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청련(淸蓮)
[명혜망] 저는 하루도 학교에 다닌 적 없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지금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자입니다. 법공부와 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제고하면서 원망심과 질투심을 제거한 경험을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사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병업 가상이 나타난 후
작년 늦가을, 저는 처음으로 큰 병업관을 겪었습니다. 고열과 기침, 극심한 무기력증이 찾아왔고 침대에서 일어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어지러움에 입안은 바싹 타들어 갔고 몸을 전혀 가누지 못했습니다. 밥을 지을 수도 없었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생각해도 눈물만 났습니다. 법공부도 할 수 없어 사부님 설법 녹음만 들었습니다.
며칠 동안 법공부 팀에 나가지 않자 두 명의 수련생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수련생이 말을 걸자마자 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실컷 울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련생은 “울고 싶은 건 동수님이 아니에요. 아무 생각 말고 우리 법공부나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에 두 강을 읽고 오후에도 두 강을 읽었으며 저녁에는 수련생이 와서 또 한 강을 함께 읽었습니다. 수련생들은 짧게나마 저와 교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희는 5일간 이렇게 많은 양의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했는데 제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습니다.
며느리와 사돈댁에 대한 원한을 내려놓다
하지만 제 몸 상태가 예전만큼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으면서 매일 조용히 앉아 이 병업 가상을 초래한 원인을 찾아보았습니다. 찾은 것 같다가도 어딘가 석연치 않았습니다. 결국 알아냈습니다. 며느리와 사돈에 대한 원망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법공부와 마음 수련을 거치면서 마침내 그들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바르게 찾자 사부님께서는 이런 좋지 않은 물질들을 제거해주셨습니다.
저는 며느리와 한 마당에서 살았고 아들은 늘 타지에서 일했습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저희는 각자의 삶을 살았고 저도 수입이 있었습니다. 큰손주가 세 살 때부터 저희와 함께 살았는데 손주의 의식주를 저희가 전부 책임졌습니다. 제가 예순 살 때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저에게 노후 생활에 충분한 돈을 남겼습니다. 남편은 임종 직전 “당신 이제 수입도 없고 돈도 벌 수 없을 테니 이 돈은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노후를 위해 써”라고 당부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며느리가 그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협상의 여지도 없었고 좋은 말 한마디 없이 제게 요구했습니다. 주지 않으니 며느리는 온종일 화를 내며 한 마당에 살면서도 저와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돈을 가져간 뒤 며느리의 부모가 와서 저에게 새 배우자를 소개하려 했는데 저는 화가 났습니다. “아!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돈을 가져가고 이제는 절 이 집에서 쫓아내려고요!” 그때부터 저는 그들 모녀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돈이 우리 집에 와도 상대하지 않았고 며느리와는 하루 종일 원수처럼 지내며 자주 다투었습니다.
주변 수련생들은 늘 저에게 법리로 자신을 요구하고 속인처럼 대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며느리가 옆에 있는 것은 동수님의 수련을 성취하기 위해서예요. 우연이란 없듯이 모든 것은 배치된 거예요.” 저도 알고는 있었지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자 주변 수련생들도 저를 걱정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련을 잘하세요. 며느리와 비교하지 마세요. 동수님의 생활환경은 주로 가정이라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며느리가 갈등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어떻게 수련해서 제고하겠어요!” 정말 그랬습니다. 제가 정진할 시기가 되면 며느리는 늘 갈등을 일으켜 저를 화나게 하고 분개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알면서도 범했고 자신의 관념을 고집하며 남을 바꾸려 했습니다. 넘기 힘든 관에 부딪힐 때마다 수련생들과 교류했고 수련생들은 법리로 제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자신을 수련하고 남을 고치려 들지 말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해 법공부에서 다른 수련생들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 시간을 쪼개 법공부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저녁에 연공장에서 한 강을 배우고 집에 와서 한 시간 더 공부했습니다. 나중에는 ‘전법륜’에 모르는 글자가 하나도 없게 되자 혼자서 법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 후에는 수련생에게 사부님의 모든 설법 목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한 권씩 천천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나갔습니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넘어갔다가 손자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물어보곤 했습니다. 이렇게 한 권씩 체계적으로 공부했는데 하루에 30~40페이지, 많을 때는 50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배웠습니다. 점차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법리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은 앉아서 하루에 한 권을 다 읽었지만, 저는 하루에 몇십 페이지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작년 겨울, 저는 다시 순서대로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는데 공부할수록 더 좋아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몰랐던 글자들을 모두 떠올리게 해주셨고 이제는 모르는 글자가 거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처음에는 매일 한 번씩 읽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은 10여 분이면 다 읽었지만 저는 한 번 읽는 데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이렇게 두 달 넘게 꾸준히 읽었습니다.
최근 2년간 저는 모든 대법 서적을 체계적으로 세 번 읽었고 매일 ‘전법륜’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법공부를 하면서 제 심성도 높아졌고 며느리를 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며느리의 표정만 봐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며느리도 변했습니다. 먼저 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전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좋은 말 한마디 없이 지내지 않았습니다. 사돈에 대한 원망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예전의 자신이 우스워졌습니다. 며느리를 미워한 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이는 사부님께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저에게 제고할 기회를 주신 게 아닐까요? 그런데 저는 그 기회를 밀어냈습니다. 며느리를 미워한 것은 결국 사부님을 원망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올해 며느리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제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예전에 가정에 드리웠던 우중충한 분위기와 불쾌감은 제 심성이 높아지면서 사라졌습니다.
아들은 늘 타지에서 일했고 며느리도 최근 2년간 밖에 나가 일했습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동안 이웃과 친척, 친구들과의 교류는 제가 담당했는데 전에는 며느리가 돈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변하자 며느리도 대범해져서 필요한 예의는 꼭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명절 때도 저에게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고 돈은 더더욱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작년 설에는 며느리가 선물도 사주고 돈도 주면서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법 속에 있는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교육받은 수련생에 대한 질투심을 버리다
저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주부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의는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있었는데 이런 마음을 대법 수련에도 가져왔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해 대법 책을 읽을 수만 있었습니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모두 ‘전법륜’과 ‘홍음’을 필사하고 있었는데 저는 글을 쓸 줄 몰라 그들이 법을 필사하는 것을 보면 질투심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오늘 얼마나 필사했다고 말하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책 필사하는 걸 보면 이가 갈려요!” 저는 이 말을 하고도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습니다. 수련생은 듣고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동수님, 책을 필사하지 못하시면 법공부를 많이 하세요.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저는 화가 나서 어느 수련생 집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법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또 몇 번은 우리 법공부 소조에서 ‘홍음’을 읽을 때였습니다. 저는 글자를 몰라 다른 수련생들이 유창하게 읽는 것을 듣고만 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글을 모르는 저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수련생들이 저보고 읽어보라고 하면서 모르는 글자는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한두 문장을 더듬더듬 읽어보았지만 너무 괴로워 참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수련생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답답해서 울기도 했습니다. 다들 교육을 받은 것이 질투 났고,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저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한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수님은 세상 물정을 다 아시잖아요. 단지 글을 모르실 뿐이에요. 사부님께서 이렇게 오시도록 안배하신 거예요. 만약 글을 아셨다면 어쩌면 법 얻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수련생들이 뭐라고 해도 제 마음속에는 ‘원망’과 ‘질투’만 가득했습니다.
나중에 많은 법공부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원망하고 수련생들을 원망하는 것은 결국 사부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요. 저는 오직 수련만 하면 되고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주실 것이었고, 제가 가진 모든 것도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교육받지 못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수련생들이 책을 필사하는 것에 대한 질투심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책을 필사하는 걸 보면 아직도 질투가 나세요?” 저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이제 질투 안 나요. 매일 대법에 녹아들면서 얼음처럼 굳은 제 마음이 사부님의 법리로 녹아내렸거든요. 대법 수련의 신성함과 오묘함을 점점 더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맺음말
저는 이제 70대가 넘었지만 걸음걸이가 아주 가볍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물어봅니다. “걸음걸이를 보니 젊은 사람 같은데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제가 “70이 넘었어요”라고 대답하면 모두들 놀라며 말합니다. “정말 그 나이로 안 보이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게 대법을 배워서 그래요. 아픈 데가 없으니 몸이 가볍죠.”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대법 수련의 길로 인도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법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제고하면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원만을 이뤄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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