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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을 겪어도 마음 움직이지 않고 이익심을 버리고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대법(파룬궁)을 얻었습니다. 20여 년간의 불법 수련을 통해 수련자가 인간 사회의 각종 이익의 유혹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수련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는 것이 매우 중요한지 점차 깨달았습니다. 오늘 법회를 통해 수련 과정에서 몸소 겪은 이익심을 제거한 일들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 현실적인 이익을 내려놓고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다

저는 열아홉 살에 농촌에서 도시로 돌아와 어머니를 대신해 공장[성(省) 기관의 산하 기관]에서 일했습니다. 3개월 뒤, 공장의 자녀 학교에서 청년 교사를 선발할 때 공장 청년들 중 저는 1등으로 합격했고, 공장장이 직접 지명하여 학교에 배치됐습니다. 세월이 화살과 같이 흘러 지금까지 교직에 종사한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1997년, 저는 더없이 행운스럽게 대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1999년 ‘7·20’ 이후 풍운이 급변하고 사악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법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성의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패거리와 경찰 및 직장 상사들로부터 여러 차례 박해당했습니다. 2001년 여름, 관할 경찰과 직장 상사는 기만적인 수법으로 저를 산속의 전향(수련 포기) 반으로 유인했고, 남편에게서 1만 위안의 생활비를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공장 책임자는 제게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협박했고 그렇지 않으면 공직에서 해임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수련을 그만두겠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자 공장에서는 제 출근을 불허했습니다.

2002년 어느 날, 70대의 어머니(수련생)와 저는 함께 직장을 찾아가 공장장에게 진상을 알리고 제 복직을 요구했습니다. 공장장은 먼저 제가 업무에서 능수이며 얻기 힘든 인재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는 상급 610이 어쩔 수 없이 저에게 개인 신앙과 직장 업무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저는 침묵했는데 그때는 아직 발정념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수련인으로서 현실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대법은 제 생명의 전부이고 일자리는 제 철밥통입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의심할 여지 없이 저는 파룬궁을 선택했습니다! 공장장은 제가 말을 하지 않자 즉시 제 선택을 이해했고 매우 실망한 표정으로 우리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공장 정문을 나왔을 때 어머니는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고 저를 계속 나무라셨습니다. “넌 너무 진지하고 융통성이 없어. 겉으로라도 대충 응해주고 일단 직장이라도 지키지. 수련하는 데도 지장 없을 텐데. 앞으로의 생활은 어떡할 거니?” 당시 제 기분도 매우 좋지 않았고 들으면 들을수록 짜증이 났습니다. 수련인인 어머니가 어떻게 저를 이해하지 못하시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강경한 태도로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차라리 직장을 포기할지언정 절대로 파룬궁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사실 저는 어머니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해야 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하게 된 것은 어머니께서 전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공 악당의 박해를 당했을 때 가족들은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특히 아버지는 여러 번 어머니께 큰 소리로 화를 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저를 특별히 사랑하셨는데, 제가 경찰에게 불법으로 납치되어 구류소로 보내졌다는 것을 아시고는 70대 나이에 베란다에 몰래 숨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마음에 큰 압박을 받으셨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늘 어머니께서 대법을 전해주시고 수련의 길로 이끌어주신 것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2. 굴욕을 당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다

사악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20여 년간 저는 마치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을 잃은 후 10여 년 동안 양가 어르신을 모셨고, 마지막에는 전신마비로 누워계신 시어머니를 8년간 모셨습니다.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해 가사도우미도 했고, 사립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으며, 집에서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제가 한 일들을 돌아보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고 개인의 이익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특히 친인척과 사회의 원망과 차별, 사악의 교란과 박해, 공포 정세의 압박 속에서 저는 심신의 고통과 냉정한 세태를 겪었습니다. 박해 초기에 저는 수련의 길이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고 너무 어렵고 고생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날, 큰시누이와 작은시누이 두 가족이 우리 가족과 함께 시어머니 댁에서 식사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식사 후 시어머니는 그들을 모두 데리고 한쪽으로 가셔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차를 마시고 해바라기씨를 드시면서 저만 홀로 식탁을 치우게 내버려두셨습니다. 예전에는 식사 후 시어머니께서 큰시누이와 작은시누이를 불러 함께 치우곤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저를 매우 예뻐하셔서 제가 손을 대기만 하면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찌 된 일일까요? 저는 마음이 좀 서운해서 남편에게 “어떻게 나 혼자만 치우라고 하시죠?”라고 불평했습니다. 남편은 안 좋은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당신이 안 치우면 누가 치워!?”라고 소리쳤습니다. 순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말을 멈추고 마치 제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다행히 마음속에 법이 있었고 매일 사부님의 시 ‘홍음’을 외우던 터라 이것이 바로 ‘마음고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빨리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묵묵히 혼자서 식탁을 치웠습니다.

제가 치우기를 마치고 욕실에서 손을 씻을 때 작은시누이의 딸이 살며시 제 앞으로 다가와 “외숙모, 아빠가 외숙모는 이제 지주나 4류분자(과거 공산당의 탄압 대상: 역주)와 같다고 하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참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전에는 자매들 중에서 우리집이 경제적으로 가장 넉넉했고, 큰시누이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가전제품도 우리가 사주었습니다. 작은시누이의 딸은 학교에 입학하지 못해서 저를 따라 1학년을 다녔고 우리 집에서 1년을 먹고 잤습니다. 그 두 집은 자주 우리집에서 먹고 마셨고 갈 때도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이면 저는 시누이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도 가고 수영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들은 늘 저를 매우 존중했고, 작은시누이 부부는 스승의 날에 저에게 꽃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제게 경제력도 지위도 없어지자 시댁 식구들은 모두 의도적으로 저를 피하고 고립시키고 업신여겼습니다. 곧바로 생각을 바꾸어보니 가난한 자를 싫어하고 부자에게 아부하며 세도를 좇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수련인인 제가 굳이 그것을 마음에 둘 필요가 있을까요!

이와 비슷한 일을 저는 몇 번 더 겪었습니다. 저는 줄곧 심성을 지키고 선량함을 유지했습니다. 시어머니를 8년간 모시면서 저는 고생과 원망을 마다하지 않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피곤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친척과 친구들 앞에서 늘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생활 속에서 자매들을 돌보고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았으며 재산을 다투거나 빼앗지 않아 친척과 친구, 이웃들로부터 한결같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리고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수련 환경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또한 시어머니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제가 과시심, 질투심, 쟁투심,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마음,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등 각종 집착심을 버리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정법이 진전됨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제게 사람을 구하는 각종 형식과 기연을 안배해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고 사람 구하는 것을 첫 자리에 두어 명절 때마다 남편과 함께 선물을 사 들고 친지들을 방문했고, 평소에 이웃의 경조사가 있으면 우리도 축의금을 냈으며, 몇 년에 한 번씩 양가(시댁, 친정) 친척들과 함께 먼 곳의 친척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요컨대 저는 모든 기회를 붙잡아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으며, 친척과 친구, 이웃들 중 인연이 있는 많은 이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도록 했습니다.

3. 인간의 정에서 벗어나 진상을 똑똑히 알려 사람을 구하다

저는 어릴 때부터 중공 악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부 변이된 사고방식과 사람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길에서 종종 이러한 사람의 관념에 막혀 사람을 구하는 일을 그르쳤습니다. 작년 봄, 저와 샤오펑(가명)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녀의 친척이 제가 매우 잘 아는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70대로 저는 그들을 오빠,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샤오펑이 제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느냐고 물었을 때 저는 좀 쑥스럽게 “아니요”라고 대답했고 마음속으로 깊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들을 안 지 7년이 되었지만 줄곧 제가 파룬궁수련자라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 평범한 친구 관계만 유지해왔습니다.

샤오펑은 제가 어디를 가든 진상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왜 그 두 분에게는 진상을 알리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심을 감추기 위해 저는 밖으로 많은 이유를 대며 거듭 강조했습니다. “샤오펑,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그분들은 부자이고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며, 게다가 모두 샤오펀훙(小粉紅, 공산당 추종자)이에요. 입만 열면 마오쩌둥 어록을 읊조리고 홍가(紅歌, 공산당 찬양가)를 흥얼거리죠. 저는 마음속으로 반감이 들어 말리기도 어려웠어요. 몇 번 우리가 악당이 얼마나 부패하고 인심을 잃었는지 이야기할 때마다 대법 진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려 했는데, 뜻밖에도 그들은 도리어 우리에게 악당에 반대하지 말고 현재의 좋은 시절을 소중히 여기라고 설득하더군요. 저는 정말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고, 그들이 일단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매우 난처해질 것이고 서로의 감정도 상할까 봐 두려웠어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줄곧 그들이 마음에 걸려 기회를 봐서 진상을 알리고 싶었답니다.” 샤오펑은 그들이 매우 도도하고 고집이 세서 30년 동안이나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7년 전 여름, 저는 리조트에서 그들과 인연이 닿았는데 정말 인연이 있었는지 첫 만남에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들 집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삼복더위가 되면 남편과 짬을 내어 리조트에서 며칠 쉬곤 했는데, 시어머니를 교대로 돌봐야 해서 4~5일밖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며칠의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겨 시골 장터에 가는 기회를 틈타 남편을 피해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구했습니다. 매년 리조트에 도착하면 다음 날 그들 부부를 찾아뵈었고, 그들은 저를 보면 친정 동생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늘 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좋은 차와 고급 과일로 대접했습니다. 당시 저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그들과 저 사이의 우정을 유지하려고 인간적인 정을 중시했고, 결국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그들을 구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습니다.

순식간에 2020년이 되어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했고 그해 여름 시어머니께서 평안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후 2년간 리조트에 가도 언니를 만나지 못했는데 오빠 말씀으로는 언니가 몇 차례 병으로 입원해서 자주 고향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2022년 설날에 저는 언니께 전화드려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싶어 정말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언니는 완곡하게 거절하며 내년에 리조트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저는 매우 답답했고 언니가 왜 저를 만나기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무심코 재작년 리조트에서 언니를 만났다고 했는데, 그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 말로는 언니의 안색이 검게 변했고 병이 든 것 같아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대화 중에 남편이 제가 대법을 수련하다가 박해받은 일을 언니에게 낱낱이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남편은 특히 언니가 파룬궁에 대해 안 좋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일부러 남편을 몰아세웠습니다. “당신이 리조트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파룬궁 수련한다고 말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나요? 조용하고 편안한 환경을 원한다면서요? 그런데 왜 말했죠?” 남편은 멍하니 서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어 다시 말했습니다. “왜 언니에게 제가 파룬궁 수련으로 얻은 이로운 점을 제대로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20여 년간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는데 병 하나 없었잖아요! 제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예전처럼 부잣집 아가씨 같은 성격으로 전신마비가 된 시어머니를 원망 없이 모실 수 있었겠어요? 밥 먹여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대소변 받아내고, 더러운 것 싫어하지 않고 피곤한 것 두려워하지 않고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었겠어요?” 남편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 말이 다 맞아!” 저는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아휴! 당신이 언니에게 제가 박해받은 일만 말해서 파룬궁 진상을 더 모르게 만들었잖아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말한 거예요?” 남편은 후회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때 저는 문득 언니가 왜 저를 만나기 꺼리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샤오펑은 친척들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자주 제게 기회를 봐서 빨리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로 저는 작년 여름 리조트에 갔습니다. 언니는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회를 봐서 오빠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는데, 오빠는 예전처럼 저를 대하는 것이 열정적이지 않고 말도 더 적어졌으며, 마치 저를 경계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샤오펑도 리조트에 올 기회가 있어서 저는 샤오펑을 데리고 오빠를 만났는데 그들은 30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샤오펑을 보자마자 연신 칭찬하며 “정말 예상 못 했어. 아직도 이렇게 젊고 예쁘다니. 전혀 60세로 보이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그들이 따로 만났을 때 오빠가 제가 박해받은 상황을 언급하자 샤오펑은 오빠에게 제 현재 생활이 평온하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빠는 즉시 안심하고 더 이상 저를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는 파룬궁 이야기를 꺼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눴고, 오빠가 파룬궁에 대해 이해가 안 되는 점들에 대해 저와 샤오펑이 하나하나 답변해줬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 샤오펑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오빠 집에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약간 감격에 겨워하며 오빠에게 자신의 수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날들을 떠올리면 정말 너무 괴로워요. 파룬따파가 저를 변화시켰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 가르쳐주었어요! 건강한 몸도 주었고요…” 당시 샤오펑과 오빠는 모두 눈물을 흘렸고 오빠는 샤오펑에게 대법 책을 보고 싶다고 하며 파룬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대법 책을 꺼내 ‘전법륜(轉法輪)’을 오빠에게 드리라고 했습니다.

샤오펑은 나흘째 되는 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집에 가서 일을 보고 다시 리조트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막 들어서며 말했습니다. “누구랑 같이 차를 타고 왔는지 맞춰봐.” 저는 무심코 “설마 언니?”라고 말했습니다. “맞아, 바로 언니야! 그런데 너무 말라서 거의 알아보지 못할 뻔했어.” “정말이에요? 언니가 왔다니 정말 잘됐네요!” 이번에는 제가 언니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해 제 마음속의 고민을 풀 수 있게 됐습니다. 이때서야 저는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를 한꺼번에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남편이 언니에게 한 말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남편에게 감사하게 됐습니다. 그가 물꼬를 터서 오빠 언니에게 진상을 알리는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저는 언니를 보러 갔습니다. 그녀는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얼굴은 검고 말랐으며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걸음걸이가 불안정해서 마치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언니께 안부를 물었고 언니는 백신을 맞은 후부터 몸에 이상이 생겨 몇 번이나 입원했고, 고향에서 요양하느라 리조트에는 거의 머무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온몸의 병이 다 나았고 20여 년간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연신 칭찬하시며 “정말 좋구나, 이 파룬궁은 정말 좋구나!”라고 했습니다. 이후에 제가 삼퇴를 권하자 언니는 매우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이때 오빠가 밖에서 돌아왔는데 저를 보고는 기쁘게 말했습니다. “동생 왔구나, 잘됐다.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전법륜’ 책에는 TV에서 말하는 무슨 정치하는 내용이 전혀 없더구나. 책에는 모두 다투지 말고 선을 권하는 말들이 쓰여 있더라. 나는 네가 어떻게 가부좌를 하는지도 보고 싶고, 나와 네 언니한테 가부좌하는 법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구나.” 이 말을 듣자 제 마음은 마치 꽃이 핀 것처럼 기뻐서 얼른 그들에게 남녀의 가부좌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나이가 많아 뼈가 뻣뻣해서 반가부좌도 다리가 높이 올라가 제대로 앉지도 못했지만 아주 진지하게 배웠습니다. 점심때 집에 돌아가려 하자 그들은 계속 식사하고 가라고 만류했지만 저는 집에 가서 남편의 식사를 차려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문 앞까지 배웅해주었는데 언니는 얼굴이 발그레해지시더니 싱글벙글 웃으시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동생, 다시 와서 우리에게 연공을 가르쳐줘!” “네! 언니, 이틀 동안은 먼저 다리 풀기부터 하세요. 천천히 하시고 조급해하지 마시고 반가부좌부터 시작하세요.” 저는 기쁘게 말했습니다.

그 며칠은 4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어 매일 찾아가는 것이 나이 많은 그들에게도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이틀 뒤에 언니 집에 갔더니 오빠가 언니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매우 의외였습니다. 오빠 얘기로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언니가 중병을 앓으면서 성격이 크게 변해서 생활하시는 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오빠도 곧 80세이신데 언니를 잘 돌보지 못해서 서로 자주 다투고, 다툴 때마다 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반년씩 있다가 오는데, 이번에도 언니가 화가 나서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이후에 샤오펑이 고향으로 언니를 찾아가 대법책 ‘전법륜’도 전해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서둘러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두 편을 손으로 베껴서 빨리 오빠에게 전해주었고, 영상기기도 사주어서 USB에 사부님의 설법, 공법 교육 영상과 연공 음악을 담아 오빠에게 주었습니다.

오빠는 때때로 대법책을 보지만 귀가 어두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잘 듣지 못하고, 게다가 다리가 아파서 가부좌를 하지 못해 연공을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오빠는 말했습니다. “내가 비록 정식으로 파룬궁을 수련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파룬궁이 좋다고 선전해. 다른 사람들이 이 사회가 너무 나빠져서 구제불능이라고 말하면,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남을 때리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으며, 훔치거나 빼앗지도 않고 좋은 일만 한다고 말하지.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다 법을 배우고 수련한다면 좋아지고 구원받지 않겠어?!”

저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오빠를 칭찬했습니다. “오빠, 대단하세요. 파룬궁을 알리는 것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에요. 오빠는 큰 공덕을 쌓으셨어요, 공덕이 무량해요!” 오빠는 기쁘게 웃었습니다.

올해 설에 오빠 언니를 보러 갔을 때 언니에게도 사부님의 두 편의 새로운 경문을 전해주었고 언니는 모두 기쁘게 받았습니다. 언니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넌 파룬궁을 수련하니 얼마나 좋니. 인품도 좋고 예쁘고, 병도 없고, 주사도 약도 안 쓰고, 정말 좋아. 아쉽게도 난 의지력이 약해서 수련을 못 하겠어.” 저는 “언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진심으로 외워봐요. 이건 영단 묘약이에요. 주사 맞고 약 먹는 것보다 더 효과가 좋아요”라고 말해줬습니다. 떠날 때 언니는 연신 “고마워! 감사해!”라고 말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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