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션윈(神韻) 교향곡을 귀담아들으면서 저는 감동으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마치 제가 사부님께 올린 서약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중생을 구하며, 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27년간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처음 법을 얻었을 때는 간절하고 목말랐던 제가 이제는 사부님 말씀에 순종하고 법을 제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법에서 비롯됐으며, 대법이 저의 언행과 심태, 사고방식을 바꾸어 제 생명이 대법 속에서 새롭게 자라나게 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단 두 글자, 감사!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대법을 박해한 후, 저는 세 차례나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수호했으며, 천안문 광장에서 대법을 실증하고 마음속의 오래된 서약을 이행했습니다. 곧바로 좋은 직장과 안락한 생활환경을 잃었습니다. 회사 지도부는 실적을 내려고 서둘러 일벌백계하여 저를 회사의 ‘여성 1호’로 지목해 박해했습니다. 2002년 4월, 귀가 중이던 저를 길에서 납치해 세뇌반으로 보냈고, 3일 후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하자 바로 마싼자(馬三家) 수용소에 보내 3년간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수용소 문을 들어설 때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넌 여기서 뭐하는 거지?’ 저는 ‘난 신의 길을 찾아 이 세상에 왔어’라는 자신의 대답을 들었고, 그 순간 오히려 편안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속박이 저와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았고, 더는 가족과 경력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지역 경찰이 저를 심문하며 누가 파룬궁 자료를 제공했는지 물었고, 세뇌반에서 이미 전향한 수련생이 제가 제공했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즉시 납치해 랴오닝성 여자 감옥으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법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역사의 장래에 당신들의 순수하고 올바른 일체는 바로 대궁(大穹)이 성주불파(成住不破)할 수 있는 보증이다.”(정진요지3-뉴욕법회에 드리는 축사) 기세등등한 그들의 위세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는 미래의 새로운 우주를 성취하는데 어찌 구(舊)우주의 타락한 이치에 굴복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우주 미래의 금강불파를 책임져야 하고 다른 수련생들의 안위를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내가 감당하리라!’ 저는 단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다시는 대법제자에게 범죄를 저질러 스스로를 파멸시키게 할 수 없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자 마치 억눌린 듯이 그들의 기세가 꺾였고 어색하게 계단을 내려가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나날은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졌고, 마싼자의 악질 경찰들은 먼저 수면을 박탈하기 시작했으며, 사오(邪悟)한 옛 수련생들을 이용해 저를 둘러싸고 전향시키려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전향시키겠다는 건가요? 제 피와 뼈마저도 모두 대법이 만들어낸 것인데 제가 어디로 전향하겠습니까?” 부드러운 방법이 통하지 않자 그들은 위선의 가면을 벗고 고문을 시작했습니다. 좁은 독방에 가두고, 얼리고, 수갑으로 고문하고, 잠을 못 자게 하고, 노예노동을 강요했습니다. 이익을 탐하며 더욱 기세등등하게 대법제자들을 박해했기에 저는 협조를 거부했습니다.
경찰은 저를 사무실로 데려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3년 형을 선고받았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가 더 늘어나니 언제 끝날까요? 당신 아이가 그렇게 어린데 나가면 당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요.” 저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3년이든, 30년이든, 300년이든 어떻습니까? 눈 깜짝할 사이일 뿐이고 제 생명은 우주와 같은 나이가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정말로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딛고 선 것 같았고, 모든 악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수용소 밖에서 일하도록 배정됐는데 도망갈까 봐 자주 대열을 정비하고 인원점검을 했습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았고 수용소 수감자도 아니었습니다. 일도 하지 않았고 점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돌아와서 경찰은 제가 다른 조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깎았다고 생각해 화가 나서 전향한 수련생에게 명령해 제 팔뚝부터 밧줄로 감게 했고, 살을 파고들 정도로 양손까지 묶은 뒤 뒤에서 2층 침대 난간에 매달아 발끝만 겨우 땅에 닿게 했습니다. 곧바로 땀이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고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져 거의 기절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제 정신은 이상하리만큼 맑았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굴복하면 작업과 전향을 거부하는 다른 대법제자들도 이런 고문을 당할 텐데, 수련생들이 또다시 고통받게 할 수는 없다. 최악의 경우 죽음뿐이다!’ 본래 경찰은 밤새도록 매달아두겠다고 소란을 피웠지만 제가 생사를 내려놓자 그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가 해체되어 한 시간 후에 저를 내려놓았습니다. 제 팔은 자줏빛으로 변했고(오른손 약지는 한 달 넘게 감각이 없었음) 세면장에 가두고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섯 세트의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그 힘든 세월 속에서 저는 차근차근 ‘정진요지2’의 대부분 경문을 외웠고 매일 ‘홍음’을 암송했습니다. 법을 스승으로 삼아 확고히 대법의 존엄성을 수호했고, 제 생명이 대법 속에서 새로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소위 ‘전향률 100%’를 달성하기 위해 마싼자 수용소는 장스(張士) 수용소, 룽산(龍山) 수용소와 연합해 전향하지 않은 대법제자들을 박해했는데, 이를 ‘공격전’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제 다리를 최대한 좁게 가부좌를 시키고 밧줄로 묶은 뒤, 양손을 등 뒤로 묶어 어깨를 지나 다리까지 연결해 허리를 펼 수 없게 뭉텅이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층층으로 환생하시며 중생과 인연을 맺으시고, 우리에게 법을 전해주시기 위해 온 우주의 고통을 겪으셨는데, 내가 겪는 이 고통이 무엇이란 말인가? 저는 앞에 철옹성이 있어도 뚫고 지나가 이 대법에 동화되어야 하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사존께서는 제 마음을 보시고 엄청난 고통을 대신 감당해주셔서 제가 견딜 만한 부분만 감당하게 하셨기에 견딜 수 있었지만, 신체 증상이 나타나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위에서 나온 피는 갈색이었습니다. 밤새도록 토하다가 다음 날 아침, 12시간 반이 지나서야 밧줄이 풀렸습니다. 제 다리는 심하게 부어서 전혀 걸을 수 없었고, 이어서 발끝만 겨우 땅에 닿은 채로 하루 종일 난방 파이프의 조임쇠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때는 1초가 1년처럼 길게 느껴졌고, 거의 매일 밤 초를 세며 보냈습니다. 이 고비를 넘기자 사악은 제 전향을 포기했습니다.
이어서 구세력은 가족 정을 이용해 저를 박해했습니다. 면회 온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어. 더는 너를 기다릴 수 없다고 하니 빨리 ‘보증서’를 쓰고 돌아가거라!” 그때 저는 정말로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홍음-마음 고생)를 느꼈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아이는 제게 맡겨주세요. 아이는 법을 얻으러 온 것입니다.”
며칠 후 저는 남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한 사람이 극한에 다다르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견딘 것은 당신이 견딘 것의 몇 배는 될 텐데도 저는 아주 확고하게 걸어왔습니다. 이때가 바로 인격이 가장 시험받는 때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돌아와서야 알게 됐지만, 이는 아버지께서 직접 꾸며내신 것이었고, 이런 방법으로라도 저를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박해받을 때, ‘생사를 내려놓음’의 또 다른 함의를 깨달았습니다.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육신을 보존하며 죽음으로 끝내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정말로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긴 특별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제가 수용소에 있을 때는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한다’는 사부님의 법리를 몰랐지만, “아득한 길은 이미 끝에 달하고, 자욱한 안개는 점점 흩어지누나, 정념으로 신(神)의 위풍 떨치니, 하늘로 돌아감은 바람이 아니어라”(정진요지3-새해 문안)라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깨달은 것은 사악이 하는 대로 놔둘 수 없으며, 3년 형을 선고받았다고 3년을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탈출해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하고, 자유를 잃고 이곳에 갇혀 있으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이 시를 반복해서 외웠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뇌리에 새겨진 것 같았으며, 정념으로 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저는 수용소 간수들에게 성명서를 썼습니다. “지금부터 단식을 시작합니다. 비록 제게 아무것도 없지만 제 마음으로 여러분의 양심을 일깨우고자 하며 무죄 석방을 요구합니다.”
4개월 반 동안 각종 야만적인 강제급식과 주사 박해 등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으며 숨이 가쁠 때쯤, 마침내 16개월 동안 박해받던 마굴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너무 커서 경찰들에 대한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구제불능이라 빨리 지옥에 떨어져 응보받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잘못됐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생을 구하라고 하셨고 중생을 없애려는 것은 구세력인데, 제가 어찌 그것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들이 대법의 적이 되기로 선택했더라도 저는 그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사람의 일면이 최대한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들 역시 구원을 기다리는 가장 가련한 중생들입니다. 이 층의 법리를 깨달았을 때 제 마음은 자비와 따스함이 가득한 강대한 정념으로 충만했습니다. 저는 마싼자 수용소가 더는 저를 가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이미 사사로움과 자아의 경지를 벗어났고, 그 순간 진정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업혀서 수용소를 나올 때는 30kg도 채 안 되는 몸무게에 걸을 수도 없었고,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했습니다. 어떻게 대법제자의 이런 모습을 속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집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 누워서 계속 정념을 발하자 제 몸만 한 파룬이 강렬하게 회전하며 시계방향으로 아홉 번, 반시계방향으로 아홉 번 돌면서 모든 정확하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저는 혼자서 5층까지 걸어 올라갔습니다.
돌아온 후 저는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모종처럼 법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했습니다. 화장실 갈 때만 책을 내려놓았고, 하루에 두 시간만 자며, 피곤할 때는 무릎을 꿇고 책을 읽었습니다.
3일 만에 사부님께서는 제가 마싼자 수용소에서 맞은 수백 병의 약물을 모두 피부를 통해 밀어내 주셨고 무척 가려웠습니다. 한 달 안에 15kg이 늘어 40여 kg으로 회복되었고, 그때부터 저는 다시 대법을 실증하는 홍류(洪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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