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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 대법을 만나 집착을 극복하고 중생을 구하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농촌 출신의 여성 대법제자로 올해 61세입니다. 초등학교를 1년밖에 다니지 못해 간단한 글자 몇 개만 알고 있습니다. 제 수련 체험을 조금 말씀드리면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고난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저는 22살에 결혼했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임신했을 때 가지를 먹고 싶어도 남편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40대의 시아버지는 화가 나면 우리를 때리고 욕했습니다. 첫 아이를 낳을 때는 당시 농촌에 교통수단도 없어서 현지 산파를 불러 아이를 받았습니다. 아이를 낳자마자 저는 산후풍으로 기절했습니다. 가족들이 농촌의 중의사를 불러 침을 놓자 겨우 깨어났습니다. 그 후 어깨에 무거운 짐이 눌린 듯한 느낌이 들었고 온몸이 아파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대가족의 모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빨래하고 밥 짓고 돼지, 닭, 오리, 거위, 개를 기르고 농사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온갖 병을 얻었습니다. 남편도 저를 때리고 욕했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한번은 시아버지가 화가 나서 남편을 마구 때렸고 남편은 저를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50km 떨어진 제 친정으로 갔더군요. 시아버지는 남편이 도망간 걸 보고 저에게 돌아와 제 위에 올라타 두 어린 아이(한 살, 두 살) 앞에서 저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빗자루가 부서지자 철 냄비로 저를 때렸습니다. 정말 죽도록 때렸습니다. 병약한 저는 저항할 수 없었고 이대로 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대법 수련으로 새 삶을 얻다

1998년, 저는 기쁘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게 됐습니다! 당시 다른 마을 사람이 파룬따파를 소개했는데, 제 친구가 먼저 법을 얻고 저에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 법이 내 원망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뭐든 다 할 수 있어!”

저는 지식수준이 낮아 간단한 글자 몇 개만 알았기에 법을 배우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부님께서는 짧은 시간 내에 제 몸을 정화해주셨고 저는 진정으로 병이 없고 온몸이 가벼운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의 악한 우두머리 장쩌민이 파룬궁을 음해하고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잃었습니다. 그 후 저와 남편은 외지로 일하러 갔습니다. 10년 후에야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10년간 저는 파룬궁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을 보거나 듣지 못했고, 들은 것과 본 것은 모두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짓말뿐이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저는 간절히 수련생들을 찾고 싶었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셔서 다시 법공부 환경을 갖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과 설법도 보게 됐습니다. 대법제자들이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발정념을 하며,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뒤처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집안일을 마치면 법공부를 했고 모르는 글자는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법공부 장소에서는 수련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수련생들은 인내심을 갖고 저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완전한 문장을 어떻게 읽는지 가르쳐줬습니다. 수련생들은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짧은 시간 내에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후 사부님의 각지 설법과 경문도 모두 이해하고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3. 원한을 버리다

대법을 배운 후, 저는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의 언행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시부모님에 대한 원한을 내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그분들을 대했습니다. 이 기간 시어머니께서 두 번이나 큰 병업(病業)을 겪으셨는데 제가 정성껏 돌봐드려 모두 극복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진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은 정말 좋구나. 네가 이렇게 돌봐주지 않았다면 난 벌써 죽었을 거야.”

저는 자주 시부모님을 찾아뵙고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여쭤보며 그분들의 의식주를 챙겼습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저를 욕했습니다. “그분들이 당신을 그렇게 대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잘해주는 거야?!” 한번은 시아버지가 미안해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널 그렇게 대했는데도 넌 날 이렇게 잘 돌봐주는구나… 앞으로 네가 우리 아들과 이혼하더라도(수련 전에는 남편이 저를 잘 대해주지 않아 이혼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내 전화번호는 꼭 갖고 있어라. 내가 무슨 일 있으면 널 도와줄 테니.”

남편은 말을 곱게 하지 못하고 사람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60대가 넘은 나이에도 저를 때리고 욕합니다. 저는 그의 앞에서 늘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그와 다투며 속인처럼 따졌습니다. 깊은 원망심이 있었고 매우 억울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딸에게 하소연했을 때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가 엄마에게 어려움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엄마가 부처가 될 수 있겠어요?” 이런 말을 몇 살 된 어린 손자도 저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그들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주시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꼭 마음을 지키겠다고 결심했고, 남편이 만들어내는 어려움 속에서 수련해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자주 마음을 지키지 못해 엉엉 울었습니다. 작년 설날 무렵, 그는 또 자신의 의심 때문에 저를 욕하고 양손으로 제 겨드랑이 근처를 세게 잡았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 힘이 매우 셉니다. 당시 저는 오른쪽 팔의 힘줄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 오른팔을 들 수 없었고 연공할 때도 제대로 들지 못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이것이 제 업력으로 인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안으로 찾았고 사부님의 선해(善解) 관련 법을 여러 번 읽으며 이 영체와 선해하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왜 선해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며 계속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늘 마음을 지키지 못해 정념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해서 원만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저는 굳건한 일념을 발했습니다. ‘저에게는 전능하신 사부님이 계십니다! 저에게는 전능한 대법이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수련 원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의 선해 관련 법을 묵념하며 다시 한번 이 영체와 선해했습니다. 잠시 후 귀가 가려워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긁었는데, 그때 저는 오른팔을 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거의 10개월 동안 저를 괴롭혔던 오른팔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4. 인간의 집착을 돌파하고 자신만의 구원의 길을 가다

저는 지식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표현력도 부족합니다.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수련생들이 동서고금을 아우르며 유창하게 법리에 대한 인식을 나누고,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한 경험을 교류하는 것을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이때 저는 조급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져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나에게는 다리와 손이 있잖아,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수 있어!’ 이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10여 년간 날씨에 관계없이, 심지어 전염병 기간에도 중생을 구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매일 세 가정의 식사와 집안일을 해야 합니다(우리집과 이미 결혼한 두 자녀의 집). 또한 손주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 후 법공부를 하고 정념을 발하며 사부님의 가지를 청합니다. 매번 나갈 때마다 마음가짐이 매우 안정됩니다. 몸과 주머니에 진상 자료를 가득 채우고 단층 주택이든 아파트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갑니다.

여러 번 문에 자료를 붙이려는 순간 집 안에서 사람이 나와 저를 보고 뭐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웃으며 말했죠. “당신에게 복을 전하러 왔어요. 한번 보세요, 아주 좋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받아서 집에 들어가 봤습니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파트에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누군가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당신에게 복을 전하러 왔어요”라고 말하며 자료를 건넸는데 그 사람이 거절하며 밀어내더군요. 저는 다시 건넸고 다른 말을 할 줄 모르니 계속 “복을 전하러 왔어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데 옆집 사람이 문을 열고 뭐 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복을 전하러 왔어요. 한번 보세요, 아주 좋답니다. 보는 사람마다 복을 받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집 사람이 제 손에서 자료를 빼앗아 가며 말했죠. “제가 가질게요!” 그리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봤습니다.

전염병 기간에는 모든 단지가 심하게 봉쇄되어 각 단지 출입구마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가지 아래 저는 순조롭게 단지에 들어가 진상 자료를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한 아파트에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1층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갔는데, 다 배포하고 내려오는 길에 3층에서 지역사회 직원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전염병 관련 공지를 붙이고 있었는데, 문에 붙어 있는 진상 자료를 떼어내며 놀라서 외쳤습니다. “파룬궁이야!” 저는 마침 그들과 마주쳤는데 웃으며 말했죠. “네, 제가 다 봤어요. 아주 좋더라고요. 모두 사람을 구하는 내용이에요. 한번 보세요.” 그 사람도 저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저는 내려가 다른 동으로 가서 또 배포했습니다. 전염병 기간에도 저는 자료 배포를 줄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이 배포했습니다. 사람들을 도태시키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서둘러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사람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신기한 일들이 있었지만 제가 깨닫지 못했고 나중에야 반응이 왔습니다. 그것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신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한번은 밤에 자료를 배포하다가 누군가에게 쫓겼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몸이 힘없이 축 늘어져 그냥 자고 싶었습니다. 노인들 말로 하면 ‘혼이 빠져나갔다’는 표현 같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밤에 자료를 배포하러 나가기가 두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어린 손자가 태어난 후 낮에는 아이를 돌봐야 해서 밤에만 나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염병 기간이라 수련생들 사이에서도 이 시기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에 대해 다른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저를 찾아와 이야기하며 이때 자료를 배포하면 효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두려워해 가져가서 보지 않을 거라고 걱정했죠. 또 어떤 이는 사복 경찰을 봤다거나, 경찰이 제가 방금 자료를 배포한 단지에 와서 감시 카메라를 조사하는 걸 봤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수련생이 또 큰 뭉치의 진상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정말 괴로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괴로운 마음에 손에 있던 명혜주간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단락의 법이 바로 제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정념이 일어났고 명혜주간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사부님,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나가서 사람들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당시는 여름이었고 저는 몸이 마른 편이라 최대한 많은 자료를 옷 안에 넣었습니다. 밖에 나갔더니 두 사람이 저를 임산부로 오해하며 한 번 쳐다보고는 “이렇게 만삭인데 왜 나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제가 자료를 한 장 붙일 때마다 한 줄기 금빛이 번쩍였고, 자료를 다 배포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당시에는 ‘오늘 정전기가 왜 이렇게 심하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하시는 거였구나!’ 더 신기한 것은 자료를 다 배포하고 집에 돌아와 주간을 다시 들고 그 단락의 법을 다시 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분명 이 페이지에서 봤던 사부님의 법인데 말입니다. 저는 깨닫지 못해서 주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지만 그 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무척 격동되어 양손을 모으고 지극히 경건한 마음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에 감사드렸습니다!

또 어느 날, 저는 정오의 정념을 발하고 자료를 준비해 문 앞에 섰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며느리가 전화해서 어느 단지에서 지금 코로나 검사를 시작한다며 저보고 그곳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 단지는 제가 자료를 배포하려던 곳이었습니다. ‘이건 교란 아닌가?’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부님께서 항상 제 곁에 계시고 제가 하는 일이 가장 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줄을 서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었고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 동에서 자료를 다 배포하고 나오자 이 동의 사람들이 차례로 돌아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동으로 가서 자료를 배포할 때도 아무도 없었고, 제가 다 하고 나오자 이 동의 사람들이 차례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제 손에 있는 자료를 모두 배포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시 제 마음의 격동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에 무한히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모든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양손을 모으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체험이라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8/22/4807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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