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선룽 기자 대만 보도) 웨어(月娥)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55세부터 시작됐다. 그해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면서 온몸의 병고에서 벗어났고, 남편을 잃은 슬픔을 극복했으며, 우울했던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되찾았다. 올해 80세가 된 그녀는 평온하고 기쁜 마음으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그녀에게 수련 후의 매일은 새로운 삶과도 같다.
어린 시절 웨어의 집은 가난했다. 부모님은 농사로 생계를 꾸리며 여덟 자녀를 힘들게 키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웨어는 재봉사에게 기술을 배워 가계를 도왔다. 재봉사 선생님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제자 한 명이 웨어와 잘 어울릴 것 같아 두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웨어는 “우리는 매우 전통적이어서 특별한 데이트 없이 상대방이 괜찮다고 생각해 약혼했어요. 당시 그는 지룽(基隆)에서 일하고 있었고, 저는 타이난(臺南) 시골에서 옷을 만들고 있었죠. 2년 반 후에야 그가 6평짜리 집을 마련하고서 결혼했어요”라고 말했다.
결혼 후 웨어는 양쪽 끝에서 타는 촛불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남편은 소방관으로 매우 바빴다. 태풍이 오면 지휘소로 가서 지휘하고, 해변 구조활동도 나가야 했으며, 사회의 끊임없는 사건 사고로 늘 바빴다.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면 웨어는 두 아이를 키우며 재봉틀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녀는 “당시 양복 한 벌을 만들면 25대만달러(약 1천 원)밖에 벌지 못했어요. 일감이 없을 때는 주말에 공공기관에 가서 밥을 지어주고 200대만달러를 받았죠. 비록 힘들고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남편이 저를 잘 대해줬어요. 다만 제 몸이 늘 아픈 게 힘들었죠”라고 말했다.
23세에 결혼한 웨어는 청춘을 모두 가정에 바쳤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녀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36세에 위궤양에 걸려 위내시경을 네 번이나 받았어요. 그 외에도 어지럼증, 부비동염,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었죠. 위가 안 좋아 음식을 먹으면 속이 쓰리고 소화가 잘 안돼 배변도 힘들었어요. 발에는 무좀까지 있어서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었어요.”
사흘이 멀다하고 병원에 다니다 보니 웨어는 병원 단골이 됐다. 더 무서운 건 그녀가 자주 한밤중에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나날을 웨어는 20년 가까이 버텼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자주 ‘인생이 왜 이렇게 고난과 시련투성이일까? 언제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파룬궁 수련으로 삶에 서광이 비치다
2002년, 웨어가 55세 되던 해였다. 당시 막내 여동생은 웨어가 자주 한숨을 쉬고 초췌해진 모습을 보고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언니의 몸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파룬궁뿐이야!”
중학교 교사인 여동생은 동료의 소개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여동생의 인내심 있는 인도로 웨어도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는 “연공할 때 손바닥이 뜨겁고 양손에서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얼마 지나니 몸이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고, 자전거를 탈 때는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았어요. 걸음도 훨씬 가벼웠죠”라고 말했다.
웨어는 사부님께서 그녀의 천목(天目)을 열어주셔서 다른 공간의 순수함과 신성함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번은 갑자기 금빛 찬란한 파룬과 하늘에 빽빽이 들어찬 불도신(佛·道·神)들이 층층이 가득한 모습을 보았어요. 신불(神佛)들은 흰 가사를 입고 계셨는데 매우 장엄했죠. 또 한번은 가부좌를 하고 정(定)에 들었을 때 온몸이 계속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아, 어떻게 이렇게 높이, 이렇게 멀리 왔지? 여기가 파룬세계(法輪世界)일까?’라고 하자 어떤 소리가 ‘아직 아니다’라고 답했어요. 그러고 나서 저는 출정(出定)했죠”라고 말했다.
비록 몸에서 특별한 감각을 느꼈지만 웨어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수련자가 “수련은 초범[超常]적인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초범’이란 두 글자의 의미를 깨닫고는 모든 약봉지를 버렸다. 그날 이후 웨어는 마치 환골탈태한 것처럼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이 됐다. 그녀는 “그 후로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았고 온몸이 가벼워져서 계단을 뛰어다닐 수도 있게 됐어요.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라고 말했다.
정(情)의 고비를 넘어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다
2005년, 웨어의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변고에 웨어는 한동안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전에는 많은 일을 남편에게 의지했는데 갑자기 의지할 곳이 없어지니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계속 울기만 했고 남편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동생이 제가 너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언니, 언니는 이미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잖아. 법공부를 많이 하면 이 고비를 반드시 넘을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죠.”
웨어는 법공부를 통해 사람은 생생세세 윤회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친인척과 얽히며, 인연에 따라 부모나 자녀의 관계가 형성되지만 그 인연이 깊든 얕든 결국엔 모두 헤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6강에서 말씀하신 부분을 떠올렸다. “사람은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곧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여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그가 죽었다 하고, 그의 어머니가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역시 죽었다고 그는 그지없이 비통해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마치 그것을 따라가려는 듯하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는데, 이것은 당신을 시달리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 당신을 편안히 지내지 못하게 한다.”
웨어는 법을 반복해서 읽으며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마(魔)가 온 것이었어요. 그러니 저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해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을 믿을 거예요.”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 덕분에 웨어는 남편을 잃은 후의 삶과 이사 후의 새로운 환경을 용감하게 맞이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열어갔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출근한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연공장과 법공부 장소로 갔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연공을 하고 수련자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기로 다짐했다. 또한 자발적으로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 등 집안일을 맡아하며 며느리와 함께 사랑스러운 손녀를 돌봤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살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웨어는 자신이 급한 성격이라며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제가 성격이 급해서 아들, 며느리와 살다 보면 생활 속에서 마찰이 생기곤 했어요. 때론 갈등이 생기면 불평이 나오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대하나 하고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머릿속이 온통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찼어요.”
웨어는 화를 내고 불평하는 것도 일종의 정(情)이며, 겉으로 누가 옳고 그른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수련자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불평이 생기면 사부님의 법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안으로 찾기 시작했어요. 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승화시켜 상대방의 장점을 많이 보려고 했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으면 부끄럽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더 많은 기쁨이 있었어요.”
선한 마음으로 중국인과 인연을 맺다
웨어는 하루하루를 매우 충실하게 보냈다. 새벽 연공을 마친 후에는 인터넷으로 구출 플랫폼에 접속해 낯선 중국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론 상대방의 사투리를 알아듣기 힘들고 말하는 속도도 느렸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매일 중국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18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이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웨어는 “저는 중국 공안, 검찰, 법원의 공무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파룬궁 진상을 알려요. 상대가 판사든, 검찰총장이나 공안국장이든 두렵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아요. 마음속엔 오직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나쁜 짓을 못하게 하고 그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뿐이에요”라고 말했다
한번은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국보(국내안전보위대) 대대에 전화를 걸었는데, 처음에는 상대방이 매우 불쾌한 태도로 욕설을 퍼부었다. 웨어는 인내심을 갖고 파룬궁이 중공이 날조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며 이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했다. 상대방은 오랫동안 듣다가 결국 이해하게 됐고 삼퇴(공산당과 그 산하 조직 탈퇴)도 했다.
웨어는 또 중국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파룬궁수련자들을 변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상대방이 다 듣고는 매우 흔쾌히 ‘네, 저는 파룬궁 사건을 맡을 수 있고 정의를 수호하는 데도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어요. 제가 그의 선량함과 착한 마음을 칭찬하자 그는 허허 웃었어요. 또 다른 변호사는 진상을 듣고 ‘여러분의 단합과 끈기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저는 이미 당신들의 각 지역에서 온 전화를 10여 통 받았습니다’라고 말했죠”라고 전했다.
전화는 인연 있는 중국인들과의 연결 고리가 됐고, 웨어는 그들이 모두 정의와 선량함을 선택하고 평안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지기를 희망했다.
웨어의 몸과 마음이 변화한 것을 본 가족과 친척 13명도 잇따라 수련을 시작했다.
가끔 가족들이 함께 모이면 그들은 각자에게 일어난 신기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웨어는 “한번은 딸이 운전하다 갑자기 앞차와 부딪힐 뻔했는데 신기하게도 피할 수 있었어요. 딸은 그게 사부님의 보호 덕분이라고 했죠. 또 한번은 사위가 심한 감기에 걸려 일어날 수도 없었는데도 5가지 공법을 모두 연마했더니 다음 날 출근할 수 있게 됐다며 대법이 너무 신기하다고 했어요. 이런 일들이 정말 많아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천만 번, 억만 번 감사해도 다 표현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80세가 된 지금도 웨어는 일분일초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사부님께서 속세에서 저를 찾아주시고 깨끗이 씻어주셔서 온갖 업력으로 가득한 평범한 사람에서 건강하고 유쾌하며 더없이 행복한 대법제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잘 수련해서 더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것을 알게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14/48499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14/4849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