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위스 대법제자
[명혜망]
자비로운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법회에 참가해 심득을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90년대생 대법제자로, 몇 년 전 유학을 와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가 올해 초에 새롭게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어린 시절 대법과 인연을 맺었으나 집착이 너무 커서 소중히 여기지 못하다
저는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법을 얻으셨고 저도 따라서 연공 동작을 배웠으며 부모님과 다른 수련생들이 《전법륜(轉法輪)》을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홍음(洪吟)》을 반복해서 외우시는 것을 듣다 보니 저도 그중 많은 시를 외울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는 수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단지 마음속으로 대법이 좋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와 거짓말로 가득 찬 선전도 대법이 아름답다는 저의 확고한 신념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언니가 수련을 시작하면서 저도 영향을 받아 한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구세력과 마, 사상업력(思想業力) 등의 요소들이 제가 법을 얻고 수련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머릿속에서 배척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생각이라고 여겨 점차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당문화(공산당 문화)의 오랜 주입과 부모님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면서 오랫동안 대법 환경을 벗어나 있었기에, 저의 오성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석사과정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신의 존재를 극도로 의심하게 되어 과학만 믿게 됐습니다. 더 나쁜 것은 도덕이 급격히 하락하는 이 사회에서 제 주변은 위선과 거짓말, 교활함과 이기심, 색정과 음란, 동성애, 안일함과 타락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미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할 줄 몰랐고 어머니께서 법에 따라 저를 가르치신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 극도로 더러운 환경 속에서 저는 전통과 도덕에 어긋나는 일들을 저질렀고 많은 나쁜 습관이 생겼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잘못된 사랑관의 영향으로 저는 결혼과 연애 관계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고 사랑을 너무 중요하게 여겼으며, 정과 욕망의 바다에서 타락하고 길을 잃었습니다. 연인 간의 갈등 등으로 죽을 듯한 고통을 자주 겪었고, 혼자 있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게 됐습니다. 교제했던 몇몇 친구들도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사귀었는데, 그들이 가진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이 저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쳐 오랫동안 대법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교란이 됐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박사과정의 엄청난 압박감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고 도피를 선택했으며, 많은 시간을 휴대폰 게임의 가상 세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고 자주 밤을 새웠습니다. 게임을 할 때는 마성이 매우 커서 사람이 매우 짜증 나고 화를 잘 내게 됐으며, 게임에서 질 때마다 자신을 때리기도 하고 게임 속 팀원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저는 또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늘 제 성질대로 했습니다. 실험실에서 출근 시간에 대한 엄격한 요구가 없었기에 늦잠을 자고 게으른 습관이 생겼으며, 실험실에 매우 늦게 가서 공부하고 일했기 때문에 많은 일이 계속 미뤄지고 제때 잘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생활도 지저분해져서 제 방은 늘 엉망이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우울하고 답답했으며 신체 상태도 매우 나빠져서 저혈당이 생기고 자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목뼈와 손가락 관절, 무릎에도 모두 손상이 있었고, 극도의 답답함 속에서 한순간 죽어버리고 싶다는 사악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한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사부님께서는 결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새롭게 대법 수련으로 돌아온 후 이에 대해 특히 깊이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사실 저는 한 번도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법을 얻은 경험이 있어서 명백한 면이 있었고 법의 제약이 있었으며, 심성도 일반 속인과는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갈등에 부딪혔을 때 비교적 잘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주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이용당해도 결코 사람들과 암투를 벌이지 않았고, 당시의 그 경지에서 선의를 베풀고 남을 위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과정의 극도의 소극적인 고통 속에서 저는 천천히 걸어 나왔고, 제 성격도 신기하게도 활달해졌으며, 더욱 포용하고 양보할 줄 알게 됐고, 주변 사람들을 인내심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휴대폰 게임에 대한 중독도 신기하게 내려놓았고 정말 할 일이 없을 때만 가끔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법의 힘이 계속해서 저를 변화시키고 있고 사부님께서 계속 저를 관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제가 이러한 고통을 겪은 후에 속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서 지수’가 높아지고 심경이 높아지고 성숙해졌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 이후로 저는 자주 허전함을 느꼈고 아무리 높은 학위를 받고 존경받으며 좋은 직장과 좋은 수입을 얻어 세상을 마음껏 여행하고 즐길 수 있다 해도 이런 것들이 저를 진정으로 충실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강렬한 생각에 저는 집에 가보기로 마음먹었고, 가족의 온기가 제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귀국하기 전에도 실험실의 진행 중인 실험 작업을 어떻게 적절히 처리해야 할지 몰라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신기하게도 아주 순조롭게 해결됐습니다. 귀국하던 날에는 아무 예고도 없이 이곳의 첫눈이 내렸는데, 눈이 매우 많이 와서 그날 모든 항공편이 영향을 받았고 제가 탈 비행기도 취소됐습니다. 당황스럽고 불안한 기다림 속에서 저는 새로운 항공편이 당일 자정 무렵으로 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공항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린 끝에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10년간 헤매다가 다시 법연(法緣)을 맺고, 마침내 수련의 의미를 깨닫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께서 기회를 찾아 사부님의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를 가져다주셨는데, 사실 저는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잘 맞춰드리려는 생각으로 대했습니다.
제가 석사과정을 시작한 이후로 성격이 크게 바뀌었고 어머니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셨기에 오랫동안 제 상황을 매우 걱정하셨습니다. 매번 집에 와서 만날 때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저를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오게 하려고 시도하셨고, 적어도 대법에 대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야만 제가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시도에 점점 더 짜증을 냈고, 한번은 당시 기분이 좋지 않아서 험상궂은 얼굴로 어머니와 이 일로 다툰 적도 있었습니다(당시 저는 제 언행이 매우 부적절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나중에 어머니께서 예전 일을 이야기하실 때 저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다시 경문을 건네주실 때 저는 곧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읽지 않으면 어머니가 분명히 마음 아파하실 것을 알았고, 게다가 두 편의 경문이 그리 길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읽고 나서 저는 매우 충격을 받았고 제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에 어머니께서는 집에서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녹음을 틀어주셨는데, 저는 갑자기 온몸의 잠자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사부님의 설법을 매료된 듯이 듣게 됐습니다. 며칠이 더 지난 후 어머니께서 저에게 부모님과 함께 법공부를 하자고 하셨고, 저는 기쁘게 그분들과 함께 밤에 법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출국해 유학을 계속하기 전날 밤, 저는 한 가지 꿈을 꾸었는데 꿈속은 마치 고등학교 때의 물리 시험이 끝난 후 공개 채점하는 장면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른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셨는데 모두들 아주 잘 봐서 거의 만점에 가까웠습니다. 제 시험지를 채점할 때 저는 제 답이 정답과 항상 조금씩 차이가 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터럭만큼 차이가 나도 천 리의 오차가 됐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100점을 주셨습니다. 학생들이 보고는 모두 제가 0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도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으시고 이 문제에서 점수를 조금 주시고 저 문제에서 점수를 조금 주시더니 마지막에 66점을 주셨고, 학생들도 모두 선생님의 채점 방식에 설득되어 이 점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저는 이미 눈물이 얼굴을 적시고 있었고, 서둘러 사부님의 법상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오랫동안 큰절을 올렸습니다. 사실 사부님의 두 편의 경문을 읽고 다시 한번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에 저는 다시 수련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계속 걱정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법을 알았고 사부님께서 결혼과 연애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엄숙하게 말씀하신 것도 알았으며, 어머니께서도 이 일에 대해 거듭 당부하시며 반드시 잘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진해서 타락해서 전통에도 맞지 않고 법에도 맞지 않는 행동을 했기에, 저는 이제 더 이상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때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보지 않아서 이 잘못이 실제로 제가 법을 얻는 데 장애가 됐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꿈은 당시 저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늘 저를 위해 생각하고 계시며, 제 걱정을 보시고는 저를 여전히 제자로 인정하시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 꿈은 또한 제게 수련할 것을 결심하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명명백백하게, 그 어떤 사람의 영향도 받지 않고 스스로 내린 결정입니다.
대법이 날 더 좋은 사람이자 진정한 수련인으로 변화시키다
새롭게 수련에 들어선 후, 저는 예전에 법 안에 있을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출국하기 전에 저는 이미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시작했습니다. 출국할 때 언니가 사부님의 모든 법을 USB에 다운로드해 주었습니다. 국외로 돌아온 후 저는 그 내용을 모두 아이패드로 옮겼습니다. 제가 혼자서 다시 한번 《전법륜》을 읽을 때, 저는 눈물이 얼굴을 가득 적시도록 울었고 오랫동안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저는 수없이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경험과 감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공부하고 제 경험과 결합해보니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전에는 부모님을 의지하여 법을 접했고, 또한 좋지 않은 집착심을 품고 법을 접했으며, 수련의 엄숙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진정으로 마음속 깊이 어떤 목적도 품지 않고 수련하고 싶어서 한 것이었기에 완전히 달랐고, 저는 진정한 대법제자가 됐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모든 대법제자들을 위해 하신 모든 것을 저를 위해서도 해주셨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하신 모든 것을 제 명백한 일면이 분명히 보았기에 저는 비로소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사실 이는 사존께 대한 무한한 감사였습니다.
저는 또한 사부님께서 제가 몇 년간 망가뜨려 놓은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국외로 돌아온 후 처음 며칠 동안 매일 밤 잠을 잘 때마다 매우 더럽고 냄새나는 땀을 많이 흘렸고, 침대 시트의 제가 잠을 잔 자리가 금세 누런 얼룩으로 변했습니다. 제 무릎은 예전에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쳤었고 그 후로 자주 아팠는데, 수련을 시작한 후 매우 긴 시간 동안 매일 무릎이 심하게 아팠다가 점차 완화됐고, 지금은 정공(靜功)을 연마하고 장시간 연공할 때만 무릎에 통증이 있습니다. 수련 초기에는 매번 제4장 공법의 ‘빈 주먹을 쥐는[攥空拳]’ 동작을 할 때마다 손가락 관절이 매우 아팠는데, 지금은 완전히 좋아졌습니다.
국외에 온 지 한 달쯤 되어 현지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아 저 자신의 《전법륜》 보서를 청했습니다. 다음날 저는 온몸이 춥고 두통과 메스꺼움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런 증상들은 이틀 만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후에 또 배가 매우 아프고 설사하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것도 이틀 만에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제 몸은 하루하루 더욱 가벼워졌고, 지금은 걸음걸이가 매우 가벼우며 불면증도 다시는 없었습니다.
제 전체적인 마음 상태도 완전히 바뀌어 마치 길을 잃었던 아이가 마침내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일을 잘 안배할 수 있게 됐고 사람도 정신이 나며 제 방도 늘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오히려 이렇게 혼자서 전념하여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즐기게 됐습니다. 제가 대법제자가 됐기 때문에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며, 제가 놓친 대법제자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따라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독한 시간이지만 저는 그 속에서 기쁨과 소중함, 그리고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심연으로 떨어지려던 저를 단번에 끌어올리시고 다시 깨끗이 씻어주셔서 제가 다시 한번 영광스러운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매우 감사드립니다. 저는 정말로 제 감사한 마음을 진실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 없으며, 오직 사존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새롭게 수련을 시작한 초기에 《전법륜》을 공부한 후 저는 더 깊은 내포를 깨달았고,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공부하면서도 많은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 저는 많은 수련생이 수련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매우 심한 환희심이 생겼고, 정과 많은 집착심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려 했습니다. 이로 인해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리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또한 더 이상 속인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고 오직 수련에만 전념하여 전업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지고 사부님의 끊임없는 일깨움으로 지금은 대법제자로서 이성적이고 자비롭게 속인을 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됐고, 속인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하면 더 잘 수련하고 더 빨리 제고할 수 있다는 이치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수련을 굳건히 하고 사부님을 따르다
졸업논문을 준비하던 그 시기에 저는 처음에는 매우 긴장했고 늘 제때 졸업논문을 완성하지 못할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하니,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가 대법제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잘하기만 하면 속인 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반드시 수련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매일 아침 일어나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이 연공이었으며, 다섯 가지 공법을 한 번에 다 했습니다. 정시에 발정념을 하고 밤에도 《전법륜》이나 경문을 3시간 정도 공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졸업논문은 계획보다 일찍 완성됐고, 제가 마음가짐을 바로잡았을 때 쓴 그 부분의 내용은 진도도 빠르고 질도 매우 좋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논문을 제출하고 졸업 답변을 신청하는 그 기간에도 늘 각종 방해와 심성을 제고하는 일들을 만나 마음이 늘 흔들리고 매우 불편했습니다. 제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되돌아보니 깨달았습니다. 저는 표면적으로는 속인의 학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내심으로는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했고 여전히 이런 일들에 좌우되고 있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제가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속인의 일을 잘하되, 학위 자체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또한 깨달았습니다. 이에 상응하여 수련인으로서 저는 표면적으로는 사부님 말씀을 따르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전법륜)는 법리를 이해하며,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제 수련 시간이 부족할까 봐, 마지막에 원만에 이르러 사부님을 따라갈 수 없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는 매우 강한 집착심이며 제가 전진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기에 반드시 진정으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제가 꾼 한 가지 꿈과 같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중국의 정치 시험에 참가하러 가야 했는데 모두 죽어라 외워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고 서둘러 복습 자료를 꺼내 다시 한번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겨우 몇 개의 선택 문제를 보았을 뿐인데 시험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시험장을 찾아갔고 시험 종이 울리는 순간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정치 시험이 아니라 파룬따파 시험이었습니다. 감독관은 안경을 쓴 중국 여성이었고 시험장에는 중국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매우 고무됐습니다. 감독관이 제게 와서 “늦었네요”라고 했고 저는 “아니요 아니요, 정시에 들어왔어요”라고 했습니다. 감독관이 저에게 “《전법륜》을 다 외웠나요?”라고 물었고 저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그럼 200번은 읽었겠죠?”라고 묻자 저는 “아니요, 하지만 전 시험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감독관이 저를 보더니 침착하게 오래된 책을 꺼냈고 그때 저는 그 위에서 제 이름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 아래에는 또 한 문장이 있었는데, 그 문장은 깨어난 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앞쪽의 한 자리를 가리키며 빨리 앉아서 시험 준비를 하라고 했고, 저는 기쁘게 걸어갔지만 그 자리가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바로 뒷줄 자리로 배정받았고 서둘러 가서 앉아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 꿈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제가 비록 본래 수련해야 할 일생에서 몇 개의 관을 넘지 못했고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심지어 대법제자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지만, 제가 깨달을 수 있고 정법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굳건히 수련의 길로 돌아와 진정으로 엄숙하게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긴다면 저에겐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잡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분명 처음에 도달했어야 할 그 층차에는 도달할 수 없겠지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이것 때문에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가 걸어온 수련의 길에 따라 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태로 저를 원융해주실 것입니다. 저 또한 반드시 사부님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반드시 시간을 아껴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잘 배우며,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서 조속히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어린 시절 법을 얻은 것부터 청년기에 수련을 포기하고 다시 서른 살에 새롭게 수련에 들어선 과정을 자세히 회상해보니, 여러 번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 이번 생이 수련하는 일생이라는 것을 저는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일들을 만난 것은 모두 사부님의 정밀한 안배였고, 저는 이리저리 구르면서 넘어지고 또 일어서면서 걸어왔습니다. 이 특수한 시기에 대법 수련으로 돌아와 진정으로 수련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은 제가 정말 너무나도 운이 좋은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지고하신 자비와 제도이기에 제자는 다시 한번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층차가 한계가 있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2024년 스위스 독일어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10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29/4843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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