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 화인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기하게 법을 얻다
1996년 9월 어느 날, 새벽 3시쯤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매우 선명한 꿈을 꾸었습니다. 갑자기 환한 빛줄기와 함께 백발의 할아버지가 흰 구름을 타고 우리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한 손에는 총채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보자기를 들고 계셨는데, 그 보자기를 저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의서(醫書)인데 보통 의서가 아니라 매우 귀중한 의서이니 열심히 읽으면 온몸의 병이 다 나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감사하다고 절을 하려는 순간 ‘쌩’ 소리와 함께 총채를 휘두르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사라지셨습니다.
꿈에서 깨어보니 새벽 5시였습니다. 남편을 깨워 방금 꾼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귀신이 들렸냐며 어이없어했습니다. 그때 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마을 집배원이 우체국에 물건이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며 영수증을 주고 갔습니다. 아침 식사 후 남편이 우체국에 가서 물건을 찾아왔는데 정말 책이었습니다. 《전법륜》, 《전법륜2》, 다른 경문 한 권 등 총 3권이었습니다. 책 속에는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는데 2년 전 약수터에서 알게 된 언니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편지에는 매우 귀중한 책이니 소설책 보듯이 하면 안 되고, 열심히 읽다 보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오장육부는 물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아팠습니다. 마치 저는 아프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위장병, 자궁종양, 두통과 신경쇠약, 불면증이 오히려 수시로 졸리는 증상으로 바뀌어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져 일하면서도 졸고 길을 걸으면서도 졸았는데, 아무리 자고 또 자도 정신이 나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요도염도 심했는데 2~3개월에 한 번씩 급성증세가 나타나 피오줌을 누면 그 아픔은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었습니다. 또 심장병이 심할 때는 공기가 부족해서 당장 숨이 막히는 것 같았으며 세상에 널린 공기마저도 저에겐 부족한 듯 숨을 헐떡였으며, 그러다 보니 우울증까지 더해져 마치 정신병자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병을 앓다 보니 ‘병원에 출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한약과 양약을 밥 먹듯이 먹어도 효과가 없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는데, 몇 번이나 생을 끊으려 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한숨과 눈물로 18년이란 긴 세월을 병마에 시달려 죽음의 절망 속에서 허덕일 때 사부님께서 이 귀중한 법을 우리집까지 가져다주셨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좋은 공법을 우리는 오늘날 당신에게 내놓았고 나는 이미 당신에게 받쳐 들어 주었으며, 당신의 문 앞까지 갖다 주었다. 이제는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법을 얻은 후 대법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연공동작 비디오테이프를 구하지 못해 거의 1년 동안 대법 책만 읽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제 몸에서 무엇인가 돌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몸 위아래 전체에서 도는데 진동이 매우 커서 무서운 감이 들었습니다. 내 몸에 혹시 뭐가 들어가서 이렇게 요동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서 파룬이 제 몸을 청리(淸理)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침내 연공테이프를 구해서 연공을 시작했는데 하루는 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제 머리 정수리에 연통같은 것이 꽂혀 있었고, 거기서 검은 연기가 펑펑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로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1년 동안 연공은 하지 않고 대법 책만 읽었는데도 병이 하나둘 몸에서 없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많던 병이 이 짧은 시간에 모두 사라져 새로운 삶을 살게 됐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 속에서 원망심을 내려놓다
저는 아는 분의 소개로 시골마을 아주 평범한 가정 7남매 중 둘째 아들에게 시집와서 시부모님, 시누이, 시동생 가족들과 함께 살았는데 모두 11명의 대가족이었습니다. 제 시댁에서는 논밭일뿐만 아니라 부업으로 가마니를 짜고 돼지, 닭, 거위, 오리, 개, 고양이, 토끼 등 많은 수의 가축을 길렀고 게다가 대가족 집안일까지 더해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았습니다. 식구가 많다 보니 빨래도 산더미였는데 세탁기가 없던 시대라 모두 손으로 빨아야 했고, 7, 8월엔 온 식구의 솜옷을 모두 빨아서 뜯고 다시 바느질해야 하므로 허리와 다리가 아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손끝은 바늘에 찔려 피가 나는 것이 일수였습니다. 가축 기르는 일에 집안일까지 너무 많고 고되서 몸이 허약한 저로서는 감당해낼 수 없어 자주 쓰러졌는데, 그때마다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어디서 저런 ‘병다리’를 얻어와서 이 고생인지, 앞날이 창창하니 지금이라도 이혼하고 다른 여자를 얻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게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서 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아 눈앞이 캄캄했고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 저녁이면 집 뒤 나무숲에 가서 저를 낳아주신 친정어머니를 원망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아무런 의논도 없이 저에게 허름한 빈집을 구했으니 거기로 나가 살라고 해서, 아무 말 못하고 거기로 분가해 나가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시어머니는 시댁 집안일이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들어와 살라고 해서 또 합쳤는데 이후에도 또다시 나가 살다 합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한번은 허름한 빈집으로 나가 살게 됐는데 2년이나 비어있던 집이라 비가 오면 천장에서 비가 줄줄 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다행히도 3년간 연속 농사가 잘 되어 경제적으로 좋아져서 우리도 새 기와집을 짓고 살게 됐습니다. 시부모님은 살던 시댁 집을 팔고 우리 새 기와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시부모님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고 당신 아들도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시부모님은 화가 나서 친척들을 모두 동원해 저를 설득하려 했지만 친척들도 시부모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저 또한 시부모님이 어찌 저리 양심이 없을까 생각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시부모님과 남편을 뼈에 사무치게 미워했고 원한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그러다 법을 얻고 수련의 길에 들어서면서 저는 사부님 말씀대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연공인이라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점차적으로 우주특성에 동화하여 당신의 그런 좋지 않은 것을 끊어버려야 한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사람의 정(情)을 내려놓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慈悲(츠뻬이)이다.”(전법륜)
저는 처음으로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보게 됐는데, 모든 것이 시어머니 잘못만은 아니었습니다. 시골에는 일도 많은데 며느리인 제가 늘 몸이 허약해서 집안일을 해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또 병마의 고통으로 제 얼굴이 늘 그늘져 있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고 속이 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다 성장해 출가한 후 시어머니는 저와 같이 살려고 그렇게 고대했는데 제가 옛날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던 일을 잊을 수가 없어서 우리집에 오려는 것을 냉정히 거절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나쁜 것을 꼭 버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시부모님을 우리집으로 모셔왔는데 시부모님은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우리집으로 모신 후 정성껏 대접해드렸는데 이때 시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셔서 음식을 잘 못 드셨고 주로 미꾸라지 음식만 조금 드셨습니다. 그런데 겨울엔 미꾸라지를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기차 타고 멀리까지 가서 사다가 대접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옷이며 이불이며 깨끗이 빨아서 수시로 갈아드렸고 음식도 좋아하시는 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서 해드렸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부모로서 집안 처사를 잘못해서 너를 너무 많이 고생시켰고, 빚도 많이 물려줘서 정말 미안하구나”라고 하셨습니다.
2000년도에 우리 부부가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시어머니는 큰 아들네 집으로 가셨는데 제가 매주 한 번씩 안부 전화드리고 생활비며 입을 옷을 철마다 사서 보냈습니다. 법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시어머님에 대한 원망심을 내려놓게 되자 커다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께 전화를 하시더니 우시면서 “아무개 애미야! 생각해보니 내가 너한테 정말 잘못한 것이 너무 많구나! 네 몸도 허약한데다 또 집안일도 너무 많아서 네가 감당해내지 못하고 자주 쓰러졌는데 그때마다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널 구박했구나. 봄 가을엔 딸들에게만 닭으로 몸보신하게 해주고 몸이 허약한 너에게는 몸보신을 한 번도 해주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딸이 셋이나 있어도 지금은 너 하나보다 못하구나. 나중에 네가 귀국하면 내가 닭 50마리 키워서 한 달에 한 번씩 보신시켜주마”라고 하시기에 나도 울고 시어머니도 울었습니다. 제가 대법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시부모님에 대한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못 버렸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생명의 승화과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더욱 좋은 사람, 속인을 초월한 고상한 생명이 되어, 더욱 높게 되는 것이다”(베트남 수련생들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는 제 냉담함과 증오, 원한의 마음을 녹여 없애고 대법에 동화시켜 관용, 선량 그리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천국악단에서 수련하다
2006년 5월 초 한국에 천국악단이 설립됐습니다. 천국악단은 사부님께서 직접 세우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아주 중요한 항목이므로 저는 천국악단에 입단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여러 악기 중에서 플룻을 선택했는데 악기에 대해 아무런 개념과 음감, 박자감이 전혀 없다 보니 소리내는 것부터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반평생을 시골에서 농사짓던 농부였기에 이 일은 저에게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3일을 연습실에 다녔는데 악기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서 악기를 되돌려주려고 악단에 갔습니다. 그런데 단장님께서는 플룻팀에 단장님 후배 되시는 분을 선생님으로 모셔 레슨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악기 기초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는데 제가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매우 난감해하셨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2주가 지나자 단장님께서는 오선보 악보를 나눠주셨는데 저는 악보를 보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아직 도레미파도 잘 못 부는데 노래를 연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머릿속에서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법은 무소불능(無所不能)하고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모두 원용불파(圓容不破)한 것이며 나아가 수련자는 필경 사부가 지켜보면서 보호하고 있다. 한 수련자가 부딪히는 일체는 모두 당신들의 수련, 원만에 관련된 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다.”[정진요지2-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하다]
그때부터 저는 사부님의 이 말씀을 명심하고 열심히 악기 연습을 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악기를 불고 나면 입안이 다 헤어지고 입술이 부르터서 물집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악기를 부는 것에 끝난 것이 아니고 행진하면서 악기를 불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이 맞으면 발걸음이 안 맞고 발걸음이 맞으면 음악이 안 맞아 많은 곤란에 봉착했습니다. 저는 집 근처 조용한 곳을 찾아 20여 일을 악기를 불면서 행진 연습을 열심히 했더니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일 연습실에 일찍 도착해서 어느 누구든 상관없이 한 박자 한 박자씩 물어가며 배웠습니다. 고심한 노력 끝에 겨우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격동되고 기뻤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단장님과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반평생을 시골에서 땅을 파고 농사짓던 농부라 손도 거칠고 뻣뻣해서 모든 것이 생소했는데 대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플룻을 배워서 중생을 구하는 천국악단의 일원이 됐다는 긍지로 벅찼습니다.
천국악단이 설립되고 7·20 박해 반대 첫 행사를 하게 되어 단장님께서는 노래 두 곡을 배우고 행사에 나가야 하니 시간이 긴박하므로 모든 단원들에게 열심히 연습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던 일도 그만두고 하루도 빠짐없이 악기 연습을 하러 나갔으며 버스나 전철이나 손이 닿는 곳이면 운지법을 연습하고, 오가면서도 행진 연습을 열심히 하면서 두 달 반이란 짧은 시간 내에 노래 두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7·20 행사는 첫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비가 아주 많이 왔지만 행진 대열은 멈추지 않았고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단장님께서는 비록 노래는 몇 곡 안 되지만 잘 연주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악기 전문가도 몇 년씩 연습을 거쳐야 행사에 나가는데 우리 천국악단 단원들은 어린 학생부터 60~70세 나이까지 전문도 아니고, 겨우 두 달 반이라는 시간 내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매우 감격해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매번 행사가 끝나면 행진 중에 합주나 박자, 가사가 틀린 곳을 체크하고 그 부분을 더 많이 연습하곤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법고(法鼓) 법호(法號) 하늘의 위엄 드러내거니 사악을 제거하고 되돌아가자 외치네 말세에 사람을 구하니 천지(天地)가 놀라고 법(法)이 건곤(乾坤)을 바로잡아 찬란한 빛 뿌리네”(홍음4-천국악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단은 정체(整體)가 필요하고 정체를 이루어야 악기를 잘 불 수 있으며 악기를 잘 불어야 다른 공간의 사악을 깨끗이 청리할 수 있기에 개인 연습과 단체연습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악단은 해마다 4월 초부터 11월 초까지 아주 많은 행사에 참가했으며 전국 각지를 누비면서 전체 단원들이 하나가 되어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을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악단의 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시험제도가 나오자 모두가 긴장하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습니다. 저는 단장님의 지도하에 다섯 곡을 차례로 연주했는데 ‘불은성악(佛恩聖樂)’ 노래 중간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더 연습하라고 하면서 생각보다 소리도 좋고 잘 연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리랑 노래를 숙제로 주셨습니다. 이 노래는 8분음표와 16분음표가 많이 섞여 있어서 리듬이 복잡하고 저로서는 연습하기 매우 힘들었습니다. 얼마간 지나서 아리랑 노래를 시험 보았는데 단장님께서 박자나 음길이가 다 틀렸다면서 모르면 물어서 정확히 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저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시험장을 나오자 눈물이 왈칵 나와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너무 무능해서 주위 수련생들과 단장님을 많이 힘들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악기를 계속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 저로서는 일하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악기 연습에 몰두했는데 근 두 달이란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말귀도 못 알아듣는 저를 가르쳐 주시느라 몸도 마음도 얼마나 힘드셨겠나 하는 생각으로 많이 죄송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 중에서 당신은 허다한 시달림(魔難)에 부딪힐 것이다. 오로지 여러분이 참답게 법을 배우면 어떠한 난이든지 당신은 넘길 수 있으며, 당신이 오로지 참답게 법을 배우면 그 어떤 풀기 어려운 마음속의 매듭, 넘기지 못하는 것도 모두 법 중에서 답을 찾을 수 있고, 풀 수 있을 것이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 저는 이 법을 공부하면서 마음을 다시 바로잡게 됐습니다.
새로운 지휘 선생님이 오시게 되어 악기 기초부터 다시 배워서 시험을 보았는데, 세 번의 시험에서 두 번 합격해 이제는 혼자서 배운 노래를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세 번째 지휘 선생님이 오셨을 당시 저는 수련상태가 좋지 않아서 악단에 잘 나가지도 않고 악단에서 탈퇴하려고 여러 번 방황하던 중 시험을 보게 됐는데, 결국 낙방했습니다. 많은 수련생들은 재시험을 보고 합격했는데 저는 재시험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많고 행진 대열을 따라다니기도 힘들고 연습하러 다니는 것도 힘드니 악단에서 나와서 조용히 세 가지 일을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과 속인마음이 올라와서 잠시 멈췄습니다. 많은 수련생들이 제 이런 행동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전화로 많이 교류해주셔서 수련의 엄숙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어 재시험을 보고 다시 모든 행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렇게 반복적으로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되어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여러 수련생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는 “악단이 연주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는 상당히 크다. 에너지의 방출이든지 아니면 당신 목소리의 방출이든지 또는 음악이나 음표(音符) 자체든지 막론하고, 모두 법을 실증하고 에너지를 방사하는 작용을 일으켰다”(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불고 있는 플룻은 소중한 법기(法器)로서 음악이나 매 음표 하나하나가 연주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가 매우 크며, 특히 다른 공간에서 사악을 청리하는 데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천국악단에 참가한 이래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천안 흥타령 축제와 강원도 원주 행사에 참가했을 때 일입니다. 천안 흥타령 축제와 원주 축제는 30여 개 나라에서 행사에 참가했는데 우리 천국악단이 복장도 제일 멋있었고 기세가 제일 위풍당당했으며 가는 곳곳마다 파룬궁 진상을 방송에 보도했고, 곳곳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의 박수 갈채와 환영을 받았으며 2등상도 받았습니다. 아주 큰 무대에서 수많은 사람의 환영과 환호를 받으며 천국악단의 위엄을 펼쳐 보인 원주 행사에서 저는 매우 감개무량했습니다. 사부님 말씀대로 악단이 가는 곳마다 에너지의 방출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동시켰습니다.
맺음말
이상은 제가 20여 년 수련해 오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입니다. 저는 모든 것이 대법이 창조한 것이고 모든 것이 대법에서 왔기 때문에 법에 따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위대하며 가장 좋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사명임을 더 깊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을 더 잘하고 합격된 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4년 한국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1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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