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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례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헤이룽장성 수련자 류샹, 결국 사망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이춘시 톄리시 파룬궁수련자 류샹(劉祥)은 파룬따파의 진선인(真·善·忍) 신념을 고수하다 수년간 중국공산당(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았으며, 2024년 2월 28일 오전 억울함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였다.

류샹과 부인 리슈룽(李秀榮·76)은 중공이 1999년부터 파룬따파를 박해한 지난 25년 동안 여러 차례 중공 관리들에게 납치되고 감금됐으며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중 류샹은 6차례 납치됐고 4차례 불법 감금됐으며, 1차례 강제노동 박해를 당했고 사법 당국의 모함도 여러 차례 받았다. 리슈룽은 5차례 납치됐고 4차례 불법 감금됐으며 불법 판결도 받았다.

류샹이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다 2019년 7월 그가 박해 경험을 기록한 문서를 발견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첫 번째 납치: 7개월 넘게 불법 구금

2002년 4월, 진상 자료를 복사하러 갔다가 복사소 직원의 모함으로 톄리 솽펑진 파출소에 신고됐다. 안시쥔 부소장이 나를 솽펑진 파출소로 납치했고, 파출소 지도원 궈시취안이 경찰 두 명을 데리고 우리집에 들이닥쳐 아무런 절차도 없이 수색했다. 사부님 법상과 대법 서적, 공법 음악 테이프, 사부님 설법 녹음테이프 등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 또 아내 리슈룽을 강제로 파출소로 끌고 가 심문하고 우리 부부를 톄리 구치소로 끌고 가 불법 구금했다.

그 후 파출소 경찰들이 자주 집에 와서 괴롭히고 돈을 갈취해 가족들이 두려워했다. 친척과 친구들이 4천 위안을 모아 톄리 공안국 황 국장(사망)에게 줬다. (같은 해) 11월에야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15일 구류라고 했는데 결국 7개월 넘게 초과 구금됐다.

두 번째 납치: 1년 넘게 불법 강제노동

2004년 5월, 리슈룽과 함께 자료를 배포하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톄리시 웨이궈 파출소 왕위장 소장이 경찰 4~5명을 데리고 우리를 파출소로 끌고 가 강제 심문했다. 우리가 협조하지 않자 경찰들이 주먹과 발로 때리고 뺨을 때렸으며 수갑으로 우리를 침대에 묶었다. 경찰들은 또 리슈룽을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 불법 수색을 했고 사부님 법상과 대법 서적, 공법 음악 테이프 등을 빼앗아 갔다. 그런 다음 우리를 구치소로 끌고 가 불법 구금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의 혹형 재연 그림:구타

경찰들은 자주 구치소에 와서 우리를 불법 심문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런 절차도 없이 우리를 불법 강제노동 처분했다. 나는 1년 9개월, 리슈룽은 1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리슈룽은 하얼빈 마약중독자 수용소로 끌려갔는데 신체검사에서 병세가 심각해 수용소 측이 수용을 거부해 다시 구치소로 보내졌다. 이후에 리슈룽의 건강이 더욱 악화돼 걷기도 힘들고 일상생활도 할 수 없게 되자 구치소장이 그녀가 구치소에서 죽을까 봐 책임지기 싫어 집으로 보냈다.

나는 쑤이화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는데, 그곳은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각한 장소였다. 200여 명의 수련자들이 불법 구금돼 있었고, 각 수련자마다 죄수 두 명이 붙어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감시했다. 말을 하거나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매일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똑바로 앉아야 했고 허리를 구부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받았다. 노동수용소는 ‘전향’하지 않는 수련자들에게 가혹 행위를 가했다. 장기간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수련자가 눈을 감으면 때려 깨웠다. 수련자들은 너무 졸려 멍한 상태가 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간수들이 번갈아 가며 수련자들에게 수련 포기를 강요하고 ‘삼서(수련 포기 각서)’를 쓰게 했다. 자오라는 지도원은 구두로 한 수련자의 발가락을 밟고 세게 짓눌러 발가락 표피가 벗겨지고 피가 나며 발가락이 보라색으로 변했는데도 수련자를 비웃으며 “정말 강하네”라고 했다.

경찰 스젠은 주먹으로 수련자 리샤오톄의 이마를 세게 때려 달걀만 한 보랏빛 혹이 생겼다. 부대대장 댜오쉐쑹은 더욱 잔인했다. 주먹으로 리샤오톄의 볼을 세게 때려 이를 4~5개나 부러뜨렸고 입 안이 온통 피투성이가 됐다.

경찰들은 또 각종 고문으로 수련자들을 괴롭혔다. 채혈, 작은 의자에 앉히기, 작은 방에 가두기, 전기봉 가격, 담뱃불로 지지기, 큰 걸이에 매달기 등을 했고, 하루 16시간 노예 노동을 시켰다. 힘든 노동으로 수련자들은 기진맥진했지만 야근까지 해야 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경찰 진칭푸가 대나무 막대기로 때리고 체벌을 가해 수련자들은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지경이 됐다.

2005년 9월, 불법 강제노동이 끝났다. 하지만 톄리시 ‘610’ 우두머리 천톄, 솽펑진 파출소 지도원 녜융리 등이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500위안을 내라고 강요했고 그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세 번째 납치: 가혹 행위

2007년 12월, 파출소 경찰이 전화를 걸어 즉시 파출소로 와서 보고하고 서명하고 각서를 쓰라고 했다. 당시 내가 거부하자 녜융리 지도원이 차를 몰고 집으로 와서 류춘장 부소장과 주옌(사망)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지시했다. 그들은 사부님 법상과 대법 서적, 공법 관련 용품을 빼앗아 갔고 날 파출소로 끌고 갔다. 자오윈쿤(사망) 소장이 나를 심하게 때리며 고문하고 협박했으며 톄리 구치소로 끌고 갔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솽펑진 파출소 자오윈쿤 소장과 톄리시 공안국 ‘610’ 우두머리 천톈, 그리고 7~8명의 경찰이 나에게 폭력을 가했다. 강제로 심문하고 주먹과 발로 때리고 벨트 끝의 쇠고리로 때렸다. 기절하면 찬물을 끼얹고 깨어나면 계속 때렸다. 온몸이 시퍼렇고 보랏빛 멍투성이가 됐고 입 안은 피투성이였다. 4시간 넘게 폭행한 후에야 날 구치소로 돌려보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경찰은 또다시 나에게 불법 강제노동을 처분했다. 나는 쑤이화 노동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신체검사에서 병세가 심각해 수용소 측이 수용을 거부해 다시 구치소로 보내졌다. 이후에 병세가 더욱 악화돼 2008년 4월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네 번째 납치: 한때 감옥에 갇혀

2011년 12월, 솽펑진 파출소 경찰 량시원이 솽펑진 임업공안국 형사대대장 왕얼솽을 데리고 우리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도둑처럼 집안을 뒤지고 물건들을 바닥에 던져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사부님 법상과 대법 서적, 휴대전화 4대, DVD 플레이어 1대, 공법 관련 용품 등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나와 아내를 임업공안국으로 끌고 가 리슈룽에게 고문을 가하며 심문했다. 왕얼솽이 더욱 악랄했는데 경찰들에게 지시해 때리고 욕하고 ‘호랑이 의자(고문 도구)’에 앉혀 고문했다. 기절하면 찬물을 끼얹고 깨어나면 계속 고문했다. 사람이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자 급히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서야 그만뒀다. 우리에게 밥을 주지 않고 잠도 자지 못하게 했다. 며칠 후 경찰들은 리슈룽을 톄리 감옥으로, 날 톄리 임업감옥으로 보냈다. 리슈룽은 30kg짜리 족쇄를 채워졌고 두 명의 감시자가 붙어 감시했으며 자주 구타와 욕설을 당하고 온갖 모욕을 당했다.

酷刑演示:脚镣
고문 재연: 족쇄

이 기간 동안 솽펑진 임업공안국 경찰들이 우리집에 와서 친척들에게 돈을 갈취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형을 선고하겠다고 했다. 아들이 협조하지 않자 리슈룽의 남동생을 찾아가 돈을 내라고 강요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누나에게 몇 년 형을 선고하겠다고 협박하며 돈을 내면 사람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또 경찰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상의해보라고 했다. 식사 후 3천 위안을 내라고 했고 돈을 낸 후에야 설날 전에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섯 번째 납치: 사법 모함 당해

설이 지난 지 며칠 안 돼 그들은 우리를 모함한 서류를 임업국 법원으로 이송해 우리에게 형을 선고하려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와 아내는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다. 경찰들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우리 가족들을 괴롭혀 우리의 행방을 캐물었다. 가족들도 평온히 살 수 없게 됐고 친척과 친구들도 연루됐다. 경찰은 다른 성(省)에 있는 두 딸의 집까지 찾아가 괴롭혀 두 딸도 불안에 떨며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우리는 계속 랴오닝성을 전전했다.

2017년 10월 23일, 안산시 공안국 경찰이 호구 조사를 핑계로 날 안산 구치소로 납치했다. 며칠 후 헤이룽장성 톄리시 임업공안국으로 이송돼 톄리시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그 기간 매일 청소를 해야 했고 다른 죄수들에게 자주 구타와 욕설을 당했다. 솽펑 임업검찰원의 리이가 날 심문했는데, 그가 쓴 자료는 모두 조작되고 거짓된 것이었다. 이후에 날 모함한 사건 기록이 이춘시 난차현 검찰원으로 이송됐다. 난차 검찰원의 쉬융샹과 탕하오가 여러 차례 심문한 후 난차현 법원으로 이송했다. 난차현 법원의 왕샤오둥과 리하오가 구치소에 와서 심문하고 강압했으며, 법원에서 사람이 와서 확인한 후 불법 재판을 열려고 했다.

2018년 2월 10일, 내 병세가 심각해져 응급실로 이송돼 구급 처치를 받았다. 혈압이 232까지 올랐다. 구치소장이 내가 거기서 죽을까 봐 두려워 솽펑 임업국 공안국에 전화해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다. 공안국에서 사람이 와서 처분보류 절차를 밟은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여섯 번째 납치: 부부가 불법 판결 받아

2017년 12월 19일, 리슈룽이 랴오닝성 타이안현 신카이진에서 안산 경찰에게 납치돼 안산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헤이룽장성 이춘 구치소로 압송돼 박해와 모욕을 당했다. 매일 청소를 해야 했고, 식사 때는 죄수들이 음식에 소금을 넣었는데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을 마실 때도 물에 소금을 넣었는데 마시지 않으면 맞았다. 감방장이 생리 중일 때는 리슈룽에게 닦아줄 것을 강요했다. 자주 구타와 욕설을 당했고 채혈도 당했다. 난차 검찰원에서 자주 사람이 와서 심문하고 강압했다. 리슈룽은 박해로 인해 건강이 매우 나빠졌고 병세가 심각해져 여러 차례 실신했다.

2018년 6월 7일, 나는 랴오닝성 하이청시 시류진에서 또다시 톄리시 공안국 형사대 경찰들에게 납치됐다. 6월 9일 오전 8시, 이춘시 난차현 법원이 우리 부부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다. 리슈룽의 건강 상태가 위독해져 긴급 구조를 받고 주사와 약을 먹은 후 약간 정신이 든 상태에서 급히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장은 리핑이었고 서기는 저우둥디였으며 나머지는 이름을 모른다. 나는 1년 형에 1년 집행유예, 벌금 1천 위안을 선고받았다. 리슈룽은 6개월 형에 1년 집행유예, 벌금 1천 위안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우리가 20년간의 박해 속에서 겪은 고난이다. 이를 기록해 세상 사람들에게 중공의 사악함을 알리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가담한 모든 구제 불능의 악인, 악질 경찰, 악질 의사들이 마땅한 응보를 받게 하고자 한다.

(류샹, 리슈룽 부부가 당한 더 많은 박해 상세 내용은 명혜망 보도 ‘헤이룽장성 파룬궁수련자 류샹 네 차례 납치당한 경험’ 참조)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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