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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법회] 불가능에서 잘해내기까지

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2년에 법을 얻었고, 수련 중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2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깨달음의 순간에 격렬한 반응이나 신기한 일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피심 속에서 날이 갈수록 자신의 성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거부에서 책임지기까지의 세 가지 일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편집 디자인에 참여하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에포크타임스’가 주간에서 일간으로 바뀌면서 많은 수련생의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학교의 한 수련생이 저에게 편집 디자인 항목에 참여하고 싶다며, 저와 다른 교사 수련생들에게도 함께 참여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거절했습니다. 미적 감각이 형편없는 제가 어떻게 감히 디자인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시 찾아와서 정말 인력이 부족하다며, 자신은 워드도 서툴지만 참여했는데 저는 컴퓨터 조작이 더 능숙한데 어떻게 참여하지 않을 수 있냐고 했습니다. 이렇게 반강제로 편집 디자인 교육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처음 연습할 때는 한 페이지를 완성하는 데 몇 시간이나 걸렸고, 몇 번은 밤새도록 작업해야 글자와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어떻게 한 시간 안에 한 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끊임없는 연습 끝에 정말로 한 시간 정도면 한 페이지의 초안을 완성할 수 있게 됐고, 정식 편집자가 됐습니다. 제가 편집한 페이지가 처음 인쇄돼 나왔을 때 정말 성취감이 컸습니다. 저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편집은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교정과 수정 작업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보통 1~2시간이 걸렸고, 때로는 초기 편집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수정하다가 화가 나서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컴퓨터 화면을 향해 욕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수련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시에 편집하기 위해 많은 일정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이 기간 자녀들과 남편의 이해와 협조에 감사를 전합니다. 제가 일할 때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집안일을 분담해 제가 편안히 일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이제 자녀들은 유치원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저와 남편도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편집할 때 편집자, 교정자, 디자이너는 하나의 팀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각자 다른 컴퓨터 앞에 있었지만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페이지에 책임을 지고 독자들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하고 보기 좋은 신문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하고 못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정해진 시간 안에 편집 작업을 완성할 수 있게 됐고, 수련생들과 함께 신문 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즐겁고 보람찬 일이 됐습니다.

2. 요고(腰鼓)팀 참여하기

처음 요고팀 공연을 봤을 때 그들은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많은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웅장한 기세를 보여줬습니다. ‘나도 요고를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음치에 운동신경도 없고 동작도 둔한 제가 아무리 부러워해도 절대 요고는 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 수련생들이 저에게 아이들과 함께 주말 명혜학교에 참여하라고 격려했습니다. 명혜학교에서 아이들은 다른 어린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고, 나중에는 요고 연습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배우는 속도가 빨라서 곧 퍼레이드와 공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어린 수련생들이 퍼레이드를 할 때 어른들이 함께 했는데,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라 퍼레이드 도중에 지치면 짜증을 내고 울면서 걷거나 손을 들지 않는 등 갖가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 수련생들이 달래고 구슬리며 간식으로 보상하면서 겨우 퍼레이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인식이 높아지면서 부모들은 더 이상 이런 외부적인 대가를 제공하지 않고, 어린 수련생들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법을 실증하고 퍼레이드에서 신의 상태를 보여주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퍼레이드 때 손을 높이 들고 웃는 얼굴을 유지하라고 요구하자, 아이들이 바로 “엄마는 왜 직접 해보지 않으세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이 한마디가 청천벽력 같았고 그래서 저는 요고를 메고 요고팀 연습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동작이 어색한 것은 물론이고 음악도 이해하지 못해서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습할 때 중간부터 시작하면 음악을 알아듣지 못해 다른 사람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작을 쉽게 기억하기 위해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의 무용 수업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선생님이 우리에게 무용 노트를 작성하라고 하셨는데, 간단한 기호로 박자에 맞춰 각 박자의 동작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연습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노트가 있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방법으로 각 박자의 북소리를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보면서 간단한 기호로 한 박자 한 박자씩 동작을 기록해 요고의 간단한 악보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를 보면서 박자를 세고 동작을 맞추며 연습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어느 날 문득 음악의 차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됐고 동작과 음악이 맞아떨어졌습니다. 마침내 저도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요고팀의 방식으로 법을 실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말 명혜학교에서 저는 이제 어린 수련생들과 함께 북을 칠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옆에서 응원만 하는 응원단이 아니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어린 수련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맡게 됐는데, 어린 수련생들에게 정확하게 요고를 가르치기 위해 모든 동작의 세부 사항을 정확히 알아야 했기에 더욱 열심히 연습에 참여해 동작을 완벽히 익혔습니다.

저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지만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음악을 이해하고 동작을 조화롭게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학습 과정을 통해 《전법륜(轉法輪)》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는 내포를 진정으로 체득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새로 들어온 요고팀 팀원들의 동작을 지도할 수 있게 됐고, 처음에 동작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었던 간단한 악보도 다들 인정해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고팀 수련생들은 간단한 악보를 참고해 새로운 요고 곡을 더 빨리 익히고 동작을 숙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매번 퍼레이드 때마다 요고팀은 가장 마지막에 출발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깁니다. 하지만 출발할 때는 모두가 기운이 넘치며 정법의 길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종착점에 도착하면 수련생들이 자주 우리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는데, 이는 그 퍼레이드가 원만히 성공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박수는 격려이자 독려이며, 우리가 더 잘하기를 기대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부님께서 《홍음 2》의 〈요고대〉에서 “법고(法鼓) 소리소리 다 真善忍(쩐싼런)”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요고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3. 신문 배달 참여하기

은퇴 후 저는 에포크타임스에서 전임 자원봉사자가 됐고, 사무실 담당자에서 발행 업무를 거쳐 마지막으로 신문 배달원이 됐습니다.

2년여 전, 한 배달 구역의 배달원이 사직하면서 대체 인력을 찾지 못하자 신문사는 배달 구역을 여러 작은 구역으로 나누고 신문사 직원들의 배달원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물어보았고, 당연히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저녁에 편집도 해야 하는데 내 차례까지는 오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서 남편의 의견을 물었더니 그도 즉시 반대했기에 거절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사 책임자가 다시 와서 정말 인력이 부족하니 잠시만 도와달라며, 배달에 구멍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제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용기는 없었지만,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우리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승낙했습니다. 남편에게는 3개월만 도와주고 신문사가 사람을 찾을 시간을 주자고 했습니다. ‘참으면 3개월은 금방 지나갈 거야, 오래 할 일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배달을 시작하자마자 하루하루를 세며 버텼습니다. 신문사가 곧 누군가를 찾아 인수인계할 것이라 생각했고, 설령 찾지 못하더라도 3개월 후면 최선을 다했으니 깨끗이 발을 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3개월이 지났지만 사람을 구하지 못해 저는 계속 배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신문사는 저를 대체할 사람을 찾지 못했고 저는 오히려 제 서약을 찾게 됐습니다. 지금은 배달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배달 조정 업무를 맡는 주임까지 맡게 됐습니다.

실제로 배달을 해보니 그 고충을 알게 됐습니다. ‘에포크타임스’는 진상을 알리는 중요한 통로이지만, 신문을 구독자에게 전달하는 이 마지막 한 걸음을 누가 해야 할까요? 배달에 참여하기 전에는 ‘누군가 하면 되겠지, 나한테 오지만 말았으면, 난 못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제 깊이 체득했습니다. 사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정말로 해봐야만 알 수 있고, 하기 전의 모든 이유는 자신이 책임지기 싫어서 대는 핑계일 뿐이었다는 것을요.

선배 배달원이 제게 해준 말이 있습니다. “배달은 가장 간단해요. 신문만 구독자 우편함에 넣으면 되니까 달성률 100%예요.” 맞습니다!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매 배달일마다 100% 임무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대었던 온갖 핑계는 실제로 배달하면서 하나씩 해결됐고, 진짜 문제는 제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걸 마음속으로는 다 알지만, 정작 자신이 직면해야 할 때 과연 기꺼이 할 수 있을까요?

배달은 정말 희생만 있고 얻는 게 없을까요? 사실 얻은 게 매우 많습니다. 배달에 참여하기 전에는 새벽 풍경을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배달하면서 하늘이 어둠에서 밝아지는 것을 보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함께하며 아름다운 하루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자주 늦잠을 자서 지각하거나 아예 연공을 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배달을 마치고 연공장에 가서 동공(動功)을 하고 집에 와서 정공(靜功)을 합니다. 배달 덕분에 정상적인 연공을 회복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법 암기를 시작했습니다. 법 암기가 중요하다는 걸 늘 알고 있었지만, 항상 시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법 암기를 꾸준히 하지 못했습니다. 배달을 시작하고 나서 매일 같은 길을 가고, 같은 신호등을 기다리며, 같은 풍경을 보면서 잡념이 들곤 했습니다. 한번은 배달하는 수련생이 배달하는 시간을 이용해 《홍음》을 외운다는 심득을 나누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저도 법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휴대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오래된 휴대폰을 하나 구해 《전법륜》 내용을 넣어두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외울 내용을 보거나 제가 외운 것이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법을 외우니 머릿속에 잡념이 없어졌고, 한 단락 한 단락씩 법을 외웠습니다. 이렇게 배달 시간을 이용해서 벌써 제5강까지 외웠습니다. 매일의 배달길은 저의 법 암기 여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배달을 통해 이익심과 비교심도 없앴습니다. 제 배달 구역은 매우 넓지만 부수가 많지 않아 매일 2시간 가까이 걸려 배달합니다. 배달비가 있긴 하지만 저에게는 오토바이 배터리 비용과 수리비를 겨우 맞출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비슷한 신문 부수인데 어떤 사람은 내가 쓰는 시간의 절반으로 끝내고, 비슷한 배달 시간인데 어떤 사람은 내 배달량의 두 배 이상을 한다니, 내 배달 구역은 정말 효율이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수련생이 한 시간 넘게 걸려 한 자릿수의 신문만 배달하면서도 여러 해 동안 꾸준히 배달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 부부 수련생은 함께 배달하면서 비 오는 날 차로 배달할 때는 인력도 두 배로 들고 기름값까지 손해 보는데도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저를 돌아보니 퇴직금도 있고 경제적 압박도 없으며 시간도 맞출 수 있는데 계산이나 하고 있으니 정말 우스웠습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습니다. 진정한 ‘보물 전달자’가 되어 ‘에포크타임스’라는 귀중한 진상을 구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에포크타임스의 진상 알리기의 마지막 한 걸음을 완성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처음에는 거절하고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이제는 더 이상 책임을 미루지 않고 기꺼이 맡아 자신이 수련해야 할 부분을 수련하게 됐습니다. 비록 놀라운 기적은 없었지만 이 길을 걸어오면서 착실한 수련과 제고의 과정이었음을 체득했습니다.

이상은 제 개인적인 심득이며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4년 대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31/48434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0/31/4843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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