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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회] 위험 앞에서 안으로 찾고 정체가 이뤄지자 전화위복이 되다

글/ 한국 화인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2003년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입니다. 20여 년의 간고한 수련 과정에서 때로는 넘어지고 비틀거렸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으로 비교적 평온하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저는 제가 조금이라도 제고할 때마다 사부님께서 수많은 심혈과 헌신을 기울이셨음을 깊이 느꼈기에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대법과 인연을 맺다

저는 중국에서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문화대혁명을 맞았고 교과서도 없이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불행한 아이였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님은 늘 한석봉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가르치셨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전통 이야기책을 사주시어 바르게 살아야 하는 도리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 입시제도가 회복되어 중등사범학교 1년 속성반을 마칠 수 있었고, 교직에 종사하면서 5년제 통신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힘든 인생길에서 저는 열심히, 올바르게 살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직장에서 늘 소수민족 차별을 받아야 했고, 돈이 없고 뒷거래를 할 줄 모르는 저는 우월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진급 기회를 놓쳐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교사 부부였던 저희는 월급으로 겨우 셋방살이를 하는 형편이었고, 앞으로 딸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금을 들여 1996년 2월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식당과 건설현장을 전전하며 온갖 고생 끝에 빚을 갚고 아파트도 마련했으며 딸도 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과로로 관절염이 도져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었고, 심장병에 걸려 늘 가슴이 조여들었으며, 손이 저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코피가 터지면 멈추지 않았습니다. 쉬운 일을 찾다가 다단계판매에 끌려들어가 몇 년간 아껴 모은 밑천마저 다 잃고 말았습니다. 인생이 한스러웠고 남편이 원망스러웠으며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경희대에서 열린 2003년 설날맞이 외국동포 대잔치에 가던 중 파룬궁 전단지를 받았습니다. 운동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싶었던 저는 바로 연락했습니다.

아침 연공을 시작한 지 2~3일 만에 결리던 가슴이 편해졌고 어지럽던 머리가 맑아졌으며 마음은 상쾌했고 몸은 날듯이 가벼워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홍대한 자비로 저를 수련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갓 수련을 시작한 2003년은 중국에서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할 때였는데, 한번은 오후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무수한 검은 불똥 같은 것들이 텔레비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강한 발정념을 하자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한강 불꽃축제에서는 카메라에 크고 작은 파룬이 선명하게 찍혔고, 갑자기 투명한 파룬이 온 집안에 가득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또 계란 속에 앉아있는 듯이 의식만 남은 상태를 경험했는데,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의 글자가 때로는 금색으로 반짝이고 때로는 입체감으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는 삶의 도리를 깨닫게 해주었고 대법의 신기함은 수련에 신심을 갖게 했습니다. 저는 끝까지 수련하리라 다짐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으로 어지러운 세파에서 헤매던 저는 건강을 되찾고 참되고 바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2. 위험에 직면해 안으로 찾으며 착실히 수련하다

사부님께서는 법을 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하는 형식을 남겨주셨습니다. 9년 전, 부천역에 마루광장이 설치되자 우리는 새벽 연공을 하기로 했습니다. 마루식으로 설치된 부천역 광장은 아침 운동이나 산책하기 좋은 깨끗한 장소였고,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대학로에서 밤샘하던 젊은이들이 귀가하는 길목이어서 오가는 행인이 많았으며, 교회에서 아침마다 무료급식을 나눠주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홍법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습니다. 또 주위에는 노숙자와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아 새벽 연공장은 우리에게 또다른 의미의 수련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북미 제1차 법회에서의 설법)라고 하셨습니다. 아침 연공을 하려면 우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수면을 보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발정념을 하면서 알람을 설정해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고, 그 결과 이 관을 어렵지 않게 돌파했습니다.

그런데 연공을 중시하지 않고 견지하지 못하다 보니 연공동작이 바르지 않다고 지적받았습니다. 어깨 근육이 뭉친 관계로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사부님의 연공 비디오를 보면서 연공동작을 교정했지만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과 량처빠오룬(兩側抱輪)을 여전히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수련생이 연공장에 나오게 되자 보도원인 제가 연공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수련생들의 걱정어린 눈길을 보며 평소 그들의 지적을 가슴 깊이 새기지 않은 자신이 몹시 후회됐습니다. 청와대 앞 광장에서 단체연공을 하게 되었는데 한 수련생이 제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제 팔을 잡고 연공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뜨거운 에너지가 온몸을 관통하며 순간 어깨 근육이 쫙 펴지면서 자세가 바로 잡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마음을 보시고 수련생을 보내주신 것을 알게 되었고 고마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수련생이 많지 않고 거주지가 분산되어 있으며 각자 바쁜 상황에서도 우리는 연공을 견지해왔습니다. 아름다운 연공음악이 울리면 지나가던 행인들은 눈여겨보면서 전단지를 가져갔고 때로는 따라서 연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묵묵히 연공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고 엎드려 정중히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연공하기 전에 연공장 주위를 청소하는 것을 보고 먼저 쓸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현수막을 같이 거둬주는 이도 있었으며 술 취한 사람들이 괜히 시비를 걸면 만류하는 이도 있었고 위험에 처하면 대신 112에 신고해주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우리는 설날에도 계속 연공을 견지했으며 비록 때로는 교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공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연공장에 위기가 닥쳐 평화로웠던 연공장 상황이 돌변했습니다.

7월 4일 아침, 갑자기 누군가가 연공기를 발로 차면서 뛰어가기에 눈을 떠보니 열흘 전에 자전거를 타고 연공장 주위를 자꾸 맴돌면서 위협하다가 경찰이 도착하자 도망갔던 청년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도 연공기를 빼앗긴 적이 있었기에 저는 꼭 연공기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쫓아갔고 청년은 연공기가 멈추면 또 차고 차면서 도망갔습니다. 몇 십 미터를 가다가 연공기가 기둥에 부딪혀 멈추자 저는 얼른 다가가 연공기를 잡았습니다. 이쯤하면 청년이 물러가리라 생각했는데 순간 저는 청년이 날린 발길에 차여 뒤로 쿵하고 넘어졌습니다.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쓰러진 저는 순간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얼른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섰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신고해 경찰이 왔을 때는 청년이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경찰에게 가해자는 열흘 전에 자전거로 위협하던 바로 그 청년이며 어제 아침엔 현수막을 떼어가서 훼손시킨 자인데 목격자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엉덩이뼈와 다리 통증으로 허리를 굽히기 어려웠고 의자에 앉을 수도 없었으며 가슴이 결려 3일간은 기침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예전처럼 일을 했으나 마음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생면부지인 청년과 나는 어느 세에 악연을 맺었나 본데, 그렇다면 이건 빚을 받으러 온 게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한다’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이익과 자아가 자극받았을 때, 당신이 안에서 찾아보고,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누락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2009년 워싱턴DC법회 설법에서는 또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라고 명백히 지적하셨습니다.

어떤 누락과 버리지 못한 집착 때문에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됐는지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근래 몸은 법공부장에 앉아있어도 법이 마음에 닿지 않았고 연공할 때면 가끔 주의식(主意識)이 흐려지며 잡생각을 할 때가 많았으며 발정념을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수련생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상대방만 지적하면서 안으로 잘 찾지 않았고 항목에도 전처럼 적극 참가하지 않고 느슨해진 상태였습니다.

특히 아직 진선인에 동화되지 못하고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처음 연공을 시작했을 때는 어느 기독교 아주머니의 강한 반발을 받았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이후 또 우리에게 다가와 연공음악을 틀지 못하게 하면서 수련생을 마구 잡아 흔들다가 그만 빗길에 미끄러져 휘청거렸습니다. 저는 순간 이건 보응받는 거라고 속시원해했지만 심하게 당하던 수련생은 얼른 다가가 부축하면서 조심하라고 귀띔했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과의 격차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뒤로 저는 늘 모든 중생을 선하게 대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청부업자의 사주를 받았다면서 한 청년이 우리가 연공하는 안으로 들어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붙잡고 혼내주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그 후 계속해서 여러 차례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매번 큰소리로 꾸짖으며 쫓아버렸고 나중에는 주위에 얼씬도 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에게 대법 진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장면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에게도 대법제자의 좋은 풍모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 법을 위해서 왔으며, 사람은 모두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慈悲(츠뻬이)는 속인사회 중에서 선의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어 나오는데, 이는 또한 대법제자의 내면이 반영되어 나오는 생명의 상태이다.”(각성하라)

이번 폭행을 당하면서 저는 가해자 청년과 어떤 인연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련인으로서 아직 진선인에 동화되지 못한 부분을 철저히 깨닫게 하기 위해 배치된 고비인 듯 싶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평소에 부딪히는 모든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리의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자 분하고 억울하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 가해자 청년이 또 친구들을 데리고 연공장에 나타나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에 도대체 왜 연공을 못하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이곳에서 파룬궁을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파룬궁은 좋은 것으로 세계 백여 개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는데 유독 중국공산당(중공)만이 박해하고 있다는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고, 저번에 저를 혼내줬는데 계속하면 우리를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위험에 직면해 인원을 보충하고 돌발사태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서울 보도소에 다니며 진상을 알리는 남성 수련생한테 긴급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연공장에 나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연공을 방해하는 모든 사악을 멸한다는 강한 발정념을 하면서 돌발사태 시 동영상을 찍고 경찰에 신고하고 발정념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각자 분담했습니다.

또 일주일이 지난 뒤, 가해자 청년이 10여 명의 친구들과 함께 또 몰려들었습니다. 남성 수련생이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자 이들은 우르르 모여들어 시비를 걸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한 수련생이 얼른 경찰에 신고하고 다른 분들은 묵묵히 강한 발정념을 했습니다. 시끌벅적한 중에 가해자 청년이 또 제 뒤로 달려들어 팔로 목을 감싸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했다가 제지를 당했습니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해 조사를 하더니 안건을 접수한 후 가해자 청년을 놓아주었습니다.

안으로 찾으면서 심성을 제고하려 했건만 거듭되는 교란은 도대체 저에게 무엇을 닦으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청년이 또 기습하면 어떻게 할까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장 공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먹만한 것이 제 이마에 툭 부딪히더니 땅에 떨어지기에 바라보니 새똥이었습니다. 순간 며칠 전에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이 재촉해도 마다않고 서 있다가 지쳤는지 쪼그리고 앉아 10여 분간 우리가 연공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대법과 연관 있는 동물인가 보다 기특하게 여겨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의념을 보내줬었는데, 오늘 이 새는 나와 어떤 원한이 있기에 이렇게 대할까 생각하면서 가방 있는 곳으로 다가가 물티슈를 꺼내 이마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물티슈가 깨끗하기에 다시 한번 문질렀는데 역시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습니다. 순간, ‘아, 사부님께서 막아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울한 똥바가지를 쓸 뻔했는데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셔서 제자를 보호해 주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가해자 청년과의 악연도 이렇게 풀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감당할 몫을 감당하면 해결될 것이다.’ 저는 확신이 섰고 하루도 빠짐없이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며칠 뒤 경찰한테서 전화가 와서, 가해자는 고등학교 1학년생인데 아버지가 대신 사죄하며 자식을 잘 단속하겠다고 하면서 저를 만나자고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로서 당연히 사과할 것인데 관건은 당사자가 왜 그렇게 파룬궁을 미워하는지, 배후에 사주하는 자가 있는지 잘 조사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엉덩이 통증은 보름 만에 사라지고 가슴 통증도 한 달가량 지나자 낫게 되었으며 두 달간 가해자가 연공장에 나타나지 않자 안건을 마무리하고 싶었고, 또 가해자 부모님의 거듭된 요청도 있어 일단 학생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학생은 과다활동성 행동장애가 있는 아이였고 코로나로 3년간 학교에 나가지 못하다 보니 중학교 과정의 인성교육을 받지 못해 덩치만 컸지 인지능력이 부족한 학생이었습니다. 현재 다른 사고로 인해 청소년 시설에서 교육받고 있는 중임을 알게 되었으며 전직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많이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학생의 반성문과 부모님의 보증서를 받은 후 아이를 용서하기로 했고 부모님의 합의금을 사양하고 현수막 제조비용과 기본 치료비 외에는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의 행동에 감동받은 부모님은 고마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빌어 그들에게 대법을 알리고 ‘9자 진언’ 연꽃과 ‘전법륜’을 선물하면서 그 가족의 아름다운 미래를 기원했습니다.

경찰이 세 차례 출동하고 CCTV로 두 차례 인증된 폭행사건을 통해 신들도 부러워하는 대법제자로 수련 성취되려면 위험에 직면해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전법륜)의 용맹함과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는 바다같은 흉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연공장에 나오지 못하던 수련생도 매일 함께 연공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돕고 배우면서 착실히 수련하고 있습니다.

3. 정체(整體)를 이루자 전화위복이 되다

최근 불법으로 체류 중이던 L수련생이 현장에서 일하다가 업주 내부 문제로 신고당해 체포되었습니다. 몇 년간 불법체류로 지방에서 일하다 보니 보도소 단체 법공부를 다니지 않고 수련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요청해왔던 것입니다. 그가 원래 다니던 보도소엔 새로 소장이 부임됐고 원래 소장님은 L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여서 적극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법조계에 계시는 협조인에게 상황을 말씀드리자 이미 다른 안건을 맡아 보고 계셨기에 전에 난민신청을 도와주던 수련생을 찾아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L은 몇 년 전 난민심사 도중 본인이 중도에 포기했던 상태라서 도와주던 수련생분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 없이 몇 년간 난민문제로 같이 활동하던 분을 찾았었는데, 역시 본인의 정념이 강하지 않으면 비용만 탕진하고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보게 된다면서 마땅한 구출 방법이 없다며 선뜻 나서지 못하셨습니다. 아직 두 달간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우선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L을 입소시켜 안정시킨 후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상의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L에게서 갑자기 중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면서 내일 당장 돌아간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난민 신청했던 파룬궁수련생이 강제출국을 당하다니? 중공의 박해가 여전한 중국으로 가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돌발사태에 직면해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조기 난민 신청자로서 대법원 소송까지 치르면서 한국에서의 난민인정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0여 년간 불법 체류하다가 저는 사부님의 가호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고 난민 수련생들의 고충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들을 적극 돕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새해 명절 전에 한 수련생의 보석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 담당 경찰의 전화를 받고 바로 화성 보호소로 달려갔는데 저희더러 수련생이 외래 진료를 받은 병원에 가서 직접 서류를 떼서 오늘 내로 100km 떨어진 모 출입국으로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때는 큰 눈이 내린 이튿날이어서 도로는 눈이 섞인 물로 덮여있어 앞뒤 차창은 차에서 튕긴 흙탕물로 앞이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창문 와이퍼가 지나가는 순간 겨우 앞길을 확인하고 달리는데 운전이 서툰 저로서는 정말 순간마다 위험한 고비였습니다. 오로지 오늘 내로 서류를 제출해서 수련생을 새해 명절 전에 출소시키려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믐날 그 수련생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심 없이 수련생들을 도왔었는데 이번엔 왜 일이 이렇게 꼬일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갑자기 L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는 딸과 가족이 있으면서도 제가 근무 중일 때 전화해서 ‘전법륜’을 갖다달라고 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96년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이라면서 줄곧 수련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법을 배우겠다고 하면서도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후 현재 사귀는 여자친구가 수련생이라고 자칭하며 도움을 청했을 때는 그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분명히 먼저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가서 안정된 뒤에 방법을 찾자고 했는데, 갑자기 어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또 화가 났습니다. 또 L이 무료전화라면서 아무 번호나 눌러도 된다고 해서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제가 요금을 물어야 하는 수신자 부담 전화여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수련한 지 여러 해가 되어 이익에 대한 집착은 이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푼 안 되는 전화요금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수련생을 도와주면서도 ‘자아’가 섞여 ‘선타후아(先他後我,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함)’를 100% 실천하지 못하고 수련생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내 상태는 자비에 도달했는가?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것은 진선인으로, 원망은 이 우주특성과 위배되는 금기인데 아직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언제 ‘선타후아,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경지에 도달해 수련성취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은 한없이 괴로웠습니다.

L이 중국으로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자 난민신청을 도와주던 수련생도 “1%의 희망이 있더라도 도와줘야 한다”면서 적극 나섰고 L의 친구 수련생은 아침 일찍 화성 외국인 보호소로 달려가 L에게 비행기에 오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L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찢어버리면서 귀국하기를 거부했으나 강제로 비행기에 탑승했고 지금 막 비행기 문이 닫힌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도울 수 없게 된 우리는 발정념으로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자 L의 딸한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는데 지금껏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알아보니 한국에서 탑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강제로 떠밀려 비행기에 올랐고 문이 곧 닫힌다는 긴급전화를 받았었는데 혹시 중공에 납치당해 실종된 건가?’ 한밤중이어서 상황을 파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찢어 버렸다고 했으니 혹시 돌아올 수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도 있었습니다.

이튿날, 비행기에 탑승했던 L이 화성으로 되돌아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L이 파룬궁 수련하기에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서 비행기 출입문에서 강하게 저항하는 것을 본 비행기 기장이 내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본인의 정념이 확고해지고 주변 수련생들이 도와 나서자 사부님께서 기장을 시켜 도와주신 것이었습니다.

정말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사도은)라는 말씀처럼, 수련생의 정념이 확고하고 대법제자들이 하나로 협력하자 사부님께서는 전화위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를 어찌 사람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는 오직 최후의 수련 길에서 정진하고 또 정진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응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4년 한국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1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21/48513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21/4851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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