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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정법 수련에 임하자

글/ 샤오징(曉淨, 캐나다)

[명혜망] 최근 인터넷에서 ‘대법을 이용하려는 사심을 제거하다’라는 심득 교류 글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매우 숨겨진 대법을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수련을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원만에 집착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항상 생활이 순조롭고, 대법 일이 순조롭고, 몸 상태가 좋고, 심성이 빨리 향상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대법을 수련하면 이런 것들이 보장될 수 있다고 늘 생각했다. 나는 몇 년간의 수련을 통해 심성이 높아져 성격이 크게 개선됐고, 그 결과 대인관계와 가정, 직장 환경, 나아가 삶의 질이 현저히 개선됐다. 나는 주변 환경이 계속해서 순조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대인관계도 점점 좋아지자 자주 좋은 느낌을 받았다…

심성이 수련 중에 날로 제고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대법을 이용해 인간 세상의 각종 이익을 얻으려는 나의 잠재적인 집착도 점점 드러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 ‘좋은 느낌’ 뒤에는 무의식적인 자화자찬과 대법 수련이 자신에게 이렇게 큰 변화를 주었다는 자부심이 많이 숨어 있었다. 사실, 각종 좋은 느낌 이면에 이로 인해 생겨난 집착이 이미 매우 무거워진 것이다. 나는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신성한 정법 수련에 임하지 않았다.

대법에 처음 들어섰을 때를 돌이켜보면, 몸에 있는 각종 집착이 모두 무겁고 뚜렷했다. 인간 세상에서의 표현도 가정이든 직장 환경이든 대인관계가 비교적 긴장되어, 갈등이 거의 사방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 대법에 대한 마음은 매우 순수하고 경건했으며, 수련의 유일한 소원은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마음을 점차 버리고 나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유유자적하다고 느껴졌고 조화로운 분위기를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새로운 집착이 생겨 이렇게 신성한 수련을 거의 인간 세상의 기능으로 여기게 됐고, 자신과 대법, 그리고 사부님의 정법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지 못하게 됐다. 표현상으로는 수련의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고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매우 강해졌으며, 단체 법공부나 진상을 알리는 활동과 같은 대법 활동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대법 일을 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련을 통해 심성을 제고시키는 것과 속인 중에서 심리적 소양과 성격을 개선함을 혼동하고, 제고 후 가져온 속인 중의 각종 실익에 만족하며, 때로는 이를 거꾸로 자신의 수련 제고의 증거로 삼아 자기도취에 빠졌다.

지금 깨달은 바로는, 사실 내가 수련을 매우 견실하게 하지 않아서 심성의 일부분은 제고됐지만, 또 속인사회에 오염되어 처음의 순수한 수련인의 마음가짐이 변질된 것이다. 제고 후 가져온 인간 세상의 이익을 제고의 목적으로 보게 되어 수련보다 더 중시하게 됐고 수련의 근본 목적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개념도 점점 희미해지고 무의식중에 수련을 매우 ‘실속 있는 일’로 여기게 됐다. 이런 마음들은 모두 매우 은밀해서 평소에는 발견하기 어렵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지금 보니 근본적으로는 수련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아 내심에서 우러나와 대법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지 않고, 대법을 이용해 각종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이런 마음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이렇게 더러운 마음가짐을 갖고 아무리 열심히 법공부를 하고 진상을 알려도 그것은 단지 형식적으로 정진하는 것일 뿐, 어떻게 진정으로 제고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우리 항목 팀에서 한 수련생이 대법 일을 하면서 명예를 다투고 경력을 자랑하는 등의 마음이 있어 모두가 매우 분명하게 보고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 자신도 비슷하지 않았는가? 비록 추구하는 것은 다르지만 대법을 이용해 사욕을 만족시키려는 목적은 비슷했다. 정법 수련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으니 우리는 더욱 자신을 순수하게 하고, 자신의 수련 목적을 파헤쳐보고, 대법에 대한 마음이 순수한지 살펴보고 빨리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실 수련은 본래 표면을 버리고 오직 사람의 마음만 보는 것이다. 우리가 몇 년을 수련했든, 대법 일을 얼마나 했든, 항목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맡았든, 진상을 알리는 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든,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과 비교할 밑천이 아니며, 더욱이 이로 인해 어떤 좋은 느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매우 위험하며 정법 수련의 요구와도 크게 동떨어진다.

이로부터 순수하게 수도(修道)하려는 마음의 귀중함을 알려주는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백정이 거리에서 부처 수련을 하는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부처를 만나러 서방(西方)에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백정은 말했다. “저는 너무 더러워서 부처님을 만날 자격이 없습니다. 제 진심을 드릴 테니 갖고 가주세요.” 그리고 바로 마음을 꺼내 그들에게 줬다. 부처 수련을 하는 두 사람은 백정의 마음을 갖고 서방으로 갔다. 부처님은 그들을 보자 물이 펄펄 끓는 큰 가마를 가리키며 뛰어 들어가 보라고 하셨다. 두 사람은 망설이던 끝에 먼저 백정의 마음을 넣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정의 마음을 던져 넣었는데 금부처로 변했다. 두 사람은 이를 보고 즉시 뛰어 들어갔는데 결국 튀김 두 개로 변했다.

보아하니 수련은 정말 조금도 거짓됨이 없어야 하는 일이다. 심성 표준은 매우 엄격해서 조금만 차이가 나도 안 된다. 대법에 대한 마음가짐은 특히 중요하다. 이 글을 쓴 것은 여러 수련생과 함께 서로 격려하고자 함이다. 우리 모두 가장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대법을 대하고, 이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대하자!

 

원문발표: 2003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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