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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련생의 해외 도피에 대한 소견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중국 수련생들이 해외로 이민 가 도피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이 들어 글로 써서 교류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표면적으로 나가는 것과 남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적절한지를 논하려는 게 아니라, 이 현상의 배후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교류하고 싶다.

사실 예전에 나도 해외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강했다. 당시 사악이 불법적으로 우리 집을 수색해 나와 가족에게 큰 심리적 충격을 안겨줬고, 중국에 있으면 언제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여러 경로를 찾아 해외로 이민 가 도피하려 했다. 나중에 수련생과 교류하며 가장 중요한 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지역의 한 수련생 집에서 한동안 수련 상태를 조정했다. 매일 대량의 법공부와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제거하고 나니 결국 집으로 돌아와 계속 이곳에 남아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잘할 수 있었다.

수련생들이 해외 이민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여러 장애에 부딪히고 있는데, 내 경험에 비춰보면 남느냐 떠나느냐 자체는 중요하지 않으며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우리는 모두 자신을 잘 수련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부딪히는 문제와 시련은 단지 형식만 바뀌었을 뿐, 결국 이 길은 우리가 직접 걸어가고 잘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외에 나가더라도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박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모든 걸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사악이 박해할 구실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관건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정진(精進)’ 두 글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렇다! 우리가 해외로 나가려는 건 보통 자유로운 수련 환경을 갖고 사악의 직접적이고 외적인 형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사악한 요소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에도 우리 자신의 정념이 부족하면, 사악은 여전히 온갖 이유를 들어 우리를 박해한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수련 상태가 따라가지 못하면 이런 일은 계속 벌어진다. 반대로 정념이 아주 강하면 사악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를 피한다.

내 주변에 이런 수련생이 있다. 예전엔 늘 사악의 온갖 괴롭힘과 박해에 시달려 이리저리 피해 다녔는데, 나중엔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악인들이 집에 왔을 때 그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는 스스로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처음엔 담당 경찰이 와서 조사하고 녹화하려 했지만 상관과 얘기를 나눈 뒤로는 더는 찾아와 괴롭히지 않았다. 이전엔 경찰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나중엔 이 수련생이 경찰에 여러 번 전화해도 그들은 감히 받지 못했다. 왜 그럴까? 하나는 수련생 자신의 정념이 강해져 사악이 더는 괴롭히거나 박해하지 못한 것이고, 더 중요한 건 중국 전반의 환경이 크게 바뀌어 사악한 요소가 정말 아주 적어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이런 꿈을 꿨다. 산길을 걷는데 앞에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어서 위로 날아 넘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뱀은 이미 죽어 굳어 있었고 겉모습만 남아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자유롭고 박해받지 않는 환경을 찾으려는 것과 이 문제로 드러난 우리의 온갖 사람 마음의 집착, 이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고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 우리의 생명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기 위해 왔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답은 우리 눈앞에 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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