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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는 제자의 매 걸음을 지켜보고 계신다

글/ 윈난성 대법제자 운련(雲蓮)

[명혜망] 사부님의 새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가 발표됐습니다. 한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누구누구를 겨냥해 쓰신 거예요.” 당시 저는 사부님께서 특정 개인을 겨냥해 설법하신 적이 없으시니 아마도 제자들 전체에 이 방면의 문제가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사부님의 새 경문을 펴고 몇 번 더 학습하면서 깊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경문에서 사부님께서 두 번이나 “사부는 당신에게 빚진 것이 없다!”(험악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모든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오직 베풀고, 베풀고, 베푸시기만 하셨음을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개인의 경험을 글로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사부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 어떻게 제자들을 보살피시고 제자들의 매 걸음을 지켜보고 계시는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사부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음을 보여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난의 전반생

저는 남아선호 가정에서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저를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는 저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제가 한 살 남짓 되었을 때 아버지가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우파로 몰려 몇 년 후 중공 감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연루되어 하방(下放, 도시 사람들을 농촌이나 변방 지역으로 보내 재교육을 받게 하는 것)되셨는데, 저를 13살 된 가정부에게 맡기고 오빠를 데리고 농장으로 가셨습니다. 가정부는 나이가 어려 저를 돌볼 줄 몰라 저는 수종병에 걸려 병원 영안실에 버려졌습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저를 데려가셨고 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집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저는 한 끼는 굶고 한 끼는 먹으며 몹시 마르고 작게 자랐습니다. 네 살이 채 되기 전에 이웃집 할머니가 이사를 가셔서 저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집안일을 모두 해야 했습니다.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겨울에는 두 손이 새빨개져도 빨래와 요리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곳곳에서 괴롭히셨고 조금만 잘못해도 욕하고 때리셨으며,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제게 푸셨습니다.

영양 부족으로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질병이 많았습니다. 위축성 위염, 갑상선 기능 저하증, 신경쇠약, 류마티스, 흉추·경추·요추 골증식증을 앓았고, 결혼 후에는 산후풍, 두통, 심장병, 자궁 종양, 유방 종양, 림프종 등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렸습니다. 요컨대 온몸 어디 하나 좋은 데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과민성 체질이어서 모든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어 냄새만 맡아도 쇼크가 왔습니다. 저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혼자서는 외출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항상 누군가와 동행해야 했습니다. 한 번은 버스에서 쇼크가 왔는데, 어린 아들이 저를 끌고 당기며 겨우 직장 의무실로 데려가 응급처치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버스도 타지 못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종류의 기공을 배웠지만 오히려 몸이 점점 더 나빠져 병가를 내고 집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법을 얻어 인생이 바뀌다

1999년 5월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아들이 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길모퉁이에서 많은 사람이 음악에 맞춰 기공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중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이런 상태인데 배울 수 있을까요?” 그녀는 저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서 있을 수 있나요?” 저는 물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서 있어야 하나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한 시간이요.” 저는 겁이 났습니다. “한 시간이나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겁먹지 마세요. 여러 가지 공법이 있어요. 8~9분짜리도 있고 가장 긴 것도 30분밖에 안 되요. 그리고 병 치료와 건강에 특별히 좋아요.”

저는 또 물었습니다. “얼마나 내야 하나요?” 비용이 제일 걱정되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병가 중이었고 남편은 실직 상태여서 집에 경제적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매끼 감자로 연명했는데 감자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준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돈은 안 받아요.” 그리고 아침과 저녁 연공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바로 그들을 따라 제3, 4장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몸이 허약해서 서서 떨면서 연마했습니다. 옆에 있던 남편은 제가 쓰러질까 봐 걱정하며 그만하라고 했지만 저는 “괜찮아요. 아주 좋은 느낌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끝까지 연마한 후 몸이 매우 편안해졌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꿀잠을 잤습니다. 수십 년간 이렇게 잠든 적이 없었습니다.

2~3일 후 보도원이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비디오가 우리 지역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었고, 저는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2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였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어서 저는 문가에 서서 보았습니다. 연공 후 제 몸은 하루하루 좋아졌고 사부님께서 계속 제 신체를 정화해주셔서 20일도 안 돼 모든 병이 나았습니다.

다시 이어진 대법의 인연

안타깝게도 제가 법을 얻은 지 50여 일 만에 중공의 탄압이 시작되어 저는 갑자기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사부님과 대법이 좋다는 것, 억울하게 누명을 쓰셨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법을 막 접한 상태여서 대법이 수련이고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러 오셨다는 것을 몰랐고, 단지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기공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정부에서 연마하지 말라고 하니 그만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대법과 10년간 떨어져 있었습니다.

2008년 10월, 저는 산둥성 고향에 갔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도로변 벽에 모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향의 큰 언니도 대법을 수련해 질병이 낫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대법이 아직도 있나요?” 우리는 또 막 억울한 옥살이에서 나온 수련생을 찾았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설법하고 계시고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으로 진상 알리기에 대해 알았고, 처음으로 발정념에 대해 알았습니다.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뻐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파룬궁이 아직도 있다니!’ 저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땅에 ‘법정건곤(法正乾坤), 사악전멸(邪惡全滅)’이라고 계속해서 썼습니다. 10여 번을 써서 이 정법 구결을 외웠습니다.

저는 현지 수련생에게 대법 서적을 청했고 서둘러 집으로 가져가려 했습니다. 큰 언니가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40~50대이면서 책을 들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검문을 당했어요. 이 책은 가져갈 수 없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꼭 집으로 가져가야 해요.” 저는 대법 서적을 등에 지고 몇 개 성을 거쳐 집에 돌아갈 때까지 아무도 저를 검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깨닫고 보니 사부님께서 제 순수한 마음을 보시고 보호해주셨던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도처에서 옛 수련생들을 찾았고, 6개월을 전전하다 마침내 수련생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때는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 최단시간 내에 자료점을 세웠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단지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정법이고 불법(佛法) 수련이며, 중공 선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대량으로 자료를 인쇄했지만 법공부의 중요성을 몰랐고 매주 한 번만 법공부 장소에 가서 한 강의를 공부한 뒤 돌아와 계속 일만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료점의 프린터 헤드 하나에서 잉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계를 분해해서 청소했지만 어떻게 해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법공부를 하라고 일깨워주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심지어 제가 납치되기 직전에도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위험하다고 일깨워 주셨지만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수련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검은 소굴에서 법을 실증하다

저는 어리벙벙한 채로 ‘검은 소굴’(역주: 감옥이나 수용소 등)에 끌려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왔으니 다른 수련생들이 어떻게 하는지 봐야겠다.” 감옥에 들어온 지 일주일 동안 매일 두 명의 감시자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조급해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누군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원래 대법제자는 이렇게 하는구나. 나도 입이 있으니 외칠 수 있겠다.’ 저는 즉시 창가로 뛰어가 철창을 잡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두 명의 감시자가 저를 필사적으로 끌어내리려 했지만 저는 계속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간수들이 저를 7일간 독방에 가두었습니다. 그 기간 세수나 양치를 할 수 없었고 매일 작은 물병 하나만 주었습니다. 밤이 되면 얇디얇은 그물 같은 이불 한 장을 주었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잤습니다. 두 명의 감시자가 24시간 지켜보았습니다. 첫날 그들은 음식에 무언가를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먹지 않고 음식을 버렸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대법제자가 어떻게 음식을 버릴 수 있나 싶었습니다. 독약은 제게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먹어도 정말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감시자들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먹고도 반응이 없지?”

한번은 감시자가 말했습니다. “또 대법(제자) 한 명이 왔대.”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기 죄수들이 우리를 ‘대법’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내 행동은 나 자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제자를 대표하는 것이니 잘해야 해. 대법과 사부님께 누를 끼쳐서는 안 돼.’ 그 후로 저는 감방에서 나갈 때마다 “파룬따파하오”를 외쳤고, 제가 “파룬따파하오”를 외칠 때마다 간수들은 각종 방법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고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전기 충격을 가하고, 2층 침대에 거꾸로 매달아 놓는 등 고문을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2층 침대 프레임에 수갑으로 매달려 있었는데 발끝이 겨우 바닥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깨와 등에 심한 통증이 왔고, 수갑이 점점 더 살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때 저는 대법제자가 작곡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스승 한 법 억만 제자, 한 생 한 세 한 권의 책, 한 관 한 난 한 층의 하늘, 한 믿음 한 생각 한 귀로.” “인생은 꿈과 같아 손가락 튕기는 사이, 은원정구(恩怨情仇)는 구름 같이 사라지네. 오늘 법 얻어 미혹 깨뜨리니, 마음 반석 같고 의지 더욱 굳세어라.” 생각나는 노래를 불렀고, 비장하고 처연한 노래 소리가 감옥에 울려 퍼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울었고 어떤 이는 말했습니다. “너무 처참해. 매달려 있으면서도 노래를 부르다니, 대법제자들은 정말 대단해.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인데 이게 무슨 세상인가.” 저도 노래를 부르며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듣고 절대 사악에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파룬따파하오”를 외쳤을 때, 한 간수가 전기봉으로 저를 때리려 했지만 전기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것으로 바꿔 왔지만 여전히 전기가 통하지 않았고, 또 세 개를 가져와 동시에 저를 때리려 했지만 역시 전기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네가 운이 좋았구나.” 그리고는 씩씩거리며 갔습니다. 그 후로 간수들은 저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간수들은 강압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전략을 바꿨습니다. 두 달 후 가족 면회를 허락했습니다. 면회 후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간수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는 매우 똑똑하고 효성스러운 아들이 있어요. 재능도 있고요. 생각해보셨나요? 당신이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으면 그의 앞길과 결혼에 영향을 미칠 거예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를 위해서라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수감된 이후로 저는 한 번도 당신에게 ‘전향’하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도 고려해보셔야 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제게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에요. ‘전향’을 어디로 한다는 말입니까. 오늘 아들이 저를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진상이 밝혀지면 이런 어머니를 둔 것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만약 오늘 그의 앞길을 위해 제가 ‘전향’하고 죄를 인정하라고 한다면, 그런 아들은 차라리 없는 게 낫습니다. 당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간수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제가 어떻게 대법 수련에 들어섰는지, 그리고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대법제자를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특별 감시 구역에서 다른 곳으로 전출을 요청했습니다.

특별 감시 구역의 죄수들은 모두 대법제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형량을 더 줄이기 위해 대부분 대법제자들에게 매우 잔인했고, 우리는 자주 그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간수가 저를 아래층 사무실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들어갈 때는 반드시 “아무개 죄수 도착했습니다!”라고 보고해야 했습니다. 저는 보고하지 않았고 그들은 저를 들여보내지 않고 문 앞에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저는 보니 복도에 많은 죄수들이 일하고 있어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이때 야간 감시 근무를 서던 죄수가 복도 끝에서 달려와 저를 세게 밀쳐 넘어뜨렸습니다. 저는 계속 외쳤고 그녀는 제 손을 완전히 뒤로 꺾어 잡아 3층으로 끌고 가서는 저를 독하게 욕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 머리를 베개에 대자 뒤통수에 거위 알만 한 혹이 생긴 걸 알았습니다. ‘이상하다, 이렇게 크게 부었는데 왜 아프지 않을까? 내일 감시자들이 발견하면 병원에 데려가 독주사를 놓으면 어쩌지’하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만져보니 손가락만 한 작은 혹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이틀 후 밤에 화장실에 갔는데 저를 때렸던 야간 감시 죄수가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계단 입구에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감시자들에게 간수를 깨워 그녀를 응급 처치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제가 원한을 갚지 않은 것에 대해 대법제자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고 저를 만날 때마다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감시자가 저를 불러 지문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문을 왜 찍냐고 물었고 감시자는 지문이 없으면 감옥 대문을 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막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대법제자가 무슨 지문을 찍는가!”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알겠다 싶어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지문을 찍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를 돌려보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게 있으면 다 오는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하시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검은 소굴에서 저는 점점 성숙해졌고 전에 밖에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제 사고는 점점 더 명확해졌고 사부님께서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하면 사람 노릇도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들이 어떤 방법을 써도 절대 사부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동시에 대법이 진정한 수련이지 단순히 병 치료와 건강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고, 사부님의 보호를 받아 무사히 검은 소굴에서 나와 진상을 알리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심성은 반드시 표준에 도달해야

저는 두 번째로 불법 감금돼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이 많이 변한 것 같았고 대법제자에 대한 환경이 느슨해진 것 같았습니다. 입감 후 신청서를 쓰지 않고도 물건을 살 수 있었고, 다른 죄수들과 함께 작업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고 보니 감옥이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 방식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강온 양면 전략을 써서 어떻게든 ‘전향’시키려 했고, ‘전향’하지 않으면 더 잔혹하게 박해했습니다. 한 간수가 죄수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을 대할 때 가장 부드러운 말투로 가장 독한 말을 해. 그들이 반항하면 때려. 너희는 처벌받지 않을 거야.” 예전에 감옥이 주로 신체적 고문, 예를 들어 작은 의자에 앉히기, 감금 등으로 대법제자를 ‘전향’시키려 했다면, 이제는 더 많은 정신적 고문과 세뇌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매일 아침 감옥 규칙을 외우고, 점심 식사 후 운동장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오후 내내 체력 훈련을 받고, 저녁에는 강제로 중공 뉴스나 세뇌 영상을 보게 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는 이유로 감시자들에게 공개적으로 구타당하는 것을 보았는데, 간수들은 못 본 척 내버려 두었습니다. 간수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저도 “파룬따파하오”를 크게 외치기 시작했고, 간수들은 이를 구실로 저의 면회 권한을 취소했습니다. 제가 다시 “파룬따파하오”를 외쳐 항의하자 그들은 몰래 감시자들을 시켜 저를 사정없이 때리고 공개적으로 고추 스프레이를 뿌렸습니다. 일부러 자극적인 고추 스프레이를 사방에 뿌려 다른 죄수들도 기침하게 만들고 대법을 욕하게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간수들은 뒤에서 이간질하고 앞에서는 좋은 사람 행세를 하며 대법제자 박해의 책임에서 깨끗이 벗어났습니다.

감옥에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친 수련생 중 일부는 매우 잔혹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한 수련생은 9자 진언을 외친 후 간수가 죄수들을 선동해 “XX당 만세”를 외치며 그녀와 맞서게 했습니다.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외치면 나는 외치지 않고, 그들이 외치지 않으면 제가 외치겠어요. 저는 그들과 싸울 마음이 없어요.” 다음날 간수들은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고 그녀는 감옥 어디서든 매우 큰 소리로 9자 진언을 외칠 수 있었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생각하기 시작했고 일의 표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하는 출발점이 중요하다는 것, 즉 남을 위한 기점에 서 있는지, 법을 실증하는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방식을 바꿨고 더 이상 쟁투심을 갖고 외치지 않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한 감시자가 있었는데 당시 제 오른손 검지를 부러뜨렸고 저는 순간 부러진 손가락을 제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다음날 제 검지가 모두 부어올랐지만 저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출소하기 하루 전에 그녀는 특별히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사과하고 싶어요. 2년 전 감방에 들어와 당신을 때렸을 때, 정말 마귀에게 조종당한 것 같았어요. 당신의 검지를 부러뜨렸죠. 다음날 당신의 손가락이 찐빵처럼 부어올랐는데도 당신은 웃으며 저를 맞이하더라고요. 전에 많은 대법제자들이 저에게 당신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믿지 않았어요. 그저 입으로만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죠. 그날 저는 정말로 믿게 됐어요. 당신들은 정말로 맞아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먹어도 대꾸하지 않는 것을 실천하셨어요. 여러분의 스승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알아차리셨나요? 그 이후로 저는 다시는 대법제자들을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았어요.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어요.”

이 일을 통해 저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단순히 입으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사부님께서 우리를 늘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에는 우연한 기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모두 우리의 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새 죄수가 입감한 지 두 달 만에 감옥 관리과 간수들이 감방에 와서 감옥 규칙을 무작위로 암송하게 했습니다. 그날 운동장에서 70~80명의 죄수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간수들이 평소와 달리 앞에서부터가 아니라 뒤에서부터 검사를 시작했고, 마침 제 앞에 있던 대법제자 한 명에게 암송하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수련자입니다. 감옥 규칙을 외우지 않습니다.” 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앞으로 와서 저에게 암송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그는 “또 파룬궁수련자군”이라고 말하고는 그냥 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이른바 ‘나체 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작업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죄수의 20%를 무작위로 뽑아 옷을 모두 벗고 몸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저는 간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인격 모욕적인 행위에 대해 질문했고, 간수는 이것이 감옥의 제도이며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수련생을 만났는데 스치듯 지나가면서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체 검사는 신불(神佛)에 대한 범죄예요.” 다음날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제가 마침 나체 검사 대상으로 뽑혔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나체 검사를 거부합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왜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대법제자에게 나체 검사를 하는 것은 신불에 대한 범죄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난 그런 거 안 믿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믿지 않기 때문에 제가 거부하는 겁니다. 우리를 나체 검사하면 당신들에게 재앙이 올 거예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좋아요, 옆에서 기다리세요.” 그 후로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정진요지-도법)

저는 대법제자의 심성이 요구에 도달하기만 하면 많은 일이 해결될 수 있고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백 퍼센트 사부님과 법을 믿어야만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환경이 느슨해져서 어떤 이들은 태만해졌습니다. 법공부와 진상 알리기도 과제가 되어버렸고, 사부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사부님의 새 경문을 학습하고 나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는데 공로를 자신의 머리에 씌웁니다.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위덕까지 우리에게 주셨는데, 감히 하늘의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삼다니 얼마나 큰 누락입니까!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해 얼마나 많이 희생하셨는지 모든 제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자비롭게 일깨워주시어 제자들이 태만하지 않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제자는 오직 앞으로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만 사부님의 희생에 보답하고 자신의 중생들에게 떳떳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격려하며 최후의 길을 잘 걸어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께 경배드립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10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7/4693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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