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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들의 교류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닦다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지난 10여 년간 명혜망에서는 매년 중국을 대상으로 두 차례 원고를 모집했다. 하나는 ‘5월 13일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대법제자들의 온라인 법회를 위한 것이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모두 열성적으로 투고에 참여했다. 직접 쓴 글도 있고 다른 수련생이 대신 써준 글도 있었다. 나와 수련생들이 함께 이 글들을 정리한 후 명혜망에 제출했다.

교류 원고를 쓰면서 신심이 생기다

초기에 우리는 수련 체험을 글로 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수련 심득 원고를 쓰자고 하면 수련생들의 관념부터 나왔는데, 모두들 글을 써본 적이 없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사실 박해 속에서 걸어온 대법제자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수련 이야기가 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난 속에서,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걸어왔다. 그들의 생명은 이미 대법에 뿌리를 내렸고,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금강부동(金剛不動)의 정기(正氣)를 지녔으며,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포기했다.

나는 이전에 직장에서 보고서를 몇 번 써본 것 외에는 글쓰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수련을 시작한 후에는 가끔 시사 정보를 명혜망에 보내는 정도였다. 내가 검은 소굴에서 풀려난 후 시내 수련생이 찾아와 박해를 폭로하는 글을 쓰라고 했다. 글을 완성하고 수련생들의 정리를 거쳐 명혜망에 발표되었고, 그 후 나는 계속해서 몇 편의 글을 더 썼다. 이 과정은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글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기점만 바르다면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관념을 타파하고 진심을 다해 수련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20여 년간의 정법 수련 여정을 되돌아보니, 생사를 초월하고 법을 실증한 위대한 행동, 명예·이익·정 속에서 마음을 도려내는 듯한 집착 제거의 고통, 전체 수련생들과 협력하며 함께 제고한 풍성한 결실 등이 떠올랐다. 글을 쓰는 동안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고 계심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원고 작성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현(縣)의 한 수련생이 나에게 농촌으로 가서 그곳 수련생들의 모범 사례를 글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농촌에 도착했을 때 대다수 수련생들은 글을 쓸 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께서 지난 몇 년간 심성을 높이거나 법을 실증한 일들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그것을 글로 옮기고 문장을 구성해 초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한 여성 수련생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농촌에서 수십 년간 겨울에도 석탄과 장작을 때도 따뜻하지 않은 낡은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마침내 남편의 직장에서 현 소재지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배정받았는데, 이는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면서도 얻기 힘든 것이었다. 그 아파트는 적어도 10여 만 위안의 가치가 있었고 임금 노동자들에게는 몇 년을 모아야 살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수련생들이 우리집에서 법공부 모임을 만들었는데, 만약 현으로 이사 가면 수련생들은 어디서 단체로 법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수련생들에게 ‘명혜주간’과 자료를 전달하는 일도 맡고 있었다. 그의 집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파트에 살 기회를 포기하고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이 수련생은 진정으로 대법을 생명의 첫 자리에 두었으며, 그의 사심 없는 경지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다른 농촌 수련생들의 수련 이야기들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는 내가 단순히 수련생들의 글을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나 자신을 수련하고 제고할 기회였다. 나 자신과 대조해 보니 어떤 마음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수련생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마음을 닦다

한번은 남편 수련생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내 관점에 따라 불필요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삭제했다. 정리를 마치고 그에게 보여주었더니 그는 읽고 나서 화를 내며 말했다. “왜 내가 쓴 부분을 삭제했어?” 당시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첫 번째 검토자인데 그렇게 장황하게 쓴 것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되지. 명혜망 수련생들도 선별해야 할 텐데.’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약간 불복했다. 그러나 곧 다시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은 신성한 것이니 자신에게서 찾아야 해.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 그가 걸어온 길일 수 있어.’ 그래서 나는 기분 좋게 남편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당신이 쓴 부분을 다시 추가할게요.”

한 여성 수련생은 대면해 진상을 아주 잘 알렸다. 그녀는 진상을 알릴 때 절대 대충 넘기지 않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이 항상 진상을 철저히 설명했다. 작년 ‘5·13’ 원고모집 때 나는 그녀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린 사례를 글로 써서 다른 수련생들과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러 번 썼지만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어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내 원고가 너무 많아서 다 선정될 수는 없어요. 그럼 우리 법공부 소모임에서 읽어도 서로 배울 수 있고 사부님께 보고드리는 것이기도 해요.”

그녀는 글을 다 쓴 후 나에게 보내왔다. 그녀가 쓴 내용은 몇몇 수련생들이 관광지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구류소로 끌려갔지만, 그녀는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고 경찰들에게 진상을 설명했고 10일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나는 일부 내용을 삭제했다. 박해를 인정하는 듯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경찰이 압수해 간 진상 호신부(護身符) 등 몇 가지 물건들에 대한 언급도 생략했다. 나는 이것이 교류 문장이므로 정념정행으로 진상을 알리는 측면만 부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박해를 폭로하거나 자료를 검증하는 글이라면 압수당한 물품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보고해야겠지만 이 글은 교류 문장이라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정리를 마치고 그녀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녀는 내가 수정한 글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원래 의도가 아니라며 이전에 썼던 글도 다른 수련생이 수정해서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이는 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글 수정에 대한 내 견해를 설명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고수했다.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원문 그대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추가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런 글은 명혜망에서 꼭 게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내가 쓴 대로 보내세요.”

수련생이 떠난 후 나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우연한 일은 없다. 이 몇 년간 수련생들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때때로 내 인식과 표현 방식에 따라 수련생들의 글을 수정하고 삭제했는데, 분명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내 의견을 고집하는 마음이 꽤 강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두 수련생의 불만스러운 태도를 통해 깨달았다. 이는 단순히 내가 글을 수정한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 일을 통해 나 자신의 많은 부족함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독단적이고, 자신을 과시하려 하고, 자아를 실증하려 하고,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등 숨겨진 공산당 문화의 습성들이 드러났다. 이러한 집착을 갖고 어떻게 수련생들의 글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잘못이 있었다.

내가 쓴 글 중에는 발표된 것도 있고 발표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발표된 글에 대해 명혜망에서 수정한 부분이 있으면, 나는 그 수정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명혜망 수련생들의 책임감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수정이 아주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글을 쓸 때는 어떤 면에서 개선이 필요한지 알게 되어 제고할 수 있었다.

수련생들의 원고를 정리할 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은 대충 정리해서 명혜망에 보냈다. 사실 수련생이 어떻게 썼든 간에 그것은 그 수련생이 사부님께 제출한 답안지와 같은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시고 다른 공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바로 수련생들과 서로 협력해 이 일을 잘 해내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진상을 알렸고 대법활동에 참여했고 대법항목에 참여했다고 해서 대법을 위해, 사부를 위해 무얼 했다고 여기지 말라. 그것은 사부가 당신들에게 서로 구조(救助)하게 하고, 서로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도하게 한 것인데, 이것은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법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모두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 후로 원고를 정리할 때마다 나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각 글을 정성껏 읽었으며, 겸손한 마음으로 수련생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감탄했다. 때로는 수련생들의 글을 읽다가 감동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처음에 내가 쓴 글이 발표됐을 때는 마음에 약간의 기쁨이 있었고, 다른 수련생들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련생들이 날 만났을 때 내 글이 잘 썼다고 칭찬해주었다. 겉으로는 겸손했지만 때로는 마음속으로 꽤 만족스러웠다. 한번은 다른 지역에서 온 수련생들이 우리집에 왔는데,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수련생의 집에서 교류하고 있었다. 그때 한 수련생이 내가 쓴 글이 얼마나 좋은지, 내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쉽지 않았을지에 대해 칭찬했다. 다른 수련생들도 그녀가 날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나는 그녀가 계속 말하는 것을 제지했다. 나는 “우리 모두 제일선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과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의식했다. 즉시 근본적으로 자신을 바로잡았고 그 마음을 붙잡아 제거했다. 글을 쓰는 것은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어떤 것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모든 능력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분명히 인식했다. 글이 법을 실증할 수 있고, 수련생들이 서로 배우며 함께 제고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다.

현재는 글이 더 많이 발표되어도 나는 매우 평온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이에 대해 말하지도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법을 실증하는 글쓰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적극적으로 원고를 제출하고 있다.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는 내용, 박해에 반대하는 내용,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 복을 받았다는 내용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있다. 수련생들이 쓴 많은 글들이 명혜망에 게재되었다. 수련생들이 성숙해졌고 이는 수련생들의 수련 과정에 대한 역사적 증거이며, 미래 사람들을 위한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대신해 감당하고 계시며 거대한 대가를 치르며 시간을 연장해주셨다. 대법제자들은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다. 대법제자들에게 있어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곧 비약적인 발전을 의미하며, 시간은 중생의 생명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제고의 기회를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11/4816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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