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는 길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습니다. 한때 대열에서 낙오했던 저를 버리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법수련의 의미를 깨달은 후 저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진상을 많이 알리고 사람을 많이 구했습니다.
1. 법을 얻다
1998년 가을, 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파룬따파를 얻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부님을 따라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당시 우리 공사현장 숙소에는 20~30명이 살았는데, 그중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목수가 있었고, 그는 사부님의 설법 책 몇 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숙소는 매우 초라해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TV도 없고 지금의 스마트폰도 없었으며, 사장님만 ‘큰형님'(90년대 중반 이전의 휴대폰)과 ‘BB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휴식시간에 글로 된 자료가 있으면 모두들 앞다퉈 보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점심때 저는 궁금해서 그 목수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무슨 책이에요?” 그는 “파룬궁(法輪功)이요”라고 했는데, 당시 저는 멍해져서 말했습니다.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그때 한 동료가 “바로 파룬궁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 후 저도 책 한 권을 빌려 보기 시작했습니다(지금은 사부님의 어느 설법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부님의 책은 저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두 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으며 매우 흥미를 느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인류사회의 불가사의한 현상들, 인생과 우주, 세상 만물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이런 방면의 책을 보고 싶어 했고, 이런 사물과 비밀에 대해 토론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이었습니다. 특히 사부님께서 우주의 구조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보고, 이 우주가 너무나 신비롭다고 느꼈습니다! 이 우주가 원래 이렇게 크구나! 층층이 있고, 한 층이 한 층보다 크다니, 순간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우주에 대한 개념이 깨졌고, 그래서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대해 매우 큰 흥미가 생겼습니다. 매일 밤 퇴근 후 저는 굶주린 듯이, 목마른 듯이 사부님의 법을 보았고, 매일 늦게까지 보았습니다. 그 목수 수련생은 제가 인연 있는 사람임을 보고는 다른 동료들의 손에서 《전법륜》을 돌려받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하루에 한 갑을 피웠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담배를 물고 《전법륜》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파룬궁 책을 보면서 어떻게 담배를 피워요?” 당시 저는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그 목수 수련생이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아직 그 부분까지 안 봤어요.”
제가 《전법륜》 제7강을 보았을 때 비로소 동료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습니다. ‘원래 담배를 끊어야 하는 거였구나!’ 저는 당시 제 손에 반쯤 태운 담배를 들고 있었던 것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모를 힘이 솟아나 저는 주저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꺼서 버렸고, 게다가 남은 반 갑의 담배도 버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렴풋이 한 가지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담배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도 사람을 해치는 것이기에 과감하게 버린 것입니다.
저는 《전법륜》을 다 읽은 후에는 수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알게 됐습니다. ‘원래 사람은 부처가 될 수 있구나! 이것은 얼마나 큰 좋은 일인가! 저는 반드시 수련하겠습니다!’ 그 목수 수련생은 제가 결심하고 수련하려는 것을 보고는 다섯 가지 공법을 가르쳐주었고, 저를 서점에 데려가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구해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파룬따파 수련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2. 심신의 변화
제가 《전법륜》을 처음 다 읽고 며칠 되지 않아 사부님께서는 제게 관정(灌頂)을 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든 듯 안 잠든 듯할 때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느꼈고, 전신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마치 강한 전류가 통과하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또 발에서 머리까지, 여러 차례 반복됐습니다. 그 강한 전류는 제 온몸을 진동하게 했고, 당시 저는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머리가 계속 떨렸습니다. 저는 전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대법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느꼈습니다! ‘너무나 신묘하다!’ 이는 제가 대법을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했습니다.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 제 손바닥에서 ‘훅훅’ 더운 기운이 나왔는데, 한 번은 이 손에서, 한 번은 저 손에서 나왔습니다. 때로는 밤에 잠잘 때 사부님께서 제 신체를 조정해주시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왼쪽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가, 다시 오른쪽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가 하셨고, 때로는 제 몸이 마치 공중에 떠서 뒤집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다음 사부님께서 손으로 제 신체의 여러 부위를 누르셨습니다. 당시 저는 비록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의식 속에서는 사부님께서 제 몸을 조정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저는 몸이 매우 가벼웠고 기분도 매우 즐거웠으며,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은 계단을 오를 때 둥실둥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한 이후로 신체에 이렇게 많은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저는 이 모두가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격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대법의 신기함과 초범성을 보게 해 수련에 대한 신념을 굳건하게 하도록 하신 것이며, 또한 앞으로의 수련길에 튼튼한 기초를 다져주신 것입니다.
대법이 제 몸에서 신기한 기적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 심성도 천지개벽하는 듯한 변화가 일어났고, 인생관과 세계관도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공사현장에서 벽돌공 일을 했는데, 보통은 두 사람이 한 벽을 쌓았습니다. 벽을 쌓을 때는 두 사람 중 한쪽은 역손(逆手)이 되어 불편했고, 모두가 순손(順手)이 되는 쪽에서 일하고 싶어 했습니다. 한 벽을 다 쌓고 나면 모두 다음 벽의 순손이 되는 쪽을 서둘러 차지하려 했습니다. 법을 배우기 전의 저도 그랬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저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기로 결심했고, 자발적으로 편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으며, 다시는 속인처럼 다투고 쟁탈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가 순조롭지 않은 일을 했지만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대법 법리를 알았고, 고생하는 것이 좋은 일이며 자신의 업을 없애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밥을 배식받을 때는 누구나 먼저 받으려 했고 새치기하는 사람도 늘 있었습니다. 법을 배운 후 저는 새치기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가 제 앞으로 새치기를 해도 원망하지 않았고 마음이 매우 평온했습니다.
3. 굳건함
1999년 봄, 저는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이 폐쇄적이었고 당시에는 TV나 휴대폰도 없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도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연말에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버스에 막 올라 자리에 앉았을 때, 갑자기 헬멧을 쓰고 소총을 든 군인이 올라왔습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매우 엄숙하게 물었습니다. “누가 파룬궁 수련하지? 가방을 모두 열어!” 모두들 조용히 자신의 가방을 열었습니다.
이 사람은 뒷좌석부터 시작해서 한 줄 한 줄 앞으로 검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고, 제 가방 안에는 정말로 《전법륜》 한 권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는 제 가방은 검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이것이 사부님께서 이 신수련생을 자비롭게 보호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TV를 보니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하는 내용이 하늘땅을 뒤덮을 듯했고,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습니다. 원래 중공이 파룬궁 수련을 금지했던 것입니다! 매일 TV만 켜면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내용뿐이었습니다. TV에서 보도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진실일까 거짓일까? 당시 저는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내가 몸소 체험하고 경험한 바로는 사부님은 바르시다! 대법은 바르다!’ 저는 당시의 경지에서 생각했습니다. ‘TV에서 보도하는 그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시험이고,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마음은 확고하니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비록 제가 법을 얻은 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고 법에 대한 인식도 매우 피상적이었지만, 저는 몸소 파룬따파의 신묘함을 체험했고 대법은 이미 제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TV에서 어떻게 말하든 저의 이 확고한 수련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대법을 비방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저는 TV를 꺼버리고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에서 여전히 변함없이 법공부와 연공을 했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겠다는 마음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그때 저는 완전히 개인수련 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4. ‘원래 대법제자에게는 이렇게 중요한 일이 있었구나’
박해가 시작된 후 3~4년 동안 저는 매년 초에 공사현장에 일하러 가서 연말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년 중 6~7개월을 현장에서 일했고, 이 기간에는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없어서 매우 고민이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와서 일하게 됐고 집을 임대했으며, 생활도 안정됐고 매일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기간에 한가할 때면 저는 수련생들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얼마나 많은 수련생들이 수련하고 있을까? 저는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이 낯선 도시에서 어디 가서 수련생들을 찾을 수 있을까?’ 저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환경은 당신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정진요지-환경). 또 공원에 가서 연공하면 사람들이 법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생각났습니다. 2008년쯤에 저는 수련생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한 아파트 단지에 왔습니다. 정문 앞에 작은 공원이 있었고, 드문드문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 나무 아래서 동공(動功)을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목적은 수련생들이 저를 보고 제가 수련생들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연속 갔지만,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했고 저도 수련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너무 작아서 큰 공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저는 또 비교적 큰 광장을 찾았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서 이 큰 광장에 가서 눈에 잘 띄는 곳을 찾아 30분 동안 동공을 연마했지,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틀 연속 갔지만 여전히 수련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우 실망했고 또한 매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저는 마치 돛이 꺾인 작은 배처럼 끝없이 넓은 바다에 떠다녔고, 외롭고 무력했습니다. 몇 년이 더 지나 2010년이 됐을 때, 저는 정말 참을 수 없어서 공사현장에서 동료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구 마을에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지 아시나요?” 그중에 저와 비슷한 또래의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제 삼촌이 파룬궁을 수련해요.” 저는 이 말을 듣자마자 매우 기뻐서 서둘러 그의 삼촌의 자세한 주소를 물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의 이 절박한 마음을 보시고 제자를 위해 안배해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비가 조금 내렸고 공사현장은 쉬는 날이었습니다. 그 동료의 삼촌 집은 제가 사는 곳에서 20~30km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매우 순조롭게 그 수련생의 집을 찾았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저는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 어르신 수련생은 제게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열심히 대법에 관련된 일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어르신이 제게 말씀하신 ‘구세력’이라든가 하는 것을 저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구세력’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으며, 어르신이 설명해주셔도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어르신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새로운 경문 있나요?” 저는 당시 멍했습니다. “또 새로운 경문이 있나요? 사부님께서 또 설법하셨나요?” 어르신은 돌아서서 작은 단행본으로 된 사부님 설법을 한 무더기 찾아내셨고, 또 두꺼운 새 경문 두 권도 있었습니다. 제가 어르신이 이렇게 많은 사부님 설법을 꺼내시는 것을 봤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저는 좀 앉아있을 수 없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 더 말씀하지 마세요. 말씀하셔도 제가 알아듣지 못하니 빨리 집에 가서 보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이틀 동안 일도 쉬고 굶주린 듯이 목마른 듯이 사부님의 이 설법들을 한 권 한 권 보았고, 매우 늦게까지 봐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틀 동안 마침 정전이 됐는데, 저는 양초를 몇 개 사왔습니다. 정전됐을 때는 양초를 켜고 보았습니다. 책을 볼 때 저는 매우 충격을 받았고, 눈에는 수시로 눈물이 고였습니다. 저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원래 대법제자에게는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일이 있었구나!’
하지만 이렇게 많은 해 동안 저는 단절되어 있었고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제가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마음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너무나 커서 저 자신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대법에 대한 이 확고한 마음은 중공 악당의 선전으로 인해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대법을 굳게 믿는 마음만 품은 채 이렇게 많은 해를 낙오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매우 복잡했으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묵묵히 눈물을 흘렸고,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죄송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또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악당의 박해가 두려워서 감히 나서지 못하거나 대법을 위해 정의의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아닌데, 이렇게 큰일을 제가 왜 모르고 있었을까요?! 저는 사부님께서 예전에 구세력이 서둘러 이 박해를 발동한 것은 갓 법을 얻은 신수련생들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정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는 알게 됐습니다. ‘원래 구세력이 우리 이런 갓 법 얻은 신수련생들을 망치려고 했구나!’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특히 수련생들이 제게 당시 그들이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을 다투어 천안문 광장에 올라가 법을 실증했던 위대한 일을 이야기해줄 때면, 저는 수련생들을 경탄하면서도 깊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제가 의기소침해지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가 끊임없이 정진하는 동력이 됐습니다.
5. 보충
저는 사부님 설법을 공부한 후 대법제자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저는 제 손실을 보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저는 사람을 구하려는 절박한 마음을 품고 정기적으로 어르신 수련생의 집에 가서 진상자료를 가져와 배포했습니다.
어르신 집은 제 집에서 20km가 넘게 떨어져 있었고, 게다가 그들의 자료도 매우 제한적이어서 당시 제 수요를 전혀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먼 길을 갔다가 허탕을 치고 진상자료를 가져오지 못할 때면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르신은 제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절박한 것을 보시고는 저를 다른 자료점 수련생에게 소개해주셨습니다. 비록 자료는 좀 더 많아졌지만, 여전히 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스스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련생들이 어떤 기계를 사용하는지 알게 된 후 저는 직접 전자상가에 가서 구입해 왔습니다. 비록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는 수련생 집에서 대략 수련생들이 인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자세히 연구해보면서 어떻게 인쇄하고 어떻게 페이지를 넘기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대략 이삼일을 연구한 끝에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저는 인쇄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이제 좋아졌습니다. 어떤 자료를 원하면 그것을 인쇄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이 원하면 그만큼 인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간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당시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립니다!
그때부터 저는 일하는 틈틈이 대량의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저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현장 상황과 노동자 숙소 상황을 매우 잘 알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상태와 생활 습관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일했기에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각 공사현장의 여러 숙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그 사람들도 정말 저를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말을 저는 모두 알아들었고, 그들과 이야기가 통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이 단체 안에서 중생을 구하는 데 매우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었고, 그들도 우리의 진상자료를 매우 기꺼이 보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들의 숙소에 갔는데,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한 권이 탁자 위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장이 이미 매우 더러워졌는데, 이는 많은 사람이 봤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어느 날 점심때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한 공사현장 숙소에 갔는데, 마침 배식 시간이었고 정문이 열려있어서 저는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앞에는 백여 명이 배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었고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사람들 사이로 타고 가서 오토바이 바구니를 열고 말했습니다. “무료로 좋은 책을 나눠드립니다!” 손에 있던 《9평》 한 권을 앞에 있는 사람에게 건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말로 무료라는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몰려들어 바구니에서 직접 꺼내 가져갔고, 한 사람이 한 권씩 가져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권의 《9평》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져가는 것을 보고 이 몇 권의 책으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급히 오토바이를 타고 수련생의 집에 가서 20여 권을 더 가져왔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배식하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습니다. 저는 숙소로 올라가서 한 방 한 방 책을 전해주었습니다. 또 다른 방문을 열었을 때 책이 적어서 중복 배포를 할까 봐 《9평》 한 권을 꺼내 물었습니다. “이 책 있으세요?” 그중에 50세쯤 되는 한 사람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무슨 책을 나눠주는 거야?!” 그리고는 입에서 지저분한 욕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매우 평온했고 “죄송합니다. 방해해서요”라고 한 마디 하고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해서 다음 방으로 가서 배포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남은 책을 모두 배포했습니다.
맺음말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장쩌민 집단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한 때부터 2011년까지, 11년 동안 저는 홀로 수련하는 낙오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때 제 경지는 ‘굳건함, 흔들리지 않음, 인내’라는 층차에 머물러 있었고, TV에서 말하는 그 모든 것이 저에 대한 시험이라고 여겼기에 개인수련이라는 기점에 멈춰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1998년 가을에 법을 얻었고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에는 수련생들과 접촉하지 못했으며 단체 법공부에도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제 마을에도 수련생이 한 명도 없었고 공사현장의 그 목수 수련생도 더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 외부적인 요인들이 제가 홀로 수련하게 된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이후에 저는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안으로 찾아보니, 제가 너무 자신만만하고 자부심이 강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전법륜》 한 권만 있으면 충분하고, 수련해서 성취할 수 있으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이런 강한 자아가 구세력에게 틈을 보였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사부님께서는 한때 낙오했던 이 제자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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