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이 적어 작업량과 책임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직책을 맡으려면 그에 맞는 기술이 필요한데, 저는 늘 독학으로 시작해 빠르게 중상급 전문 수준에 도달했고 배운 것을 바로 실무에 적용했으며, 때로는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귀한 기회로 전문 교육에 참여하게 되어 그 과정에서 느낀 점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는 선생님들과 주최 측에 대한 감사, 그리고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다만 시간이 촉박해 급히 쓴 글이라 미흡한 점이 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1. 수련이 그 속에 있다
교육 내용 중 하나로 투시도 연습이 있었습니다. 매우 바쁜 한 주였고, 때로는 새벽이 되어서야 그날의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여러 사람과 일을 대하고 다른 공간에서 오는 시련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작업물에서 같은 실수가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잘못된 줄 알면서도 어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걸까요? 저는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선생님의 끈기 있는 설명 중에 한 단어가 제 마음속 닫힌 문을 여는 열쇠 같았는데, 순간 깨달음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예술성과 시각을 강조하는 투시도와 구조와 기능을 중시하는 공업 도면, 기계 도면을 무의식중에 혼동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혼동했을까요? 두 영역에서 ‘투시’라는 공통된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피곤하고 바쁜 와중에 억지로 교육에 참석한 저는, 이 용어를 듣고 제가 선호하지 않는 디자인 스타일(실용성보다는 판매를 강조하고, 전통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외계인 같은 느낌을 주는)을 보고 방심했으며, 그 결과 투시도법에 맞지 않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이었습니다.
‘습관’이란 익숙해진 ‘관념’과 행동 양식 아닐까요? 관념은 수련자가 버려야 할 것 아닌가요? ‘집착’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는 뜻 아닐까요? 여기에 집착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의도하지 않은 집착도 집착이 될 수 있으니, 사부님께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수련하라고 하신 것이 당연합니다.
마음에 장벽이나 관념의 방해가 사라지니 눈과 손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체코의 한 작가는 “인간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신께서는 웃으신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명백한 한계가 있는 여러 관념으로 사고하고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니, 신께서 어찌 웃음을 참으실 수 있겠습니까?
다음 단계는 연습을 통해 완벽히 익히고 경험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발전을 가로막는 관념이 다시 생겨나면 그것 또한 제거해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다”(전법륜)고 말씀하셨고, 제 평생 끊임없이 배워온 경험은 각기 다른 전문 분야에는 그에 맞는 진리와 신이 전해준 기술이 있으며, 모든 전통 직업은 존중받고 계승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제 생각에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修)가 쓴 ‘타유옹(打油翁)’은 단순한 우화가 아닌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는 단순히 반복 연습으로 기술을 완벽히 익힌 것뿐만 아니라, 어떤 전통 직업에서든 마음을 닦으면 자신의 경지를 높일 수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2. 도(道)는 그 속에 있다
중화권에는 많은 오만과 편견, 오해, 간극, 질투, 경쟁 등이 존재합니다. 요즘 말로 ‘내부 경쟁’이라 하고, 옛사람들은 ‘원한의 되갚음’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교육 과정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선의적인 경우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성장 환경으로 인해 언어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였습니다. 이럴 때는 선의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상대방의 습관이나 언어로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느끼건대 50년대 이전의 그 미국문화, 그것은 사람의 문화이다. 사람도 비교적 선량하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
“사실 당시는 아직도 인류가 5, 60년대에 처했을 때인데, 사람은 아직도 비교적 단순하고 비교적 선량했다. 구세력은 사람의 이런 상태는 법을 얻기에 너무나도 쉽고, 사회상의 선념(善念)이 너무나 강한 것을 보았기에, 많은 현대적인 의식, 현대파 예술과 학설을 만들어냈는데, 각 영역마다 현대의 부면(負面)적인 것들로 가득 찼으며, 최후에 이 부면적인 요소가 전반 세계를 점령하도록 했다. 현재는 바로 이런 하나의 환경이다. 정면(正面)적인 것, 선량한 것을 일반적인 상황에서 감히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두려워하며, 남에게 괄시당할까 두려워한다. 전반적인 것을 모두 부면적인 요소가 점령하고 있어, 고상한 자리에서도, 대중이 모인 공개적인 장소에서도 이를 선양(宣揚)할 수 있게 되었다.”(각지 설법14-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오랫동안 법을 기다리다 희망을 포기하고 이 세상에 그런 법이나 스승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사부님께서 저를 법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릅니다. 구세력이 만들어낸 혼란과 도덕이 무너진 환경 속에서, 제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전문 교육의 기회를 만났고, 특별한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교육자 출신이 아니어서 교수법과 언어 사용에 있어 학습자의 태도와 이해력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대법 수련자인 저에게는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법 수련은 바로 깨달음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전문성은 매우 높았고 현대 과학에서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헌신적으로 가르치시며 많은 부분에서 도(道)를 말씀하셨습니다. 적어도 제 귀에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개개인의 마음에 맞춰 가르치셨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방식의 전환이었습니다. 현대 과학의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자연과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로, 현대 관념의 이기심에서 전통의 소박함, 정직함, 선량함으로 조금씩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직업을 가지든 결국은 사람됨이 근본 아닐까요? 선(善)으로 돌아가고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신이 원하는 바입니다.
구체적인 예는 잠시 생략하겠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우공이산(愚公移山) 이야기처럼 실제로 우공에게는 그 큰 산을 옮길 능력이나 수명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가짐이 바르니 신이 손쉽게 도와 산을 옮겼고, 그래서 우공의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에는 두 가지 근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생에서 닦아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생에 심성을 갖추어 신께서 주신 것입니다.
3. 전문 기술
이 글의 제목은 전문 기술 향상입니다. 과연 향상되었을까요? 객관적으로 말해, 이 분야에서 낮은 출발점에 있던 저는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문외한에서 이제 문 안으로 들어섰고, 할 줄 모르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존의 다양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더해 이미 프로젝트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선생님의 가르침과 대법의 가지(加持) 덕분입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기 어려워 아쉬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분들이 어떤 일을 하든 그 안에서 신(神)과 법에서 벗어난 자신을 끊임없이 바로잡아 오래도록 도(道) 안에 머무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멀리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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