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본 화인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일본에 온 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해외의 안락한 생활과 수련 환경 속에서 세 가지 일을 안정적으로 하면서 가정과 직장 모두 비교적 순조로웠고, 큰 풍파를 만나지 않은 채 매일 대법의 홍은(洪恩)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련은 순탄할 수만은 없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수련 성취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에게 완전한 수련의 길을 안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서로 다른 형식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게 하시면서 동시에 생생세세의 업력을 없애게 하십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10여 년간 해오던 RTC 협조인 자리에서 내려온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수련의 고비가 시작됐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갈등과 이해받지 못함, 표면적인 불공정에 직면해서 저는 수련 중에 이 모든 것이 좋은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이 고비를 잘 넘어야 하고, 심성을 지키며, 법에 입각해 올바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도 최대한 침묵을 지키고 다투지 않고 변명하지 않았으며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제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협조인을 그만둔 뒤에도 계속 플랫폼에 남아 전화로 진상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는 RTC라는 수련 환경을 인위적으로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지에도 수련생이 별로 없어서 저는 독수(獨修) 상태와 다름없었고, 갑자기 줄이 끊어진 연처럼 둥둥 떠다니며 방향을 찾지 못했습니다. 비록 몇몇 해외 항목에 참여하긴 했지만 모두 적응하지 못하고 녹아들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힘도 억제된 것처럼 발휘되지 않아 매우 괴로웠습니다.
저와 함께 10여 년간 협력했던 수련생들이 매일 정진하며 진상을 알리고 있는데, 제가 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원망, 불평, 밖으로 찾는 마음이 모두 되돌아 나왔습니다. 마음속으로 저를 해치고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자포자기하는 마음까지 들어 속인들 속에서 자신의 사업을 경영하는 데만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가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몇몇 수련생들이 자주 저를 찾아와 관심을 가져주도록 안배하셔서 저에게 수련생들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셨고, 또한 제게 정념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갈 수는 없었고 반드시 이 상태를 돌파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A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제가 고비를 지나는 일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그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안으로 찾는지, 그리고 안으로 찾아 층층이 자신을 깊이 파헤치는 체험을 나누어 주었는데 저에게 매우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 그녀는 매일 저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밖으로 보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만 보세요. 매일 나오는 일사일념(一思一念)에 대해 모두 깊이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깊이 파내세요!” 이 말은 저에게 문제가 있을 때 밖으로 보는 습관을 점차 바꾸게 했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저 자신을 찾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제가 원래 ‘안으로 찾는다’고 여겼던 것이 너무나 피상적이고 표면적이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는 진정한 안으로 찾기란 대뇌가 표면적으로 잠깐 생각해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층층이 깊이 파헤치는 깊은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우 평온한 마음 상태에서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저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모두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항상 무의식적인 자기 보호 의식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상처받은 후의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의 근원을 찾는 것을 회피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타인의 잘못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늘 자신을 가장 괴롭게 하는 부분을 쉽게 돌아가 다른 곳을 찾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수많은 마음들을 찾아낼 수 있지만 그 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마음들을 거기에 두고 천천히 수련합니다.
어느 날 A와 통화하면서 제가 자신의 많은 집착을 찾았는데 왜 찾고도 버리지 못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건 당신이 아직 충분히 깊이 찾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더 깊이 파헤쳐야 해요. 당신이 아직 이것이 얼마나 더러운지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만약 당신이 몸에 대변이 묻었다는 걸 발견했다면 그걸 그대로 두고 싶겠어요? 일분일초라도 이런 것이 몸에 있는 걸 원치 않겠죠?”
저는 다시 안으로 찾았습니다. 명백한 일면이 저에게 알려주길, 계속 이 부분을 회피하고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왜 아픈지, 왜 괴로운지 물어보았습니다. 녹화된 비디오처럼 전체 과정과 세부 사항을 돌이켜 보며 다시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회상하고 싶지 않을수록, 괴로워하는 부분일수록 바로 그곳이 계속 깊이 파고들어야 할 곳이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마치 썩은 상처를 치료하듯이 계속 파고들어야 합니다. 상처가 매우 아플 것이지만 두려워하지 마세요. 계속해서 자신에게 물어보고, 자신을 찾고, 자신을 해부하세요.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마음이 움직인 곳 뒤에는 반드시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층층이 깊이 파헤쳤고 파헤치다 보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A와 교류할 때 그녀가 저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괴로워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의 업력과 사람마음이 없어지려고 하니까 그것들이 괴로워하는 거예요. 계속 파헤치세요.” 사부님께서 ‘스위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표면상, 형식상의 고생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정하게 마음을 에고 뼈를 깎는 고생이란 그 마음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놓을 때 가장 고생스러운 것이다.” 저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바로 뼈를 깎듯이 집착을 버리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흔히 본능적으로 고통을 거부하지만 수련의 이치는 반대입니다. 반드시 관념을 바꾸고 반대되는 이치 속에서 수련해 나와야 합니다. 집착을 버리고 사람마음을 잘라낼 때 그곳은 아마도 자신이 가장 건드리고 싶지 않은 곳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고통스러워서 쉽게 그곳을 피해 다른 곳을 찾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저는 계속 찾아 나갔습니다. 그 깊숙이 숨겨진 곳에서 저는 갑자기 찾아냈습니다! 저는 줄곧 제가 책임자가 될 수도 있고 아래에도 있을 수 있으며 명예를 구하지 않고 오직 일만 잘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 또한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 아닙니까? 이런 마음들은 모두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어서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이 마음은 겉보기에 크지 않지만 깨달은 순간 갑자기 마음의 큰 충격을 느꼈고 몸의 세포도 활기차게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근원을 찾은 후 마음이 활짝 열렸고 저는 정말로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계속 넘기려고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넘기지 못했던 물질이 이 순간에 모두 해체됐습니다!
또한 그 시기에 제가 잘 아는 한 수련생이 병업 고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저에게 한마디 말을 남겼는데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당신이 RTC로 돌아가길 권합니다. 만약 제가 당신이라면 분명히 돌아갈 것 같아요. 당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중생을 구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무엇인가요? 물론 당신은 다른 항목으로도 중생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의 사명과 당신의 특기는 모두 RTC에서 더욱 충분히 발휘될 수 있어요. 저는 지금 여러분이 가장 부러운 게 중생을 구할 기회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충분히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요. 사람 이 부분에서, 이런 사소한 일들을 갖고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놓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정말 깊이 후회해요. 사부님께서 거듭 기회를 주셨는데 저는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고 수련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했어요! 사부님께 죄송해요! 이상은 제 진심이에요. 실례한 부분이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 저는 정말 여러분이 너무 부러워요!” 그녀의 말을 읽고 나서 저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플랫폼에서 착실하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플랫폼에 돌아와 낮은 자세로 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차츰 많은 정보가 제 귀에 들어왔고, 저도 무의식중에 현재 플랫폼의 미흡한 점과 그 원인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속으로 매우 조급해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절 수련시키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 보는 것이니, 그냥 자신의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점차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어느 날 ‘밀레르빠 수련 이야기’를 듣다가 ‘이타의 마음’을 수련해 내야 한다는 이치를 말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듣고 있자니 머리가 쾅 하고 울리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주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문제를 보고도 말하지 않고 좋은 사람 노릇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앞으로 플랫폼 전체의 향상과 사람을 구하는 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니까요! 선의의 제안을 하고 묵묵히 전체를 원융해야 합니다.
사실 그 시기에 션윈(神韻)이 일본에 왔을 때 제가 백스테이지에 가서 도왔는데 불광(佛光)이 두루 비추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션윈 공연 전반부를 보는데 에너지가 연이어 밀려오는 것을 느꼈고 계속 울었습니다. 후반부에는 목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시간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할 때마다 울고 또 울었고, 내내 울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제 명백한 일면은 틀림없이 다른 공간에서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시고 저에게 많은 좋은 것을 주신 것을 보았을 겁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뼈가 아프고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2, 3일째 되는 날에는 목이 쉬어 말을 할 수 없었고 4일째 되는 날부터 좋아졌습니다. 저녁에 발정념을 하기 전에 갑자기 총협조인으로부터 RTC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안배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돌아오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플랫폼 협조인 수련생과 두 차례 매우 좋은 교류를 했습니다. 제가 본 문제들을 솔직하게 제기했고 해결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곧 사부님의 안배 하에 저는 다시 RTC로 돌아왔고, 묵묵히 전체를 원융하면서 계속해서 사람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고비를 통과한 후 되돌아보니 처음에는 문제를 바라보는 각도가 밖으로 보는 것이었고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했기 때문에 많은 일을 이해할 수 없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건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법을 배운 후에는 다른 공간의 물질도 해체되고 업도 없어지고 심성도 제고되어 고비를 통과했음을 느꼈습니다. 만약 이렇게 가슴을 찌르는 큰 고비를 만나지 않고 계속 이전처럼 안락한 환경을 누리고 있었다면, 이렇게 깊이 숨겨진 집착심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모든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진정으로 체험했고 대법 수련의 위대하고 신성함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각지 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제 생각에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고비를 넘을 때 우리는 관념을 내려놓고 자신을 깊이 파헤치는 법을 배워보는 게 어떨까요. 이 집착심을 만들어낸 근원을 찾아 버림으로써 자신을 제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하고 착실한 수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개인적인 체험 일부를 수련생 여러분과 나눈 것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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