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발을 접질린 후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닦다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소우(小宇)

[명혜망] 나는 2017년에 법을 얻은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소설 보기를 무척 좋아해서 줄거리에 푹 빠져 침식을 잊을 정도였습니다. 중공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반드시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소설과 TV를 끊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끊었지만 이 마음을 진정으로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좋아하는 내용을 볼 때마다 참지 못하고 보고 나서 또 끊기를 반복했습니다. 올해 4월, 한 가지 일을 겪으면서 소설 보기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며, 진정한 원인은 이 현상 뒤에 버리지 못한 많은 집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은 이렇게 벌어졌습니다. 청명절 전, 핸드폰 앱에서 자료를 찾다가 앱이 추천한 단편 소설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설 도입부가 흥미로워 참지 못하고 계속 읽었고, 금세 다 읽자 앱은 바로 다른 소설을 추천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청명절 며칠 동안 저는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보았습니다. 한번 시작하니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앱이 추천하는 소설은 처음에는 내용이 비교적 깨끗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나빠져 원망, 색욕, 명리심(명성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질투 등 좋지 않은 물질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마에 홀린 듯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보고 싶지 않아도 손이 계속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너무 몰입해서 보다가 텀블러로 물을 마시고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법공부하는 핸드폰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바로 텀블러를 치웠지만 치운 후에도 계속 핸드폰을 보면서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청명절이 지나고 수련생과 함께 박해받는 수련생을 법으로 구출하는 일에 대해 교류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소설 생각을 했습니다.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사부님께서 더는 소설을 보지 말라고 일깨워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속인에게 주는 오락 방식일 뿐이며 대법제자가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참지 못하고 또 앱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볼수록 보기 싫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소설 내용이 다 비슷비슷하고 지루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날, 가족 수련생의 사회보장 소송이 있어 방청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텀블러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소설과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읽었던 소설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저를 교란했습니다.

하루가 더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서 온라인으로 새 텀블러를 사려고 구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오른발이 갑자기 접질렸고 몸이 넘어졌습니다. 곧이어 발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첫 번째 든 생각은 ‘소설을 보더니 업보가 왔구나’였습니다. 바닥에 앉아 한동안 진정한 뒤 난간을 붙잡고 조금씩 내려갔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발은 이미 부어 있었고 다음 날 발에는 큰 멍이 들어 심하게 부어 걷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약을 바르고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지만 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고 설사 제가 잘하지 못했더라도 사악이 저를 박해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았기에 법을 더 많이 공부하고 발정념을 하면서 안으로 찾았습니다.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안일한 마음이었습니다. 소설을 클릭했을 때를 생각해보니 자신을 느슨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편 소설은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아무것도 지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수련에서는 정말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데, 점심을 먹고 나면 법공부를 하거나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배가 부르지 않아 의자에 반쯤 기대어 과자 봉지를 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참 편하고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이 생각이 나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낸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안일한 마음의 존재를 이렇게 분명하게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을 잘 숨겨 제가 발견하지 못하게 했고, 저를 편안하고 안일하게 느끼게 하여 결국 저를 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이전에도 안일한 마음을 제거하려 했지만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이번에 안일한 마음이라는 이 생명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나서야, 마침내 한밤중에 일어나 5장 공법을 모두 연마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수련을 시작한 이래 제가 계속 돌파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며칠을 견지하자 발의 부기가 많이 빠졌지만 멍은 계속 퍼지고 뼈는 여전히 많이 아팠습니다. 저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견지하면서 계속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다음 찾은 것은 질투심이었습니다. 속인 사회에서 저는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발을 다치니 겨우 걸을 수는 있어도 고객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많은 촬영을 거절하거나 파트너에게 넘겼습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적지 않은 수입이었고 이 일로 질투심과 명리심이 모두 올라왔습니다. 고객을 파트너에게 소개해줄 때 고객은 아쉽다며 제가 찍은 사진을 더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졌고 발을 다치지 않았다면 이 일을 파트너가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파트너는 제가 받는 만큼 일감을 받지 못했고, 저는 자주 일부 의뢰를 그녀에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를 위해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생각해보니 평소에는 일이 많아 돈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 이익이 침해받자 명리심이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일주일 후 발의 부기가 눈에 띄게 빠졌고 멍도 많이 줄었지만 걸을 때는 여전히 절뚝거렸습니다. 저는 제 신체를 박해하고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악을 제거하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이 정념이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카메라와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었지만 계속 돈을 모으지 못했는데, 이렇게 일을 못 하게 되니 돈을 모으는 목표도 중단되었습니다. 제가 조급해한 것은 발이 나아지지 않아 일을 하고 돈을 벌지 못해서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명리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색욕에 대한 마음을 찾았습니다. 수련하기 전에 좋지 않은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를 많이 봐서 2017년에 법을 얻고 수련을 시작했을 때 색욕 방면의 사상업(思想業)이 꽤 무거웠습니다. 저는 늘 이를 중요하게 여겼고, 점차 색욕에 대한 마음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꿈속에서도 색욕 관문을 잘 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며칠 동안 꿈속에서 색욕 시험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아서 색욕 시험이 그리 직접적이지 않았고, 대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색욕심 수련을 중요하게 여길 때는 이런 장면이 나타나면 제가 수련인이라 볼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그 장면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꿈속에서 시험이 나타났을 때는 그 장면을 건너뛰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았습니다. 마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 때 가장 더러운 장면은 건너뛰고 다음 줄거리를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 더러운 부분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깨어난 후에도 충분히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 수련생의 교류문장에서 ‘색욕은 독립적인 생명체’라는 구절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안일한 마음이 독립적인 생명체라는 것을 깨달았듯이 색욕심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소설 보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보게 되는 걸까요? 모두 이 색욕심이 보고 싶어 하기 때문 아닐까요? 제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을 때, 그것이 저를 조종해 계속 보게 하는 것 아닐까요? 흥미진진한 부분을 볼 때 느끼는 설렘도 사실 그것의 반응 아닐까요? 그것은 제가 아닙니다! 수련을 시작한 이래 저는 줄곧 ‘금욕’이나 ‘배척’의 방식으로 집착을 대했지만 사실 근본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러한 집착심들이 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 근본적으로 그것들을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신체에도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중에 컴퓨터의 블루투스 마우스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표시등은 계속 켜져 있어 배터리에는 문제가 없는데 컴퓨터와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든 생각은 ‘요즘 물건들은 품질이 형편없어서 새 마우스를 사야겠다’였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이것이 수련인의 오만함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보기 흉하고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을 무시하지만 그것들도 생명이 있어 슬퍼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생명은 법을 위해 왔고 모두 위대합니다. 어떤 것도 무시하는 생각을 갖지 말고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마우스도 법에 동화되려 온 생명이니 소중히 대해야 합니다. 저는 마우스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너도 법에 동화되러 온 생명이야. 우리 집에 온 것은 우리에게 인연이 있다는 뜻이지. 계속 작동해서 우리 함께 대법을 실증하고, 네 생명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자 마우스 표시등이 두 번 깜빡이더니 꺼졌습니다. 혹시 배터리를 교체하라는 신호인가 싶어 배터리를 갈아 넣었더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마우스가 다시 작동했습니다!

수련 중에는 정말 작은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집착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며, 우리가 자신을 바로잡으면 주변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를 위해 감당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열심히 정진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11/47578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9/11/475785.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