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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한 경지 수련해내기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정법 수련이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저는 겨우 수련하는 법을 배웠다고 느끼며 과거의 제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10여 년 동안 수련했는데 계속 인간 세상에서 맴돌았습니다. ‘나는 수련해야 해, 나는 부처가 돼야 해, 나는 원만해야 해, 나는 대법을 수련하고 있어, 나는 최고의 사람이야, 누구보다 똑똑해, 누구도 나만큼 많이 알지 못해, 내가 제일 재주 있어, 내가 제일 잘해, 내 몸이 제일 건강해, 나는 병이 없어’ 등으로 자화자찬하거나 ‘우리는 대법 수련인이야, 우리가 제일 복이 많아!’라고 으스대며 남들보다 한 수 위라고 자처하며 속인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모두 ‘나’였습니다.

속인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졌고 사람의 것을 내려놓은 것이라고 여겼으며, 속인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너무 귀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연공해야 해, 나는 법공부해야 해, 나는 정진해야 해, 나는…’ 시시때때로 ‘나’였고 어디서나 ‘나’였습니다. 일이 생기면 바로 그 ‘나’가 어떻게 해야 하고 ‘나’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니 제 수련이 어떠하고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뻔했습니다! 기껏해야 저를 나쁘지 않은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할 뿐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대법이 좋다고 인정하게 하려고 돈을 적지 않게 썼습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크고 작은 일에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하고 인정하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사촌 언니가 팔을 다쳤을 때 200위안 정도를 들여 문병을 갔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녀가 저를 인정하고 칭찬하길 바랐는데 그녀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참지 못하고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돈을 써가며 너를 보러 오지 않았을 거야. 우리 대법에서는 누구에게나 잘해야 한다고 요구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사촌 언니는 더 화를 내며 좋지 않은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야 제가 추구하는 마음을 갖고 남에게 잘해줬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유위(有爲)적인 일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강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느 날 법공부를 하다가 사부님의 일깨움 하에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것이 사적이고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모릅니다. 10여 년간 수련했는데 근본적인 사심조차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으니 제 수련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사심을 갖고 남에게 잘해주는 것이 정말 그 사람에게 잘해주는 걸까요? 일종의 위선은 아닐까요?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선(善)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대법이 요구하는 심성 표준과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정진요지-불성무루)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나니 정말 낯 뜨거웠습니다. 자세히 비교해보니 제가 한 일은 속인 중의 좋은 사람만도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저에게 제멋대로라고 하셨던 게 생각났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남과 다른 길을 간다며 자만했습니다. 게다가 남보다 낫다고 여겼고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으니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을 하면서 대법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 중의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까? 더 좋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어느 점에서 그렇게 했습니까?!

모든 사람마음을 수련해 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 사심(私心)이 제 수련의 가장 큰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모든 사람마음, 좋지 않은 관념은 모두 사심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사심을 파내어 생명의 가장 본원, 가장 미시적인 데서 사심을 파내어 철저히 제거하겠습니다! 뿌리째 뽑아버리겠습니다! 층층이 소멸시키겠습니다! 말은 쉽지만 인식하고 시시각각 해내기란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처음에 그 사심을 인식했을 때는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한바탕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사심은 일,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수련생과의 교류와 세인 구원 항목에서 수시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사심을 제거할 때도 항상 경계하여 이 사심, ‘가짜 나’가 ‘진정한 나’의 사상과 행동을 주관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론 일을 마치고 나서야 또 속았다는 걸 알고 후회막급이었습니다. 아래에서 저는 사심을 제거하는 수련 과정을 몇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대법에서 좋은 점을 얻으려 하고 원만을 추구하는’ 사심 파내기

수련 초기부터 우리는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의 신체를 정화해주시고 파룬(法輪)과 수많은 수련에 필요한 것들을 넣어주시며 시시각각 보호해주셔서 우리가 수련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추구하는 마음을 조장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대법이 좋아서 수련의 길에 들어섰어. 파룬따파는 이런 면에서 좋아.’

막 법을 얻었을 때의 인식은 이랬습니다. 파룬따파는 먼저 병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의 신체를 정화해주시니 저는 곧 병 없이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둘째, 우리를 좋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우주의 특성인 ‘진(眞)·선(善)·인(忍)’의 표준에 따라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여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데, 이는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셋째, 대법 수련을 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고 죽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좋습니까! 왜냐하면 저는 어릴 때부터 죽는 게 두려웠거든요! 넷째, 가장 좋은 점은 대법 수련으로 부처가 되어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육도윤회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고, 게다가 이생에 수련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기다려온 것이고 찾아온 것이며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공부가 깊어지고 수련이 높아지면서 이 모든 것이 조건부라는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고 사적인 것이라는 걸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는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생활을 향유하려는 마음일 뿐입니다. 이 근본적인 집착을 처음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사부님의 경문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를 여러 번 읽어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제 머릿속에 부모님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 자주 떠오르는 걸 발견했습니다. 억울하다고 느끼며 그들이 저를 너무 못살게 군다고 생각했고, 때로는 젊었을 때 만났던 이상적인 남자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와 부부가 됐더라면 좋았을 텐데…’ 등등의 망념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교란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저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제가 깨닫지 못하는 걸 보시고 수련생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주셨습니다. “아직도 색(色)과 욕망의 문제예요!” 어떻게 색과 욕망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생각해봤습니다. ‘왜 가족을 원망할까? 왜 불공평하다고 느낄까? 아직도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법을 일찍이 알지 않았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두 인연에 의한 것 아닌가? 왜 아직도 불평하고 공상을 하는 걸까? 아직도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삶을 향유하려는 게 아닐까? 여자가 아름다운 삶을 향유한다는 건 이상적인 남편을 찾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그게 남녀지정(男女之情)에 대한 향유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게 색과 욕망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 점을 발견하고 나니 매우 놀랐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는데 이 근본적인 집착을 이제야 발견했다니! 너무 위험합니다! 동시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정(情) 중에서 파생되어 나온 많은 집착심을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보아야 하며 최후에는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욕(慾)과 색(色),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기에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

저는 그제야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왜 제게 색욕의 마음이 비교적 중했을까요? 꿈속에서 색마(色魔)의 교란이 자주 있었고 색관(色關)을 잘 넘지 못했는데, 바로 남녀지정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한 사심을 갖고 수련한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사부님께서 경문 ‘경지’에서 말씀하신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저 아닙니까? 무엇을 수련한단 말입니까? 선(善)을 수련하는 게 아닙니까? 사(私)를 갖고, 욕망을 갖고, 분노와 원한을 갖고서 어디에 진정한 선이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진정으로 잘해줄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떻게 자비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에 놀라 한동안 울었습니다. 마음속에 죄송함과 후회만 가득했습니다. 저는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저와 관련된 사람과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언행을 대조해보니 과거의 ‘선(善)’은 꾸며낸 것이거나 나약한 성격 때문이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나약함이 선은 아닙니다. 과거에 좋은 사람이 되려던 제 기준은 대법의 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저는 진정으로 마음속에서부터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또한 사부님께서 ‘정진요지-경고하는 말’에서 말씀하신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인간 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이다!”라는 말씀의 또 다른 함의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대법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법 실증입니다.

2. 가정생활에서 사심 제거하기

예전에 저는 밥을 할 때 아들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거의 묻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들이 별로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제가 죽을 끓이면서 콩을 많이 넣었더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가 콩을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이것이 제 사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할 때 항상 남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자신에게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고려하라고 일깨웠습니다.

다시 밥을 할 때는 그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부모님을 뵈러 갈 때는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채소와 과일을 사갔습니다. 예전처럼 제가 좋아하는 것만 사가지 않았죠. 명절에는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고 제 기호는 잊어버렸습니다. 곳곳에서 그분들의 요구와 감정을 고려했습니다. 원래는 그분들을 위해 집안일 하고 청소하는 데 시간을 아까워했습니다. 심지어 “돈 좀 써서 사람을 고용해 방 청소를 하시는 게 어떠세요?”라고 말했는데 그분들은 원하지 않으셨고 돈도 아까워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갈 때마다 방 청소를 도와드렸고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깨끗한 걸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3. 직장에서 사심 제거하기

우리 과에는 저와 다른 여직원 한 명뿐입니다. 그녀의 아이가 중학교에 다니다 보니 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일을 더 많이 하고 그녀와 계산하지 않으며 늘 그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매우 감동했고 저를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기독교를 믿는 동료도 한 명 있는데 이미 진상을 알고 삼퇴(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결혼한다며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는 데 동행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과거의 저였다면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을 겁니다. 수련생과 백화점에 가는 것도 고민했을 텐데 하물며 속인과 동행이라니요? 그러나 이번에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진정한 대법 수련자라면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남을 돕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극단으로 가서 속인과 왕래하지 않으려 하거나 특히 삼퇴를 한 속인과 왕래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상을 알리는 음성전화기를 갖고 그녀와 함께 옷을 골랐습니다. 여러 번 갔고 시간도 꽤 걸렸지만 마침내 마음에 드는 옷을 샀습니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고 감동했으며 계속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매우 기뻤습니다.

4. 수련생과의 교류와 법 실증 및 세인 구원 항목을 하며 사심 제거하기

우리 법공부 팀은 많은 세인 구원 항목을 맡았습니다. 자료 인쇄, 진상지폐 인쇄, 진상편지 우편 발송 등입니다. 사부님의 안배로 우리 가족이 잔돈을 바꿔올 수 있었는데 모두 새 돈은 아니었습니다. 새 것과 헌 것이 섞여 있어서 저는 인내심을 갖고 가려내야 했습니다. 때로는 8천~1만 위안 정도를 한밤중까지 가려내야 했습니다. 한번은 거의 밤새도록 가려냈는데 돈을 세다가 잠들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돈이 더러워서 악취가 나는 것도 있었습니다. 쓸 만한 것을 골라내고 나서 씻고 다림질해야 했습니다. 이 항목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사실 저는 이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바꿔온 잔돈을 진상지폐를 인쇄하는 수련생에게 바로 건네주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제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소그룹의 어떤 동수들은 바꿔온 헌 돈을 그대로 진상지폐 인쇄 담당 동수에게 건넸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모두가 바쁜데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좀 더 부담해주면 수련생들이 시간을 아껴 법공부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정리한 돈을 진상지폐 인쇄 담당 수련생에게 건넬 때마다 그녀는 매우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이 일이 얼마나 시간이 드는지 저는 잘 알아요.” 하지만 저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사심을 제거할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저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지 않으려는 것도 사심의 주요 표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작년 6월, 중국 대법제자들이 모두 장쩌민 기소에 참여할 때 저는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기소 항목을 성공적으로 완성한 후 다른 수련생들의 기소 참여를 돕고 싶었습니다. 사부님의 안배로 저는 세 분의 연로한 수련생의 익명 기소를 도왔고, 타자를 못 하는 두 분의 중년 수련생의 기소장을 작성해 실명으로 장쩌민을 기소하도록 도왔습니다. 두 분의 가족도 익명 기소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연로한 수련생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귀찮아하는 마음, 조급한 마음, 일을 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마음, 즉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등을 버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수련생을 돕는 과정이 바로 제 사심을 제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 집 근처에 저와 나이(52세)가 비슷한 여자 수련생이 한 분 계십니다. 가정에서 큰 불행을 겪어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 아래 한 수련생의 이타적인 도움으로 마침내 난(難)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는 그분과 여러 해 알고 지냈지만 별로 왕래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상황을 알고 난 후 저는 그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서로 독려하며 함께 정진하고 싶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수련생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보시고 한번은 차에서 그분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연락이 닿은 후 우리는 함께 법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집 형편이 매우 좋고 집이 넓으며 혼자 산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아직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노트북은 있었기에 저는 그분에게 명혜망에 접속하라고 권했습니다. “명혜망은 우리 대법제자의 집이에요! 접속하고 나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거예요. 그렇게 많은 좋은 교류문과 사부님의 설법, 그리고 자료를 다운로드도 할 수 있어요.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다 있답니다.”

처음에 그분은 좀 망설였습니다. 몇 번 권유한 후에야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람마음이 그분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소그룹에 70세 가까운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데 초등학교 4학년밖에 다니지 않으셨어요. 그분도 인터넷을 아주 잘 사용하시고 진상자료도 만드세요. 게다가 제 수련 경험으로 볼 때 명혜망에 일찍 접속할수록 좋아요.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거든요. 저는 2007년 전후에 명혜망에 접속하고 가정 자료점을 만들었어요. 비록 정진 정도가 부족해서 만든 자료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죠. 수련생들의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언제 어디서나 진상 소책자를 보낼 수 있고, ‘명혜주간’을 인쇄하고, 진상지폐도 직접 인쇄하고, 진상 편지와 봉투도 인쇄하고, 편집된 교류문을 인쇄해 수련생들과 나눌 수 있었어요.”

저는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수련, 법 실증, 세인 구원과 관련된 일이나 항목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나면 왜 진작 참여하지 않았을까,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게 될 거예요. 법 얻는 것과 같아요. 누구나 일찍 법 얻은 수련생들을 부러워하고, 사부님 설법반에 참석한 수련생들을 부러워하잖아요, 그렇죠?”

곧 그분은 동의했고 저는 기술 수련생을 불러 시스템을 설치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용법을 가르쳐드렸더니 그분은 금방 명혜망에 접속해 글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며칠 후 그분은 기쁘게 말했습니다. “명혜망에 접속하니 정말 좋네요! 좋은 글은 보고 또 봐요. 정말 저에게 도움이 많이 돼요. 정말 당신 말씀대로 진작 접속했어야 했어요.” 저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항목은 빨리하세요. 제가 작년에 음성전화 항목에 참여했을 때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죠.”

심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분은 자발적으로 프린터를 사서 자료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운로드와 인쇄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렸습니다. 그분이 인쇄한 아름다운 진상 소책자를 보며 우리 둘 다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분은 자기 집이 높은 층에 있으니 누가 그렇게 높은 층을 오르려 하겠냐며, 제가 여러 번이나 왔다 갔다 해줬다고 계속 저에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를 감사할 것 없어요. 사부님께 감사드려요. 이 모든 게 사부님의 안배예요. 사부님께서는 제가 여사님을 돕는 동시에 제 사심을 수련하게 하신 거예요! 감사해야 한다면 저도 사부님께, 여사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여사님이 저를 제고시켜주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저는 그분과 갈등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제 많은 사람마음을 발견했습니다. 남의 천대를 두려워하는 마음, 사소한 것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마음, 게으른 마음,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 조급한 마음, 남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마음 등 많은 사람마음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그분에게 음성전화 거는 법을 가르쳐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교란도 매우 컸습니다. 잠깐 안 되다가 카드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인내심을 갖고 가르치며 계속 전화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세인을 구하는 길이 곧 통할 거라고,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우리는 단지 세인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세인 구도의 마음이 순수할수록 좋고 구도 효과도 좋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천지는 정법(正法)의 길을 막지 못하는데 다만 제자들의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있네”(홍음3-번거로움).

이상은 제가 사심을 제거하는 수련에 대해 쓴 약간의 체험일 뿐입니다. 제 수련의 길에서 저는 사심이 제 제고를 가로막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구(舊) 우주의 생명은 사(私)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위대한 법이 만들어낸 생명이 아닙니까? 대법의 표준에 따라 엄격히 자신에게 요구하여 사(私)를 수련해 버려야 합니다.

 

원문발표: 2016년 10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mh/articles/2016/11/24/3380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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