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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수련자 주톈푸, 3년 6개월 부당한 판결로 감옥행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웨이팡시의 71세 파룬궁수련자 주톈푸(朱天富·71)가 지난 8월 7일, 팡쯔 분국 경찰에 의해 웨이팡 구치소로 납치됐다. 이는 주톈푸가 중공 법원에 의해 두 번째로 부당하게 판결받은 것이다.

주 씨는 2022년 12월 6일 현지 경찰에 의해 세뇌반으로 납치돼 구금됐다. 12월 23일 웨이팡시 팡쯔구 법원은 그에게 3년 6개월의 부당한 형을 선고했지만, 당시 코로나 상황으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주톈푸의 납치와 부당한 판결 상황 요약

주톈푸는 웨이팡시 팡쯔구 지우룽가도 차이위안촌에 거주했다. 2022년 4월 5일, 주톈푸는 파룬궁수련자 마리춘(馬立春)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던 중 웨이팡시 공안국 팡쯔 분국 난류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이후 경찰은 주톈푸와 마리춘의 집을 불법 수색했고, 주톈푸의 동생을 구타해 얼굴에 멍이 들게 하고 바닥에 쓰러뜨렸다. 난류 파출소에서 주톈푸와 마리춘은 경찰의 구타를 당하고 이틀 밤낮 동안 수갑을 찬 채 등 뒤로 팔을 묶였다. 4월 6일 저녁에야 주톈푸와 마리춘은 집으로 돌려보내졌다(마리춘은 이후 2023년 7월 18일 3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산둥성 남자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받고 있다).

'中共酷刑示意图:背铐'
중공 고문 도해: 등 뒤로 수갑 채우기

2022년 4월 10일, 두 명의 경찰이 주톈푸의 집에 침입해 그를 강제로 조작된 문서에 서명하고 지장을 찍게 했다. 4월 12일, 경찰은 두 차례 주톈푸의 집을 침입해 괴롭혔는데, 두 번째는 이웃집 담을 넘어 들어왔다. 4월 13일, 경찰은 다시 주톈푸를 파출소로 끌고 갔다가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주톈푸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12월 6일 오전, 주톈푸는 누나 집에서 팡쯔 공안 분국 국보 대대 경찰과 해당 지역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장자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12월 8일 밤, 세뇌반 경찰 류광융은 쇠의자에 묶인 주톈푸를 때리고 욕하며 파룬궁 사부님부터 주톈푸의 부모님까지 입에 담기 힘든 말을 내뱉었다. 한바탕 구타와 욕설 후, 류광융은 주톈푸를 쇠의자에서 끌어내며 악의에 찬 말을 했다. “밖에 문이 열려 있으니 나가봐. 네가 문을 나서면 내가 총으로 쏴 죽이겠다!”

2022년 12월 9일, 주톈푸는 팡쯔 공안 분국에 의해 팡쯔구 검찰원으로 넘겨졌다. 12월 23일 오전 11시, 주톈푸는 갑자기 ‘재판’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세뇌반 책임자 장샤오후이가 휴대전화로 팡쯔구 법원과 연결해 약 20분간 불법 화상 재판을 진행했고, 팡쯔구 법원은 그 자리에서 주톈푸에게 3년 6개월의 부당한 형을 선고하고 5천 위안의 벌금을 강탈했다. 그들은 주톈푸를 속여 판결문에 서명하게 한 후 판결문을 주지 않았고, 코로나 상황 때문에 주톈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24년 8월 7일, 주톈푸는 웨이팡에서 팡쯔 공안 분국 경찰에 의해 납치돼 웨이팡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주톈푸 부부를 구한 파룬궁

주톈푸는 젊었을 때 심각한 류마티스성 요통을 앓았다. 20년 가까이 각종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 않았고 40세가 되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1995년 주톈푸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진선인(真·善·忍)의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한 달 후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병증이 약을 쓰지 않고도 나았으며, 그의 급한 성격도 사라졌다. 아내 장시메이(張希美)는 남편의 몸과 마음의 큰 변화를 보고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그녀가 전에 앓던 심각한 두통도 사라졌다. 주톈푸, 장시메이 부부는 파룬따파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그러나 중공이 1999년 7월부터 파룬궁수련자들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주톈푸의 가족들도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주톈푸는 5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고, 아내 장시메이는 왕촌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로 정신 이상이 됐다. 다음은 주톈푸 가족이 수년간 중공에 의해 박해받은 주요 사실이다.

파룬궁을 위해 호소하다 구금과 구타당해

1999년 12월 30일, 주톈푸는 파룬궁을 위해 호소하러 베이징에 가던 중 웨이팡시 공안국 팡쯔 분국 처류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처류 파출소에서 소장 위나이쿵과 교도관 왕유샹이 빗자루로 주톈푸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밤에 경찰들은 주톈푸의 옷을 벗기고 마당에 수갑을 채워 얼리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그를 파출소 문 밖 도로변 전신주에 수갑을 채워 모욕했다. 하루 종일 밥도 주지 않고 물도 주지 않았다. 저녁에는 주톈푸를 팡쯔 구치소로 끌고 가 15일간 불법 구금했다.

'中共酷刑示意图:冷冻'
중공 고문 재연: 냉동

2000년 3월, 주톈푸의 아내 장시메이가 파룬궁을 위해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웨이팡 주재 베이징 사무소에 불법 구금돼 박해를 받았고, 3일 밤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다. 처류 파출소 경찰이 장시메이를 끌고 돌아와 그날 밤 고무봉으로 그녀를 악독하게 구타했고, 죽을 지경이 돼서야 멈췄다. 다음날 장시메이는 팡쯔 구치소로 끌려가 15일간 불법 구금됐고, 만기 후에도 처류 파출소에 의해 처류진 정부로 끌려가 50일간 구금돼 박해받았다.

'中共酷刑示意图:毒打'
중공 고문 도해: 구타

여러 차례 납치, 구금, 구타당해

그 이후로 소위 ‘민감한 날’이 되면 주톈푸, 장시메이 부부는 현지 중공 관리들에 의해 집에서 강제로 끌려나와 불법 구금됐다.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두 달이었다.

2000년 9월 25일 오후, 처류진 정부는 10월 1일 파룬궁수련자들이 베이징에서 평화로운 청원을 할까 두려워 처류진의 모든 파룬궁수련자들을 진 정부로 납치해 처류진 도로국에 구금하고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주톈푸, 장시메이 부부는 진 정부에 의해 6천 위안을 강탈당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01년 가을 어느 날 밤, 주톈푸가 혼자 집에 있을 때, 그의 동생이 제철소에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새벽 1시가 넘어 돌아왔다. 대문을 닫자마자 누군가 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형제는 문을 열지 않았고 문을 부수는 사람들은 이웃집에서 사다리를 타고 주톈푸의 집 마당으로 넘어왔다. 그들은 또 집 문과 창문을 부수려 했다. 주톈푸가 문을 부수는 사람들에게 “일이 있으면 내일 다시 오세요”라고 말했다. 다음날 동이 틀 무렵, 웨이팡시 공안국 팡쯔 분국 무촌 파출소와 무촌진 정부 관리들이 많은 폭력배를 고용해 40여 명이 대형 트럭 2대, 승용차와 승합차 5~6대를 타고 와서 주톈푸 형제를 납치해 무촌진 정부의 한 방에 가뒀다. 저녁이 되자 고용된 폭력배들이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 각자 고무봉을 들고 형제를 따로 방으로 끌고 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구 때렸다. 지치면 사람을 바꿔가며 때렸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맞아 끌려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다음날 주톈푸는 처류 파출소에 끌려가 처류진에서 7일간 더 구금돼 박해받았다. 주톈푸의 동생은 무촌진 정부에서 10여 일간 구금돼 박해받다가 1,500위안을 강탈당한 후에야 풀려났다.

부당한 5년형 받고, 아내는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로 정신 이상

2002년, 주톈푸, 장시메이 부부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악의적인 신고를 받았다. 장관촌 촌지부 서기가 처류진 파출소 경찰과 함께 같은 해 2월 25일(음력 1월 14일) 주톈푸의 집에 침입해 그를 강제로 끌고 갔다. 주톈푸는 구치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다. 현지 공안, 검찰, 법원은 어떤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가족에게 통보하지도 않은 채 주톈푸에게 5년형을 부당하게 선고하고 산둥 웨이베이 감옥으로 끌고가 박해했다.

아내 장시메이는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떠돌아다녀야 했고, 두 자녀는 집에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들은 겨우 18살에 일하러 나갔고, 딸은 15살에 몇 년간 떠돌아다녔다. 집은 텅 비고 마당은 잡초만 무성해 매우 황량했다.

웨이베이 감옥에서 주톈푸는 ‘전향’을 거부해 두 차례 웨이베이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당했다. 매일 파룬따파와 사부님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받았고, ‘수련 포기 각서’를 쓰고 지장을 찍도록 강요받았으며, 매번 7~8일씩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주톈푸는 그 암흑의 나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5년간의 감옥 생활은 하루하루가 일 년 같았다. 숨 쉬는 것 외에는 자유라곤 전혀 없었다. 부당한 판결 기간 매일 마음을 졸이며 살았고, 날마다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칭다오 대학생 리광은 감옥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감옥경찰 왕시윈의 지시로 죄수들에게 맞아 죽었다.”

2007년 3월 28일, 주톈푸가 부당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웨이팡시 팡쯔구 무촌진 차이위안촌 대대 관리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의 집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발견하자 무촌 파출소에 통보했고, 경찰은 주톈푸와 아내 장시메이, 동생 주톈중(朱天忠)을 납치했다. 주톈푸는 그날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장시메이와 주톈중은 웨이팡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형사 구류됐고, 이후 쯔보 왕촌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1년 6개월간 불법 강제노동을 받았다. 왕촌 노동수용소에서 장시메이는 박해로 정신 이상이 됐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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