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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길을 잘 걷자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2년 7월 15일, 3개월간의 기나긴 항소 끝에 나는 여전히 1년 3개월이라는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그해 11월 29일, 나는 불법적으로 감옥에 보내져 소위 ‘합숙 훈련대’에서 한 달여를 보낸 뒤 감옥 구역으로 옮겨졌다. 이곳에는 294명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수감자들의 도덕성이 낮고 행동이 비정상적이라 흑백이 전도된 더러운 인간 지옥 같았다.

범죄자 주 씨가 나를 ‘감독’하도록 배정됐다. 그녀는 이미 세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전향(수련 포기)’시켰다고 한다. 그들은 나에게 매일 밤 두 차례, 각 1시간 30분씩 벌을 세웠다. 일주일쯤 지나자 피부가 까무잡잡한 감옥 대대장 장따(張大)가 말했다. “범죄자라고 말하면 저녁에 한 번만 서게 해주겠다.” 그곳에서는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죄인’이라 자칭하며 그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박해를 인정할 수 없었고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어떤 법도 어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2005년 내가 노동수용소에 불법 감금됐을 때가 떠올랐다. 간수들은 나를 재우지 않고 밤새도록 서 있게 했다. 당시 왕리(난징 푸커우구 출신 마약 사범)와 선친(창저우 출신 마약 사범)이 가담했다. 한밤중이면 그들이 날 때리기 시작해 이가 빠지고 입 안이 피투성이가 됐다. 오랫동안 잠을 못 자 혼미한 상태에서 환각 증세까지 보였다. 바닥의 벽돌 틈이 내 키만큼 높이 떠오르고, 문 앞의 빨간 물병 두 개가 마치 빨간 코트를 입은 군인처럼 다가왔다. 옆방에선 많은 사람이 요리하는 것 같았고, 이불 무늬는 깡충깡충 뛰는 초등학생으로 변했다. 내 두 손은 계속 선풍기 쪽으로 뻗어 마치 채소를 씻는 것 같았다. 그때는 내 마음속에 법이 너무 적었고 정념(正念)이 부족해 환각에 빠졌던 것이다. 정신이 들 때마다 자문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신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결국 견디지 못하고 가짜로 전향하고 말았다.

이번에 나는 진상을 알리다 다시 감옥에 갇혔다. 감옥 측은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에게 면회와 전화, 편지 쓰기를 금지했다. 집에서 온 편지도 압수됐다. 남편은 내가 수감된 지 얼마 안 돼 보낸 편지에 대해 장따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편지가 왔지만 규정상 보여줄 수 없다.”

나는 매일 벌을 섰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서 있어 손발이 퉁퉁 부었고, 출소할 때까지 다리가 붓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침엔 찐빵 반 개, 점심과 저녁엔 밥 몇 숟가락만 허용됐다. 배를 곯으며 매일 작업장에 갔지만 장따는 고함을 질렀다. “넌 일할 자격도 없어, 벌서기나 해!” 감방으로 돌아와서도 침대에 앉지 못하고 서 있어야만 했다.

굶주림의 고통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위장병이 생겼다. 식사 전마다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었고 먹어도 안 먹어도 고통스러웠다. 나는 줄곧 사부님의 법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2-정념정행) 대법은 나에게 무한한 힘을 주었다. 마치 높은 산꼭대기에 서서 고난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고, 사실 그 고난이란 게 보잘것없어 보였다.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 남은 반찬이 많아 숟가락으로 조금 떴는데 악당 왕 씨가 즉시 보고했다. 주 씨는 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음식을 차라리 화장실에 버릴지언정 나에겐 주지 않겠다며 그날 저녁엔 밥을 더 적게 줬다. 단식이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더 큰 문제를 일으킬까 봐 말없이 그 몇 숟가락의 밥을 삼켰다.

내가 ‘전향’하지 않자 주 씨는 날마다 나를 욕하고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했다. 때론 날 작업장으로 끌고 가 다른 범죄자들에게 물었다. “파룬궁이 X교가 맞지? 파룬궁이 좋다고?” 사람들은 맞장구치며 놀려댔다. 그녀는 날 무정하고 이기적이며 뻔뻔하다고 비난했다. 그녀 스스로도 온갖 악독한 말을 다 퍼부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할 수 있었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홍음-도 중에서).

작업장에서 주 씨는 내가 화장실 가는 것도 막았고 저녁 세면 때 미지근한 물 두 잔만 주다가 나중엔 그마저도 주지 않았다. 밤에 벌서고 감방에 돌아와선 찬물로 세수하고 발을 씻어야 했다. 한겨울이라 뼈가 시리도록 추웠지만 마음에 원망은 없었다. ‘찬물이면 어때, 상관없어.’

악인 왕 씨는 내 몸에 세균이 있다며 물컵을 그들과 함께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얼굴에 옴이 가득한 범죄자 장 씨와 침대를 같이 썼는데, 왕 씨의 부추김에 장 씨는 나에게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사는구나”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처음 감방에 왔을 때 경찰 루 씨는 전체 수감자 회의를 열어 누구도 나와 대화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얼굴에 옴이 가득한 장 씨와는 아무도 같이 자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꺼리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는 몸에도 옴이 퍼졌는데 그녀는 내가 옮겼다고 했다. 하지만 내 몸은 깨끗했다. 왕 씨는 계속 날 주시하며 트집을 잡고 전향을 강요했다. “네가 전향하면 우리처럼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있을 텐데.” 나는 단호히 말했다. “제 목숨을 여기 버린다 해도 전향하지 않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니 모든 것은 사부님 뜻대로다! 나는 ‘선택한’ 길만 걷고 ‘걷기 쉬운’ 길은 가지 않겠다.’ 그녀는 날 욕하고 대법과 사부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 내 눈에 그녀는 너무나 슬프고 불쌍해보였다.

한번은 씻을 때 한 달 넘게 입은 속옷을 빨려다 주 씨에게 들켰다. 그녀는 경찰의 허락도 없이 내가 그랬다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었다. 감옥 규정상 일주일에 한 번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그들은 나에게 세면도구를 사주지 않았다. 10일이나 20일에 한 번 작은 비누로 머리를 감는 게 전부였다. 감옥에서 8개월 20일 동안 단 한 번도 목욕을 하지 못했다! 3개월이 지나서야 샴푸와 화장지를 살 수 있게 해주었다.

7감방의 두 공범자 양 씨와 리 씨는 내가 밤에 벌서고 있을 때 자주 발로 찼다. 설날이 되자 다들 고기와 생선을 먹는데 나는 시커먼 채소 몇 입만 먹고 식당에서 벌을 서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서서 비디오를 보라고 했다. ‘가화만사성’, ‘천안문 분신’이란 제목이었다. 다 보고 나서 소감을 쓰라고 해서 이렇게 썼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넘치고, 선을 쌓지 않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남는다. 성인은 거짓말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천안문 분신은 거짓이며 허점투성이다.” 주 씨는 내가 말하지 못하게 했고 그 후로 감히 나에게 뭘 보여주지 못했다.

진잉은 강제로 ‘전향’된(가짜 전향) 사람이다. 설날 며칠 동안 그녀는 몰래 내 양말에 사탕을 잔뜩 넣어주었다. 한번은 또 그렇게 하다 양 씨에게 들켜 즉시 경찰에 신고당했다. 결국 진잉은 식당에서 일주일간 ‘학습’하는 벌을 받았고, 매일 사상 보고서를 쓰도록 강요받았으며 본인이 산 간식도 먹지 못하게 됐다. 다행히 그녀는 두 달 후면 만기 출소였다. 그 후에도 진잉은 몰래 나에게 찐빵을 몇 번 더 주었다. 그녀는 굶주림의 고통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전향’했던 것이다. 어느 날 그녀가 식당 청소를 하다 내 앞을 지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끝까지 견디면 승리예요. 하지만 정말 어려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범자들이 보고 또 혼낼까 봐서였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격려하신 그 법을 생각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

한 달여가 지나자 갑자기 경찰 몇 명이 들이닥쳤다. 두 사람이 내 팔을 잡고 뒤에서 몰래 사진을 찍더니, 내가 쓴 이른바 ‘사상 보고서’를 카메라로 훑었다. 신문에 실을 거라고 했다. 정면 사진도 못 찍는 걸 보면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한번은 식사 시간에 ‘커따(軻大)’가 와서 내 밥을 보더니 주 씨에게 물었다. “그녀는 왜 소시지가 없지?” 주 씨가 조금 가져오자 커따가 말했다. “이것밖에 안 돼?” 주 씨는 더 큰 걸로 바꿔주었다. 그날 나는 장씨 성을 가진 경찰에게 식사 허락을 구했는데, 그 몇 숟가락 안 되는 밥을 보니 눈물이 났다.

나중에 경찰 장 씨는 다리를 다쳐 한동안 집에 있다 돌아왔는데 관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조금 살이 올랐네요. 그래요, 밥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죠.” 그녀에게 선한 마음은 남아있었지만 권한이 없었고 오로지 장따 마음대로였다.

장따는 나에게 매일 사상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감옥에 온 후 우선 그녀에게 7페이지 분량의 진상 편지를 썼지만 이런 변질된 광신도에겐 소용없었다. 그녀가 사상 보고서를 쓰라 했으니 나는 대법을 실증하고, 전통문화를 홍보하며, 생명의 의미를 논하고, 동시에 그들의 학대를 폭로하는 글을 썼다.

한번은 자오따(趙大)가 내 사상 보고서를 보자고 했다. 한참을 보더니 물었다. “당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 ‘걷기 좋은’ 길은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무슨 뜻이죠?” “선택한 길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끼어들었다. “수련의 길을 말하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럼 ‘걷기 좋은’ 길은 뭐죠?” “그냥 평탄하고 문제없는 길이요.” 그녀는 노트를 돌려주며 생각에 잠겼다.

남편은 내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다가 6월에 또 편지를 보냈다. 자오따가 집에서 편지가 왔다고 알려주자 나는 말했다.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뭐 하러 말해요?” 다음 날 아침 식사 때 그녀는 남편이 쓴 편지 두 통과 손자 사진을 보여주었다. 급히 훑어보고 나니 곧 거두어갔지만 그녀의 작은 선의에 감사했다.

하루는 장따가 내 사상 보고서를 보겠다고 해서 노트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몇 번 보더니 내가 이틀 동안 쓴 글을 갈기갈기 찢고 노발대발하며 뭘 썼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한 편은 제가 쓴 노래예요. 제목은 ‘당신과 나는 인연이 있다’인데 시작은 이렇습니다. ‘친구여, 인생길에 지쳤나요? 잠시 쉬어가며 제 노래 한 곡 들어보세요…'” 그녀는 가사를 보더니 또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다시 써!” 그리고 계속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네가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산다고 하는 거야? 우리가 너를 개돼지 취급한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나는 “그건 가담자가 저에게 한 말이에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어떻게 그녀들 말을 듣는 거야?”라고 하고는 나에게 문제 두 개를 냈다. 하지만 ‘신(神)’이라는 글자는 쓰지 못하게 했다. 나는 감방으로 돌아가 즉시 펜을 들었다. 요지는 이렇다.

1. 생명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생명은 매우 귀중하고 생로병사 하는데 생명이 짧다. 중국의 오래된 전통은 사람됨의 도리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남겼다. 지금 많은 사람이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생각하는데 다윈의 진화론은 허점투성이다. 내가 알기로는 사람은 신이 만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천기이며 생명의 비밀이기도 하다. 신께서 사람을 만드셨고 신께서 사람을 지켜주시고 있다. 2. 감옥에서 어떻게 잘해야 하는가? 나는 원래도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기에 여러분과 사이좋게 지낼 것이고 도덕적으로 고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한번은 ‘전능신’을 믿는 쉬 씨가 무대에서 그녀의 전향 보고서를 읽었다. 나는 그 주제를 빌려 글을 썼다. 결국 주 씨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장따에게 보고했다. 저녁 9시에 장따가 내가 쓴 글을 보자고 해서 나는 그녀에게 읽어 주었다.

“오늘 나는 서 씨의 전향 보고서를 듣고 그녀를 위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전능신의 헛소리를 믿을 수 있을까요? 공안부가 인정한 14개 사이비 종교 중 ‘전능신’은 있지만 파룬궁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파룬궁 사부님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 도덕적으로 고상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일을 하기 전에 남을 먼저 생각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서 찾고, 마음을 수련하고 선(善)을 지향하며, 맞아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음을 해내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매체는 발을 붙일 수 없습니다. 모두 완전히 헛소리이고 죄를 뒤집어씌우고, 인위적으로 많은 억울한 사건을 만들어 세상 사람을 속이고 인심을 현혹합니다. 좋은 건 바로 좋은 것입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고 역사가 모든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녀는 듣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마무리 작업 중에 누군가 몰래 전화번호를 전송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감옥경찰은 우리에게 양말을 벗고 몸수색을 하라고 했다. 그때 내가 작업장에서 쓴 한 편의 글이 발견됐다. 나는 “전화번호가 아니라 연꽃을 썼어요”라고 했다. 장따가 사납게 말했다. “너는 시인이라도 되려고? 거기 가만히 서 있어!” 내 그 글은 이렇게 썼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와도 오염되지 않는다. 가을 연못에 활짝 핀 연꽃은 하늘하늘하고 분홍빛 꽃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쩐지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연꽃을 찬양하고 연꽃을 칭송하더라니. 연꽃은 온몸이 보배다. 연꽃씨는 한약재로 죽을 끓여 먹을 수도 있고 향긋하고 상쾌하며, 연근은 밥상 위의 우아한 음식으로 아삭아삭하고 독특하다. 연꽃의 큰 잎사귀는 사람들이 머리에 덮고 다니며 뜨거운 태양을 가려준다. 어떤 사람은 연꽃 줄기를 반찬으로 만드는데 역시 맛있다. 다른 공간에도 연꽃이 있는데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어떤 대각자는 9층 연화좌에 앉아있는데 신성하고 장관이다. 우리 모두 탁한 세상 속의 한 송이 연꽃이 되어 아름다운 연못에 피어 사람들이 구경하고 감탄하게 하자! 나는 비록 감옥에 갇혔고 생활은 고달프고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내 마음은 자유롭다. 정원 앞에 꽃이 피고 지는 것을 한가히 바라보면 거취는 무의미하다. 하늘 밖에 펼쳐진 구름 따라 편안함을 잃지 않고 마음의 강함과 여유를 유지하며 모든 것을 침착하게 바라보자.”

나는 작업장에서 줄곧 벌서고 있었다. 한번은 정말 못 버티겠기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가 주 씨에게 욕을 얻어먹고 커따 앞에 떠밀려 왔다. 커따는 “서면 선 것 같고 앉으면 앉은 것 같아야 해!”라며 주 씨도 혼냈다. 그리고 나에게 “힘들면 지시받고 앉아”라고 했다. 나는 즉시 힘들어서 앉아야겠다고 말했고 커따는 동의했다. 주 씨는 펑펑 울었다.

한 번은 작업장에서 장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미친 듯이 나에게 소리쳤다. “넌 앉으면 안 돼!” 이렇게 나는 줄곧 네 시간 동안 서 있었다. 이후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피곤해요, 앉아야겠어요!”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30분만 앉아있고 계속 서 있어!”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이 있다. “한 사람이 패배할 수는 있지만 정복당할 수는 없다.” 정신적으로 정복되지 않은 자에게 고난은 단지 그를 단련시킬 뿐이다. 생명의 쓴잔을 마시고, 정신을 진작하고, 생명의 재탄생을 맞이하며, 영원히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며, 그가 인생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줄곧 서서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한번은 장따가 의자 하나를 주면서 앉아서 먹으라고 했다. 나는 앞으로 앉아서 먹는 것을 허락할 줄 알았다. 이틀 후 그녀가 당직일 때 날 향해 소리쳤다. “누가 너더러 앉아서 밥 먹으래? 일어나서 먹어! 그녀의 감시원도 같이 일어서서 먹어.” 세 감시원은 나와 함께 서서 밥을 먹었다. 나에게 잘해주지도 않았지만 그녀들이 날 따라 고생하게 해서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그렇다, 하느님은 하늘이 항상 푸르고 물은 항상 맑으며, 사시사철 화창한 봄날일 것을 허락하신 적이 없다. 때때로 광풍과 폭우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일생이 바로 이렇게 무상하지 않은가? 눈앞의 고통을 보지 말고, 시공간을 넓히고 미래를 내다보자. 오늘 내가 겪은 고생이 바로 성공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인생의 매 걸음은 다 의미가 있다. 고난을 단비 삼아, 시련을 단련 삼아, 마음을 바꾸고 하루하루를 잘 살자.

고통 속에서 두 달 넘게 굶었더니 몸이 급속히 여위어 15킬로그램 넘게 빠지고 걸을 때면 마치 송곳을 밟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조심히, 가능한 안정적으로 걸어 넘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후 나는 1호 감방으로 옮겨졌다. 이 감방에서는 매일 아침식사는 감방에서, 점심은 작업장에서 먹었는데, 나는 로비에 서서 먹어야 했다. 처음 갔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밥을 많이 주었고, 아침에도 만두를 하나 주어서 드디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여전히 ‘전향’하지 않자 그들은 내 식사량을 줄여 다시 굶기기 시작했다.

가장 악랄한 수법은 그들이 내 밥에 몰래 약을 넣는 것이었다. 자오 씨가 약을 보관하고, 류 씨와 사오 씨가 약을 투여했다. 나는 오직 로비에 서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두 명의 감시원 수감자가 함께 있었다. 첫날 아침, 두 감시원의 죽은 일찍 배달되었지만 내 것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감시원들이 몇 번이나 살펴보더니 마침내 내 죽이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실수로 한 감시원의 죽을 먹어버리자 그 감시원은 내 죽을 먹지 않고 화장실에 버렸다.

작업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녀가 왜 먹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죽이 하얗고 거품이 있는 것을 봤는데, 혹시 약을 탄 것은 아닐까?’ 며칠 후 아침을 먹다가 무심코 알약이 느껴져 씹었는데 신맛이 났고 이미 삼켜버린 뒤였다. 그리고 마저 먹다 보니 밥 속에 하얀 약 한 알이 더 있는 것을 발견해 화장실에 버렸다.

‘독약으로 날 해치려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앞으로 약을 조용히 모아뒀다가 돌아가서 어떤 약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날 오후, 나는 한 시간 넘게 이마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다음 날 죽에서 또 약 한 알을 발견하고 즉시 숨겼다. 그 후 그들은 약을 쌀알만 하게 부수기 시작했고 나는 그중 세 알을 더 숨겼다. 그들은 나중엔 아예 가루로 만들어 넣었다.

어느 날은 시간이 급해 그들이 하얀 약가루를 밥 위에 뿌린 것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왔다. 나는 약가루가 묻은 밥을 전부 버렸다. 한번은 내가 로비에 서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마침 우리 감방이 보였는데 류 씨가 먼저 내 밥을 담고 나서 약을 넣는 것을 보았다. 밥을 다 담고 나면 약도 녹는데, 그 위에 밥을 조금 더 얹어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날 나는 먹지 않고 버렸다. 점심에는 작업장에서 먹기 때문에 약을 넣기 어려워서 저녁 식사 때 약을 넣었고 거의 매일 그랬다.

출소할 때 나는 약을 몰래 갖고 나와 관련 인사에게 화학 분석을 의뢰했더니 혈압약이라고 했다. 나는 혈압이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약을 먹였을까? 나는 약을 조금 더 남겨두고 며칠 후에 다시 검사해보기로 했다.

그 변질된 생명들은 무지 속에서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가. 사실 속인의 약물은 신(神)의 몸에는 효과가 없지만 나는 그래도 매일 사부님께 제자를 보호해달라고 간청했다. 대법제자의 몸은 대법이 만든 것이니 결코 이런 저급한 것들이 제자의 몸을 좀먹게 해선 안 된다.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투여된 약물은 모두 장따와 악행을 저지른 자들에게로 돌아가라!’ 나는 사부님이 나의 든든한 보호자이고, 내 반석이며, 내 피난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악한 약물 박해는 6개월 넘게 지속됐다. 이 기간 내 남편은 세 번의 꿈을 꿨는데, 매번 내가 심하게 박해당해 정신이 혼미하고 몸이 허약해져 걸을 수도 없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었다면 정말로 꿈속의 그런 모습이 됐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한을 내려놓고 자비롭고 포용력 있게 세상 사람들을 연민으로 대하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이런 생명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불쌍하게 여길 뿐이다. 인생의 길은 각자가 선택하는 것인데 무지 속에서 그토록 큰 죄업을 저질렀으니 그들의 생명에 과연 미래가 있겠는가?

오늘 나는 다시 한번 비바람 속으로 들어섰다. 온갖 시련을 겪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지만 결코 대세를 따라 흐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중생을 위해 왔다. 내가 사랑하는 생명들을 위해 나는 반드시 강하고 용감하게 살아갈 것이다. 내 세계 속 수많은 기대에 찬 눈빛들을 위해 나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아서 내가 직접 파악해 나가야 한다. 나에겐 사부님의 보살핌이 있으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선한 생명이 있다는 점이다. 1호 감방의 두 감시원 A와 B도 나를 따라다니며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일요일에 TV를 볼 때 그들도 내 뒤에 앉아있어야 했고, 내가 서 있으면 그들도 함께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나를 욕하지 않았고 때로는 몰래 만두를 나눠주기도 했다. A는 심지어 몰래 과자나 방울토마토를 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했다. B가 말했다. “괜찮아요, 모든 것이 최선의 안배예요!” 나는 사부님의 시 ‘사람 되기(做人)’ 시를 그녀에게 외워주었고 그녀는 너무 좋다며 자신의 노트에 적었다. 떠날 때 나는 그 둘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해주었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보답이었다.

한 수감자는 자신이 국민당원이며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매우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장에 ‘홍음(洪吟)’ 시 여러 수와 ‘득도(得度)’, ‘진상을 찾아서’ 등의 대법 노래를 적었다. 나는 그녀도 ‘삼퇴’를 해주었다.

인생은 캔버스와 같아서 서로 다른 마음가짐으로 각기 다른 인생 그림을 그리게 된다. 마음을 바꾸어 자신의 삶을 더욱 화려하고 눈부시게 만들자. 인해(人海)는 망망하고 고통과 미혹으로 가득하지만,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처지가 아니라 나쁜 마음가짐이다.

너무나 많은 쓰라림과 고통이 내 심성을 단련시켰다. 나는 인내, 관용, 포용, 낙관, 인연과 복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수감자 완수샹이 몰래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견뎌냈군요,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양핑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당신은 끝까지 굴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여러 사람이 연이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인생의 큰 기복을 겪으면서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의 행복과 불행, 저점과 정점은 모두 그의 심성에서 비롯된다. 오직 우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나는 배를 곯으면서 겨울부터 봄까지, 봄부터 여름까지, 여름부터 가을까지 서 있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상서로운 흰 구름을 밟고 1년 남짓 떠나있던 집으로 돌아왔다. 이 고난의 역사는 영원히 내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이며, 그 덕에 나는 무사히 마굴을 탈출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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