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난성 통신원) 8월 초 알려진 바에 따르면, 13년 반 동안 부당한 수감을 겪은 후난성 천저우시 파룬궁수련자 랴오즈쥔(廖志軍)이 또다시 납치돼 현재 천저우 구치소에 불법 구금된 상태다.
랴오즈쥔은 올해 약 53세로, 원래 헝양 차량부 천저우 열차검사소 직원이었다. 그는 1996년 말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며 일에 충실했고, 힘들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했으며 지각이나 조퇴를 하지 않았다. 동창이나 전우 집에 놀러 가서도 집안일과 청소를 자진해서 도왔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탄압하는 과정에서 랴오즈쥔은 여러 차례 중공에 의해 납치되고 불법 구금됐다. 그는 한 번의 강제노동과 세 번의 불법 판결로 총 13년 반 동안 부당하게 감옥살이를 했다.
다음은 랴오즈쥔이 중공에 의해 박해받은 일부 경험이다.
1. 기차역 광장에서 아침 연공하다 천저우시 구치소에 한 달간 불법 구금돼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같은 해 9월 중순, 천저우시 공안국 정보보위과의 천강 등 여러 악질 경찰이 기차역 광장에서 아침 연공을 하던 랴오즈쥔을 납치해 천저우시 구치소로 끌고 가 한 달간 구금하고 박해했다.
2. 베이징에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다 신카이푸 노동수용소에서 2년간 강제노동 당해
2000년 12월 말, 랴오즈쥔은 베이징에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다 천안문 광장에서 베이징 악질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후 후난 주재 베이징 사무소로 끌려가 불법 구금됐다. 헝양 차량부에서 사람이 와서 랴오즈쥔을 데려간 뒤 그를 헝양 구치소에 한 달간 구금해 박해했다. 직장으로 돌아온 뒤에도 랴오즈쥔은 불법 연금을 당했고, 직장에서는 전담자를 배정해 그를 감시하고 ‘전향’시키려 했다. 랴오즈쥔이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소위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하자, ‘610’과 헝양시 노동교양관리위원회는 2001년 3월 5일 그를 창사 신카이푸 노동수용소로 끌고 가 2년간 강제노동을 시켰다.
3. 일가족 4명이 납치되고 불법 구금돼
2007년 10월 15일, 랴오즈쥔은 천저우시 국가안전국 악질 경찰에 의해 직장에서 천저우시 구치소로 납치됐다. 같은 날 그의 아버지 랴오쑹린, 어머니 멍칭롄, 아내 장옌도 천저우시 구치소로 납치됐고, 랴오즈쥔은 38일간 구금되어 박해를 받았다.
4. 첫 번째로 3년 6개월 억울한 판결을 받고 진스 감옥서 박해받아
2008년 5월 10일, 랴오쑹린과 랴오즈쥔 부자는 천저우시 국가안전국 악질 경찰 6명에 의해 집에서 납치됐다. 당시 랴오즈쥔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한 경찰이 이를 보고 즉시 수건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고, 다른 경찰들은 그를 붙잡아 경찰차에 태워 천저우시 구치소로 끌고 갔다. 경찰차에서 내리자마자 랴오즈쥔은 다시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다. 감방으로 끌려갈 때까지 계속 외쳤고, 감방 안의 재소자들이 이불 한 장으로 그의 머리를 덮은 뒤 주먹과 발로 몸을 맹렬히 때렸는데, 이를 ‘인육만두 싸기’라고 불렀다. 구타 후 재소자들이 그에게 계속 외칠 것이냐고 묻자 랴오즈쥔이 계속 외치려 하자, 재소자들은 수건을 가져와 그의 입을 틀어막고 뒤통수에 묶었다.
2008년 9월 26일, 랴오쑹린과 랴오즈쥔 부자는 각각 천저우시 베이후구 법원에 의해 4년, 3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받았다. 부자가 항소했지만 다시 불법 판결이 유지됐다. 2008년 12월 13일, 랴오즈쥔은 후난 창더 진스 감옥 수용 센터로 끌려가 불법 구금됐다. 이 기간 동안 악질 경찰은 재소자들에게 그를 구타하도록 지시했고, 걸레로 입을 틀어막았다.
2009년 3월 6일, 랴오즈쥔은 진스 감옥에 수감돼 박해를 받았다. 진스 감옥 1감구 운동장에서 1감구 악질 경찰 부대장 샤오젠은 대대 사무 재소자들에게 랴오즈쥔의 옷을 벗기고 구타하도록 지시했고, 그의 두 다리 안쪽이 엉망이 됐다. 악질 경찰 샤오젠은 또한 사무 재소자들에게 랴오즈쥔을 침대에 눕히고 양손을 뒤로 해 머리 위 침대 난간에 10여 시간 동안 수갑을 채우도록 지시했다. 랴오즈쥔은 비록 몸은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손이 머리 위로 수갑에 채워져 있어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2009년 7월 29일, 랴오즈쥔이 노예 노동을 거부하자 경찰 샤오젠은 다시 간수 리 씨에게 지시해 그의 양손을 머리 위로 끌어올려 위층 침대 난간에 수갑을 채우고 하루 종일 서 있게 했다. 다음날에는 다시 그의 양손을 머리 위로 끌어올려 계단 난간에 수갑을 채웠다. 3일째 되는 날, 그의 발이 많이 부은 것을 보고 다른 재소자들에게 명령해 그를 침대에 눕히고 양손을 머리 위로 끌어올려 두 개의 침대 머리 난간에 수갑을 채워 이틀 동안 묶어두었고, 대소변도 침대에서 봐야 했다.
5. 두 번째로 억울한 4년 판결을 받고 왕링 감옥서 박해받아
2013년 4월 18일, 랴오즈쥔과 아내 장옌은 출근길에 천저우시 공안국 쑤셴 분국 국내안전보위대(국보) 랴오빙강, 양슝쥔 등 10여 명의 사복 경찰에 의해 납치됐다. 그날 밤 장옌은 풀려났지만 랴오즈쥔은 천저우시 구치소로 끌려가 구금되고 박해를 받았다.
랴오즈쥔은 천저우시 쑤셴구 법원에 의해 4년의 불법 판결을 받은 후 2014년 4월 18일 왕링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랴오즈쥔이 죄수복 입기를 거부하자 셰 씨 간수와 탄링푸 중대장이 4, 5명의 형사범에게 지시해 그를 붙잡고 모든 옷을 벗긴 뒤 죄수복으로 갈아입히고 강제로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
2014년 6월 22일, 랴오즈쥔이 사상 보고서를 쓰면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다섯 글자를 썼다. 1대대 3중대 경찰 샤오진위안이 격분해 형사범 피청우 등 4명에게 지시해 그를 사무실 바닥에 눕히고 경찰봉으로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나중에 랴오즈쥔이 감옥 교육과의 장전민과 1대대 대대장 저우 씨가 감구를 순찰하러 왔을 때 그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맞아 멍든 부위를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못 본 척했다. 경찰 샤오진위안은 그 후 랴오즈쥔을 감방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2014년 추석이 지난 다음 날, 경찰 샤오진위안은 감옥 관리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구실로 랴오즈쥔을 두 손으로 겨우 안을 수 있는 나무에 수갑을 채웠다. 그는 간수에게 지시해 긴 더러운 천으로 랴오즈쥔의 입을 꽉 묶어 목에 감게 했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 수갑을 채워두고, 밤에는 다시 그를 감방의 침대 기둥에 수갑을 채워 고문했다.
2015년 2월 17일, 랴오즈쥔이 감옥 재소자 대회에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크게 외쳐 감옥 안의 감옥이라 불리는 격리실에 갇혔고, 7일 후 다시 독방에 갇혔다. 격리실에서 벌로 서 있던 지 3일째 되는 날, 랴오즈쥔이 벌로 서 있기를 거부하고 연공을 하려 하자 간수 천즈강이 전기봉으로 그를 한바탕 전기 충격을 가한 후 다시 족쇄와 수갑을 채워 벌로 서게 했다. 독방에 갇혀 있는 동안 랴오즈쥔은 매일 벌로 서 있는 것과 앉아 있는 것을 번갈아 했다. 5시간 이상 벽을 보고 서 있거나 시멘트 판자 위에 10여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했다(겨울에는 얼음덩어리 위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전기봉, 수갑, 족쇄, 속박복이 모두 동원됐다. 15일 후 랴오즈쥔이 독방에서 나왔을 때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물건을 들어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2015년 3월, 경찰 샤오진위안이 다시 ‘없는 죄’를 만들어 랴오즈쥔을 15일간 독방에 가뒀다. 이후 랴오즈쥔이 그들에게 ‘보고’하거나 ‘앉아서 말하기’라는 불합리한 요구를 거부하자 다시 10일간 독방에 가뒀다. 독방에 처음 들어갈 때 랴오즈쥔이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외치자, 간수 천즈강이 전기봉 네 개를 가져와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꼬박 2분간 전기 충격을 가했다. 랴오즈쥔이 계속 외치는 것을 보고 그를 강제로 속박의자에 묶어 밤 11시까지 두었다. 랴오즈쥔이 소리 지를 힘이 없어지고 옷과 바지가 모두 젖은 것을 보고 나서야 속박의자에서 풀어주었다.
2015년 6월 25일, 랴오즈쥔은 고도 경계 감구(‘610 사무실’이 감옥에 설치한 인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지옥 같은 곳)의 전향반으로 끌려가 강제 ‘전향’을 당했다. 그날 밤 랴오즈쥔은 밤새 벌로 서 있어야 했고, 다음날 그의 손발이 심하게 부었다. 랴오즈쥔이 벌로 서 있을 때 눈을 감기만 하면 당직 재소자들이 화로수(花露水, 자극성 알코올 용액)를 그의 눈에 뿌렸다.
2016년 11월 18일, 랴오즈쥔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왕링 감옥에서 나왔다.
6. 세 번째로 또다시 4년 억울한 판결을 받고 왕링 감옥서 계속 박해받아
2017년 5월 28일, 랴오즈쥔이 천저우시 쑤셴 입체교차로 아래 강가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모함으로 사복 경찰 4명에게 납치됐다. 천저우시 구류소에서 15일간 불법 구류된 후 6월 12일 다시 천저우시 구치소로 끌려가 불법 구금됐다.
랴오즈쥔은 천저우시 쑤셴구 법원에 의해 4년의 불법 판결을 받은 후 2018년 5월 18일 다시 왕링 감옥으로 끌려가 구금되고 박해받았다.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랴오즈쥔이 죄수복으로 갈아입기를 거부하자 허씨 성의 경찰이 몇몇 사무 재소자들에게 지시해 그의 평상복을 강제로 벗기고 죄수복을 입힌 뒤, 수갑으로 그를 수용 대강당 창문에 몇 시간 동안 묶어두었다.
2018년 6월 27일 랴오즈쥔이 고도 경계 구역에 갇힌 후, 부교도관 탄핑핑이 생산대에서 특별히 잔인한 죄수 두 명을 골라 랴오즈쥔에게 고강도 압박을 가하게 했고, 경찰들이 번갈아 가며 그를 ‘세뇌’했다. 10감구에서 랴오즈쥔은 수면을 박탈당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됐다. 랴오즈쥔이 경찰 탄밍구이와 논쟁하며 말했다. “사형수도 잠잘 권리를 빼앗지 못하는데, 하물며 저는 사형수도 아닌데 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나요?” 경찰 탄밍구이가 말했다. “네가 잠을 자고 말고는 우리가 결정하는 거야.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랴오즈쥔이 불합리한 요구에 따르지 않자 자주 두 명의 죄수에게 뺨을 맞았고, 머리를 잡혀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한 죄수는 그의 아랫배를 발로 찼는데, 당시 랴오즈쥔은 배가 심하게 아파 고통을 참기 어려웠고 2, 3개월이 지나서야 통증이 사라졌다.
2019년 5월 27일, 랴오즈쥔은 생산대로 보내져 노예 노동을 했는데, 모두 조악하게 만든 가짜 명품 의류를 해외 여러 국가와 대만으로 수출하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오토바이용 우의를 만드는 생산 라인이 있었는데, 그 우의 주머니에는 30년 동안 우의 생산에 전념한 제조업체라는 광고가 적혀 있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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