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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수련과 사람 구하기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44세인데 어릴 때부터 수련을 시작해 지금까지 30년이 됐습니다. 다행히 운 좋게 대법과 일찍이 성스러운 인연을 맺었습니다. 제가 최근 수련 과정에서 체득한 일부 내용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공유하면서 함께 정진하고자 합니다.

1. 사람의 정을 닦으면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바로잡다

진수제자라면 집착을 놓을 때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깊이 체득할 것입니다. 저는 아들에 대한 정을 닦아내는 과정에서 이를 가장 깊이 느꼈습니다.

이혼한 지 여러 해가 된 저에게 아들은 삶의 전부였고, 아들에 대한 정이 너무나 깊었습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착하고 철이 일찍 들어 품행과 학업 모두 우수했기에 선생님들과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 허영심과 삶의 특정 방면에 대한 집착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들이 갑자기 반항적이고 차갑고 난폭한 성격으로 변했고 연애까지 시작했습니다. 아들에 대한 강한 집착을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마음의 고통을 겪었고 심성을 지키지 못해 마성이 폭발한 적도 있습니다. 이후에는 겉으로나마 자제할 수 있게 됐지만 내면의 고통은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고비를 반드시 넘어야 하고 어떻게든 통과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결국엔 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관념에 맞지 않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 겉으로는 참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게 됐지만, 마음속의 원망은 여전했습니다.

어느 날, 매우 강한 원망심이 온갖 바르지 못한 생각들과 함께 치솟아 올랐습니다. 발정념을 했지만 제거되지 않았고 마들이 빈틈없이 저를 에워싸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 겨우 정법 구결만 묵념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이렇게 강한 집착은 진정한 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제거하겠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집착이 엷어지더니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며 일사일념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자신을 수련했습니다. 제 확고한 진심을 보신 사부님께서는 화강암처럼 단단했던 집착을 한 층 한 층 제거해주셨습니다. 저는 마침내 아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더 이상 사랑과 미움이 뒤섞이지 않은 초연하고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아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를 방치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가 바른길을 걷도록 인도했습니다. 전통문화의 작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진상 동영상과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爲你而來)’ 영화 시리즈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들은 이 모든 것에 깊은 흥미를 보였고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동창들에게 진상도 알렸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생명이 된 것입니다

며칠 전 아들의 월간 시험 성적이 나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성적부터 확인했을 텐데 이번엔 묻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아들이 먼저 기쁜 목소리로 시험을 잘 봤다고 말해왔습니다. 저는 성적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들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몇 점만 낮게 나와도 호되게 혼내시던 어머니가 맞나요?” 처음엔 아들의 영향으로 환희심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곧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나와 무관한데 무슨 환희심이 생기겠는가?’라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 사명은 오직 수련을 잘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뿐입니다.

아들에 대한 정을 한 걸음씩 내려놓으면서, 저는 일상생활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들을 엄숙하게 대하지 않는 습관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습관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평범한 속인처럼 변해버렸고,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하면서 수련하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직장 동료들의 대화 주제나 농담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했습니다. 매번 퇴근길에는 또다시 속인들과 어울렸다는 생각에 괴롭고 후회스러웠습니다. 깊이 성찰해보니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자로 여기지 않았고 직장을 수련 환경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직장 일이나 동료들과의 대화가 집착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잊은 채 그들과 어울렸습니다. 사실 입을 단속하고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기만 했어도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는데, 전혀 마음에 두지 않다가 나중에야 후회하고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시심, 쟁투심, 자아에 대한 집착,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등이 많이 숨어있었습니다. 제가 직장 동료들에게 늘 진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바르지 않은 요소들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반성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사부님께서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대법제자는 절대 모호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곧 넘을 이 한 관을 곧 넘어가려고 하는데 하지만 아직도 하나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여 넘어가지 못한다. 수련을 잘하면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넘어가지를 못하고 그는 바로 거기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크지 않고, 그 집착은 결코 크지 않으며, 아주 작다. 하지만 바로 당신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은 넘어가지 못하고, 항상 그곳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당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로 참답게 생각하지 않고, 이러한 것이 수련에 부합되지 않음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것이 수련인의 상태에 부합하지 않고,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문제이다!”

절 일깨워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일을 글로 쓰면서 꼭 고비를 넘어야 하고, 바르지 못한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생활 속 사소한 일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 대면해 진상을 알리면서 승화하다

중생을 구하는 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한 사명입니다. 작년 겨울부터 저는 A 수련생과 서로 격려하며 거리에 나가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체득했고 감동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거리에서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다

처음 대면해 진상을 알릴 때는 마음이 다소 불안했습니다. 진상자료를 건네면 많은 사람들이 거절했고 때로는 조롱과 꾸짖음도 당했습니다. 저희는 하루에 한 명이라도 구하면 의미가 있다는 신념으로 거리에 나가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여러 차례 거절당해 마음이 조급해졌을 때, 갑자기 진상을 받아들이고 삼퇴(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사부님의 격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안개 낀 날, 저는 A와 함께 머리카락이 다 젖을 정도로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냉대했고 삼퇴는 고사하고 진상자료 한 장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마음으로는 정념을 유지하자고 일깨웠지만 상실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거리에 도착해서 제가 남쪽 작은 길로 가자고 제안했고, 작은 길에 들어서자마자 한 노인이 비틀거리며 걸어오셨습니다. 저희는 다가가 진상자료를 건네며 이것이 파룬궁 진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노인은 감격해하시며 “내가 바로 이것을 갖고 싶었던 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노인과 십여 걸음을 함께 걸으며 삼퇴를 도와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구원받으신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A가 “구원받을 생명은 반드시 구원받을 거예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나와서 입을 열어 말만 했을 뿐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둘은 눈물을 머금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 차례, 중생들에게 삼퇴를 권할 때 불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탈퇴하시겠어요?”라고 물으면 “탈퇴하겠습니다”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한번은 제가 A의 스쿠터 뒤에 타고 가다가 신호등에 멈춰 선 몇십 초 사이에, 스쿠터에서 내려 옆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남성분께 자료를 건네고 간단히 진상을 알린 뒤 삼퇴까지 도와드렸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을 저희가 지나는 길에 안배해주신 것이고, 저희가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것입니다.

선택적으로 구하던 것에서 모든 이를 구하는 것으로

처음에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때 저희는 온화하고 선량해보이는 중년, 노년 남성들에게만 진상을 알렸습니다. 여성들은 비교적 완고할 것 같아서 가장 꺼렸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특히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성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사람의 관념으로 중생을 차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끊임없이 사람을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 마음을 제거했습니다. 며칠 전 아침 발정념을 하면서 저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마주해야 하고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그날 A 수련생은 일이 있어서 오지 못했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하루도 지체할 수 없으니 혼자라도 가야겠다.’ 저는 차를 몰고 나가서 오전에만 9명을 삼퇴시켰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세련되게 차려입은 한 아주머니가 길가에서 차를 기다리고 계셨을 때입니다. 그분이 진한 화장에 큰 귀걸이를 하고 계셔서 처음에는 다가가기가 꺼려졌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제가 사부님께 드린 약속이 생각나서 다가가 자료를 건네며 파룬궁 진상자료라고 말씀드리자, 그분은 반감을 보이시며 “아직도 이런 걸 하고 있나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차분하게 진상을 알려드렸더니, 점차 태도가 누그러지시며 의문점을 말씀하셔서 저는 인내심을 가지고 답변해드렸습니다. 막 삼퇴를 권해드리던 중에 차가 와서 그분이 급히 차로 향하셨는데, 저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명으로 ○○라고 지어드릴 테니 탈퇴하시겠어요?”라고 여쭤봤습니다. 그분은 차에 한 발을 올리신 채 고개를 돌려 “탈퇴할게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구원받으신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사람을 구하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매일 진상을 알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과정을 돌이켜보았는데, 주로 중생들의 반응을 통해 저의 부족함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삼퇴가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모두 제가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과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인내심이 부족하여 진상을 분명하게 알리지 못해 중생이 구원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진상을 알리면서 그런 ‘완고한 사람들’들에 대해서도 귀찮아하지 않고 차분히 그들이 미혹에서 깨어나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도록 도왔습니다. 며칠 전에는 고물을 수거하시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제가 진상자료를 건네자 거부하며 매우 나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대법과 진선인(眞·善·忍)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드리자 그분의 태도가 점점 부드러워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람에 날린 그분의 수거한 종이 몇 장을 함께 주워드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분도 악당 조직에서 탈퇴하셨습니다.

악당을 무조건 따르거나 한마디도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만났지만, 저는 그래도 그들에게 최소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미혹에 깊이 빠진 사람들에게 한 줄기 삶의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수련은 엄숙하고 신성하며, 반드시 순정한 마음으로 사람을 구해야

저는 수련생과 협력해 진상을 알리면서 많은 것을 체득했고,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 자신도 제고되었지만, 그 속에서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해 얻은 교훈도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차를 운전해 수련생과 함께 시내 변두리로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가는 길에 직장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이야기했고, 우리 둘은 차 안에서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냉담하게 거부하고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시장 비서라는 사람은 신고하겠다며 위협했습니다. 결국 하루 종일 삼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입으로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어도 낙심하지 말고 나온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러자 A는 “농담을 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자꾸 웃음이 나와서 상태가 바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 행위를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엄숙하게 대하지 못했고, 크게 보면 이는 중생 제도를 교란한 것이었기에 매우 심각하고 두려웠습니다. 수련이 얼마나 위대하고 엄숙한 일입니까? 제가 만약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칭호에 걸맞을 수 있으며, 어떻게 사부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겠습니까? 또 어떻게 사부님께서 거대하게 감당해주신 것에 떳떳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무한한 기대를 가진 무량한 중생들 앞에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교훈을 통해 저는 농담을 좋아하는 습관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진상을 비교적 순조롭게 알린다고 해서 구세력은 끊임없이 제 머릿속에 ‘참 잘했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주입했지만 저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이를 제거했습니다. 때로는 낙담하는 생각이 들어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저는 오직 사람을 구하는 마음 외에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기에, 진정으로 안으로 찾지 않고 대법에 조금씩 동화되며 자신을 닦아나가지 않으면 진정한 수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가장 신성한 사명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착실한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20/4836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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