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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에 입문해 확고하게 수련한 여정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15년 4월에 법을 얻었습니다. 이 말겁의 마지막 순간에 죄업으로 가득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건져 씻어주시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인도해주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법을 얻은 과정을 돌이켜보면 마치 꿈만 같습니다. 사실 꿈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법을 얻은 후 사부님께서 제게 점차 지혜를 열어주신 덕분에 법을 얻은 과정과 경험이 점점 더 선명하게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중공 악당의 선전을 의심하다

어릴 때부터 저는 선생님들의 수업 내용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매주 악당의 소선대(소년선봉대) 신문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신문에는 매 호마다 ‘사회주의는 좋고 자본주의는 나쁘다’라는 칼럼이 있었는데,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주의는 악당의 이른바 지도 아래 꿀보다 달콤한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우리가 자라서 물불 속에 빠진 자본주의 국가 국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느니, 미국은 종이호랑이라느니 등의 말들을 했습니다. 개혁개방 후 비교해보니 그들이 말한 것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중학교 때 정치경제학 수업을 들었는데, 그중 한 과에서 자본주의 경제위기 때 자본가들이 우유 과잉 생산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유를 버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죠. 선생님께 자본가들이 왜 남는 우유를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무슨 질문이 그리 많으냐, 가르치는 대로 외우기만 하면 된다”며 꾸짖으셨습니다. 그 말은 곧 독립적인 사고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죠. 그때 저는 이렇게 불분명한 지식은 배우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여 년간의 기형적인 세뇌교육을 받으며, 그것도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교육을 받으며 저 역시 악당이 위대하고 정의롭다고 여겼고, 인민해방군은 인민의 자제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인민을 위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1989년 6월 4일(천안문 사태)의 총성이 제 이전의 인식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민의 자제인 군대가 어떻게 총구를 인민에게 겨누고 발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결국 저의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그해 제 나이 19살이었습니다. 마치 도덕이 타락한 모든 생명들처럼 저 역시 속세에서 헤매며 업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나쁜 습관과 결점을 모두 지니게 됐고,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1999년 7월, 중공은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 저는 우리 도시에서도 단체로 파룬궁을 수련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그때가 제가 대법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였죠. 어느 날 은행에서 일하는 제 친한 친구가 화가 나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직장 상사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동료에게 신앙을 강제로 포기하게 하려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그녀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하늘도 땅도 관장하더니 이제는 사람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들다니.” 당시 저는 그저 동조하며 “그러게 말이야. 중공이 하는 말과 행동은 기본적으로 믿을 게 못 돼. 6·4 사건이 바로 피의 교훈이지”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기공을 하는 사람들일 뿐인데, 건강을 위해 연마하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 탄압하는 걸까요? 성 정부에서 일하는 제 친구가 말했습니다. “생각해봐. 파룬궁수련자가 너무 많잖아. 중공 당원 수보다도 많아졌는데 그들이 이대로 발전하도록 놔둘 리가 있겠어?” 당시 저는 속으로 ‘이 당은 정말 사악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이른바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자살은 정말 잘못된 일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경로로 더 자세히 알아볼 방법이 없었고 온 나라가 중공의 선전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 깊은 곳에는 한 가닥 의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선전을 전부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달리 알아볼 방법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진상 파악

또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인터넷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잠깐 말씀드리자면 저는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편입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화가 나고, 옳지 않거나 불공정한 일을 보면 참견하고 싶어 합니다. 아마도 이는 제 가족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의 남자 어른들, 제 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성격이 급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중국의 유명한 포럼에 자주 들어갔는데, 시사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자주 올리거나 공유했습니다. 그 결과 계정이 자주 정지됐고 온라인 감시단의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네티즌이 저에게 소프트웨어 하나를 보내주며 말했습니다. “이 안에 진실한 정보가 많이 있어요.” 저는 그것을 다운로드해 설치했고, 열어보니 ‘동태망(動態網)’이라는 사이트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주 방화벽을 우회해 접속했고, 중공이 어떻게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지 점점 더 알게 됐습니다. 명혜망을 보면서 천안문 분신 사건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더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었죠. 1400건 사례도 거짓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전에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이 됐습니다. 또한 파룬궁이 마음을 수련하고 선을 행하는 수련 단체이며, 이미 전 세계에 전해졌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오직 중국에서만 탄압과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명혜망에 실린 중국 대법제자들의 박해 사례를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모든 글을 눈물을 흘리며 읽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충격과 감동을 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단체인가! 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가! 요즘같이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익을 다투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을 때, 한 무리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잔혹한 박해를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니! 심지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니!’ 당시 저는 마음속으로 단정 지었습니다. ‘이런 단체야말로 중국의 미래 도덕 회복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나도 이 단체에 가입하고 싶다.’

정법은 얻기 어려워

하지만 어디 가서 그들을 찾아야 할까요? 중국의 이런 환경에서 그들은 모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들을 찾아야 할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인터넷에서 대법 서적을 찾아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때 제 사상적 장애가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제가 법을 얻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을 보시고 앞으로 법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제가 법을 얻을 수 있도록 층층이 준비해주셨습니다. 이는 제가 법을 얻은 후에야 깨달은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하늘의 별이 훨씬 많았고 하늘도 더 밝았던 것 같습니다. 자주 엄마에게 “제가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었고, 엄마는 자주 “넌 쓰레기통에서 주워 왔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저는 울었습니다. 자라면서 자주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원숭이에서 진화한 걸까?’ 계속 의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때때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갑자기 탄식하곤 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친구들은 “너 미쳤냐”고 말하곤 했습니다.

2007년쯤 저는 대기원 사이트에서 중공의 단대(團隊, 공청단과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됐는데, 대만의 유명 인사가 ‘도덕경’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 번 들어보니 괜찮아서 다운로드했고 체계적으로 보고 배워볼 생각이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저는 물리, 지리,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천체물리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매우 흥미가 있었습니다. 중국 고대 문학과 수련 문화에도 매우 관심이 있었죠. 저희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독교를 믿으셨고 어릴 때 자주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성경’도 조금 읽어봤지만 이해하지 못했고, 믿음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자라면서 ‘도덕경’에 대해 알게 됐고 읽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이 영상을 보곤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띵’ 하더니 영상에서 강의하는 내용이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구나, 그가 말하는 이치가 바로 이런 거구나. 너무 맞아, 이제 알겠어.’ 그때부터 친구들과 만날 때면 제가 높은 경지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제가 하는 말을 친구들이 모두 이치에 맞다고 여기며 듣고 싶어 했습니다. 모두들 “네가 하는 말이 정말 좋다”고 했죠.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여기서 깨달음을 얻어야겠다.’

그때부터 저는 틈만 나면 인터넷에서 종교 관련 정보를 찾아보곤 했습니다. 친구들의 SNS에도 불교 관련 지식이 자주 올라왔는데 저는 거의 한두 번씩 읽어보곤 했습니다. 점차 불교를 접하게 됐고 그 안의 내용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기억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불교의 내용들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었고 보고 싶어 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틈만 나면 불교 관련 지식을 이야기해주곤 했습니다. 그중에 정부에서 일하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제 말을 특히 듣고 싶어 했고 자주 전화해서 술 마시고 밥 먹자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술을 굉장히 잘 마셨는데 그 친구는 제게 불교 관련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도 기분이 좋아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약간 들뜬 마음도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도가와 불가의 이치를 깨달은 것은 아마도 사부님께서 제가 법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신 것 같습니다. 들뜰 일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마침내 법을 얻다

2010년 즈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서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바로 병원에 갔더니 뇌경색 진단을 받았습니다. 치료받고 일주일 만에 좋아져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2012년 3월, 왕리쥔(王立軍) 사건이 터졌습니다. 당시 중국 내에서도 큰 충격을 줬죠. 방화벽을 우회해 진상을 알게 됐고 저는 그 진상을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들도 왕리쥔 사건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왕리쥔이 중공의 아킬레스건을 잡았기 때문이었죠. 왕리쥔은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수련자들의 장기를 적출한 증거와 보시라이의 정변 증거를 확보해 미국에 제공했던 것입니다. 천안문 분신 사건은 거짓이었고 장쩌민이 직접 계획한 것이었다는 점,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 것은 장쩌민이 질투심 때문에 고집을 부려 저지른 일이라는 점 등,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 진상을 주변의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가 뇌경색에 걸렸던 적이 있어서 재발 문제를 계속 걱정했습니다.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는데 재발할 때마다 더 심해졌거든요. 저도 걱정이 됐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친한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노(老) 중의사인데 파룬궁을 수련하는 분이며, 퇴직했지만 침술이 아주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저는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이 대법제자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인지 보고 제 뇌경색 후유증도 침술로 좀 다스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3년쯤 저는 그 수련자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그를 A 수련자라고 부르겠습니다. 제 상황을 말씀드리자 A는 “걱정 마세요. 제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진상을 알려주며 제가 가입했던 단체와 대(隊)에서 탈퇴하라고 했고, 저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것들은 이미 다 알고 있고 이미 탈퇴도 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A가 저에게 침을 놓는 동안 저는 시험 삼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병을 고치려면 저도 파룬궁을 연마해야 할까요?” 그는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때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5년 4월 어느 날, 저는 A에게 칭하이의 모 불학원에 가서 1~2년 정도 수행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A자는 바로 저에게 파룬따파를 소개했습니다. “당신은 근기가 좋고 깨달음도 있으니 대법을 수련하는 게 좋겠어요.” 그날 오후 내내 저는 그가 대법 수련에 대한 체득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그날 저는 제 인생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대법을 수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전과는 다를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후 대법 서적을 모셔 왔습니다. 마침내 대법을 얻은 것입니다!

저를 통해 어머니도 법을 얻으셨고 저와 어머니는 매일 법공부를 하고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제 친구 한 명도 저로 인해 법을 얻었습니다. 그 친구는 근위축증을 앓고 있었는데 왼쪽 어깨의 근육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였고 결국엔 온몸이 말라 정상이 아니게 됐습니다. 자전거를 타도 올라가지 못할 정도였고 얼굴색도 푸르스름하고 어두웠습니다. 그가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얼굴에 광채가 돌고 하얗게 변했으며 살도 오르고 힘도 생겼습니다.

진상 알리기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알게 됐습니다. 거의 모든 법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고, 각지 설법과 새로운 경문을 통독하는 데도 전혀 장애가 없었습니다.

가끔 버스를 탈 때면 차 안의 사람들을 보며 제가 법을 얻었는데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긴박감이 들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A가 왜 제 주변 사람들에게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삼퇴'(중공 당, 단, 대 조직 탈퇴)를 권유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A에게 “당신이 왜 그렇게 하는지 이제야 이해했어요, 이해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법공부를 깊이 할수록 당신의 층차는 점점 더 빨리 높아질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사는 단지는 매우 커서 8만 명 정도 삽니다. A는 이곳이 진상 자료의 공백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이 집은 몇 달 전에 산 것인데 새집에 입주하고 나서 법을 얻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와 A는 제 집에서 자료점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편리한 조건이 있었고, 인쇄도 할 줄 알고 인터넷도 다룰 줄 알며, 예전에 복사와 타자 일도 해봤습니다. 저와 A는 제가 새로 이사 온 단지에서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A의 이타적인 도움으로 저는 정법의 흐름에 합류했습니다. 곧 새로 이사 온 단지 전체에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설 연휴 때 아내의 고향에 갔다가 자료를 갖고 가서 주변 3~4개 마을에 모두 배포했습니다. 그 후 집에 돌아와서 이유 모르게 설사를 했습니다. 한 번 하고 나면 또 설사하고 싶었는데 그러고는 매우 편안했습니다. A는 “이건 사부님이 당신에게 상을 주시는 거예요. 당신의 몸을 정화해주시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느새 제가 법을 얻은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다른 단지에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납치됐습니다. 처음에는 파출소에서 좀 긴장했지만 곧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해. 이것이 그들이 진상을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야. 그리고 내 정념이 강하면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실 거야.’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 그때 저는 몸이 에너지로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불법적으로 저를 심문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어요. 이건 납치예요. 저는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에게 천안문 분신 사건이 조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지능이 정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허점을 볼 수 있어요. 왕진둥이 그렇게 불에 탔는데 그의 두 다리 사이에 있던 페트병이 멀쩡했다는 게 가능한가요? 게다가 그의 가부좌 자세도 우리와 달랐어요. 우리는 모두 결가부좌를 하고 두 엄지손가락 끝을 살짝 맞댑니다만, 그는 반가부좌를 하고 왼쪽 엄지손가락이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누르고 있었죠. 영상을 천천히 보면 류춘링이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소화기로 머리를 맞아 죽는 걸 볼 수 있어요.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한 진짜 의도와 이유는 소인배의 질투심 때문에 고집을 부린 거예요. 중국의 현행법 중 어느 것도 파룬궁이 불법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어요. 제 행동은 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경찰이 진술서에 서명하라고 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저를 구치소에 가뒀습니다. 나중에 검찰에서 와서 저를 심문했는데 저는 그들에게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했습니다. 같은 감방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진상을 알렸고 16명이 ‘삼퇴’를 했습니다. 구금 기간 저는 제 수련 중에 어떤 허점이 있어서 사악이 틈을 타 저를 박해했는지 반성했습니다. 밤에 꿈을 꿨는데 이는 구금 기간 중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색욕관을 넘는 장면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고 저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색욕에 대한 집착 때문에 구세력이 저를 박해할 구실을 찾은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불법 구금 14일 만에 저는 처분보류로 풀려났습니다. 나와서 법에 비추어 보니 제 마음속에 있는 사람마음이 정말 너무 많았습니다. 쟁투심, 환희심, 남을 얕보는 마음, 독선, 과시심, 일하려는 마음,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마음, 색욕심 등이 있었습니다. 수련자들도 사심 없이 제가 원인을 찾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지 1년 된 신수련생이라 그들은 모두 저를 걱정했고, 제가 이 난을 넘지 못하고 수련을 포기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는 수련자들에게 안에 있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봤다고 했습니다. 만약 사악이 두 가지 선택을 준다면, 1. 보증서를 쓰고 수련을 그만두면 바로 집에 갈 수 있다. 2.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단두대가 저기 있다. 어떻게 하겠냐고요. 저는 말했습니다. “주저 없이 단두대로 고개를 내밀 겁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데리러 오실 거예요.” 사실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미련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내려놓아야 하고, 아내도 내려놓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아이를 놓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 순간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수련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첫 번째 선택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이 일을 위해 저는 억만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A가 말했습니다. “와, 당신은 통과했네요. 당신은 제고했어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시간을 내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으세요.”

저는 오랫동안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어느 날 법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한 장면이 제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사부님께서 구세력과 대화하시는 모습이었는데, 사부님께서 저에게 법을 얻게 하려 하시는데 구세력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구세력이 타협했지만 제 난을 더 크게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이 장면이 스쳐 지나가자 저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법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사부님께서 제가 법을 얻을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주셨는지 말이죠.

구치소에서 나온 후 저는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해야겠다고 깨달았습니다. 다른 수련자들과 상의했더니 모두 지지했지만 A는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아직 처분보류 상태였기 때문에 아마도 그는 제가 다시 박해당할까 봐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당한 박해에 대해 정의를 주장할 용기조차 없다면, 어떻게 다른 수련자들을 위해 정의를 주장하고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겠습니까? 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을 돕는 정법은 더더욱 이야기할 수 없겠죠. 당시 저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우체국에 가서 장쩌민 고소장을 보내기 전에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하는 이 일은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입니다. 제자에게 가지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중앙기율위원회, 최고인민검찰원, 최고인민법원에 모두 소장을 보냈고 영수증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체국 직원이 내용을 볼 수 있냐고 물어서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장쩌민 고소장인 걸 보고 웃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우 홀가분하고 기쁜 느낌이 들었고 하늘이 맑고 몸이 투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부님이 계시니 정말 좋구나!’

마음 수련

박해당한 후 A가 저를 멀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A의 뜻은 신수련생은 법공부와 연공만 하면 되고, 진상을 알리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후 사부님께서는 제가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이런 천기를 깨닫게 해주셨어요. 이는 제가 자신만 수련하고 자신만 원만에 이르라고 하신 게 아니라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제 책임이자 사명이에요. 저는 이 일을 위해 온 거고 이 일을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게다가 사부님께서도 ‘신수련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로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각지 설법7-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고 하셨잖아요. 그럼 당신은 제가 뭘 하라는 거예요? 어디로 가라는 거죠? 왜 이런 말을 진작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당신은 저를 데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했잖아요. 이제 와서 제가 박해를 당하니까 이런 말을 하시는 건가요?”

우리 둘 사이에 이 문제로 의견 차이가 생겼고 제가 뭘 해도 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다른 수련자들에게 저를 멀리하라고 하고 앞으로 저와 접촉을 줄이라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매우 화가 났지만 당시에는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수련자들은 모두 저에게 “무조건 안으로 찾으세요”라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사부님께서 주신 ‘안으로 찾는다’는 이 법보(法寶, 법력이 있는 보물)의 법리를 깨닫지 못했고, 그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A는 내가 또 박해당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도 날 위해서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박해를 당하기 전에는 A와 매우 친했고 그가 법을 전해줘서 제가 법을 얻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수련자들도 모두 그가 소개해 준 분들입니다. 우리 둘은 이전에 함께 해외에 나간 적이 있는데, 약 2400위안의 비용 손실이 있었고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도 관련이 있어서 저는 바로 정산하지 않고 거의 반년간 미뤘고 그에게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600여 달러를 그에게 빌린 적이 있는데 당시 제 외환 한도가 부족해서였습니다. 다음 날 3300위안을 갚기로 했는데 제가 잊어버렸습니다. 이 일이 생각났을 때는 이미 출국 전날이었고 곧 출국해야 해서 그에게 송금하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귀국 후에 송금하려고 했는데 당시에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귀국 후에 저는 이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고 그도 계속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박해받은 후 저는 또 다른 곳에 자료점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자료를 전해주러 갔을 때 그는 매우 불쾌해했고, 말하는 중에 제가 이것도 잘못됐고 저것도 잘못됐다고 하면서 제가 법을 얻은 후 전혀 수련하는 사람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술을 마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저는 화가 났습니다. “제가 술을 마실 때 당신도 같이 있었잖아요. 당신도 말리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끊었잖아요?” 저도 그의 잘못된 점들을 지적했습니다. 시간을 지키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저와 다른 수련자들의 관계를 이간시키고, 다른 수련자들에게 저와의 접촉을 줄이라고 말한 것 등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이런 행동이 수련인이 할 짓인가요?” 저는 큰 소리로 그에게 따졌고 다투려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날 우리는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습니다.

제가 집을 산 일에 대해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을 사느라 신용카드로 30만 위안 이상을 대출받았고, 또 제 여동생에게 10만 위안을 빌려 계약금을 냈습니다. 옛집을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부동산 등기증에 문제가 생겼고 신용카드 연체 이자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은행 빚 때문에 악의적인 괴롭힘을 당해 어쩔 수 없이 타지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A를 찾아가 예전에 2400위안 손실 건을 정산했는데, 그때 그가 제가 그에게 달러를 빌린 일을 언급했습니다. 저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잊었어요. 일찍 말씀해 주셨어야죠”라고 했고, 그는 “내가 그럴 수 있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당시 제게 돈이 없어서 차용증을 써드렸습니다. 돌이켜 보니, 집을 사면서 빚이 생겼을 때 그에게 돈을 빌리려 했었는데, 바로 그 일 때문에 그가 저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돈을 빌려줬다면 제가 타지로 이주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정말 저 자신을 잘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가 왜 신수련생은 법공부와 연공만 하면 된다고 했을까요? 그건 제 수련 상태가 좋지 않고, 일을 하려는 마음이 강하며, 안전하지 않은 요소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 금전 문제에서 제가 실수한 것 때문에 A는 저에 대해 매우 안 좋은 의견을 갖게 됐고, 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는 제가 일을 대충 처리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고, 질질 끄는 결점을 보게 됐습니다. A가 저를 상대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수련자들에게 저와의 접촉을 줄이라고 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그가 잘못한 것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수련자들에 대한 의존심이 강해서 무슨 문제만 있으면 수련자들과 상의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는 제 의존심을 없애려고 한 것 아닐까요? 이렇게 무조건 안으로 찾아보니 세상에, 모두 제 잘못이었습니다. A는 저를 제고시켜주려고 했던 겁니다. 정말 그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시간을 내어 A의 집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형님께 끼친 피해는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저에게 많은 결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일할 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고려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했으며, 다투려는 마음이 강하고, 말할 때 가시 돋친 말을 하고, 이치를 따지면서 남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A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매우 기뻐하며 당시의 생각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형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형님을 통해 제가 현재 제 층차에서 어떻게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는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 뼛속 깊이 숨어 있던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 승부욕과 허영심, 문제가 생기면 먼저 자신이 어떻게 억울한지 생각하는 이기적인 심리, 이런 것들은 악당 문화의 요소가 아닌가요?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꽤 정진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 이는 바로 실제로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평소에 심성 수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갈등 속에서 자신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집착심을 붙들고 놓지 않았으니, 이는 수련에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 것이고 자신에게 책임지지 않은 것입니다. 수련인으로서 어떤 일을 만나든 담담하게 마주하고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아야 합니다. 특히 쟁투심, 일을 할 때 남이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고려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는 것, 일을 하려는 마음, 독선, 환희심,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요행심리 등은 반드시 마음속에서 수련해 없애야 하고, 사람의 관념과 사람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법리상에서 진정으로 사람의 모든 사유 관념이 잘못됐고, 모두 바르지 않으며, 모두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의 본성인 자비, 대인지심(大忍之心)으로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모든 것을 대할 수 있습니다. 법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자신을 가늠하면 어떤 갈등이든 모두 화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안으로 찾는 것은 정말 법보입니다.

서약 이행

이렇게 아내와 저는 악의적인 괴롭힘을 피해 다른 도시로 왔습니다. 돈이 없어서 대형 슈퍼마켓에서 일자리를 구했는데, 이 일은 예전보다 접촉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환경도 더 복잡했으며 일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제 수련과 제고의 기회라는 걸 알았습니다.

보통 저는 야간 근무를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반장을 맡았는데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여자 안내원 한 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전에도 자주 말도 없이 일찍 퇴근했었습니다. 저는 업무 단체 채팅방에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어디 갔는지 물었습니다. 잠시 후에도 그녀가 보이지 않자 다시 채팅방에서 그녀를 불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채팅방에서 욕설을 퍼부었고 매우 난폭한 말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들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수모를 당해본 적이 없었죠.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매우 화가 났지만 곧 ‘안 돼,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그녀와 일반인처럼 다투면 안 돼. 보통 사람들도 여자와는 다투지 말라고 하는데, 하물며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억누르고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일찍 가려면 나한테 말 한마디만 하면 돼요. 전에 당신이 일찍 갈 때 내가 한 번이라도 허락 안 한 적 있나요? 다들 당신처럼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면 이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당신이 화장실에 갔다고 했는데 벌써 몇십 분이 지났어요. 그럼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아직도 안 보이는데요.” 그녀는 여전히 채팅방에서 욕을 했고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일 출근하면 매니저에게 가서 오늘 밤 있었던 일을 설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수련인에게 갈등이 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니, 분명 제 사람 마음을 없애야 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먼저 가면서 저에게 말하지 않고 게다가 저를 욕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가 잘못한 것 같지만, 당시 제가 권위가 도전받는다고 느꼈던 것 아닐까요? 이는 권위를 지키려는 마음 아닌가요? 게다가 이 일을 처리할 때 그녀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야 했는데, 채팅방에서 말해서 모든 사람이 알게 한 것은 그녀의 당시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권위를 지키려는 마음이 매우 강했고 이 일을 처리한 출발점이 이기적이고 선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저는 매니저에게 가서 이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해고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업무 중에 저는 항상 그녀를 선의로 대했습니다. 1년 후 그녀가 퇴사하는 날 저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녀는 소선대를 탈퇴했습니다.

타지에 온 처음 몇 달 동안은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난관들이 꽤 강하게 왔습니다. 마음속에 늘 의문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이 이곳 타지에 오는 것일까?’ 법공부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제 눈앞에 몇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네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하려고 해서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타지에 온 것도 우연이 아니며 아마도 사부님께서 이렇게 안배하신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제 전생의 인연이 이 도시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지에서는 서로 도와줄 수련자도 없고 진상 자료도 없었기에 직접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말만 하면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 이 관문을 넘을 수 있도록 가지(加持)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전동스쿠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용기를 내 진상을 알렸습니다. 첫날에 10여 명에게 알렸고 7~8명이 탈퇴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고 저는 그저 입을 조금 움직인 것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감이 크게 생겼고 점차 경험도 쌓였습니다. 많이 하다 보니 체면과 어려워하는 심리도 없어졌습니다. 출퇴근길에 일용직 노동자 시장을 지나갈 때면 자주 그곳에 멈춰 서곤 했는데, 그러면 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저는 여러 명을 상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을 고용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들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다시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평안과 복을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입했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면 큰 재난이 올 때 목숨을 보전하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중공은 너무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1949년부터 지금까지 평화 시기에 8천만 이상의 중국인을 살해했고, 특히 1999년부터 파룬궁을 박해했습니다. 하늘이 그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불법(佛法)을 박해했기 때문에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려 하는데 여러분이 그 조직에 가입했다면 연루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그것과 함께 멸망당할 수 있습니다. 탈퇴하면 평안과 목숨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모두 탈퇴합시다, 좋지 않나요?”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좋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때로는 한 번에 7~8명이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 사람들도 모두 저를 알아보게 됐고 어떤 이들은 걱정스럽게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장이 파출소에서 100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니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2천 장의 카드를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카드에는 가명이 적혀 있었는데, 명혜망에서 다운로드한 작명 소프트웨어로 지은 이름이었고 거의 중복되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도 50여 명이 탈퇴했습니다.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이름을 골라 “이 이름 좋네요. 이걸로 하겠습니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천상(天象)이 크게 변했고 중공은 임종 직전의 발악을 하며 회광반조(回光返照)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법은 곧 끝날 것입니다. 수련자 여러분 정진합시다. 여러분이 올 때 한 서약을 이행하고 원만에 이르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갑시다. 안전상 이유로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자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7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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