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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을 홍보하면서 관용과 선의를 배우다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제가 현재 살고 있는 T시에 온 이후, 이곳의 션윈 티켓 판매 상황이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한 대법제자의 질문에 “션윈은 사람을 구하는 모든 항목 중에서 사람 구하는 힘이 가장 크다”(각지 설법15-2018년 워싱턴DC 설법)라고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을 잘해내야 합니다.

북미와 유럽의 대부분 공연이 매진, 만석, 대성황을 이루는 상황에서 우리 지역은 정말 많이 뒤처져 있었습니다. 저는 티켓 판매가 부진한 이유가 이곳 수련생들의 전반적인 수련 상태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합쳐 전체적인 수련 상태를 높인다면 결과가 반드시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션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사부님을 뵙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드시 션윈 홍보를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 했습니다.

올해 우리 지역 공연은 작년보다 나아져서 마음이 조금은 놓였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다른 A시에서의 공연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A시 공연 후, 플로리다에서 공연을 본 한 관객이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버몬트에서 평생을 살았어요. 10년 전부터 션윈을 알고 있었고 늘 보고 싶었는데 볼 수가 없었죠. 작년에 플로리다로 이사 와서야 드디어 션윈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버몬트에서도 공연을 하지 않았나요? 버몬트에서의 홍보가 정말 부족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B시에서는 갑자기 한 차례 공연이 취소되기까지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일에서 실수와 부족함이 매우 분명했고,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도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저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모르는 것도 많았고 물어볼 수도 없었거든요.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일부 잘못되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저는 무척 답답했고 주요 담당자 수련생들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제 수련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아 수련 상태를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 수련생에 대한 정(情), 원망심, 강한 외향성, 오만함 등 많은 집착심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션윈 티켓 판매 상황을 다시 보니 여전히 마음에 걸리고 석연치 않았으며, 제가 어디서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마침 그때 한 수련생이 자신의 소그룹에서 작은 법회를 연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마음의 매듭을 풀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기회라고 여겼고 기꺼이 참석했습니다.

그들 각자의 교류 내용이 모두 마음을 울렸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제 곤혹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법의 각도에서 저와 교류하며 제 문제가 일을 서두르고 다른 수련생들에 대한 선심(善心)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해주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의 부족함을 볼 때 불평하고 업신여기기만 했을 뿐, 그들을 위해 안타까워하고 진심으로 선하게 대하며, 그들이 잘 수련해서 모두 함께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던 겁니다. 모든 수련생은 사부님의 제자이고 사부님께서 그들을 보살피시며 자비롭게 안배하고 계시니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수련생들과 인내심 있게 교류하는 동안 저는 순간 제 문제를 깨닫고 마음의 매듭이 풀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을까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 당신들이 속인세상에서 수련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당신들은 모두 법리에서 한 가지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는데, 바로 속인의 득실(得失)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고 있는 일을 포함해서 꼭 나의 의견을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내가 기어코 어떻게 해야만 자신이 비로소 우주 중에서 위덕(威德)을 수립할 수 있다는 이런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좋은 방법이 있어서 생각해 냈고 당신이 법을 위해 책임을 지고 있다면, 당신의 의견, 당신의 방법을 사용하든 안 하든, 이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만약 다른 사람의 방법이 도달하는 효과가 같고, 당신이 결코 당신 자신의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동의했다면, 당신이 당신의 방법을 말했든 말하지 않았든 신(神)들은 모두 볼 것이다. 당신이 보라. 그는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그는 능히 이렇게 대범하고 관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신은 무엇을 보는지? 바로 이것을 보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자신을 강조하는 데 집착하고 있을 때, 당신은 곧 쇠뿔을 파고드는 것으로, 신(神)들이 천상(天上)에서 보고는 괴로워한다. 당신이 말끝마다 대법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나의 방법이 좋으며, 어떤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렇다 해도 우리는 너무나도 속인적인 그런 종류의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정말로 이 점에 도달할 수 있다면, 뭇 신들은 모두 이 사람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한다. 신은 당신의 방법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당신에게 층차를 제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서 당신의 인식이 제고되어야 비로소 당신의 층차를 제고해 준다. 이것이 바로 바른 법리이다. 나에게 얼마만한 공로가 있어 나는 어떻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속인이라면 그러하다. 우주의 법리의 어떤 특징, 어떤 특수한 환경 속에서 아마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 (각지 설법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사부님의 법에 비추어 저는 진지하게 제 상태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선악을 엄격히 가리고 흑백을 분명히 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고집이 세서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지언정 변하지 않으려 했죠. 옳지 않은 일이라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도 협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 몇 년간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을 할 때 남을 용납하지 못하고 타인의 실수를 쉽게 용서하지 못했으며, 마음이 좁아 쉽게 다른 사람에 대한 관념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태가 제 수련 중에 여러 차례 드러났음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수련의 길이 순탄치 않을 때마다 이런 요소가 강하게 작용했죠. 이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제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부합할 때는 아주 완고하게 고집했고, 상대방에 대한 선의도 부족했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해 관념을 형성하고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몇 년 전의 일인데, 한 평범한 직장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좋지 않은 습관들을 많이 길렀는데, 예를 들어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 책상에 와서 제 가방과 노트북을 뒤적거리곤 했습니다. 마침 제가 그것을 목격했고 농담 삼아 한 마디 일러주었더니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으로는 그에 대해 아주 좋지 않은 인상을 품게 되었고 그의 인품이 좋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 동료는 그 후로 저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제가 그 회사를 떠나기 2주 전에야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그는 법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고 사회에서 물결 따라 흘러가다 점점 나빠진 것뿐이며, 사실 매우 가엾은 사람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저는 그를 동정하지 않았고 겉으로 드러난 옳고 그름만 봤을 뿐, 그의 품성이 낮다고 여겨 속으로 그를 싫어했습니다. 그에게 진상을 알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제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냉담하게 대했습니다.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생명으로서 그의 명백한 일면은 얼마나 절망했을까요. 그가 계속 저에게 문제를 일으킨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회사에 갔더니, 그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저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곧 그 회사를 떠나게 되어 그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마음가짐이 만들어낸 유감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저는 한 노년 수련생과 심성 관문을 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분은 젊은 수련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법공부 방식과 깨달은 이치를 저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서 배워 빨리 제고하기를 바랐던 거죠. 하지만 저는 그것이 타인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며 법에서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중국에서 오신 노년 수련생은 매우 강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분은 아주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며 강경한 태도로 저를 바꾸려 했습니다.

다른 일에서는 그분이 연장자이시기에 모두 그분의 뜻을 따랐지만, 이 문제만큼은 함께 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원칙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드시 그분께 설명드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차례 다투었고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했으며, 누구도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제 집착을 인식한 후, 저는 그 노년 수련생을 더욱 평화롭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다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때 저는 자제력을 발휘해 냉소적으로 그분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욱 차분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노년 수련생도 이를 깨닫고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과정이며 우리는 서로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9/4816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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