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문안드립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전에 저는 심장병, 류마티스, 신장염, 대퇴골두 괴사, 목 디스크, 귀에서 고름이 나고 코피가 나는 등 여러 가지 병이 있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병이어서 ‘병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파룬따파가 저를 구해주어 건강한 몸을 얻게 됐습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조장한 도덕이 날로 타락하는 깊은 수렁 속에서 파룬따파는 끊임없이 제 도덕 수준을 높여주었고, 이기적인 사람에서 남을 위해 봉사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량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1. 병업(病業) 고비를 넘기면서 수련 의지를 확고히 하다
저는 죽음 직전의 사람에서 건강한 사람이 됐고, 아들과 딸은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아들과 딸은 마음속으로 파룬따파가 그들의 어머니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저는 몇 차례 병업 고비를 겪었는데, 매번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고도 빨리 넘길 수 있었고, 자녀들도 매번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단층집에 살 때 한번은 제 허리에 ‘사반창(蛇盤瘡, 대상포진)’이라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두 끝이 거의 맞닿을 정도였습니다. 민간에서는 사반창의 두 끝이 맞닿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도 두렵지 않았고 딸과 아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스스로 빨래하고 밥을 하고 방을 정리했으며 자신의 일은 스스로 했습니다.
당시 속이 쑤시듯 아팠고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지만, 저는 법공부와 연공을 놓치지 않았고 자신을 환자 취급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몸을 구부려 바닥의 솥을 들어올릴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습니다. 이를 악물고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겨우 솥을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사부님과 법을 믿는지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아파도 저는 자신을 환자 취급을 하지 않았고 자녀들이 시중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파도 스스로 몸을 구부려 솥을 들어야 했고 하루 세 끼를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물을 떠달라거나 밥을 차려달라고 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환자 취급한 것이고, 둘째는 사부님과 대법을 믿지 않은 것이며, 심각하게 말하면 이 방면에서 진정한 수련[眞修], 실제적인 수련[實修]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수련의 길에서 보기에는 며칠 동안 시중을 받는 게 작은 일 같지만, 수련은 엄숙한 것이라 시중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 이 층차에 머무는 것이며 수련의 길에서 심성이 제고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통증을 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난 진작에 죽었을 텐데, 이 정도 아픔과 고통이 어떻게 진정한 대법제자의 정진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10여 일 만에 나았는데, 당시에는 그것을 소업(消業, 업력 소멸)로 잘못 인식해 구세력이 강요한 박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만약 관념을 바꾸었다면 아마도 몇 시간이나 확고한 일념으로 ‘사반창’ 증상이 해체됐을 것입니다.
또 한번은 고열이 났는데, 온몸이 숯덩이처럼 뜨거웠고 옷 입을 힘도 없었으며 눈도 뜨기 힘들었습니다. 온몸이 아프고 매 순간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아들은 제가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사부님과 대법을 원망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수련하지 않는 그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설탕과 식초를 넣은 물 한 큰 잔을 가져와 말했습니다. “엄마, 이거 좀 드세요! 달콤새콤해요.” 사부님이 곁에 계신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거기 놔둬, 내일 나으면 마실게.”
이번에는 구세력이 강요한 박해를 피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다음날 아침에 나을 거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이 정념을 확고히 했고,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이런 흑색물질을 없애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열’ 증상이 사라졌고 온몸이 가볍고 상쾌해져서 일어나 아침밥을 했습니다. 아들은 이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또 한 번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이때 저를 걱정하며 밤을 샌 올케가 일찍 우리집에 왔다가 제가 나은 것을 보고 기쁘게 말했습니다. “어제는 얼굴이랑 입술이 다 청회색이었어요. 그렇게 사람 놀라게 하더니 오늘 아침에 밥도 하고 정말 다행이에요.” 올케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기뻐했습니다.
며칠 동안 코피가 났지만 저는 매일 진상을 알리러 나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두가 좋은 일이고 사부님께서 제자의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거라고! 결과적으로 코피가 멈춘 후 제 머리가 더 맑아지고 선명해졌습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제 다리를 다치게 해서 다리에 계란만한 혹이 생겼습니다.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고 처음 다리를 틀 때는 혹이 있는 부위가 특히 아팠고, 다리를 틀 때마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아팠지만 저는 다리를 내리지 않고 끈으로 다리를 묶어 반년 넘게 연공했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참고 견뎠으며, 고통과 어려움도 사부님을 따라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 순간 한 순간 견지했고, 한 순간 한 순간 참았으며, 매 분(分)이 특별히 길게 느껴졌지만 제 마음속에는 대법이 있었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부여하신 금강처럼 확고한 정념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으니, 사부님께서 제자더러 고통을 참고 정진하라고 하시니 나는 사부님 말씀을 따르겠다. 절대로 다리를 내리지 않겠다.’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는 《홍음》 중의 ‘마음고생(苦其心志)’을 계속 외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그렇게 많이 감당하시면서도 우리에게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으시고 오직 우리가 정진하는 마음 하나만을 바라시며, 우리가 금강 같은 의지[金剛志]를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다리가 아플수록 더욱 견지했고 다리가 아플수록 더욱 틀었습니다. 수련은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합니다! 저는 한 순간 한 순간 견지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다리를 튼 후에야 발견했는데, 결가부좌를 할 때 견디기 힘든 통증 때문에 필사적으로 견디고 참느라 어느새 한 손의 엄지손톱이 다른 손의 엄지손톱 밑으로 들어가 그 엄지손톱 밑에 상처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전혀 몰랐고 아픈 줄도 몰랐다가 결가부좌가 끝나고 나서야 아픈 걸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시고 제 신체를 정화해주셨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걷고 일을 해도 병 없이 온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올해 제가 75세인데 많은 사람들이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합니다. 딸은 제가 대법을 수련해서 그들에게 많은 이로움을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제가 건강하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서 그들이 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을 지지하고 모두 복을 받아서 장사도 아주 잘 됩니다.
2. 어떤 것도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우리 주변에 어떤 수련생들은 외지에 가서 자녀들의 아이를 봐주느라 정체(整體)를 벗어나 오랫동안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진상 알리기용 지폐를 조금 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심지어 진상 지폐조차 쓰기를 두려워하며 자녀와의 정을 첫 자리에 두고 사부님의 거듭된 자비로운 일깨움도 장난으로 여깁니다. 또 어떤 수련생들은 돈과 재물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겨 점차 수련하지 않게 됐습니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자녀와의 정에 얽매이거나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에 얽매여 인간 세상에서 망가진다면 자녀를 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표하는 천체 대궁의 수많은 중생도 망치게 됩니다.
제 마음속에는 한 가지 정념이 확고합니다. 제 생명은 대법을 위해 온 것이고, 제 생명은 사부님과 맺은 서약을 이행하기 위해 온 것이기에 자녀와의 정에 끌려가서는 안 되며 속세에서 길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대법이 저에게 부여한 이 반석같이 확고한 정념으로, 제자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으면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정념정행을 가지(加持)해주십니다. 제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면 자녀들은 어떤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출산할 때도 저를 끌어가지 않았고, 딸이 아무리 바빠도 제가 아이를 봐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20여 년간 아들, 딸 모두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고, 아들은 매번 집에 올 때마다 가장 좋은 과일을 사서 사부님께 공양하고, 딸도 과일을 사서 사부님께 공양합니다. 자녀들은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을 크게 지지할 뿐만 아니라 아들, 딸, 사위는 때로는 제가 사부님을 도와 법을 실증하는 선한 일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사부님의 가지 아래 진상을 알리는 것은 이미 제 일상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저를 그의 친한 친구 집에 데리고 가서 식사를 했는데, 제가 진상을 알리자 아들은 막기는커녕 오히려 기쁘게 말했습니다. “엄마,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말할게요.” 아들이 그의 친한 친구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권했습니다. “탈퇴하세요, 탈퇴하면 뭘 해도 순조로워져요.” 아들의 친구는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한 후 주먹을 들고 크게 외쳤습니다. “내가 탈당했다! 내가 탈당했어!” 그의 외침이 방 밖까지 들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딸의 ‘삼퇴’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온 가족이 진상을 알고 ‘삼퇴’한 후, 저는 그들에게 진상 소책자 ‘천사홍복(天賜洪福)’ 한 권을 더 주어 그들 가족이 대법의 진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했습니다. 예전에 그들은 돼지를 키웠는데 가장 많이 벌 때도 1년에 20여만 위안밖에 벌지 못했고 때로는 많은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 가족이 삼퇴하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알게 된 후 복이 찾아왔습니다. 1년도 안 되어 그들 집은 100여만 위안을 벌었습니다. 제 아들이 외지에서 돌아오자 그는 제 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쁘게 말했습니다. “식사하거 안 가면 안 돼, 내가 올해는 100여만 원을 벌었거든.”
저는 기분 좋게 나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사람들이 제 나이를 물으면 솔직히 말하는데 그들은 제가 75세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한 청년과 함께 앉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가 제 나이를 물었고, 제가 70대라는 걸 알고는 매우 놀라며 말했습니다. “버스에 오르내리시는 게 정말 민첩하시네요.” 이는 제가 70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청년은 제 몸에서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기적을 목격하고 기쁘게 ‘삼퇴’했습니다. 한번은 한 경찰이 제 팔을 잡고 물었습니다. “몸이 어떻게 이렇게 좋으세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대법을 배워서 그래요.” 그는 말했습니다. “허약해 보이지도 않고, 팔에 근육이 잔뜩 있네요.”
어느 날 아침 외출했다가 사복 경찰을 만났는데 제가 어디서 일하냐고 물으니 그는 농담으로 일용직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다가 돌아와서 “붉은 스카프’(공산당 소년선봉대원이 목에 두르는 스카프) 맨 적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있다고 했고,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원인가요?”라고 하니 그렇다고 해서 삼퇴를 권했더니 그가 왜 탈퇴하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진상을 알려주자 그는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경찰복을 입은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절대로 파룬궁을 박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고 그는 “가세요, 전 아주머니를 체포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많은 사람이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해서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을 보고 진상을 듣고 싶어 하고 ‘삼퇴’하기를 원합니다. 작년에 한 여성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녀는 삼퇴한 후 제 손을 잡고 진심으로 집에 가서 만두를 먹자고 했지만 저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올해 여름에 우리가 다시 만났는데, 그녀가 저를 알아보고 매우 기뻐하며 가지 말라고 하면서 저와 이야기도 더 하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사부님과 맺은 서약을 이행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한번은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저를 관광지에 데리고 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관광을 가도 법을 실증하는 큰일을 놓쳐서는 안 되며, 만약 즐기기만을 위해 관광지에 가서 경치를 구경한다면 이 하루는 헛되이 보낸 것이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린 것이 된다. 관광을 가도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다.’
저는 미리 현수막과 긴 자루가 달린 우산을 준비했습니다. 관광지에 도착해서 사위가 저와 함께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그는 우산을 들어 우산 자루의 갈고리로 나뭇가지를 구부려 잡고 다른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제가 발을 들어 나뭇가지에 현수막을 매고 나니 나뭇가지가 튕겨 올라가면서 현수막이 공중에 매달렸고 관광객들이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관광지에 현수막을 거는 것은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들도 제압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경찰이 보고 우리가 나올 때 막아서며 수색하려 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오직 사부님과 법을 믿어야만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사부님의 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제자를 보호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박해받을 수 없고 사부님을 도와 세상을 행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은 현수막과 진상 책자를 그들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우리는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저는 또 순조롭게 현수막을 다른 곳에 걸었습니다.
제게는 두 개의 대나무 장대를 이어 붙인 것이 있어서 현수막을 아주 높은 나무에도 걸 수 있었고, 저는 수련생들과 협력해 밤에 큰 현수막을 걸었는데, 그 시절에는 큰 현수막을 많이 걸었습니다. 때로는 딸이 차를 몰고 저를 데려다주어 현수막을 걸었고, 때로는 아들이 차를 몰고 동행하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저는 현지에서만 걸지 않고 외지에 친척 방문을 갈 때도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등의 내용이 담긴 작은 현수막을 갖고 갔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수련생들과 약속하고 진상을 알리러 가거나 현수막을 걸러 갈 때면, 바람과 눈도 저와 수련생들이 서로 협력해 사부님을 도와 법을 실증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 1척(약 30cm)이 넘는 큰 눈이 내렸는데, 저는 수련생과 함께 찬바람을 맞으며 큰 현수막을 걸러 나갔습니다. 우리 둘은 저녁 8시에 나가서 북방의 한겨울에 1척이 넘는 눈밭을 헤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 둘은 수십 개의 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당시에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손으로 문을 만지니 문이 따뜻했고 벽도 만져보니 따뜻했는데, 이때야 자신의 온몸이 얼어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거의 자정 12시여서 서둘러 다리를 틀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몇 번은 여름밤에 수련생과 함께 큰 현수막을 걸러 나갔다가 도중에 갑자기 큰비가 내렸는데도 우리는 물러서거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큰 현수막을 가진 만큼 다 걸었습니다. 비가 ‘쏴아’하고 머리에서부터 쏟아져 내리고 얼굴로 흘러내려서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됐고 신발도 빗물로 가득 찼습니다. 현수막은 비를 맞아도 괜찮고 날이 개면 자연히 마르고 바람이 불면 여전히 큰 나무에서 펄럭입니다. 오직 사부님을 도와 법을 실증할 수 있고 다른 공간의 사악을 해체할 수 있다면, 비에 젖은 옷쯤이야 무슨 대수입니까?! 우리는 여전히 즐거웠고 아무도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현수막을 걸었고 모든 현수막을 높은 곳에 다 건 후에야 돌아왔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와 ‘세계는 진선인(眞·善·忍)이 필요하다’ 등의 내용이 담긴 큰 현수막 몇 개를 걸어놓고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철도변 큰 나무에 건 현수막 하나는 반년이 넘도록 계속 걸려 있어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불법적인 미행과 감시도 제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2년 전에는 대부분의 현지 수련생이 불법적인 미행을 당했는데, 어떤 이는 차로 미행당하고 어떤 이는 여러 명에게 미행당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는 데 ‘민감한 날’이 없어서 언제 나가고 싶으면 그때 나갔고, 무슨 경찰의 미행이나 감시는 저와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 이런 관념이 없었고 저는 그들이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부님이 관리하시는 대상입니다. 제가 몇 시에 나가고 어디서 법 공부하는지 경찰이 다 알지만 우리 이 법공부 팀의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가지 하에 정념정행했습니다. 법공부 팀 수련생들은 모두 매우 정진했고 법공부 팀은 계속 이어졌으며, 수련생들은 서로 법공부와 수련을 비기고, 사부님을 도와 법을 실증하는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납치되었다 돌아와도 집에 와서 하루 이틀 법공부하고 나서 또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2022년 여름 어느 날, 저는 수련생과 약속하고 진상을 알리러 가다가 막 집을 나서자마자 두 명의 경찰에게 납치되어 파출소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이 왜 파룬궁을 수련하냐고 물어서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온몸의 병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서야 다 나았습니다.” 그들이 다른 것을 믿으라고 하자 저는 말했습니다. “교회, 부처님, 관음보살 다 믿어봤지만 낫지 않았고, 파룬궁을 수련하고서야 새 생명을 얻었어요. 사람은 양심을 저버리면 안 되니 저는 서명할 수 없고 ‘삼서(수련 포기 각서)’를 쓸 수 없어요.”
경찰이 삼퇴 명단과 제 휴대폰을 가져가면서 확인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저는 한 가지 생각을 냈습니다. ‘가져가봤자 소용없고 확인할 수도 없으니 삼퇴 명단은 돌려줘야 하고, 그건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저는 사부님께 제자에게 강대한 정념을 가지해주시고 지혜를 주시어 그들이 휴대폰에 있는 수련생들의 교류문 등을 발견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고밀도로 발정념을 했고 경찰은 마음이 불안해져서 한 시간도 안 돼 휴대폰과 삼퇴 명단을 돌려줬습니다. 점심때 경찰이 저에게 밥 먹고 물 마시라고 했지만 저는 “안 먹겠습니다, 집에 가서 먹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속 생각이 확고해졌고,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병업 가상을 연화(演化)해주셨으며 파출소는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저를 데려가게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하루 이틀 법공부하고 나서 또 나가서 대면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작년 봄, 저는 파출소로 끌려갔는데 경찰이 저를 속여 (다른 대법제자들이) 모두 ‘삼서’를 썼다고 하면서 저만 안 썼다고 했습니다. 저는 의연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써도 저는 안 씁니다!” 저는 큰 소리로 진상을 알렸고 나중에는 한 방 가득한 경찰이 다 나갔습니다. 마지막에 소장이 말했습니다. “안 쓰면 집에 가세요, 집에서 연마하세요!” 그리고 젊은 경찰 두 명에게 저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그들이 올라가려고 하자 저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너희 둘 거기 서!” 그들이 간 후 저는 안을 찾아보니 제가 경찰에 대한 증오심이 있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자비가 부족했으며, 또 쟁투심, 원망심이 있고 잘했을 때는 과시심, 환희심, 질투심 등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시간을 아껴 법공부를 하고 나가서 진상을 알려야 할 때는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인도하시고 가지하시니 어떤 것도 제자가 사부님을 따라 전진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3. 사부님께서 우리집에 사랑스러운 아기를 주시다
제 며느리는 비만이었고 비만인 사람은 임신이 잘 안 되는데다 병원에 가서 돈을 들여 치료해도 효과가 없어서 결혼 10여 년 동안 계속 아이가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10여만 위안을 모아서 외지에 가서 시험관 아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염병이 터져서 며느리는 자꾸 미루다가 또 몇 년을 지체했습니다. 전염병이 풀리고 나서 며느리는 아들과 함께 외지에서 돌아왔습니다. 며느리는 대법 사부님께 아기를 달라고 빌면서 사부님께 향을 피우고 과일을 씻어서 공손히 사부님 법상 앞에서 경건하게 절을 올렸습니다.
며느리가 집에 돌아온 지 3개월도 안 되어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며느리가 임신한 것입니다. 재작년에 37세의 며느리가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습니다. 며느리는 대법 사부님께서 보내주신 보물 같은 딸에게 감사했고 대법 사부님께서 그녀의 운명을 바꿔주셔서 그녀 인생에 하늘에서 기쁨이 내려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며느리의 어머니, 언니 모두 매우 기뻐하고 흥분했습니다!
며느리가 출산할 때도 제가 외지에 가서 도와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자발적으로 며느리와 손녀를 돌보러 갔습니다. 제가 수련하는 사람이라 며느리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제가 모아둔 1만 위안을 며느리에게 주었더니 며느리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에게 대법을 수련하는 확고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서 제자의 정념정행을 가지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구실을 못 하는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찾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사부님 말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하면서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많이 하고 안으로 찾아 조사정법으로 사람을 구해 사부님께 걱정을 덜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련을 도와주시고 잘못을 깨우쳐주신 수련생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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