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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음을 닦아버리니 가정환경이 따라서 바뀌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6년에 저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법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 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했습니다. 명예와 이익, 정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마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사람의 마음과 각종 집착심에 가로막혀 진정으로 수련의 문에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진정한 수련이 무엇인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를 몰랐기에 착실하게 수련할 수 없었고 여전히 속인의 오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고난에서 놀라 깨어나 다시 수련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수련 중 일부 경험과 체득을 써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공유하려 합니다.

1. 진지하게 법공부를 해서 과시심을 닦아버리다

2023년 오랫동안 과시심과 득의양양해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닦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 마음이 조금만 수법을 바꾸면 저는 그것에 미혹되어 발견하지 못하고 붙잡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시점에 이르면 이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지나고 나면 매우 괴로웠고 막막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수련생 A와 교류하던 중 저도 모르게 제가 수련생 B를 대신해 작성한 교류 원고가 명혜망에 게재된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A는 즉시 엄숙하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이미 세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저는 A가 제게 아주 강한 과시심이 있다고 알려준 것임을 즉시 의식하고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이 기간 동안의 수련 상태를 곰곰이 되새겨 보기로 결심하고 먼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공능이든 당신의 개공이든 당신은 대법(大法) 수련 중에서 얻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법(大法)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고 당신의 신통을 중요한 위치에 놓거나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大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전법륜)

순간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대법의 공덕을 자기 공덕으로 삼은 것이 아닙니까?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큰 고난을 겪을 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언제나 제 곁에 계시면서 저를 지켜주시고 깨우쳐주셔서 제가 고난에서 벗어나 살아날 수 있었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무한한 대법을 주시고 마음에 강한 힘을 주셔서 제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는데, 어찌 대법의 공덕을 자기 공덕으로 삼아서 되겠습니까! 이는 사부님과 법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며 무지하고 오만한 행동입니다.

과시심의 근원을 찾은 후, 깊이 숨겨져 있던 과시심이 갑자기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대법의 위력을 진정으로 체득하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의 일상 수련에서 이 과시심이 나타나기만 하면 저는 즉시 그것을 인식하고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2. 질투심은 원인이고 원망심은 결과

지난 며칠 동안 저는 법공부를 해도 법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 ‘전법륜(轉法輪)’ 천서(天書)를 저는 매일 공부하고 매일 읽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마음을 찾고 자아라는 이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은 후 다시 법공부를 하니 대법의 더 깊은 내포와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법리를 이해한 후, 현재 생활 속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의 착실한 수련 과정에서 그것을 쉽게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었으며,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 점차 제거했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에 법이 없고 법리가 분명하지 않아 스스로 질투심을 많이 닦아버려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저는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의 근원이 질투라는 법리를 깨달은 후 이 교활한 질투심은 더는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법리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그 근원을 찾지 못했고, 수련 과정에서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거나 포착하지 못해 오랫동안 그것을 키워왔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외부로 밀어내고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며, 타인을 원망하고 모든 것을 탓하는 것은 이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음이 늘 평형을 이루지 못해’ 많은 원망심으로 변해갔습니다.

이제 질투심을 파헤친 후 남편과 아들에 대한 원망심을 제거한 경험과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아들 집에서 손자를 돌봤습니다. 반찬을 사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면서 혼자서 안팎으로 바빴지만 고생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잘 해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저는 아들과 며느리가 제 모습을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과 비범함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며느리 역시 동료들에게 저를 칭찬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저를 정말 잘 대해주세요. 집도 깨끗이 정돈하시고 키우는 아이도 건강하고 영리해요.” 저는 3년간의 전염병 기간 동안 속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양성’ 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손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우리 집에서는 저와 할머니만 양성이 아니에요.” 이는 어린 손자도 종종 ‘9자 진언’을 외우기 때문입니다.

손자에게는 코피를 흘리는 문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한밤중에 코피가 났을 때 저는 손자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빨리 외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손자는 “지금 외우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후 코피가 멈췄습니다.

한번은 진상을 알리는 자료를 집에 가져와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어야 했습니다. 손자에게도 함께 넣어달라고 했더니 그가 “할머니, 이건 무엇을 하는 데 쓰는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하는 데 쓰는 거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잠시 후 많은 양을 담은 것을 보고 손자가 “할머니, 이거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손자의 모습이 정말 천진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손자가 사부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들 집에서 손자를 돌보는 동안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에서 세 가지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며느리가 저와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이전에 며느리를 잘 대한 것은 모두 연기였으며 며느리를 속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저를 질책했습니다. 아들과도 하루 종일 갈등을 일으키며 제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도 마음속으로 저를 원망했고 종종 강경한 말로 대꾸했으며, 며느리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극단적인 말을 하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어느 날 손자 문제로 저는 아들과 또다시 논쟁을 벌였는데 아들이 “뭐든 엄마 말씀만 옳고 엄마만 사람을 교육할 줄 아시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몹시 화가 났지만 참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법공부가 깊지 않고 마음속에 법이 확고되지 않아 완전히 속인의 마음과 감정으로 이러한 갈등을 대했습니다. 단지 아들, 며느리와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참았을 뿐입니다. 속으로 ‘나는 대법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대법을 오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공 악당에 깊이 중독된 며느리가 아직 당 조직을 탈퇴하지 않아, 제 마음속에는 언젠가 며느리에게 진상을 알려 당 조직을 탈퇴시켜 아름다운 미래를 갖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 대처해 그들을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의 고통과 억울함, 원망이 모두 터져 나와 완전히 속인 상태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고 안으로 찾으려 해도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그쳐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해 무척 답답했습니다.

어느 날 법을 외우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단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표면적으로만 수련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련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스스로를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대법의 요구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단속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며느리가 제가 “연기했다”고 말하고, 아들도 “뭐든 엄마 말씀만 옳고 엄마만 사람을 교육할 줄 아신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법으로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려 한 것은 아닙니까? 이제 보니 저는 정말로 자신을 철저히 성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보며 과시심,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 손자에 대한 집착, 허영심 등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반나절을 찾아도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며느리는 이혼하겠다고 했고 아들은 저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말을 걸면 그는 격렬하게 반박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때 저는 슬픔과 고통, 울분과 원망이 한꺼번에 치솟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도저히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사부님께서 질투심에 대해 말씀하신 법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의 근원이 질투심이라는 법리를 깨닫고 나서, 과거의 생활 환경을 돌이켜보니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 속에서 이 질투심이 정말 항상 곳곳에서 드러났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니 늘 제 생각을 아들에게 강요하고 아들을 바꾸려 노력했으며, 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여겼습니다.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져 아들을 원망했고, 며느리가 이혼하겠다고 한 것도 아들이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책임감이 없으며 자신의 가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들에 대한 원망과 원한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며느리에게 잘 대해준 것도 사실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게 평가하기를 바라고 칭찬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누군가 저를 나쁘다고 하면 화를 내고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법리를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 역시 매우 강한 질투심의 표현임을 발견했습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밖으로 밀어내고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며, 모든 면에서 남을 탓하는 원망심이 생긴 것은 바로 이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법리를 깨달은 후,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인도하고 대법의 심성 기준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며, 일사일념, 일언일행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원망이라는 이 부패한 물질을 제거했습니다. 동시에 대법 수련을 통해 얻은 대선대인(大善大忍)의 마음으로 아들과 며느리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생각하고, 평화롭고 선량한 말투로 아들, 며느리와 대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아들은 게으른 편이어서 더러워진 양말을 며칠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세탁하곤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보기만 해도 말하기 전에 화부터 치밀어 올라 목소리를 높여 “빨리 양말 좀 빨아!”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고집이 세서 빨리 하라고 재촉할수록 더욱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빨지 않을수록 저는 그를 비난하고 탓했고, 아들 역시 불쾌해하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때는 억지로 참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저는 아들이 그곳에 둔 양말에서 나는 냄새가 늘 싫었습니다. 아들을 대신해 빨아주자니 이렇게 하면 아들을 너무 응석받이로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저는 아들이 며칠 빨지 않은 양말을 보아도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평화롭고 친절한 말투로 그에게 시간이 있으면 양말을 빨라고 말합니다. 아들은 매우 평온하게 “잠시 후에 빨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손자를 단속하는 문제로 우리 모자는 자주 다퉜는데 저는 아들이 단속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느꼈습니다. 아들은 늘 손자를 혼내줘 손자를 울리면 저는 마음 아파서 아들을 꾸짖어 서로 기분이 상했습니다. 어느 날 손자가 밥을 먹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들이 큰 소리로 손자를 꾸짖어서 손자는 울면서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아들과 다투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매우 평온했습니다. 그 이후로 아들은 손자를 대하는 태도가 온화하고 인내심이 있었으며 매일 손자의 숙제를 지도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저의 심성을 높이기 위한 연기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이 정말로 변하고 관념이 바뀌고 말투가 바뀌니 아들도 변해 큰 소리로 저를 반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효도했고 며느리도 예전처럼 저를 잘 대했습니다.

저는 며느리가 직장에서 바쁘고 힘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며느리를 더욱 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다양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며느리를 기쁘게 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가정 분위기가 크게 개선되었고 모든 면에서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원망심의 근원을 발견한 후, 대법 법리를 따르고 대선대인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계속해서 떠오르는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을 대체했습니다. 이를 통해 남편에 대한 오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이리저리 억누르고 참았지만 결국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인간적인 방법으로만 해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법의 힘 없이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따라서 오직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법에 녹아들게 하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며, 심성을 높이고, 대법에 동화될 때에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들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은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년간 돈을 벌지 못하던 남편이 갑자기 외부에서 오래전에 빌려준 공사대금의 일부를 돌려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되던 가정의 경제적 위기가 해소되었고 가정 환경이 화목하고 안정되었습니다.

저는 제 수련 상태가 대법의 요구 기준에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과 대법은 제자인 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에 비해 제자가 한 일과 치른 대가는 너무나 미미합니다. 저는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제자는 떳떳하고 바르게 수련하며, 진상을 알리는 일도 정정당당하게 해나가겠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여 대법제자로서의 중대한 책임을 다하고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여 사부님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상은 제가 현재 층차에서 이해한 얕은 인식입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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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13/4830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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