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종합보도) ’10·1′ 국경절 전후로 중공은 한편으로는 자화자찬하며 소위 ‘크고 좋은 형세’라는 허상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며 선량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파룬궁 단체를 계속해서 박해했다.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경찰은 파룬궁수련자의 딸을 인질로 삼아 70세의 쉬궈친(徐國芹)을 납치했고, 이로 인해 쉬궈친의 남편이 비통함과 분노로 뇌출혈이 발생해 사망했다. 중공이 가족을 인질로 삼는 행위에 대해 미국 체류 중국 인권변호사 우사오핑(吳紹平)은 이는 완전히 인질범의 행위이며 심각한 위법행위로, 중공의 인권 탄압이 갈수록 악랄해지고 법도 질서도 없어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명혜망 보도에 따르면, 2024년 10월에 최소 435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납치·괴롭힘을 당했다. 이중 납치는 186명, 괴롭힘은 249명이다. 60세 이상 고령 파룬궁수련자는 최소 67명이 납치·괴롭힘을 당했다. 가택수색 93건, 유랑 도피 4명, 12명이 강제 채혈·사진촬영·지문채취·음성녹음을 당했으며, 경찰이 가택수색하면서 강탈한 현금이 11만7천8백 위안이다. 또한 9명의 수련자가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당했다.
납치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쓰촨성 25명, 지린성 21명, 랴오닝성 20명, 허베이성 17명, 산둥성 17명 순이다. 괴롭힘이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헤이룽장성 69명, 지린성 47명, 쓰촨성 22명, 산둥성 19명 순이다.
명혜망 보도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중공이 납치·괴롭힌 파룬궁수련자는 4,915명(이중 납치 2,483명, 괴롭힘 2,432명)이며, 불법 판결 646명, 박해로 인한 사망 117명, 세뇌반 박해 61명이다.
월별 | 납치 | 괴롭힘 | 불법판결 | 박해로 인한 사망 | 세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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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 108 | 59 | 121 | 13 | 12 |
2월 | 83 | 59 | 56 | 10 | 0 |
3월 | 210 | 230 | 73 | 13 | 10 |
4월 | 323 | 265 | 84 | 6 | 4 |
5월 | 427 | 289 | 42 | 18 | 7 |
6월 | 318 | 342 | 71 | 9 | 5 |
7월 | 307 | 386 | 54 | 7 | 6 |
8월 | 269 | 254 | 40 | 10 | 5 |
9월 | 252 | 299 | 57 | 18 | 3 |
10월 | 186 | 249 | 48 | 13 | 9 |
합계 | 2483 | 2432 | 646 | 117 | 61 |
1. 10월, 186명의 파룬궁수련자 납치돼
박해 사례:
1) 무단장 경찰이 딸을 인질로 삼아 쉬궈친 납치·구금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70대 고령 파룬궁수련자 쉬궈친이 2024년 9월 말 유랑 도피를 강요당했다. 그녀의 딸이 경찰에게 유인되어 통제당했고, 경찰은 쉬궈친의 딸을 인질로 삼아 협박해 쉬궈친을 구치소로 납치했으며, 법원과 결탁해 그녀를 판결하려 했다. 쉬궈친의 남편은 비통함과 분노로 뇌출혈이 발생해 사망했다.
2024년 9월 말, 공안국 경찰과 법원 직원들이 쉬궈친의 집을 찾아와 전염병 기간에 쉬궈친이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찍혔다며 그녀를 판결하려 했다. 쉬궈친은 이러한 강제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짐을 챙겨 집을 떠났다.
그 후 쉬궈친은 딸의 전화를 받았다. 딸은 경찰이 자신을 통제하고 있으며, 쉬궈친이 오지 않으면 풀어주지 않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교환해야 한다고 했다. 쉬궈친은 딸을 걱정하여 자신의 인신자유를 대가로 딸을 풀어주게 했다.
쉬궈친의 남편은 이 소식을 듣고 공권력을 가진 소위 ‘인민경찰’이 딸을 ‘인질’로 삼는 것에 격분했고, 결국 뇌출혈이 발생해 사망했다. 쉬궈친은 구치소에 납치돼 인신자유를 잃었고 남편의 마지막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줄곧 선전하는 인권이 가장 좋은 시기이며, 중공 치하의 또 하나의 가정 파탄과 인명 사망 사례다.
중공이 가족을 인질로 삼는 행위에 대해 미국 체류 중국 인권변호사 우사오핑은 이는 완전히 인질범의 행위이며 심각한 위법행위로, 중공의 인권 탄압이 갈수록 악랄해지고 법도 질서도 없어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실 쉬궈친의 경우는 개별 사례가 아니다. 예를 들어 2019년 1월 7일, 칭다오 개발구의 경찰 몇 명이 관할구역 두둬쯔촌 파룬궁수련자 자오런샤(趙仁霞)의 집을 침입했다. 그녀가 집에 없자 경찰은 그녀의 남편 싱쯔강(邢子剛)을 파출소로 납치했다. 아들 싱하오둥(邢昊東)이 파출소에 가서 석방을 요구하자 경찰은 그를 협박해 자오런샤를 데려오도록 협박했다. 또한 2015년 4월 11일, 장시성 루이창시 펑청 파출소 경찰이 파룬궁수련자 왕이밍(王義明)의 집을 침입했다가 그를 찾지 못하자 그의 아들을 파출소로 납치했고, 10만 위안 가까운 재물과 현금을 훔쳐 갔다. 파출소에서 경찰은 24시간 동안 왕이밍의 아들에게 음식과 물을 주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고, 잠도 자지 못하게 했다. 왕이밍은 어쩔 수 없이 파출소에 가서 아들 대신 자신이 납치됐고, 이후 그는 루이창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 7년 옥고 치른 광둥 메이저우 수련자 푸쉐빙 또다시 납치·불법 구금
광둥성 메이저우시 파룬궁수련자 푸쉐빙(付雪冰·여)이 2024년 9월 10일 자택 건물 아래에서 메이저우시 메이장구 경찰에게 납치돼 메이저우시 청둥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최근 푸쉐빙이 10월 15일경 현지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되어 중공의 사법 박해를 다시 당할 위험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푸쉐빙은 올해 53세로 원래 중국은행 광둥성 메이저우시 지점 로비매니저였으며 업무능력이 우수했다. 중공이 1999년 7월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그녀는 파룬따파 진선인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20여 년간 여러 차례 괴롭힘, 가택수색, 납치, 구금, 불법 해고 등 각종 박해를 당했으며, 2014년에는 중공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다.
3) 푸순시 수련자 장후이창 선양 선허구 공안에 납치돼
랴오닝성 푸순시 둥저우구 파룬궁수련자 장후이창(張慧强)이 2024년 10월 21일 저녁 6시 30분경 자택 건물 아래에서 선양 국보대대(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부서)에 납치되어 이후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이웃의 말에 따르면 당시 그가 “어디 소속인가요?”라고 묻자 상대방이 “선양 국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건물 동쪽에 ‘공안’이라는 글자가 적힌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가족은 통보받지 못했고 그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장후이창이 선양 선허구 난타 파출소로 납치됐다가 10월 23일 밤 선허 구치소로 끌려가 불법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후이창은 약 58세로 대학 본과를 졸업했으며, 원래 푸순 에틸렌화공유한공사 계측기계실에서 고급 엔지니어로 일했다. 장후이창은 매우 선량한 사람으로, 직장에서 일할 때 말은 많지 않았지만 책임감과 직업정신이 매우 강했고 업무에 능통해 매년 ‘선진 생산자’로 평가받았으며 공장에서 공인된 기술핵심 인재였다. 가정에서 장후이창은 양가 부모에게 효도했다. 그의 가정은 매우 화목했고 아내는 현명하고 자녀는 효도했다. 어머니가 병환에 계실 때 아내는 전문적인 기술로 시어머니를 세심하게 보살폈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자, 장후이창은 진선인 파룬따파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기계실 주임 승진 자격을 부당하게 취소당했다.
2002년 5월 23일, 장후이창은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는데, 기계실 주임이 용건이 있다며 사무실로 부르더니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푸순 공안 1처 사복 경찰 관융(關永)과 장빈(張斌)이 벽가의 소파로 덮쳐 권총으로 관자놀이를 겨누고, 신속하게 수갑으로 그의 양손을 배 앞으로 단단히 채웠다. 이후 장후이창은 불법 가택수색을 당하고 당시 푸순석화총공사의 시내 사무실에 있는 10여 평방미터의 지하실로 끌려가 84시간 동안 각종 고문을 당했다. 이는 의자 결박, 양쪽에서 번갈아 구타[穿林海], 수면 박탈, 음식과 물 금지, 화장실 출입 금지, 개조된 호랑이 의자(고문 도구), 로프 묶기, 불로 수염 면도, 하반신 불로 지지기, 담뱃불로 열 손가락 지지기, 전기봉 고문, 정신적 박해 등이다. 박해에 참여한 인원에는 푸순 공안 1처, 푸순석화공사 보위처의 20여 명이 포함됐다.
장후이창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납치돼 징역 박해를 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됐다. 그의 어머니는 걱정과 근심으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됐고, 이후 호흡곤란으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4) 쓰촨 쑤이닝시 파룬궁수련자 양쓰전, 궈춘팡 등 6명 납치돼
쓰촨성 쑤이닝시 파룬궁수련자 샤오원쉐(蕭文學, 남, 70)·양쓰전(楊思珍, 여, 70) 부부는 16년간 유랑 도피를 강요당하다가 2024년 10월 14일 경찰의 미행과 납치, 가택수색을 당했다. 함께 납치된 사람은 궈춘팡(郭春芳, 여, 55)이며, 그들이 세 들어 살던 집주인 부부도 경찰에게 납치되어 가택수색을 당했다. 경찰이 집 주변에 매복하고 있다가 파룬궁수련자 양밍화(楊明華, 남, 60대)가 그곳에 가자 납치했다.
샤오원쉐는 1954년 11월생, 양쓰전은 1954년 12월생으로 쑤이닝시 난창 마쭝링촌 6사의 농부였으며, 그곳이 철거되자 촨산구 푸위안루 싱원 소구로 이주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양쓰전은 8차례 납치 구금, 4차례 세뇌반, 수차례 불법 가택수색과 괴롭힘, 한 차례 거리 조리돌림, 한 차례 강제노동 박해, 한 차례 호적 말소를 당했고, 신분증이 없어 16년간 유랑 도피를 강요당했으며, 이는 가족에게도 정신적인 상처와 경제적인 손실을 주어 늘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했다…
샤오원쉐 부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에 유랑 도피를 강요당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궈춘팡은 원래 다잉현 후이마진의 우수 교사였으며 10여 년간 유랑 도피를 강요당했다. 그들은 톈펑가의 한 민가 위아래층에 세 들어 살았는데, 2024년 10월 14일 쑤이닝 국보, 공안이 다잉현 공안국 20여 명의 경찰과 함께 납치, 가택수색을 했다. 불법 행위자들은 세 명의 수련자를 끌어내려 자루로 그들의 머리를 덮고, 협박하기를 “이미 4개월 넘게 미행했다. 한 사람을 잘못 잡더라도 파룬궁수련자 한 명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했다. 이들 세 명의 파룬궁수련자는 다잉현으로 끌려가 불법 구금됐다고 한다.
5) 산둥성 수련자 류빙환, 광둥서 납치된 후 거주지 감시
산둥성 지난시 파룬궁수련자 류빙환(劉兵歡, 여)가 유랑 도피를 강요당하다가 2024년 9월 29일 광둥 칭위안시 양산현에서 경찰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납치했고, 그녀는 박해로 신체가 허약해져 10월 3일 ‘거주지 감시’ 조치됐다.
9월 29일 밤, 류빙환은 칭위안시 양산현 국보와 파출소가 공모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납치됐고, 양산 정신병원으로 강제 이송돼 묶인 채 진정제를 여러 번 맞았다. 양산현 공안은 거짓 자백을 조작해 그녀를 칭위안 칭신 구치소로 강제 이송했고, 류빙환의 혈압이 200이 넘자 다시 칭위안시 제3인민병원(정신병원)으로 강제 이송해 진정제와 수액을 맞게 했다. 수차례의 불명약물 투여로 인해 그녀는 일시적 기억 상실, 정신 혼미, 신경 둔화를 겪었다.
10월 1일, 그녀의 남동생 류빙레이(劉兵磊)가 양산현에 도착해 양산현 구치소, 구류소, 현지 파출소를 찾아다녔지만 류빙환의 소식을 얻지 못했다. 그는 또 현지 병원을 찾아가 9월 29일 밤에 국보가 류빙환을 병원으로 납치했다가 9월 30일에 다시 데려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월 3일 밤 11시, 류빙레이는 누나와 지난 공안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누나의 퇴원 수속을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칭위안시 제3병원에 도착했을 때 류빙환이 박해로 인해 초췌하고 신체가 허약한 것을 보았다. 그녀의 남동생은 그제서야 류빙환이 납치된 이후 약 5일간 단식 항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서야 2년 10개월 만에 남매가 재회했다. 지난 경찰은 류빙환의 현재 건강 상태를 감안해 남동생에게 누나의 처분보류나 감시거주 보증인이 되라고 요구했지만 류빙환 남매는 거절했다. 그들은 류빙환에게 강제로 거주지 감시 조치를 했고, 으름장을 놓기를 “당신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신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2. 10월, 249명의 파룬궁수련자 괴롭힘 당해
박해 사례:
1. 선양 톄시 분국 치궁 파출소 경찰, 주민 주택 침입해 괴롭혀
중공이 파룬궁을 25년간 박해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파룬궁수련자와 그 가정에 대해 법을 무시하고 불법 가택수색, 납치를 자행했다. 2024년 10월 18일 저녁 8시경, 톄시 분국 치궁 파출소의 류잉푸(劉英夫) 등 3명의 경찰이 톄시구에 거주하는 왕차이샤(王彩霞)의 집을 찾아가 밖에서 계속 세게 문을 두드리며 오랫동안 가지 않았고, 소리도 매우 컸다. 당시 왕차이샤는 집에 없었고 그녀의 남편만 있었다. 남편은 경찰의 불법 행위가 이웃을 시끄럽게 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줬다.
들어온 세 명의 경찰은 모두 경찰복을 입지 않았고,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수색 영장도 없었다. 왕차이샤의 남편이 신분증을 요구하며 주도하는 경찰 류잉푸의 이름과 경찰 번호를 기록했다.
류잉푸는 몇 개의 명단을 들고 있었고 몸에는 법집행 녹화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왕차이샤의 집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한 방씩 불법으로 촬영, 사진 촬영을 했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 그는 혼잣말로 “이 집에는 아무것도 없네”라고 했다. 그는 왕차이샤의 남편에게 “집에 책이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왕차이샤의 남편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류잉푸는 “왕차이샤와 사진도 찍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왕차이샤가 밤 10~11시에나 귀가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떠났다.
왕차이샤의 남편은 심각한 심장병을 앓고 있어 평소 약으로 건강을 유지하는데, 특히 경찰이 전화하거나 방문해 괴롭힐 때 놀라서 즉시 심장병이 발작해 니트로글리세린을 먹어야 증상이 완화된다.
톄시 분국 치궁 파출소의 불법 경찰들이 전화하고 불법으로 가택을 침입해 괴롭힘으로써 파룬궁수련자와 그 가족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혔고 국민의 정상적인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2. 수련자 차이롄바오, 선양 타오셴 공항에서 지린 위수 경찰에게 불법 체포돼
2024년 9월 14일, 랴오닝 파룬궁수련자 차이롄바오(才連寶)가 상하이 출장을 마치고 비행기로 선양에 돌아왔다. 그날 밤 10시 30분경 선양 타오셴 공항에 도착해 출구 홀에 도착했을 때 4, 5명의 자칭 지린 위수 경찰이라는 일당에게 불법 체포됐다. 이중 한 명만 경찰복을 입고 법집행 녹화기를 착용했고 나머지는 모두 사복 차림이었다. 이들은 어떠한 증명서도 제시하지 않고 소환장도 없이 차이롄바오의 전화번호, 신분증 번호, 집 주소 등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조사했다. 차이롄바오가 “당신들은 지린의 경찰인데 날 왜 찾나요?”고 묻자 그들은 “선양 경찰을 불러도 됩니다”라고 했다.
차이롄바오는 그들에게 “날 왜 찾습니까? 내가 비행기에서 내린 것은 매우 정상적인데 왜 다른 사람에겐 묻지 않습니까? 내가 살인 방화를 했나요, 아니면 마약 밀매를 했나요?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나요?”라고 따졌다. 그들은 혐의가 있다고 했고, 차이롄바오가 “무슨 혐의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차이롄바오에게 공항 당직실에 가서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차이롄바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당직실에서 종이 한 장을 가져와 몇 분 만에 현장에서 자문자답식의 ‘조사 기록’을 완성했는데, 거기에는 차이롄바오의 개인정보와 파룬궁을 수련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문답이 있었고, 답은 ‘수련한 적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차이롄바오에게 서명과 지장을 강요했고, 응하지 않으면 못 가게 하겠다고 했다. 협박과 위협, 교착 상태에서 차이롄바오는 마지못해 타협하여 서명했고(이후 서명을 무효화 한다는 엄정성명을 함), 그는 이 종이 뒷면에 ‘상하이 경찰 협조 수사’라는 글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차이롄바오의 가족이 그날 밤 공항에 마중 나와 공안 인원들의 법집행 위반, 무단 체포, 시민 괴롭힘, 시민의 정상적인 이동 방해, 시민에게 신앙 포기를 강요하는 등 일련의 위법 범죄 행위를 직접 목격했다. 관련자들은 이미 ‘경찰법’, ‘헌법’, ‘형법’ 등 관련 규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 가족은 이에 대해 매우 분노하며 그들이 사람 가죽을 쓰고 인간이 할 일이 아닌 짓을 하고 있다며, 납세자의 돈을 받으면서 시민을 탄압하고, 한밤중에 공항을 점거하면서도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다고 꾸짖었다. 가족은 상대방과 오랫동안 논쟁했다.
이에 앞서 며칠 전, 차이롄바오는 이미 지린 경찰의 전화를 받았는데, 현재 국가에 무슨 소위 ‘정책’이 있다며 “만나서 당신의 ‘꼬리표’를 제거해드리겠습니다” 등의 말을 했다. 다음 날 누군가 차이롄바오의 휴대폰에 위챗 추가를 강요했고, 차이롄바오는 업무상 고객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공안 인원이 한 짓이며, 위챗을 추가한 목적이 그를 더 쉽게 도청 감시하고 위치 추적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차이롄바오의 현재 거주지와 신분증상 주소는 모두 지린성이 아닌데, 현재까지 지린 위수 경찰이 차이롄바오 박해에 참여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제 이 일당의 사진을 공개하여 악을 폭로하며, 관련 정보에 대해 아는 분들의 보충과 확인을 바란다.
3. 후베이 경찰이 ‘실적’ 위해 악행, 황쉐쥔 집 떠나 도피 강요당해
후베이성 우한시 훙산구 경찰이 갑자기 우한에서 일하고 있던 안루시 파룬궁수련자 황쉐쥔(黃學軍)을 납치했는데, 안루 국보 경찰을 대신해 황쉐쥔을 심문한다며 그가 도망자라고 했다. 2023년 11월에 이미 안루 경찰이 그를 인터넷에 올렸다고 했다. 황쉐쥔은 어리둥절했는데, 그 시기에 자신은 계속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안루시 공안국이 인터넷 도망자 체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황쉐쥔을 인터넷에 올려 숫자를 채운 것이었다.
황쉐쥔은 그날 훙산구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다음날 오전 11시경, 안루시 공안국 국보대대 대대장 저우차오양(鄒朝陽), 부대대장 왕칭핑(汪淸平), 경찰 천아이칭(陳愛淸)이 훙산구 구치소로 와서 황쉐쥔을 안루시로 끌고 가 안루 구치소에 불법 구금했다.
안루시 국보대대가 황쉐쥔에 대해 사법 박해를 하려 하자 현지 검찰원 직원이 황쉐쥔을 심문한 후 불구속·석방 결정을 내렸다. 5월 24일 저녁, 국보대대장 저우차오양이 검찰원의 결정서를 들고 구치소에 와서 또 거주지 감시 결정서를 내밀어 황쉐쥔에게 서명하라고 했지만 황쉐쥔은 거부했다. 이에 저우차오양은 그날 밤 황쉐쥔을 안루시 버란진 창송 ‘관애지가(관심과 사랑의 집)’ 세뇌반으로 끌고 가 ‘전향(수련 포기)’ 박해를 했다. ‘610’ 주임 양쥔원(楊俊文)이 황쉐쥔의 ‘전향’ 박해에 참여하고 주도했으며, 그는 황쉐쥔을 위협하며 협조하지 않으면 7년 형을 선고하겠다고 했다. 황쉐쥔은 세뇌반에서 40여 일간 박해를 당하다가 7월 8일이 되어서야 석방됐다.
황쉐쥔이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경찰과 지역사회 직원들의 괴롭힘이 계속됐다. 지역사회 직원이 집에 와서 사진을 찍고, 국보대대장 저우차오양은 황쉐쥔에게 정법위원회의 요구라며 공안국에 와서 동영상을 찍으라고 했고, 협조하지 않으면 판결하겠다고 했으며, ‘610’ 주임 양쥔원은 황쉐쥔을 못 만나면 수배하겠다고 위협했다. 한 달 후 ‘610’ 주임 양쥔원이 황쉐쥔의 집에 침입해 또다시 황쉐쥔에게 창송 세뇌반에 와서 5, 6분짜리 동영상을 찍으라고 했는데, 이는 공을 세워 상을 받고 다른 파룬궁수련자들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황쉐쥔이 모두 단호히 거절하자 양쥔원은 독기를 품고 말했다. “사법 절차를 밟아 당신을 감옥으로 보내겠다. 당신의 관짝을 보기 전엔 눈물도 안 날 것이다.” 다시 박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황쉐쥔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멀리 떠나 유랑 도피를 강요당했다.
황쉐쥔은 원래 안루시 푸아이병원 약제사로 일했으며 직장에서 성실하고 재치 있었으며, 환자들을 위해 많은 실질적인 일을 했고 자주 사비로 사람들의 어려움을 도왔으며,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 좋은 사람이라고 의사와 환자들이 인정했다. 그러나 이처럼 진선인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 사람이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당해 병원에서 불법 해고되고, 수차례 납치, 구금, 강제 세뇌, 불법 강제노동, 판결을 당했다. 이제 그는 또다시 유랑 도피를 강요당했다.
4. 허난 카이펑시 파출소가 파룬궁수련자 양아이친에게 호구 부여 거부
허난성 카이펑시 파룬궁수련자 양아이친(楊愛勤)이 옥고에서 나온 지 2년 9개월이 지났지만, 현재도 무호적자(호구가 없음)이며 신분증도 없는 상태다. 그녀가 속한 카이펑시 시스먼 파출소가 그녀의 호구 회복 수속을 해주지 않고 있다. 양아이친은 신분증이 없어 생활, 생존, 이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사회에서는 신분증이 없으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휴대폰 사용에는 실명 인증이 필요하고, 은행 카드 개설에는 신분증이 필요하며, 이동 시 차표 구매에도 신분증이 필요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데도 신분증이 필요하며, 숙박에도 신분증이 필요하다. 선량한 각급 지도자 여러분께서 그녀의 ‘호구 회복’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바란다.
양아이친은 한족으로 현재 60세이며, 원래 호적지는 카이펑시 바오난루 47호원 3호이고, 현재는 카이펑시 진밍다다오 전업국 가속원 3동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1999년 6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원래 앓고 있던 여러 가지 괴질이 사라졌다.
양아이친은 2015년 7월 다시 납치돼 조작된 죄명으로 기소됐고, 6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받아 2022년 1월 14일 출소했다. 그녀가 시스먼 파출소 호적실에 가서 호구 회복 수속을 하려고 했을 때, 여경은 “당신의 호구는 어느 어느때 말소됐습니다”라고 말하며 수속을 해주지 않았다. 이어서 그녀는 또 관할구 경찰 리원창(李文强)을 찾아갔는데, 그는 그녀의 석방증명서에 있는 신분증 번호가 그녀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또 컴퓨터를 열어 양아이친에게 그녀와 같은 신분증 번호를 가진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며 여전히 호구 회복 수속을 해주지 않았다.
‘주민신분증법’ 제1장 제3조는 “공민 신분번호는 각 공민의 유일하고 종신 불변의 신분 코드이며, 공안기관이 공민 신분번호 국가표준에 따라 편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한 신분증 번호를 어떻게 두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가? 게다가 이는 관련 기관의 과실이다! 사실 그들이 양아이친의 호구 수속을 해주지 않는 주요 원인은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양아이친이 박해를 당한 과정을 진술한 것이다.
나는 1999년 6월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원래 앓고 있던 여러 가지 괴질이 사라졌으며, 또한 사람됨의 이치를 깨달았고, 대법에서 큰 이로움을 얻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무리가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나는 여러 차례 납치돼 카이펑시 구류소,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고, 여러 차례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당했으며, 갈취, 강탈당한 금액이 10만 위안 정도이고, 가족들에게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안겨줬다. 남편은 여러 차례 연루되어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됐고 2016년 8월에 사망했다. 80세에 가까운 아버지도 임종 시에 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지 못했다. 내 딸이 아이를 낳을 때도 나는 그녀를 돌봐주지 못했다.
첨부:
2024년 중국 불법 납치 상황 통계표(244KB .xlsx)
2024년 중국 불법 괴롭힘 상황 통계표(211KB .xlsx)
2024년 중국 불법 세뇌 상황 통계표(19KB .xlsx)
원문발표: 2024년 11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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