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여의(如意)
[명혜망] 얼마 전 한 수련생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온몸이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기침도 심했다. 이 수련생은 전화를 걸어 내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내가 가니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며 말했다. “허리가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어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모르겠어요.” 나는 웃으며 속으로 ‘이런 얘기는 나와 할 필요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교류한 후 격려하는 말 몇 마디 하고 “법공부 합시다!”라고 했다. 그녀는 “네”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게 천천히 일어났는데 아주 허약해 보였다.
우리 둘은 열심히 법공부를 했다. 나는 법공부할 때 계속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매우 진지하게 임했다. 수련생에게 바른 에너지와 법공부의 엄숙함과 신성함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관찰하지 않았고 사람의 정에 끌려가지 않았다. 최대한 수련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맞추고 그녀에게 사상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힘들게 한 강의를 배웠고 배운 후 나는 말했다. “저 갈게요! 좀 바래다 주세요!” 그녀는 바닥에 내려와 침실 입구까지 걸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보세요, 제가 걸을 수 있어요!”
그날 오후에 나는 다시 갔다. 우리는 함께 제5강을 배웠고 배운 후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오전에는 못 올 것 같아요. 혼자서 제6강을 배우세요!” 그녀는 “알겠어요”라고 했다. 다음 날 오후 내가 가니 그녀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는데 상태가 어제보다 훨씬 좋아졌다. 당시 나는 그녀가 아마도 어떤 마음을 찾아 자신을 바로잡아서 신체 상태가 빨리 회복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는 곧바로 법공부를 시작했다. 법공부가 끝난 후 그녀가 말했다. “어제 제6강을 배우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내가 물었다. “다 배웠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네, 다 배웠어요. 모르셨어요? 배우는 데 너무 힘들고 졸리고 눈도 흐릿해져서 3시간이나 걸려 겨우 다 배웠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문 열 때 보니까 오늘은 어제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 보이더라고요. 분명 심성이 제고됐을 거예요. 알고 보니 법공부라는 관문을 넘은 거네요.” 그녀가 말했다. “저도 오늘 상태가 매우 좋다고 느꼈어요. 관문을 넘을 때 ‘내가 이 관문만 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떻게든 끝까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말했다. “당신이 해냈잖아요. 당신은 수련해낸 거예요. 무엇을 수련했냐고요? 정념을 수련해냈어요. 추구하지 않아서 저절로 얻은 거죠. 당신이 법에 부합하니까 대법의 위력이 당신 몸에 즉시 나타난 거예요. 어제와 오늘의 당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이게 바로 기적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의 정념은 정말 강해요. 남을 질책하지 않고 모두 법에서 교류하시네요.” 수련생이 날 칭찬하는 말을 듣고, 또 수련생이 그렇게 빨리 좋은 상태로 회복된 것을 보니 환희심이 좀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즉시 그것을 붙잡았다. ‘이 환희심은 내가 아니야. 뭐 그리 과시할 게 있어?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건데.’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후로 그 수련생은 매일 ‘전법륜’ 세 강을 배우며 조사정법(助師正法)의 큰 흐름 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우리가 수련생과 협력할 때 늘 가상으로 일을 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법공부를 많이 하면 당신 신체가 좋아질 거예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녀가 ‘법공부를 많이 하면 좋아지겠지’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추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를 하면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하게 되어 효과가 좋지 않다. 우리는 관념을 바꾸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 한다. 당신은 ‘그녀의 이것이 좋지 않고 저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추구하는 마음 없이 조용히 법공부를 하고,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며 법에서 교류하되, 근본적으로 그녀의 병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동안 견지하면 진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하는 데 도달할 수 있다. 법으로 자신의 어느 부분이 맞지 않는지 대조해보고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으면 바르지 않은 상태는 자연히 바로잡힌다. 병업이 있는 수련생을 도울 때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1999년 4월에 운 좋게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심신이 이로움을 받았고,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 아래 오늘까지 왔으니 정말 운이 좋다. 사부님께서는 날 지옥에서 건져내 깨끗이 씻어주시고, 내 온몸의 업력을 없애주시어 내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제자는 사부님에 대한 감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제자는 오직 착실히 수련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뿐이다. 나는 2010년 이전에는 법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외지에 나가 일하느라 세 가지 일도 잘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가다가는 또다시 수련하지 않던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돼. 집으로 돌아가야 해.’ 이렇게 해서 2010년 8월 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간단히 정리한 뒤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최소한 3강을 배웠고, 또 스스로에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할 것을 요구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으며, 추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법공부를 했다. 이렇게 4~5년간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자신을 찾으며 그러한 좋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자아를 내려놓았더니, 매일이 매우 충실했고 상태도 아주 좋았다. 나는 법을 실증하는 빛나는 대도(大道) 위에서 확고히 걸어가고 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깨달음을 대표할 뿐이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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