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26년 수련한 대법제자입니다. 제 수련의 길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고 제 생명도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20여 년의 수련 체험을 써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저는 당시 건강을 위해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법을 얻기 전, 저는 심각한 간경화 복수에서 간암으로 진행돼 치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묘지까지 골랐고 아들에게 장례를 당부하면서 서서히 생명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자녀, 그리고 가족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겨우 30대인 내가 그들을 떠나야 한다니.’ 자주 몰래 눈물을 흘렸지만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저승사자가 데리러 왔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기적이 제 몸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죽음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지금까지 살아있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목숨이 경각에 달하고 인간 세상을 떠나려는 바로 그 순간, 저는 우주대법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지옥에서 건져내시고 씻어주시며, 광명으로 통하는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모든 한약, 양약, 약병들을 다 버렸습니다.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반본귀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법공부, 연공, 대법 알리기를 견지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제 심신의 변화를 보고 모두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우리집에서 연공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연공장의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모두가 매일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서로 교류하고 함께 정진했습니다. 신기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고 모두들 웃음꽃을 피우며 생기가 넘쳤습니다.
벽촌에서 사람 구하기
모두가 즐겁게 수련하고 있을 때 중국공산당(중공)의 광적인 박해가 시작됐고, 연공장은 강제로 중단됐으며, 저는 현지에서 납치 중점 대상이 됐습니다. 경찰이 몇 차례 집에 와서 저를 잡으려 했지만 매번 사부님의 보호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을 가지고, 아내는 집에 있던 얼마 안 되는 백여 위안을 제 주머니에 넣어주며 당부했습니다. “빨리 가서 목숨을 부지하세요, 절대 돌아오지 마세요!”
사부님께서는 “행각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으로서, 사회 중에서 다니며 동냥을 해야 하는데, 각종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전법륜)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걸할 곳조차 없었고 도처에서 불법적으로 저를 수배했으며, 우리집은 24시간 감시당했습니다. 친척 집에도 갈 수 없었고, 친구 집에서도 머물 수 없었으며, 사람 많은 곳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야외에서 밤을 보냈고, 추울 때는 농민들의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이다가 동이 트기도 전에 떠나야 했습니다. 혼탁한 세상을 마주하며, 저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은 어디에 있지?’
우여곡절 끝에 저는 외지의 한 친척 집에 도착했고 그들은 제 상황을 알고 나서 저를 받아주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발붙일 곳이 생겼습니다. 친척 집은 꽤 외진 곳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파룬궁에 대해 들어본 적만 있을 뿐 연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친척 집에서 저는 낮에는 그들의 농사일을 도왔고, 쉴 때는 법공부를 했습니다. 밤에 그들이 잠들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 연공을 시작했는데 여름에는 모기가 많아 처음에는 얼굴과 손 등 살이 드러난 곳마다 모기에 물려 견딜 수 없이 가려웠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빚진 게 있다면 이렇게 갚는 거야.’ 잠시 후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더 이상 모기가 저를 물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에게 진 빚을 다 갚은 걸까?’ 이때 저는 마치 무언가가 저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순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날 도와주시는 거구나.’ 사부님께서 저에게 덮개를 씌워주셔서 모기들이 제 곁에 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셨던 것입니다! 이때 고향을 떠나온 저는 감사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입안에 짠맛이 느껴졌지만 제 마음 깊은 곳은 달콤했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이곳에 오게 하신 것은 이곳에서 사람을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1년 후, 마을의 절반 이상이 기본적으로 진상을 알게 됐고 삼퇴를 했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로 한 먼 친척이 저를 도시로 데려갔습니다.
동료들이 목격한 대법의 신기함
새로운 환경에 와서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처음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했는데 거의 모든 더럽고 힘든 일,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제가 맡아서 했고, 매일 작업량이 과중했지만 저는 모두 성실하게 대했습니다. 이 외에도 주변 사람들의 조롱, 비아냥, 욕설도 자주 있었고, 그들은 저를 ‘바보’로 취급했습니다. 저는 대법의 기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정말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전법륜)를 실천했고 그들이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전생에 진 업력의 빚을 갚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제가 사다리를 밟고 2층 높이에서 일하다가 발을 헛디뎌 공중에서 떨어져 바닥에 앉았습니다. 당시 저는 숨을 쉴 수 없었고 동료들이 달려와서 구급차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저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들에게 손을 저었는데 차를 부르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일으키려고 하자 또 손을 저었고, 잠시 후 저는 간신히 일어나서 약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여러분 일하러 가세요!” 누군가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는데도 괜찮다고 하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시도해보니 걸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발밑이 천근처럼 무거웠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공사장 막사로 이동해 제가 묵는 곳으로 갔고, 이때 땀이 이미 제 옷을 흠뻑 적셨습니다.
저는 연공을 시작했고 첫 번째 공법에서 ‘늘이기(抻)’ 동작을 할 때 제 몸 안의 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습니다. 참을 수 없는 극심한 고통에 살이 떨렸고 땀이 옷에서 뚝뚝 떨어졌으며, ‘늘이기’를 할 때마다 이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내 뼈를 맞춰주시는 거구나.’ 저는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견지해서 연마했고, 이어서 법공부를 시작했으며 며칠 동안 계속 이렇게 견지했습니다.
10여 일이 지나자 저는 공사장에 돌아가 일할 수 있게 됐고 정말로 아무 일 없었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고 제가 진상을 알리는 것도 더욱 순조로워졌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저를 찾아와 삼퇴했습니다.
변호사의 감탄 “여러분은 가장 좋은 사람들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저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집을 임대해 작은 자료점을 세우고 작은 꽃을 피웠습니다. 저는 매일 여가 시간을 이용해 대법 자료를 인쇄하고 자료를 배포하며 더 많은 중생을 구했습니다.
한번은 대법 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납치됐습니다. 수련생들이 현지 변호사를 선임해 저를 위해 무죄 변호를 하게 했는데, 현지 사악이 변호사에게 압력을 가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수련생들은 다시 베이징에서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처음 저를 만났을 때, 말하기 전에 먼저 사부님의 《논어》를 한 번 외우고 나서 용건을 말했습니다. 모든 일을 설명한 후 떠나기 전에 그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다른 일 있으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여기 삼퇴 명단이 하나 있는데 밖으로 갖고 나가주실 수 있나요?”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구하시네요! 안심하세요, 제가 반드시 가지고 나가겠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나가신 후에 가족에게 물어보세요.”
이 변호사가 두 번째로 저를 접견했을 때 그는 저를 위해 변호할 수 있다고 말했고, 어떻게 변호할 것이며 제가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지 말한 후에 다시 물었습니다. “다른 일 있으세요?” 저는 또 말했습니다. “삼퇴 명단이 또 하나 있는데 수고스럽지만 가지고 나가주세요.” 변호사가 또 웃으며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정말 여러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감탄했습니다. 제가 접촉한 모든 사람 중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은 사람들입니다! 저도 퇴직하면 저도 파룬궁을 수련하겠습니다.”
개정 당일, 변호사는 저를 위해 무죄 변호를 했고 언어가 간명하고 요점을 짚었으며 매우 적절했습니다. “제 의뢰인은 어떤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으니 즉석에서 석방할 것을 요구합니다.” 판사는 할 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15분간 휴정했습니다. 다시 개정했을 때,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에게 ‘사회 치안 교란’이라는 터무니없는 죄명을 씌워 3년형을 불법적으로 선고했습니다.
감옥에서 대법 실증하다
감옥 환경이 매우 열악했고 범죄자들이 자주 대법제자를 때리고 욕했으며, 대법제자들은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악한 세력을 조장하는 것이니 반드시 박해에 저항해야 합니다. 감옥에서는 이치를 따질 곳이 없어서 가족 면회 때 저는 감옥의 이런 악행을 가족에게 알렸고, 가족들은 대법제자를 때린 범죄자들을 법원에 고소하며 법원이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 상소하겠다고 했습니다. 법원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범죄자들을 처벌했습니다. 범죄자들도 불복하며 어떤 경찰이 때리라고 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가족들은 계속해서 경찰을 고소했고 결국 이런 경찰들도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감옥에서 범죄자들이 대법제자를 때리는 현상이 사라졌습니다.
감옥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려워도 법공부는 해야 했습니다. 책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 대법제자 중 몇 명이 《전법륜》을 암기할 수 있었는데, 이 몇 명의 수련생이 암기한 것을 써 내려가고, 그 후에 서로 보충하고 수정해서 《전법륜》 이 보서를 전부 써냈습니다. 매 강의를 한 권으로 해서 모두 아홉 권을 필사했고, 이렇게 모두가 법공부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감옥의 감시 아래서 비밀리에 완성된 것입니다.
감옥은 도처에 감시가 있어서 연공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저는 사악의 명령과 지시를 따를 수 없었고 이 난관을 돌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밤, 모두가 쉴 때 저는 침상에서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동공을 했는데, 연공 음악이 없어서 숫자를 세었습니다. 당직 감옥경찰이 발견하고 중지하라고 명령했지만 저는 듣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가 화가 나서 와서 저를 강제로 앉혔고 앉자마자 저는 정공을 했습니다. 그가 또 저를 강제로 눕혔지만 저는 저항하지 않았고, 그가 가자 저는 또 일어나서 계속했습니다. 결국 감옥경찰은 어쩔 수 없이 저에게 다른 침상을 주며 말했습니다. “여기는 감시 사각지대니까 여기서 연공하세요.” 저는 마음속 깊이 감격해서 외쳤습니다. “사부님, 제가 성공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정상적으로 연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경찰이 저에게 ‘5서(五書,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또 비슷한 어떤 문서에 서명하라고 했지만 매번 제가 거절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생각만 굳게 했습니다. ‘어떤 서류도 쓰지 않는다! 어떤 서명도 하지 않는다!’ 저는 대법제자이고 대법제자라는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더럽힐 수 없으며, 더욱이 양심에 걸려 저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사에게 죄스러운 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절대 쓰지 않고 절대 서명하지 않는다’는 이 한 가지 생각은 반석같이 단단했고 어떤 사악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출옥하기 며칠 전까지도 감옥경찰이 와서 저를 협박하며 말했습니다. “쓰지 않고 서명하지 않으면 아예 나갈 생각을 하지 마. 게다가 형량도 추가될 거야.” 저는 생각했습니다. ‘당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외부의 수련생들이 이 소식을 듣고 제가 출옥하기 1주 전에 제 정보를 명혜망의 중국 종합란에 올렸고, 제가 출옥하는 날짜와 구체적인 시간을 써서 수련생들에게 저를 위해 발정념을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여기서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3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칠 때 저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아래, 수련생들의 도움 아래,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만 간다’는 신념 아래, 27명의 삼퇴 명단을 (이 명단은 제가 마음속에 꼭 새겨두었습니다) 갖고 당당하게 감옥의 대문을 나섰습니다. 저를 맞이하러 온 사람들 중에는 제 가족, 마을의 관리, 그리고 파출소 경찰이 있었고, 저는 무료로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경찰은 여전히 사흘이 멀다 하고 와서 저를 괴롭히며 ‘5서’를 쓰고 서명하라고 강요했고 저를 협박했습니다. “서명하지 않으면 또 들여보낼 거고, 게다가 시간은 더 길어질 거야.” 사악의 목적은 저를 강제로 수련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었고, 마을 간부들도 자주 여러 가지 구실로 저를 괴롭혔는데 목적은 돈을 갈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마주하며 저는 이런 환경이 제가 수련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고, 그래서 또 ‘행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유랑생활이 비록 고생스럽지만 사악의 괴롭힘이 줄어들어 세 가지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시 집을 나와 제가 살았던 도시로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친인척은 아니지만 친인척보다 더 나은 좋은 수련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건설 현장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전기기사 쪽이 바빠서 임시로 저를 도우미로 불렀는데, 저는 거기서 전기 지식을 배웠고 전기기사 자격증도 취득했으며, 도면 보는 법도 배웠습니다. 나중에는 전문가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도면을 저는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 자신도 불가사의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몇 년 밖에 공부하지 못했고, 게다가 문화대혁명을 만나서 아는 글자도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그 빽빽한 도면을 이해할 수 있다니요. 저는 이것이 대법이 저에게 준 지혜임을 알았고, 이는 대법의 신기함과 대법제자의 초범성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저는 일하면서 만나는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아파트에 가서 전선을 수리하고 전선을 개조하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 한 노부부를 만났는데 대화를 통해 그들이 모두 퇴직 직원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의 수용 능력에 따라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며, 그들은 책을 보고 법공부하고 연공하겠다고 했습니다.
동료들이 다시 목격한 대법의 신기함
하지만 수련 중에 업력의 전환, 심성 제고의 일은 자주 발생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전기톱으로 일하다가 실수로 톱날에 긁혔는데, 오른손의 앞 세 손가락이 다쳤고 당시 피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모두 놀라서 급히 저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의사가 한번 보더니 차갑게 말했습니다. “먼저 1만 위안의 보증금을 내고 입원 수속을 밟으세요.” 동료가 말했습니다. “먼저 응급 처치라도 해주세요. 아직도 피가 나고 있잖아요.” 의사가 또 말했습니다. “돈을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동료가 급해서 말했습니다. “보세요, 저 손이 그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힘줄이 끊어지고 뼈도 다쳤어요. 잘못하면 절단해야 할 수도 있는데 이게 무슨 병원이에요?” 다른 동료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돈이나 받는 병원이지 뭐.”
그들의 대화가 저를 깨우쳤고 저는 즉시 깨달았습니다. ‘맞아, 이곳은 일반인을 치료하는 병원이고 나는 대법제자이며 나는 초인인데 어떻게 그들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는가? 내가 잘못된 길을 갔구나.’ 깨달은 즉시 바로잡았습니다. 저는 함께 온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돌아가요, 치료 안 받을래요.”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아직도 피가 나고 있는데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대법을 수련하니까 사부님께서 관리하세요.”
숙소로 돌아온 후 저는 깨끗한 천을 찾아 손을 감쌌습니다. 비록 피는 멈췄지만 정말 열 손가락은 모두 심장과 연결돼 있다더니 정말 아팠습니다! 세 손가락이 점점 더 부어오르고 어떤 곳은 자주색으로 변했으며, 엄지손가락은 마비됐고, 둘째손가락은 구부러지지 않았으며, 가운뎃손가락은 감각이 없었고, 손 전체가 열이 났습니다. ‘아, 더 이상 보지 말자,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 한 뭐가 두려운가?’(시드니법회 설법)
저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어떤 법이 생각나면 그것을 외웠고,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손이 부기가 빠지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세 손가락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다시 공사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됐고 동료들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겪은 수련의 길을 돌아보면 집을 떠나 도망쳐야 했고, 벽촌의 친척 집에 의탁했다가, 또 도시로 들어가 일용직 노동자가 됐으며, 사악에게 납치돼 3년의 옥살이를 당했습니다… 비록 ‘구구팔십일난’은 겪지 않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고 천신만고였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줄곧 보호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수련의 길이 아무리 멀고 아무리 어려워도 저는 모두 굳건히 걸어갈 것이며 저의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사부님을 바르게 도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며, 사전(史前)의 서약을 이행하고,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층차가 한정돼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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