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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농촌의 여성 대법제자로, 1997년에 대법을 얻게 됐습니다. 마을에 법공부 모임이 있었는데 10여 명이 모였고 대부분 노인들이었으며 주로 병 치료와 건강 증진을 위해 왔습니다. 저는 병 치료를 위한 마음으로 마을 수련생 집에 가서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보았는데, 단 2~3시간 만에 온몸이 가벼워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 단체 법공부 시절에 저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에 법공부하러 가는 것이 기다려졌습니다. 그곳은 정말 정토(淨土)였고 매우 상서로웠습니다. 업력을 소업(消業)할 때도 매우 기뻤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책임져주시고 업력도 없애주셨기 때문입니다.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을 배운 이후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대법의 ‘진(眞)·선(善)·인(忍)’ 가르침에 따라 실천했습니다. 우리집은 큰길가에 있어서 항상 쓰레기가 많았고 특히 바람이 세게 불 때는 더 많았습니다. 마을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청소하고 상부에서 검사 나올 때만 청소했기 때문에 평소에는 매우 더러웠습니다. 저는 무보수로 자원해서 더러워 보이면 바로 쓸어냈고, 평소에 고철 수거차에서 떨어진 쇳조각도 주워 차량 타이어가 찢어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서둘러 눈을 치웠습니다. 차량이 지나가면 눈을 치우기 어렵고 더 미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수련하지 않는 제 남편도 매우 부지런해서 서로 눈을 치우려고 했고, 여러 번 매우 가파른 언덕도 청소했습니다. 차량이 미끄러질까 봐 걱정되어서였죠. 그는 정말 대법의 혜택을 받아 남을 위해 배려할 줄 알게 됐습니다.

우리집 동쪽 이웃의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우리집 작은 채소밭에 차 찌꺼기와 소변을 버리곤 했습니다. 남편은 매우 화가 나서 그가 우리를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저는 “연세가 많으셔서 그러시는 거예요. 버리시면 버리시는 대로 두세요. 그분과 티격태격하지 말고, 동쪽에 심은 토마토는 우리가 먹지 않으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음식을 사서 그분께 드리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쯤, 우리 세 식구가 외출했다가 4천 위안(약 80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주웠습니다. 우리는 휴대폰을 켜서 주인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처음 사용해보는 거라 화면이 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이가 켜는 데 성공했고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지 않아 우리는 주인과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공산당이 미친 듯이 파룬궁을 탄압해 남편이 외국 기업 일자리를 잃었고 우리는 대출금도 갚아야 했습니다. 남편은 휴대폰을 보고 매우 기뻐했지만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남을 위해 생각해야 해요. 주인은 분명 매우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안에 많은 정보가 있고 이렇게 비싼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틀림없이 마음이 아플 거예요. 게다가 우리가 남의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얻으면 얼마나 많은 덕(德)을 잃게 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자신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도 이익을 얻었고 대법에 따라 행동하니 그도 복덕을 쌓았습니다.

요즘 농촌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바쁘게 살아 부모들을 돌볼 여유가 없고 여건이 되어도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아 노인들의 생활 여건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우고 또 손주들까지 키웠는데, 70대가 넘었지만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매월 100여 위안의 양로금을 자녀들이 가져가서 한 푼도 없었습니다. 저는 자주 그분께 먹을 것을 드렸고, 한번은 그분의 휴대폰이 고장 났는데 시내에 가서 새로 살 수 없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차가 집에 있고 남편도 쉬는 날이니 남편에게 그분을 시내에 모시고 가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제 남편의 작은아버지는 혼자 사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집 담장 밖 평상에서 옥수수를 말리곤 하셨습니다. 비가 올 때면 제가 큰 비닐로 덮어드리고 날이 갤 때는 다시 열어드렸습니다. 또한 이불과 침대 시트, 이불 커버도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저를 볼 때마다 다정하게 웃으시며 말을 건네셨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시부모님께 가져다드렸고 시어머니를 우리집에 모셔와 목욕도 해드리고 빨래도 해드렸습니다. 아이가 오면 할머니께 용돈도 드리게 했습니다. 시아버지와 우리 두 집에서 키운 나무를 팔아 돈을 받았을 때도 저는 한 푼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형제가 있지만 명절 때 여러 상의 요리를 모두 우리가 준비했습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저도 잘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자주 마음속으로 ‘나는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에 동화되어야 해, 나는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에 동화되어야 해’라고 끊임없이 되뇌었습니다. 그러자 제 얼굴 표정도 온화해지고 제 불같은 성격도 바뀌어 말하는 것도 부드러워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기적이었던 제가 이제는 남을 위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1999년 ‘7·20’ 때 중공 악당이 대법을 박해하고 시비를 뒤집어 악의적으로 대법을 공격했을 때, 저는 베이징과 지방 정부에 가서 청원하고 상황을 반영했다가 불법 구류되어 지역 정부와 양로원에 불법 감금됐고 수없이 가혹 행위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나중에는 견디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타협해 대법제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이후에 법공부를 통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이 저를 마음이 넓고 건강하며 항상 남을 위해 생각하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사악을 따라 양심에 어긋나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비교적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죽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혹 행위를 당하자 아직도 그 그림자가 떨쳐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공청단·소년대에서 탈퇴)를 권유해 사람들이 중공의 사악함을 알아보고 탈퇴해 평안을 얻도록 했습니다. 저도 작은 꽃을 피워 스스로 진상 자료를 만들고 두세 가지 자료를 잘 조합해 지퍼백에 넣어 곳곳에 배포했습니다. 나가서 배포할 때 두려움과 공포가 항상 저를 따라다녔지만 저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가장 무서웠던 때는 한번은 낯선 작은 마을에 갔을 때였습니다. 낮에 가서 둘러보고 자료를 배포하기로 결심했는데 비가 오는 등의 이유로 며칠 후에야 갈 수 있었습니다. 이 며칠 동안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저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했습니다. 가는 날 밤에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한 가지 생각을 굳건히 했습니다. 그곳 중생들을 구원하러 꼭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가져간 자료를 한 장도 빠짐없이 다 배포했습니다. 배포를 마치고 나니 하늘이 어두워져 길을 잘 몰라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사부님, 나갈 수가 없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갑자기 제가 이미 큰길에 나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큰길로 나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따라 정법 수련을 할 수 있어 저는 매우 운이 좋고 행복합니다. 저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중공을 똑바로 알아보고 이 사이비교 조직에서 탈퇴하기를 바랍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여 천재지변과 대도태가 닥쳤을 때 대법의 제도를 받아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얻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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