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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회] 벼랑 끝에서 수련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다

글/ 한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른두 살의 청년 수련생입니다. 2018년에 법을 얻어 수련한 지 6년이 되었습니다. ‘층차(層次)’라는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던 초보 수련생 시절부터 정법시기 매체에서 역할을 맡게 된 지금까지,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그동안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제가 시련을 맞았을 때도,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곤두박질쳐 일어나지 못하는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사부님의 은혜로 깨어나 또 한번의 수련 심득을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나의 수련의 길

처음 어머니 수련생을 통해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을 얻었을 때, 책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많았지만 매우 자연스럽게 사부님을 받아들였습니다. “엄마, 이분이 나의 사부님이야!” 사부님 법상 주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싶을 만큼 사부님이 좋았습니다. 제게도 사부님이 계셔서 기뻤습니다.

그렇게 약 2년간 책을 읽으며 수련이 깊어지기 시작하니 새로운 환경이 열렸습니다. 어느 날 보도소장님이 매체에서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습니다. 마침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을 만들며 동성애를 옹호하고 전통과 선한 것을 촌스럽게 여기는 문학계의 현실에 지쳐가던 참이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이런 권유를 받다니 이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2020년 8월, 매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한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다 전한 다음 사부는 또 그에게 알려 준다. “자네는 많은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니 자네는 나가서 행각하게나.” 행각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으로서, 사회 중에서 다니며 동냥을 해야 하는데, 각종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를 비웃고,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를 우롱하는데, 어떤 일에든 모두 부딪힐 수 있다.”

매체에서 마주치는 각종 일들은 정말 ‘행각’과 같았습니다. 매체에서 제 역할은 전통에 부합하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방송하고, 보도국처럼 직접 진상을 알리는 팀들이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케터가 영상 계약을 해오면 저는 PD로서 고객이 원하는 홍보 영상,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외주사를 관리해 제작하는데, 소중한 대법 자원을 아껴 쓰면서도 고퀄리티 영상을 만들어야 하니 어려움이 따릅니다.

함께하는 외주사들은 저단가에 일을 해야 해서 좋지 않은 태도일 때가 많고, 애써서 영상을 만들어도 고객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표면적으로 이유가 어떠하든 아마도 그들이 제 수련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나쁜 역할을 맡는 것일 겁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가리지 않고 저를 탓하는 상황, 비웃는 상황, 체면을 구기는 상황, 두려운 상황 등 각종 일이 벌어지는데,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수련할 기회로 삼기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많은 ‘행각’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춘천을 홍보하는 드라마를 만들 때였습니다. 외주사와의 첫 미팅부터 연출 감독의 무례한 태도가 느껴졌고, 나중에 작성해 온 시나리오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본 사람들은 내용이 별로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차분히 읽어보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분명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대하든지 모두 마땅히 긍정적으로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장점을 찾아 보충하자고 생각하니 피드백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가 어렵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 피드백을 드렸는데 감독님은 “피디님이 직접 고쳐주세요. 저는 퇴근해야 해서요”라며 툭 말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기분이 나빴는데 머리가 하얘져 별말 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납품 일정이 급해 당장 수정을 해야 하는데…’ 고객과의 약속을 떠올리니 책임감을 가져야 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감당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먹으니 지혜가 보였고 금방 시나리오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수정한 시나리오를 본 팀장님들은 원고가 좋아졌다며 칭찬했고 외주 감독도 “원고가 깔끔하네요”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2차 피드백을 준 날은 피드백이 불쾌하다며 감독이 노발대발 화를 냈습니다. 당시 누가 외주사고 누가 고객인지, 어쩔 땐 절 칭찬하고 어쩔 땐 저에게 화를 내는 감독의 태도가 당황스러웠습니다. 겨우겨우 감독을 달래 위기를 넘겼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1차 때와는 달리, 2차 피드백에서는 제가 원고를 또 고쳐줘야 하는 것에 대한 번거로움을 느꼈고 감독이 쓴 대사가 별로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과시심이 나왔던 것입니다. 제 마음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이며 상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후에도 번거로운 상황은 많았지만 저를 믿는 고객을 위해 잘하자고 생각해서인지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고객도 만족했습니다. 저는 꿈을 꿨는데 외주 감독이 션윈 배우가 그려진 초록색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다 인연이 있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또 한번은 금산 드라마를 제작할 때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계약 금액이 매우 컸고 NTD에 방송도 해야 하는 건이라 부담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마 다른 공간에서 이 프로젝트가 저에게 업을 크게 갚는 기회가 될 것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촬영장에 가는 그날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무지막지한 비가 쏟아졌습니다. 하필 야외 촬영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외주 감독에게 전화해 “야외 촬영 장소를 실내로 돌리고 내용을 이러저러하게 바꾸면 될 것 같아요. 실내 촬영지는 제가 섭외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일을 해결했습니다.

다행히 일은 잘 넘어갔지만 이후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촬영팀 분위기가 얼어붙은 듯 싸늘했고, 배우가 연기를 너무 못해 거의 못 쓰다시피 했고, 고객용 상품이 시들어 있었고, 우리를 배척하는 태도가 심하다 못해 결국 외주사가 아예 잠수를 탔으며, 필수로 찍어야 하는 것들을 찍지 않았고, 영상이 개연성에 맞지 않게 편집되는 등 문제가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외주사의 실수들을 만회하고자 갖은 방법을 썼습니다. 사고들을 하나하나 수습해 나감과 동시에 방송 시간에 맞게 일정을 체크하고 영상을 번역하는 등 하루하루 너무 많은 일들에 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촬영하지 않은 컷들을 재촬영 해오라고 외주사에 요청했는데 외주 감독은 “다시 찍으라고요? 제가요?”라며 콧방귀를 뀌고는 저를 비웃었습니다.

매우 곤혹스러웠지만 “감독님 많이 힘드시죠. 어려우신 것 있으면 말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감독은 태도가 바뀌며 사실은 촬영장에서 카메라팀과 조명팀이 싸웠고 우리가 보고 있으니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됐으며 직원 관리가 힘들다는 등 구구절절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영상을 잘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감독이 안쓰럽게 느껴졌는데 이후에 그는 자기가 재촬영을 해오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그렇게 봄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가을에야 무사히 막을 내렸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괴로운 기억뿐이라 어찌어찌 잘 마무리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교류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비가 내렸을 때 일을 잘 처리한 자신에게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외주사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저에게 싸늘하게 대답했을 땐 체면이 상해 ‘센 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일부러 깐깐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 후배에게 “이건 내 중요한 프로젝트이니 잘 해라”라며 외주사가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으스대기도 했습니다.

제 심태가 좋지 않으니 팀 내부에서도 갈등이 벌어졌던 겁니다. 수련자의 의념은 에너지가 있어 그 장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충고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면 화를 내지 않는 것과 화를 내는 것 두 가지만 할 수 있고 상냥하면서도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법은 몰랐습니다. 미움 받기 싫어 충고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선(善)이 아닙니다.

수련인은 늘 자상자비해야 하지만 자비의 표현이 언제나 ‘상냥함’으로만 체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주사도 인연이 있어 정법시기 매체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일 텐데 그러면 그들도 역할을 잘 해야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필요시에는 진정 외주사를 위하는 마음에서 단호하게 일러주거나 직접 실수를 처리하게 해야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을 더이상 ‘트라우마’로 여기지 않고 안으로 찾을 수 있던 ‘좋은 일’로 여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중한 여름 방학

매체에서 일한 지 4년이 된 올해, 심한 ‘번아웃(육체적, 심리적 탈진상태)’이 왔습니다. 개인 수련이 무너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온종일 대법 일을 했으니 집에서는 좀 쉬자는 생각에 연공을 게을리 한 것을 시작으로 점점 발정념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공부는 늘 한다고 자부했지만 출퇴근 시간에 잠깐 하는 게 다였습니다.

따뜻한 물에 개구리 삶듯 안일한 일상이 이어졌고 결국은 완벽하게 속인의 구렁텅이로 떨어졌습니다.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몹시 괴롭게 느껴졌고, 스트레스를 휴대폰과 먹을 것, 쇼핑으로 풀었습니다. 머리에 속인의 것들을 주입하니, 틈만 나면 놀고 싶고 먹고 싶은 속인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편안하고 싶은 안일심에 작은 일도 부담이 되어 앞으로도 어려운 프로젝트들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을까 두려워졌습니다. 밤이면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워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주먹으로 쾅쾅 쳤고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해가 밝으면 일을 해야 했고, 천국악단 트럼펫 연습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또 한 가지 상태에 처했습니다. ‘나는 왜 수련을 하지? 나는 왜 매체에 다니고 있지?’ 머릿속에 이런 물음이 아주 많이 들었는데 스스로 답을 할 수가 없던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수련을 시작했고 매체에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왜 이 일들을 하는 건지는 잘 몰랐습니다. 물론 표면으로는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해야 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해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진정한 소망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흐리멍덩한 자신을 보며 소침해졌습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제3부류의 제자인가? 나는 인연이 부족한가?’ 그러나 저는 이렇게 부족한 제자이지만, 당장은 답을 내릴 수 없더라도 수련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나는 부족하더라도 대법제자다. 사부님께 죄송해도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 저도 잘하고 싶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부님 도와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부님께서는 이런 제자에게 소중한 여름방학을 주셨습니다. 8월을 앞둔 어느 날 팀장님이 부르셔서는 한 달 간 휴식하고 와도 된다고 했던 겁니다. 저는 신이 나서 일주일은 프로젝트 생각 없이 펑펑 놀고는, 친정인 인천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수련했습니다.

월, 화, 수요일은 단체 법공부를 통해 전법륜을 세 강의 이상씩 읽었고 나머지 요일에는 따로 스케줄을 정해 보냈습니다. 적어도 두세 시간은 꼭 법공부를 했습니다. 연공도 빠짐없이 했으며 트럼펫 연습도 1시간 반 씩 했습니다. 그렇게 아침부터 꽉 찬 스케줄을 보내면 금세 새벽 발정념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답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그냥’ 했습니다.

처음 인천 수련생분들과 법공부할 때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고작 20분 법공부 하고 얼마나 마음에 들어오게 했는지가 중요하다며 핑계를 댔는데 인천 수련생분들은 하루에 두 강의는 해야지, 세 강의는 해야지 하고 표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법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모이는 여객 터미널로 우르르 진상을 알리러 가시고 밤에는 돌아와 또 온라인 법공부를 했습니다. 주변 수련생들이 ‘이쯤이야’하고 거뜬히 해내니 저도 옆에서 어렵지 않게 표준을 높일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오직 정법수련의 에너지장만이 비로소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불교 중에는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뜻이다.”(전법륜)

또 신기한 것은 하루 세 번 단체 법학습을 했는데 진도가 모두 같았다는 것입니다. 법리가 더 잘 들어올 수 있게 제자를 신경 써 주신 사부님의 안배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책을 읽는데 ‘심성제고(心性提高)’ 네 단어가 마음에 콱 박혔습니다. ‘심성제고… 심성제고…’ 늘 읽던 네 글자인데 전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심성제고를 해야만 흑색물질을 백색물질로 바꿀 수 있고, 덕(德)을 공(功)으로 연화하여 신체를 고에너지물질로 전환할 수 있다는 법리가 평소와는 다른 어떠한 큰 느낌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 수련에서는 심성제고가 가장 중요하지! 왜냐하면 층차를 제고하여 반본귀진해야 하잖아!’ 저는 지금까지 어떻게 수련을 했던 걸까요? 수련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금껏 항목 일을 하고 수련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 고층차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 저는 집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수련의 기초를 차근차근 알려주시며 지금껏 법을 인식할 수 없게 한 나쁜 물질을 제거해주신 것입니다.

6년 간의 수련에서야 그것을 깨달은 저는 너무 감격스러워 정말이지 법공부와 연공이 자동으로 되었습니다. 특히 연공은 늘 하기 싫고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관이라 생각했는데, 살짝 귀찮은 마음이 들어도 얼른 배척하고 하루에 연공 2번을 빠지지 않고 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노력하는 것을 보시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이따금 눈앞에서 예쁘고 작은 빛이 반짝거렸고 연공할 때 눈을 뜨면 투명한 두 개의 파룬이 눈앞에서 선풍기처럼 빠르게 돌았습니다. 2장 공법을 할 때 팔다리가 없어지고 신체가 없어져 연공하고 있다는 약간의 의념만 남아 있게 된 상태, 5장 공법을 할 때 흑색물질이 어떻게 백색물질로 연화되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또 어느 날은 머리에 깨끗한 물을 자꾸만 부어 주시는 것 같아 ‘나를 정말 지옥에서 건져 주시는 구나!’ 하며 은혜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그렇게 인천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습니다. 2장 공법을 하는데 갑자기 20일 간의 생활이 떠오르며 어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소중하고 소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이렇게만 하면 된다, 앞으로 이렇게만 하면 된다, 수련만 하면 된다’고 알려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소중한 여름방학은 부족한 제자를 향한 사부님의 사랑, 자비였습니다.

“제자들의 고통을 나는 다 알고 있으며 사실 나는 당신들 자신보다도 더 당신들을 소중히 여긴다!”(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저는 이 한 달간의 대량의 법공부를 통해 명리심(名利心-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자아, 체면 등 사람마음으로 일을 하는 것과 자신을 진정 수련인으로 여기고 일을 대하는 것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전자는 불평과 남 탓, 고통만 남는다면 후자는 일에서 같은 난을 만날지라도 반성과 감사가 따릅니다. 저를 ‘번아웃’하게 만든 것은 수련하지 않았고 감사할 줄 몰랐던 저였습니다.

이제 갈등에 부딪치면 먼저 잠시 멈추고 안으로 찾을 줄 압니다. 심성을 제고하는 일이 좋은 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희 남편은 제가 집에서 매일 화를 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만약 저와 같이 수련에서 떨어진 수련생분이 계시다면, 또는 마음에 어떠한 풀지 못할 매듭이 있다면 생각하지 말고 법공부를 정말 많이 하라고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법 공부를 많이 하라, 법 공부를 하라, 법 공부를 하라, 법 공부를 하라고 알려주었다.”(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정체를 위하여 다짐하다

휴직하기 전, 매체에 법난(法難)이 온 것은 알았지만 돌아오니 길은 더욱 간고해져 있었습니다. 당장 월급이 줄었는데 7년 전, 제가 속인 회사에 다닐 때 첫 월급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매달 집 대출도 갚아야 해서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게다가 지금 하던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회사 사정이 좋아질 텐데 원래 하던 출판 일이 더 재밌었고 영상 일에 대해서는 도무지 열정이 생기지 않아 일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과 압력이 컸습니다.

그렇게 쉽사리 마음의 결정을 못하는 동안 저희 팀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 난을 잘 헤쳐 나가기 위한 판단으로 회사에서 팀장님을 국장으로, 국장님을 팀원으로 배치한 것입니다. 저는 매우 놀랐는데 국장이 된 팀장님이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 언제나 용기 있고 씩씩한 분이었는데 그날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지연 씨가 많이 도와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제가 잘할게요”라고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없을 지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나는 대학 때 장학금도 받고 친구들보다 공부도 잘했는데 왜 이렇게 적은 돈을 받아야 할까?’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생각하는 것이 어찌나 이렇게도 이기적일까 싶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여름방학을 주셨을 때, 제자에게 깨달음을 주셨을 때, 좋은 것을 주셨을 때는 기뻐하고 대법에 감사하면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는 매체가 어려울 때는 조금의 이익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에 미안하고 사부님께 죄송했습니다.

또한 국장이 된 팀장님은 경영진과 소통하고 후배들의 일을 봐 주고, 마케터랑 소통하느라 온종일 책상에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바빴는데 제가 프로젝트가 많아 법회 교류 문장을 못 쓸 것 같다고 하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그 프로젝트 내가 할게. 지연 씨는 교류를 써야 해. 그게 가장 중요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타인을 생각할 수 있는 걸까요? 그날 저는 법공부를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새로 국장이 된 팀장님과 저희 팀 다른 팀장님들은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늘 바쁘게 일을 합니다. 하루 아침 팀원이 된 국장님도 겸허히 회사의 결정을 받아들이며 매체에 남아 후배들을 돕기로 하셨습니다. 저희 상사분들이 보여준 헌신은 마침내 저의 이기심을 녹였습니다.

저는 힘들어도 감당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일 앞에 섰을 때 두렵고 도망치고 싶지만 그것은 제가 아니며 고통은 좋은 일입니다. 매체에서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사부님, 어느 날은 사부님께서 꿈속에서 화이트보드에 답안을 적어 내는 저를 보여주셨습니다. 화이트보드는 글자가 쉽게 지워집니다. 늘 이랬다저랬다 확고하지 못한 제자이지만 제 마음속에는 지울 수 없는 글자가 있습니다. 바로 사부님입니다. 사부님을 걱정시키지 않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19/4851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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