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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77세 수련자 팡산시, 선행 권하는 편지 한 통으로 3년형 받아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헤이허시 우다롄츠의 파룬궁수련자 팡산시(龐善喜·77)가 선행을 권하는 편지 한 통을 썼다는 이유로 2024년 1월 넌장시 법원에서 3년 징역과 1만 위안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팡산시는 헤이룽장성 타이라이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받고 있다.

1947년 1월생인 팡산시는 원래 룽전 곡물 창고 노동자였다. 오랜 중노동으로 류마티스 관절염, 위장병, 히스테리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생활고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늘 기운 없고 졸리며 무기력했다.

1999년, 파룬궁의 질병 치유와 건강 증진 효과, 무료 교육의 명성이 중국 전역에 퍼지면서 팡산시도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그 결과 약 한 푼 들이지 않고 모든 병이 사라졌고 젊은이처럼 변해 농사일 등 힘든 노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대법의 진선인(真·善·忍) 법리로 도덕성이 높아지고 정신 상태도 좋아졌다.

중공은 1999년 7월 파룬궁수련자 수가 당시 공산당원 수를 넘어서자 두려움에 빠져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이에 수련자들은 박해 속에서 민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팡산시는 2023년 4월 우다롄츠시 룽전 농장 파출소에 진상을 알리고자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파출소는 우다롄츠 공안국과 함께 팡산시의 집을 급습해 파룬궁 서적 등 개인 물품을 빼앗아 갔다. 이어 공안국은 이 70대 노인을 사법적으로 박해하며 자료를 조작해 검찰에 넘겼고, 결국 2024년 1월 넌장시 법원의 판결을 받게 됐다. 팡산시는 베이안 감옥을 거쳐 한 달 만에 헤이룽장성 타이라이 감옥으로 이송됐다.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우다롄츠시 중공 인사들의 업보 사례

▼ 우다롄츠시 공안국 전 부국장 페이궈장(裴國江)은 공안국에서 파룬궁 박해를 주도했다. 2007년 1월 9일, 그를 포함한 경찰 4명이 탄 차량이 사고를 당해 페이궈장은 39세 나이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내막을 아는 이들은 그의 악행이 업보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 3일, 파룬궁수련자 취롄잉(曲連英)과 쑨구이잉(孫桂英)이 우다롄츠시 허핑진 신리촌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주민의 신고로 우다롄츠시 공안국 형사 2대대장 리샤오광과 허핑진 파출소 경찰 류즈유에게 납치돼 10여 일간 불법 구금됐다. 같은 해 12월 16일경 페이궈장이 취롄잉을 다시 납치하려 했으나 그녀는 피신했다.

2006년 12월 19일에는 공안 경찰들이 파룬궁수련자 쑨구이잉의 집에 불법 침입해 그녀를 납치해 구치소에 가두고 박해했다.

▼우다롄츠시 풍경구 파출소장 장샤오밍(張曉明)은 이익을 위해 파룬궁 박해에 열을 올렸고 수련자들의 충고를 무시한 채 공개적으로 대법을 비방했다. 2012년 그는 림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자 파룬궁수련자들이 다시 삼퇴를 권했지만 거절했고, 2개월 후 47세 나이로 고통 속에 사망했다.

▼우다롄츠시 잔허 임업국 파출소 7위원회 담당 경찰 창지량(常繼梁)은 여러 차례 파룬궁수련자 납치에 가담했다. 2013년 그는 당뇨병과 요독증으로 고통받다 자택 5층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우다롄츠시 풍경구 공안국 부국장 치창장(齊長江)은 대법 박해의 선봉에 섰고 파룬궁수련자들의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탐욕에 빠져 회개하지 않았다. 2005년 1월 초 그의 아내가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우다롄츠시 구치소 경찰 위푸차이(禹福才)와 리추성(李秋生)은 불법 구금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수갑 채우기, 강제노역, 면회 금지, 구타와 욕설 등 박해를 가했다. 2002년 두 사람은 근무 중 탈옥한 사형수 2명에게 살해당했지만, 평소 파룬궁수련자에게 악랄하지 않았던 경찰들은 화를 면했다.

▼우다롄츠시 풍경구 관리위원회 부주임 지뎬화(冀殿華)는 중공 악당의 앞잡이로 나서 파룬궁수련자들을 적극 박해했다. 1999년 7월 20일 그녀는 ‘610(파룬궁 탄압기구)’ 전원과 공안, 간부들을 이끌고 4곳의 연공장을 급습해 수련자들의 개인 물품을 빼앗았다. 또 각 직장을 돌며 청원한 수련자들의 임금을 삭감했고 이로 인해 일부는 해고되거나 가족과 이별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도 돈을 갈취했고 집에 있는 수련자들에게는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진상을 모르는 교사와 학생들에게도 대법 비방 서명을 강요했다. 2005년 1월 2일 밤, 지뎬화는 갑작스러운 심장 종양 파열로 사망했다.

(역주: 박해 관련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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