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만심’을 닦은 약간의 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과시심과 명예욕은 과거 제 수련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자만심’이라는 이런 배후의 마음이 수련에 큰 장애가 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깨우쳐주셨으므로, 가슴 아픔 과정을 거쳐 그런 마음을 제거할 수 있었으며, 그것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잇달아 발표하셨습니다. 저는 독선, 자아팽창, 자만심 등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걸 더욱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정념으로 법에 동화해야 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최근에 이런 마음을 닦은 약간의 체득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날, 명혜망에서 ‘영국 수련생이 션윈 공연 현장에서 본 것‘이란 영국인 수련생의 글을 읽었습니다. 수련생이 당시 그의 층차에서 션윈 공연 중에 중생이 구원되는 장면을 봤다는 내용만으로도 저는 큰 충격과 함께 감동했습니다. 바로 ‘사람을 구하는 분은 사부님이시고 대법’임을 법에서 깨달았고, 하늘의 공덕을 탐하는 ‘자만심’을 닦게 됐습니다.

션윈 공연에 참여하는 수련생들은 각자 타고난 재질과 재능이 있고, 각자의 분야에서 매우 높은 전문적 수준에 도달했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수련생들이 뛰어난 능력으로 공연을 완성해 사람을 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진정한 작용을 일으킨 건 대법이고 진정 사람을 구하는 분은 사부님이십니다. 수련생들의 능력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해야 할 일도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과거에는 ‘나는 표면적인 일을 했을 뿐이고 사람을 구하시는 분은 사부님’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마음 깊은 곳에는 ‘일부분은 내가 한 것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잘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만심’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번에 명확하게 법을 인식하고 나서 마음이 확 트여 ‘자만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건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대법의 힘이 발현된 것임을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단지 사부님께서 하라고 안배해주신 표면적인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잘하지 못했고 일부는 아직 하지도 못해 조사정법(助師正法)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어찌 자만할 수 있고 스스로 괜찮게 해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비로소 이전에 법을 이탈한 인식이 있었음을 알고 진정으로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아직도 그런 자만심이 있는지 계속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떠올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동작을 가르칠 때, 그가 말한다. “와, 나에게 法輪(파룬)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넣어준 것이라고 여길 텐데,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일을 말하는 것은 이 집착심을 키우지 말라는 것이며, 모두 나의 법신이 하고 있다.”

처음 이 법의 구절을 배웠을 때 ‘파룬은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넣어주신 것인데, 수련생이 어찌 이런 능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어떻게 자기가 넣어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문제와 구절에 대해 매우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신경 쓰지 않고 재빨리 읽고 지나쳤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 ‘이 법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느꼈던 것은 바로 이 구절이 제게 존재하는 문제를 겨냥한 것이고, 그런 배후의 좋지 않은 것이 제게 이런 착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법을 진정으로 배우면 그것들이 소멸되므로 깨닫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이 준 느낌을 따랐고, 이 구절을 공부할 때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잘 배우지 않았기에 법에서 지적한 문제를 깊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뒤늦게 이 구절에서 제가 어떤 일을 해서 효과를 볼 때 자신의 능력이고 공덕으로 여겼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겁니다. 그런데도 저는 자만심으로 제가 한 것으로 생각하고, 저의 능력이고 재능으로 여기며 득의양양해하고 우쭐대며 그런 마음을 키워온 것입니다.

대법제자가 수련 과정에서 하는 모든 일에서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작게는 제가 진상 지폐를 준 사람이 위에 쓴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 진상 내용을 본 후 삼퇴를 선택하면 이 사람을 내가 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는 해외에서 대규모로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도, 거기에 참여한 수련생은 자기들이 한 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자신이 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든 건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고 대법의 위력입니다. 우리가 사람 마음으로 일한 후, 자만심으로 자기 능력으로 해낸 것이고 자기가 얼마나 능력이 있다고 여기면서 환희심, 과시심, 명예욕 등 많은 집착심이 생겨나게 되면, 자기가 대단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에 직면했을 때 반드시 법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만심으로 잘못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런 자만심은 구(舊)우주 생명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우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생명이 법에서 이탈해 변이된 불순한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변이된 것들은 대법이 부여한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여기고, 심지어 그것을 이용해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하려고 하는데, 인간 세상에서 표현된 것이 바로 자만심입니다.

그것에 이끌리면 사부님과 대법과의 관계를 바로잡기 어렵습니다. 그런 자만심은 분명 사람 마음에 끌려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닦아버리는 과정은 바로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는 마음을 닦아내는 것이며, 우주의 특성에 동화하여 신우주의 생명 표준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 대한 지고한 자비와 은총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법에서 분명하게 인식한 후, 이런 자만심이 나타날 때 빨리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확고한 정념으로 자신을 장악하고 법의 요구에 따르기만 하면 그것들을 닦아버리기 쉽습니다.

자신의 자만심을 확실히 인식한 후, 더는 그렇게 자아를 고집하지 않고 독선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 등을 저의 능력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지 않고, 당한 고난에도 불공평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겸손과 감사를 알았으며, 자신의 미미함과 잘하지 못한 점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많은 걸 주셨음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사부님을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동안 제가 한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고 대법에서 온 것입니다. 저는 생명의 깊은 곳에서부터 대법에 동화되어 대법을 실증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한 층씩 제거되기 때문에 이미 닦아버린 사람마음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날 수 있기에 자만심은 여전히 나타납니다. 최근 저는 일부 문제를 법에서 해결했습니다. 주변의 많은 수련생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떤 수련생은 오랫동안 그런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수련생이 왜 아직도 이런 문제를 돌파하지 못할까, 나는 오히려……’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그러나 즉시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자심생마(自心生魔)’가 아닙니까? 저의 문제가 해결되고, 법 인식이 향상되고, 법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면 그것은 모두 대법의 위력에서 온 것이고,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제도해주신 것이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인식과 경험을 수련생들과 공유해서 수련생에게 정말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부님의 안배로 이런 식으로 제자들을 제고하게 한 것이지 제가 해낸 것이 아닙니다. 이 사악한 생각은 원래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걸 원하지 않습니다. 당시 졸리고, 머리가 혼란스러워 잠시 이런 생각이 다시 반영되어 나왔습니다. 바로 수련생들에게 인식을 향상하도록 도와주었고, 수련생들에게 저의 ‘고견’을 설교하는 화면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오만함이 어디서 온 건가? 나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부인한다’라고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맑아졌을 때 다시 그 악한 생각과 외래의 교란을 분명하게 분별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이것은 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악한 것이 제 머리에 반영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부님, 저를 구해주시고 저를 위해 결정해주십시오.” 저는 정념으로 그것들을 제거하고 구세력의 모든 교란과 박해를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그런 그릇된 생각이 마치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미 그것들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었으므로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진면목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대단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이 사악한 요소가 누구에게 떨어지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고, 자신이 가진 작은 능력이 자신만이 가진 최고의 능력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과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이런 사악한 요소와 집착심이 주는 느낌에 따라 사오(邪悟)하고 대법과 대립 면으로 나아갔습니다.

사오한 자를 따르고 숭배하는 사람들도 같은 집착이 있으므로 그런 느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오한 자의 언행과 표현은 그들의 집착과 추구를 크게 만족시켜 줍니다. 대법은 그들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할 수 있으므로, 사악(邪惡)은 그들이 사부님과 대법을 멀리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저는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바로잡은 후 사악의 배후에 있는 것이 마치 못된 놈과 같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그런 것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빠지면 매우 즐겁고 매우 고양된 기분을 느끼며 그것을 매우 원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그것에서 벗어나 그것을 초월한 후 바라볼 때라야, 그것이 얼마나 저능하고 추악한 것인지 알 수 있고, 그런 것에 이끌려 통제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두려운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생기면 왜 이렇게 나쁜 사상이 반영되어 나올 수 있는지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완전히 닦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일부 문제에서 수련생보다 먼저 제고됐다며 환희심, 질투심, 보복심, 자만심, 이기심 등이 생긴 것이고 좋지 않은 많은 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좋지 않은 마음이 나오게 되면 사악한 구세력의 요소가 이런 틈을 이용해 머릿속에 사악한 생각을 심어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대법으로 대조해 그것의 속임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구세력의 사악한 요소는 대법제자를 노려 온갖 수단으로 망치려 합니다. 자심생마는 사람을 멸망시킬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문제이므로 구세력은 당연히 이를 이용해 사람을 망치려 합니다.

저는 ‘자만심’이 정말로 큰 누락임을 더욱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온갖 사람마음과 바르지 않은 생각을 갖게 해, 사악한 구세력이 교란과 박해를 가합니다. 사악은 그런 느낌과 장면을 품게 해서 자만심을 추구하게 합니다. 자신을 잘 수련하지 않고 파악하지 못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이런 마음을 닦아버리는 것을 엄숙하게 대해야 하며 조금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미혹에 빠진 사람은 과시심, 명예욕과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등 온갖 사람 마음이 있습니다. 공산당 문화와 현대의 변이된 관념 속에는 ‘위대함, 광명함, 정확함’, ‘남에게 강요하는 것’, ‘자아 가치의 실현’ 등 변이된 요인은 물론, 구(舊)우주의 이기적인 본성과 생명이 변이된 후 타락한 것도 있기에 모든 대법제자는 이런 ‘자만심’을 어느 정도 갖고 있습니다.

우주 정법에서 제거하고 도태해야 할 것은 그렇게 변이되고 불순해서 전혀 구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사부님께서 구하시려는 것은 우리의 선천적인 것과 우주의 본성인 그런 순진한 진아(眞我)입니다. 변이되고 타락한 것을 선택하면 그것에 따라 도태될 것이고, 우주 특성에 동화됨을 선택하면 사부님의 구원을 선택하는 걸 의미합니다. 하지만 ‘자만심’은 구원의 큰 장애물이고 우리의 생명을 도태라는 위험한 상황으로 끌어들이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대법제자는 정말 경계해야 합니다.

‘자만심’을 닦아버리는 것은 먼저 법리에서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런 것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며, 어느 것이 진정한 자아이고 어느 것이 아닌지 알아야 합니다. 법을 더 많이 공부하고 주의식(主意識)을 강화해야 하며, 진정한 자아를 지켜야 합니다. 동시에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닦는 데 주의를 기울여 이런 일이 나타날 때 제때 구별하고 자신을 파악해 정념으로 그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소홀히 하거나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생각하고 심지어 그런 느낌을 추구하여 발전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는 단호히 그것들을 거부하고 법 공부를 강화하며 그것들을 끊임없이 약화시켜 진정한 자아를 강화해야 합니다.

물론 좋지 않은 마음이 나타나거나 자신을 잘 파악하지 않아 굽은 길을 걸었다면 소극적인 감정이 나타날 수 있고, 심지어 수련에 대한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제때 일어나 법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책하면서 자신이 이제는 안 되겠다고 우울해하더라도 소극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고 수련하려는 결심을 되찾아야 하며, 자신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수련 성취시키려 하시고 정법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확고한 정념은 신사신법(信師信法)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7/29/48017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7/29/48017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