려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들을 고소하겠습니다!”
저는 국보대장과 부소장 배후의 사악한 것들이 제 강력한 정념에 의해 해체되는 것을 느꼈고, 그들 둘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었습니다. 대장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당신 아내를 파출소로 불러 상황을 좀 알아보려는 것뿐이고 곧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당신의 책들은 이미 목록을 작성했고 잘 보관해두었습니다.” 그는 목록을 꺼내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목록을 다 본 후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들어가서 당신 아내를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함께 돌아가십시오.”
국보대장과 부소장이 심문실로 들어가 제 아내를 데리고 나왔고, 그런 다음 국보대장은 그의 일행을 데리고 서둘러 파출소를 떠났습니다. 부소장이 제게 말했습니다. “먼저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세요. 식사 후에 와서 진술 기록만 하면 끝납니다.” 저는 이것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동의했습니다.
진술 기록을 할 때 부소장이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파룬궁을 수련했습니까?” 제가 답했습니다.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인 1997년부터 수련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정부에서 연마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아직도 하려고 합니까?” 제가 답했습니다. “첫째,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며, 저는 많은 나쁜 습관을 고쳤습니다. 예를 들어 흡연, 음주, 거짓말, 화내기, 게으름, 이기심 등입니다. 지금은 대법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제가 왜 당신의 진술 기록에 동의했겠습니까? 제가 당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상급에서 맡은 임무를 완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파룬궁은 질병과 건강에 신기한 효과가 있습니다. 제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신 이후 20여 년 동안 약 한 알 드시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80세이신데도 달리기를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휴대폰에서 어머니가 달리기하시는 영상을 찾아 그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모두 신기해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TV에서 방송한 파룬궁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예를 들어 ‘천안문 분신’ 사건에서, ‘분신자’의 몸에 불이 붙자마자 경찰이 소화기로 즉시 불을 껐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천안문 광장에 소화기가 있습니까?” 그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광장에는 소화기가 없을 텐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분신자’의 불을 끈 소화기는 분명히 불을 붙이기 전에 미리 준비된 것이니, 이것은 연극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모두 말했습니다. “아, 그러니까 연극이었군요!”
부소장이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파룬궁을 수련하시겠습니까?” 저는 매우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목이 잘린다 해도 대법 수련을 굳게 지키겠습니다!” 부소장이 말했습니다. “이 말은 기록에 쓰지 않겠습니다.” 제가 단호히 말했습니다. “반드시 기록해야 합니다. 당신들의 상급 지도자들이 보게요!” 제가 강력히 주장하자 그는 결국 기록에 썼습니다. 저는 그들의 표정에서 대법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그들 배후의 악령과 귀신들이 완전히 해체된 것을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소위 ‘민감한 날’이 되면 파출소의 담당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거나 전화로 교란했지만, 이번에 진술 기록을 하면서 진상을 알린 후로는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이상은 제 수련 과정의 몇 가지 일화입니다.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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